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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음... 간만에 별점 다섯개도 아깝지 않는 작품을 대면했습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라는 작품인데요. 뭐 워낙 유명새를 탓던 작품이자 국내에 새롭게 완벽판이 출간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왠만한 독자분들은 거의 섭렵했을 정도로의 영향력 있는 작품이죠. 미국에서 출간되자 마자 퓰리처상 수상의 영광을 안을 정도로 특히 미국내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 작품이라는 할 정도로 수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이 이 작품이 눈부실 정도로 성과를 거둔 또 다른 이유는 하퍼 리가 이 작품을 데뷔작이자 출세작으로 내놓은 이후 또 다른 작품을 내놓지 않아(물론 최근에서야 『파수꾼』이라는 작품이 소개되었지만요) 더 궁금증을 증폭시킨 역활도 했죠. 여하튼 간에 <앵무새 죽이기> 라는 작품은 시대적 배경이나 출간년도로 보아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현 시점에서도 작품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불멸 그 자체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작품이네요.
자 그럼 굳이 장르를 구분짓자면(저는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의 장르를 굳이 두부 가르듯이 구분짓을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요) 성장소설과 자전적소설의 중간쯤 어디에 위치한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사실 명확하게 그 어떤 장르라고 꼬집어서 설명하기엔 어디엔가 어슬퍼보이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사회파소설에 가깝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1930년대 그리고 미국 남부 지방인 앨라배마주의 메이콤을 시대와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번 작품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인종차별(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종차별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인양 하는 대한민국에서도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한 비밀처럼 일상생활속에서 목격되고 있으니까요) 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 테제는 인종차별을 넘어 【정의와 배려】라는 거대한 담론을 작품 전반의 내러티브에 깔아놓고 있지만 그 정의와 배려를 찾아가는 주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인종차별이라는 소재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죠. 뭐 작품 전반의 테제자체가 상당한 무게감을 갖고 있기에 그리 녹녹치 않는 작품일 될 소지가 다분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퍼 리는 이러한 무거운 담론들을 주인공 나(스카웃)와 젬 오빠라는 소녀,소년의 시각을 통한 성장소설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무게의 중압감을 덜어냈다는 점인데요. 사실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코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의와 배려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탈색과 염색의 자연 풍화적인 작용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히 존재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범보편타당한 담론이 희속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죠. 하퍼 리는 바로 이점을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시각에서 다소 진도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처음 부터 작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배우는 인내심으로【정의와 배려】에 대한 담론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만 논했다면 사실 세월이 지난 지금의 시대에 와서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큰데요. 인종차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성 본연의 근본적인 문제인【정의와 배려】를 작품의 주 테제로 삼았다는 부분이 독자들의 기억속에 오랫토록 각인되게 하는 효과를 창조해 냈습니다.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라는 피부 색깔은 달라도 은둔자 내지는 소외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이들에 대한 레퀴엠을 서사해내고 있다는 거이죠. 다름 아닌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의 편견과 소외의 싹은 슬그머니 우리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과 소외를 마치 사회의 일정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담론의 일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이죠. 하퍼 리는 이러한 우리들의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번 작품은 자연스럽게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J.D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이 표방하는 테제인 정의와 배려는 제인 오스틴의 편견과 오만으로 일맥상통하는 공통의 분모를 찾을 수 있고, 스카웃과 젬의 여정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의 자아 정립과 정체성의 발견과정을 연상케 하는 작품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두 작품을 다시한번 접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이래저래 많은 작품들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면서 독자들 스스로에게 한두번쯤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의 무게감과는 사뭇 다르게 잔잔한 연못속을 들여다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죠. 기껏해야 작품 말미의 밥 유얼의 죽음말고는 커다른 임펙트가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책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부분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잔잔한 것 같지만 실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긴장감을 잠시라도 풀지 못하도록 내러티브 곳곳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왠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안될것 같다는 느낌과 더불어 장소적 배경인 메이콤의 건축물들과 각 건물에 거주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 지리적인 위치까지 한눈에 파악해야만 이해할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죠.(사실 내러티브를 이해하고 작품을 받아들이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작품을 덥고 나서야 알게 되죠) 결국 이러한 설정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의 백미는 다름 아닌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비뚤어진 세상사와 그 세상사를 어떻게 바라봐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독자들 스스로에게 찾게 하는 기법이지 않을까 하네요. 전혀 퇴색되지 않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의와 배려】라는 담론은 성인이된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