키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0
존 바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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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제대로된 문학작품을 대면했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물론 제대로된 작품이란게 노벨문학상이 선정하는 기준의 잣대와는 맞지 않을수도 있는데요. 뭐 문학성이 대단히 뛰어나던가 아니면 대중적인 예술성이 뛰어나던가 뭐 이런 고차원적인 잣대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도 있는 작품입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인 존 바스의 <키메라> 라는 작품인데요.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천일야화』와 『그리스 신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작품의 출발점에서부터 상당히 친근하고 가독성 높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대면하기전에 고전을 패러디한 작품이라 약간의 기대감과 더불어 뭐 평범한 패러디에서 끝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드는 작품인데요. 막상 작품을 대면하고 나니 이런저런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제대로 증명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패러디도 이런 경지에 까지 올라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네요.


          결론부터 언급하자면요 정말 한마디로 패러디의 바이블을 보는듯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상당한 패러디 작품을 대면했습니다. 속칭 버전2라는 개념으로 패러디한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신선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사실은 정말 버전2로만 기억속에서 남는 작품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 입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강렬한 포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작에 비해 패러디한 작품이 별개의 개체성을 획득한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종류의 작품으로 변질된 경우가 왕왕있어죠. 영화계에서 흔히들 말하는 버전2가 원판보다 흥행을 끌기에 힘들다는 속설처럼 문학계에서도 패러리라는 기법은 상당한 모험수를 둔 기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P.D 제임스의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 라는 작품처럼 완벽한 형태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쓸쓸하게 퇴장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면에서 존 바스의 <키메라> 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면서도 흥미 만점의 또 다른 작품의 세계를 만끽하게 합니다.


          우선 '키메라' 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외관적인 특성에 맞추어 작품의 틀을 크게 『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라는 세가지의 이야기로 컨셉을 잡았다는 점인데요. 키메라가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용인 형태로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듯이 존 바스는 『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세가지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별개인듯 하면서도 상호연관성을 갖춘 스토리로 틀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속에서 '천일야화', '페르세우스신화', '벨레로폰신화' 의 각각의 별개의 원전을 패러디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내러티브의 출발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키메라라는 존재가 머리, 몸통, 꼬리중 어느하나 없이는 성립되지 않듯이 존 바스의 이번 작품 역시 기본적인 별개의 원전들이 하나의 형태로 이어진다는 발상자체가 기본적인 패러디작품과는 차별화시키는 역활을 합니다. 이정도면 틀에서부터 왠지 모를 포스감이 느껴지죠.


          내러티브적인 면에서도 이 작품이 과연 패러디계열의 작품일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차별화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런 원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원전의 주인공들의 비중에서부터 이야기의 흐름자체 역시 색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세헤라자데가 아닌 동생인 두냐자데가 화자로 등장하고, 페르세우스나 벨레로폰 역시 그 비중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화자들을 중심으로 설정하면서 원전과의 유사성 보다는 상이성이 강조되는 내러티브를 보여주는데요. 여기서 존 바스의 신의 한수를 볼 수 있죠. 무엇보다 존 바스 자신의 현현인 '마신', '메두사' ,'폴리이도스' 등의 인물을 등장시켜 리얼리티를 더 강조하게 됩니다. 이러한 리얼티는 왠지 원전보다 이 패러디본이 더 사실일것만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게 하면서 새로운 신화 이야기에 독자들을 눈을 매료시키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물론 상당히 많은 각주들과 시점의 왜곡(존 바스의 의도되고 계획적인 설정으로 보이는데요) 화자의 모호성들이 내러티브를 꾸준히 따라가기엔 역경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의도된 장치들로 인해서 <키메라> 라는 작품이 갖는 독립성을 높여주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합니다. 원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과 그 방향성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실험적인 장치적 설정들이『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세편의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봐야겠죠. 기존의 '천일야화',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신화의 창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왠지 이 세편의 이야기가 사실일것 같다는 느낌을 절로 갖게한다는 거죠.


          존 바스는 패러디라는 기법을 사용하였지만 원전과의 유사성보다는 패러디작품의 상이성에 촛점을 맞추어 새로운 신화 이야기라는 맛깔나는 작품을 창작해 냈습니다. 작품의 구조적인 틀에서부터 세이야기의 등장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내러티브의 독창성까지 더해 패러디라고 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의 패러디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으면 이번 작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성향이 신화적인 이야기틀과 접점을 찾아가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단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서사들이 깔려 있고 세이야기가 하나의 큰틀에서 상호연결작용을 하고 있어 큰줄기에서 이야기 순환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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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6-03-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독을 망설이던 작품이었는데 리뷰가 큰 도움이 되네요.^^
 
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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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는 문단 데뷔 25주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매스커레이드 호텔> 이라는 작품을 내놨습니다.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건을 배경으로 베테랑 호텔리어 야먀기시 나오미와 유가와교슈와 가가형사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사건 해결사인 민완형사 닛타 고스케를 등장시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무엇보다 호텔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을 기반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민낯을 가린 가면이라는 테제를 내러티브 전반에 깔아서 많은 독자들로 부터 인간 본성의 심성에 대한 울림을 끌어 올리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메니아들이라면 한번쯤은 버전2의 시리즈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느낌마저 줄 정도로 닛타와 나오미라는 주인공에 대한 유니크한 감정들을 받았으리라 여겨지는데요. 이번에 그 후속작으로 <매스커레이드 이브> 가 출간되어 세인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이번 작품 역시 독특한 발상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거죠. 제목에서 언급했듯이 매스커레이드 이브 특히 이브라는 뜻이 사전적인 뜻으로 축제일 전날을 지칭하지만 달리 해석하면 매스커레이드라는 가장의 이면인 민낯을 의미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해석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대게의 시리즈물인 버전2의 형식들은 기존 작품에 비해서 시간적으로 후대를 기준으로 출발하는데 이번 작품은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시간적인 배경보다 상당히 앞선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상큼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작품의 구도 자체에서부터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차별성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매스커레이드 이브> 는 전작과는 시간적으로 역순으로 출발하면서도 동시에 전작과 다른 구도를 제시합니다.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나오미의 버전과 닛타의 버전을 각각 별개의 공간으로 편셩했다는 것인데요. 호텔리어인 나오미의 버전은 그녀의 직장인 코르테시아도쿄 호텔과 코르테시아오사카 호텔을 중심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가장된 얼굴과 그 가면의 이면속에 묻혀 있는 실제적인 민낯의 얼굴을 조명하면서 내러티브를 형성해나가는 형식이고, 닛타의 버전은 호텔과는 무관한 열린 공간을 배경으로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면서 그 사건속에 존재하는 가장의 얼굴과 민낯의 얼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 전체가 이렇게 나오미버전과 닛타의 버전이 각각이 진행되었다면... 글쎄라는 생각을 갖게 될만하죠. 여기서 또 하나 신의 한수를 볼 수 있는데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지막 연작소설편에서 나오미버전과 닛타버전을 교묘하게 뒤섞어버린다는 것이죠. 독자들의 바램인 나오미와 닛타의 상봉은 과연 언제쯤 이루어질까라는 기대감을 줄곧 끌어오면서 마지막편에 그 기대감에 부응하는 설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다 읽게 되면 연결될듯 애간장을 태우던 그들의 상봉은 결국 무산되어버리고 마는데요. 이게 바로 이브라는 마이너스 버전의 형식을 그대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있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결국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호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역순의 구도를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전작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간파했지만 전작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인 닛타와 나오미의 경우 상당한 베테랑으로 각자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인물들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그러다보니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비해선 왠지 모를 위화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의문점이 풀렸다는 점에서도 재미나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마이너스 버전인 이번작품은 이들 베테랑들이 있기 전까지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왠지 어슬프지만 프로의 싹수가 보이는 그런 인물들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오히려 현실감이 더 돋보이고 리얼리티가 실감나게 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구도(시간의 역순적인 배경)와 절묘하게 궁합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경관 호즈미 리사라는 감초같은 조연을 등장시켜 작품의 경직성을 완화하면서 독자들을 편안하게 이끌어 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회파추리소설의 근간을 여실히 볼 수 있는데요. 인간군상들이 가지고 있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고 그 가면속의 민낯의 얼굴들은 보여주기 싫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민낯을 통해서 추한 모습과 그 반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왠지 작품을 대면하면서도 자신의 매스커레이드는 무엇이며 실재의 민낯은 무엇일까라고 반문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전반적으로 작품의 시간적인 역순의 구조가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전작과 절로 비교해서 보게 되는 작품으로 두 주인공에 대한 이러저러한 변화를 살펴보는것도 재미있고 그들이 베테랑급으로 성장하여 활약할 수 밖에는 없는 필연적인 연결고리를 맛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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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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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문이 들려오네요.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 이라는 작품인데요.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섰고 영화로 제작되고 나면 더 많은 인기를 받을 작품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물론 마케팅차원의 전략적인 판단이었겠지만 미리 판권을 확보할 정도였으니 <걸 온 더 트레인> 이라는 작품에 절로 눈길이 가는것도 사실입니다. 한달 안밖이라는 짧은 시간과 세명의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녀들이 처해져 있는 각기 다른 위치 여기에 한 여인의 실종과 살인... 음 그냥 단순하게 열거하더라도 이번 작품은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안성맞춤인 태제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여인를 화자로 진행되는 내러티브는 사실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그 진실을 더욱더 미스테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결 매력있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사실 폴라 호킨스의 이력이 상당히 이채로운데요. 타임스의 경제파트 기자로 15년간 기자생활을 해왔던 경력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집필했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진행 컨셉트가 마치 경제컬럼을 보는듯한 느낌도 주는게 사실입니다.


          우선 작품의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복잡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요. 얼핏보게되면 레이첼, 애나, 메건 이렇게 세여인의 각기 다른 스트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듯 보여지는데요. 실상은 이들 세 여인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서서히 들어나게 되죠.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길 같은 평행구도로 보이지만 군데 군데 기차길의 교차점을 설정하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흡인력을 높이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결말부분까지 범인을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연막과 긴박감이 상당히 일품인 작품입니다. 보통의 추리스릴러라 범죄물에서는 볼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그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과연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상상력을 극도로 증폭시키고 있는 부분이 이번 작품의 키라고 보여집니다.


          레이첼, 애나, 메건 이렇게 등장하는 세 여인의 특징들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극히 평범하게 나레이션하는 기법(뭐랄까요 마치 경제신문의 칼럼코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팩트 그 자체를 전달한다는 느낌도 들게 합니다) 을 통해서 극중 인물들의 특징들을 절묘하게 부각시키고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하는 작품입니다. 폴라 호킨스는 상식적이지 않는(이 역시 상식의 범위 규정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요) 심리적 상태를 지니고 있는 세 여인을 통해서 왜 그렇게 이 여인들이 망가졌는지에 대한 의구점을 제시하죠. 어떤 이유에 의해서 그게 외부적인 요인이던 내부적인 요인이던간에 이 처럼 절묘하게 각각의 스토리를 접점을 향해서 나레이션하는 그 자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요. 물리적인 시간을 못박아 놓고 진행되는 세 여인의 스토리가 교묘하게 독자들의 눈과 사고를 가리고 있는 트랩으로 작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독자들의 긴장감을 배가 시키는 훌룡한 장치적 효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세 여인의 심리상태를 극대화시켜주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 거죠. 


          이번 작품은 일반적이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에 비하여 강렬한 임펙트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를 거의 볼 수 없는 작품입니다. 마치 작가가 작정하고 절제한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에 사활을 건 작품으로 보여진다는 거죠. 각 개인의 머리속에서 어렴풋이 설정되어 있는 상들이 시간의 흐름과 감춰진 설정들의 탈피를 통해서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는 방식이 그 어떠한 엔터테이먼트 효과보다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심리극의 묘수를 보는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스타트가 느리고 다소 지루하게 여기질지 몰라도 한번 탄력을 받은 속도는 그 가속도에 의해서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한없이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더 좋은 사람, 더 강한 사람,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들과 반쪽자리 진실들, 그리고 난 그 거짓말을 믿었고 좋아했다" 왠지 레이첼의 이 말이 자꾸 머리속을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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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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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름의 강렬한 태양빛만큼 서점가를 후꾼 달아오르게 했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에 이어서 <파수꾼> 을 대면했습니다. 우선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 의 감흥이나 인지도가 워낙 높다보니 후속작인 이번 작품은 가을하늘을 처다보는것 처럼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다소곳하게 잡아주는 잔잔한 작품으로 다가오네요. 하퍼 리가 당초 <앵무새 죽이기>를 집필할 때 <파수꾼>이라는 제하로 제출했지만 편집자의 권유로 인해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미 독자들로 알고 있는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의 태동을 가져온 작품이 바로 이번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앵무새 죽이기> 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하퍼 리는 오히려 세상 밖으로 은둔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번 작품에 대한 작품의 완성도가 <앵무새 죽이기> 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전작과 비교검토의 대상으로 본의 아니게 거론될 소지가 다분하고 하나의 연결된 고리의 작품으로 볼려고 하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 <파수꾼> 독자들에게 상당한 논란거리(아무래도 긍정적인 측면에서겠죠)와 더불어 <앵무새 죽이기> 의 연장선에서 혹은 별도의 작품으로 인지해서 볼만한 다양한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사실이구요. 일단 그녀의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 가 너무나 공전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다소 한풀꺽인 맛을 느끼게 하는건 사실입니다만, 또 다른 나름의 매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죠. 우선 작품의 큰틀에서부터 살펴보게 되면 거의 흡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죠. 등장인물들만 보더라도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고스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물론 행크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잠시 헷갈리게 하지만요 큰 범위내에서는 별 다른 점이 없죠.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누나로 등장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요) 여기에 설정 장소 역시 가상의 마을인 메이콤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구요. 단지 시간의 추가 한 20여년을 흘러 1950년대라는 점과 전작에서는 실패했던 흑인 변호가 성공했다는 회상등이 다를뿐 거의 같은 구도의 같은 설정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이 얼핏보게 되면 <앵무새 죽이기> 의 버전2라는 단순한 느낌을 주는 작품처럼 비쳐지기 때문에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다소 맥이 빠지는 작품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 작품에서 우리는 하퍼 리의 "신의 한수" 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죠. 바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칭의 변화라는 점입니다. 뭐 별거 아닌 두가지일 수도 있는데 이 두가지가 이번 작품을 전작에 비견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작품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간' 과 '인칭' 이라는 두가지의 선택이 각각 별개의 영역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조화를 이루어 기막힌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는 효과를 표출하면서 <앵무새 죽이기>의 버전2라는 느낌을 과감히 지워버리기도 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이 두가지의 다른 설정이 없었더라면 <파수꾼> 이라는 작품은 하퍼 리 명성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뛰어난 신의 한수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먼저 시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면요. <앵무새 죽이기> 가 스카웃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면 이번 <파수꾼>은 3인칭 시점이라는 점이죠. 뭐 시점 하나 바뀐 것 가지고 대단한 설레발을 떠냐고 하겠지만 이게 상당한 영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시간' 의 흐름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에서도 스카웃의 1인칭 주인공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간의 흐름만 20여년후로 돌려놨다면 정말 단순한 성장소설의 틀을 한번더 울거먹는 뻔한 작품으로 남았을것입니다. 3인칭이라는 시점의 변환과 시간의 흐림이 작용하여 이번작품은 뭐랄까 좀더 객관적인 사유의 진행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앵무새 죽이기> 에서는 왠지 모든 등장인물들이 스카웃의 관점에서 상당히 작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번 작품은 이러한 작위적인 느낌보다는 남부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당히 객관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카웃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시각이 아닌 미국 남부사회의 공통적인 시각을 볼 수있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스카웃의 우호지분으로만 여겨졌던 인물들의 면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효과를 창출했다는 것이죠. 물론 아무런 생각없이 아니 전작의 연속으로 알고 네러티브를 따라가게 되면 어 이사람들 왜이러지라는 다소 황당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점차 내러티브속에서 <앵무새 죽이기> 와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작에서 독자들은 극명한 대립구도를 보게 되는데요. '선과 악' 으로 설정된 사건과 그를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을 보지만 실상 많이 아주 많이 '선' 의 측면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바로 이게 시점의 효과일 수 밖에 없는데요. 만약에 3인칭 시점이었다면 이런한 전개가 독자들에게 어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인칭의 변화가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죠. 물론 유년의 주인공시점에서 성년의 3인칭 시점으로 시간의 흐름이라는 감미료가 첨부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선과 악' 의 이분법적인 대결구도를 송두리채 흔들고 있는 사유의 흐름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년(시간의 흐름)의 3인칭 시점은 전작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한층 더 성숙된 사유를 선사하게 되는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 에서 상당히 통쾌한 감정의 이입을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성년의 시각이 아닌 스카웃이라는 어린 꼬맹이의 시각으로 인종차별과 인종내의 차별등에 대해서 대리만족의 느낌을 가졌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면으로 보게되면 약간은 일방적인 사유의 전개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유를 체험하기도 했던건데요. 이번 <파수꾼> 은 어느쪽 일방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올곧고 진정한 파수꾼의 시각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 와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보게 되면 또 다른 별도의 작품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내러티브의 전개가 전작에 비해선 다소 생동감이나 긴장감들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달리 보면 너무 전작에 대한 강한 임펙트의 잔상이 남아있기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단순하게 별도의 작품으로 인식해서 보게 되면 나름의 장점들이 많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균형적인 시각과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하퍼 리의 울림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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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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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간만에 별점 다섯개도 아깝지 않는 작품을 대면했습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라는 작품인데요. 뭐 워낙 유명새를 탓던 작품이자 국내에 새롭게 완벽판이 출간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왠만한 독자분들은 거의 섭렵했을 정도로의 영향력 있는 작품이죠. 미국에서 출간되자 마자 퓰리처상 수상의 영광을 안을 정도로 특히 미국내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 작품이라는 할 정도로 수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이 이 작품이 눈부실 정도로 성과를 거둔 또 다른 이유는 하퍼 리가 이 작품을 데뷔작이자 출세작으로 내놓은 이후 또 다른 작품을 내놓지 않아(물론 최근에서야 『파수꾼』이라는 작품이 소개되었지만요) 더 궁금증을 증폭시킨 역활도 했죠. 여하튼 간에 <앵무새 죽이기> 라는 작품은 시대적 배경이나 출간년도로 보아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현 시점에서도 작품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불멸 그 자체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작품이네요.


          자 그럼 굳이 장르를 구분짓자면(저는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의 장르를 굳이 두부 가르듯이 구분짓을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요) 성장소설과 자전적소설의 중간쯤 어디에 위치한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사실 명확하게 그 어떤 장르라고 꼬집어서 설명하기엔 어디엔가 어슬퍼보이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사회파소설에 가깝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1930년대 그리고 미국 남부 지방인 앨라배마주의 메이콤을 시대와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번 작품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인종차별(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종차별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인양 하는 대한민국에서도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한 비밀처럼 일상생활속에서 목격되고 있으니까요) 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 테제는 인종차별을 넘어 【정의와 배려】라는 거대한 담론을 작품 전반의 내러티브에 깔아놓고 있지만 그 정의와 배려를 찾아가는 주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인종차별이라는 소재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죠. 뭐 작품 전반의 테제자체가 상당한 무게감을 갖고 있기에 그리 녹녹치 않는 작품일 될 소지가 다분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퍼 리는 이러한 무거운 담론들을 주인공 나(스카웃)와 젬 오빠라는 소녀,소년의 시각을 통한 성장소설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무게의 중압감을 덜어냈다는 점인데요. 사실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코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의와 배려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탈색과 염색의 자연 풍화적인 작용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히 존재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범보편타당한 담론이 희속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죠. 하퍼 리는 바로 이점을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시각에서 다소 진도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처음 부터 작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배우는 인내심으로【정의와 배려】에 대한 담론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만 논했다면 사실 세월이 지난 지금의 시대에 와서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큰데요. 인종차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성 본연의 근본적인 문제인【정의와 배려】를 작품의 주 테제로 삼았다는 부분이 독자들의 기억속에 오랫토록 각인되게 하는 효과를 창조해 냈습니다.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라는 피부 색깔은 달라도 은둔자 내지는 소외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이들에 대한 레퀴엠을 서사해내고 있다는 거이죠. 다름 아닌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의 편견과 소외의 싹은 슬그머니 우리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과 소외를 마치 사회의 일정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담론의 일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이죠. 하퍼 리는 이러한 우리들의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번 작품은 자연스럽게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J.D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이 표방하는 테제인 정의와 배려는 제인 오스틴의 편견과 오만으로 일맥상통하는 공통의 분모를 찾을 수 있고, 스카웃과 젬의 여정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의 자아 정립과 정체성의 발견과정을 연상케 하는 작품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두 작품을 다시한번 접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이래저래 많은 작품들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면서 독자들 스스로에게 한두번쯤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의 무게감과는 사뭇 다르게 잔잔한 연못속을 들여다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죠. 기껏해야 작품 말미의 밥 유얼의 죽음말고는 커다른 임펙트가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책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부분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잔잔한 것 같지만 실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긴장감을 잠시라도 풀지 못하도록 내러티브 곳곳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왠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안될것 같다는 느낌과 더불어 장소적 배경인 메이콤의 건축물들과 각 건물에 거주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 지리적인 위치까지 한눈에 파악해야만 이해할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죠.(사실 내러티브를 이해하고 작품을 받아들이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작품을 덥고 나서야 알게 되죠) 결국 이러한 설정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의 백미는 다름 아닌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비뚤어진 세상사와 그 세상사를 어떻게 바라봐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독자들 스스로에게 찾게 하는 기법이지 않을까 하네요. 전혀 퇴색되지 않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의와 배려】라는 담론은 성인이된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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