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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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름의 강렬한 태양빛만큼 서점가를 후꾼 달아오르게 했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에 이어서 <파수꾼> 을 대면했습니다. 우선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 의 감흥이나 인지도가 워낙 높다보니 후속작인 이번 작품은 가을하늘을 처다보는것 처럼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다소곳하게 잡아주는 잔잔한 작품으로 다가오네요. 하퍼 리가 당초 <앵무새 죽이기>를 집필할 때 <파수꾼>이라는 제하로 제출했지만 편집자의 권유로 인해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미 독자들로 알고 있는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의 태동을 가져온 작품이 바로 이번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앵무새 죽이기> 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하퍼 리는 오히려 세상 밖으로 은둔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번 작품에 대한 작품의 완성도가 <앵무새 죽이기> 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전작과 비교검토의 대상으로 본의 아니게 거론될 소지가 다분하고 하나의 연결된 고리의 작품으로 볼려고 하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 <파수꾼> 독자들에게 상당한 논란거리(아무래도 긍정적인 측면에서겠죠)와 더불어 <앵무새 죽이기> 의 연장선에서 혹은 별도의 작품으로 인지해서 볼만한 다양한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사실이구요. 일단 그녀의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 가 너무나 공전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다소 한풀꺽인 맛을 느끼게 하는건 사실입니다만, 또 다른 나름의 매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죠. 우선 작품의 큰틀에서부터 살펴보게 되면 거의 흡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죠. 등장인물들만 보더라도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고스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물론 행크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잠시 헷갈리게 하지만요 큰 범위내에서는 별 다른 점이 없죠.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누나로 등장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요) 여기에 설정 장소 역시 가상의 마을인 메이콤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구요. 단지 시간의 추가 한 20여년을 흘러 1950년대라는 점과 전작에서는 실패했던 흑인 변호가 성공했다는 회상등이 다를뿐 거의 같은 구도의 같은 설정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이 얼핏보게 되면 <앵무새 죽이기> 의 버전2라는 단순한 느낌을 주는 작품처럼 비쳐지기 때문에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다소 맥이 빠지는 작품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 작품에서 우리는 하퍼 리의 "신의 한수" 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죠. 바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칭의 변화라는 점입니다. 뭐 별거 아닌 두가지일 수도 있는데 이 두가지가 이번 작품을 전작에 비견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작품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간' 과 '인칭' 이라는 두가지의 선택이 각각 별개의 영역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조화를 이루어 기막힌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는 효과를 표출하면서 <앵무새 죽이기>의 버전2라는 느낌을 과감히 지워버리기도 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이 두가지의 다른 설정이 없었더라면 <파수꾼> 이라는 작품은 하퍼 리 명성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뛰어난 신의 한수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먼저 시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면요. <앵무새 죽이기> 가 스카웃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면 이번 <파수꾼>은 3인칭 시점이라는 점이죠. 뭐 시점 하나 바뀐 것 가지고 대단한 설레발을 떠냐고 하겠지만 이게 상당한 영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시간' 의 흐름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에서도 스카웃의 1인칭 주인공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간의 흐름만 20여년후로 돌려놨다면 정말 단순한 성장소설의 틀을 한번더 울거먹는 뻔한 작품으로 남았을것입니다. 3인칭이라는 시점의 변환과 시간의 흐림이 작용하여 이번작품은 뭐랄까 좀더 객관적인 사유의 진행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앵무새 죽이기> 에서는 왠지 모든 등장인물들이 스카웃의 관점에서 상당히 작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번 작품은 이러한 작위적인 느낌보다는 남부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당히 객관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카웃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시각이 아닌 미국 남부사회의 공통적인 시각을 볼 수있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스카웃의 우호지분으로만 여겨졌던 인물들의 면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효과를 창출했다는 것이죠. 물론 아무런 생각없이 아니 전작의 연속으로 알고 네러티브를 따라가게 되면 어 이사람들 왜이러지라는 다소 황당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점차 내러티브속에서 <앵무새 죽이기> 와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작에서 독자들은 극명한 대립구도를 보게 되는데요. '선과 악' 으로 설정된 사건과 그를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을 보지만 실상 많이 아주 많이 '선' 의 측면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바로 이게 시점의 효과일 수 밖에 없는데요. 만약에 3인칭 시점이었다면 이런한 전개가 독자들에게 어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인칭의 변화가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죠. 물론 유년의 주인공시점에서 성년의 3인칭 시점으로 시간의 흐름이라는 감미료가 첨부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선과 악' 의 이분법적인 대결구도를 송두리채 흔들고 있는 사유의 흐름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년(시간의 흐름)의 3인칭 시점은 전작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한층 더 성숙된 사유를 선사하게 되는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 에서 상당히 통쾌한 감정의 이입을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성년의 시각이 아닌 스카웃이라는 어린 꼬맹이의 시각으로 인종차별과 인종내의 차별등에 대해서 대리만족의 느낌을 가졌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면으로 보게되면 약간은 일방적인 사유의 전개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유를 체험하기도 했던건데요. 이번 <파수꾼> 은 어느쪽 일방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올곧고 진정한 파수꾼의 시각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 와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보게 되면 또 다른 별도의 작품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내러티브의 전개가 전작에 비해선 다소 생동감이나 긴장감들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달리 보면 너무 전작에 대한 강한 임펙트의 잔상이 남아있기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단순하게 별도의 작품으로 인식해서 보게 되면 나름의 장점들이 많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균형적인 시각과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하퍼 리의 울림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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