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작게님의 페이퍼를 보고 떠오른 추억.
참고: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5631
초등학교 6학년 때라 생각된다.
포항외삼촌의 귀국 기념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시에는 무척 드문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에 갔고,
두고 두고 외우기는커녕 들은 당시에도 따라서 발음조차 못 하는 나를 딱히 여긴 외삼촌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판 티본 스테이크'를 먹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판이건 미국판이건 영국판이건 스테이크를 먹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다)
다행히 테이블매너는 책에서 본 대로 어줍잖게 따라할 수 있었는데,
이런, 나의 입맛은 너무나 토속적이었던 거다.
전채요리가 나오자마자 난 왜 김치는 안 주냐고 질문을 던졌고,
수프가 나와도, 생선요리가 나와도, 메인요리가 나와도, 김치만 찾았다.
서버는 매번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메뉴에는 김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라며 웃으며 대답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질문할 때마다 망신스럽다고 질색을 하며 나를 꼬집어댔고,
나중에는 한 번 더 물으면 혼낼 거라고 으름장을 노셨다.
그러나 김치만 있으면 이 맛난 스테이크를 몽땅 먹을 수 있겠는데,
김치가 없어 이렇게 맛난 음식을 거의다 남겨야하나 한없이 원통했던 나는
메인디쉬를 내가고 후식을 가져오려는 서버를 붙잡고 또 다시 김치를 찾았다.
어머니보다 먼저 폭발한 건 포항외삼촌.
인자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내가 본 한, 그분의 화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외삼촌의 울그락불그락 얼굴에 깜짝 놀란 어머니는 사정없이 내 뒤통수를 쥐어박았고,
난 눈물을 글썽이며 한입먹고 남겼던 스테이크를 도로 받아 꾸역꾸역 억지로 먹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몹시 불쌍했나 보다.
후식도 끝나고 푸딩과 차가 나올 때까지도 억지로 스테이크를 먹고 있던 나에게 서버가 내민 김치 한 접시.
옆집에서 얻어왔다며 맛있게 먹어달라는 서버의 한 마디에 감동을 받았더랬는데...
서버의 친절이 가져온 부작용.
지금도 어느 음식점에 가든 김치를 요구하고, 김치를 안 주면 불친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의 非한식점은(일식점이건, 양식점이건, 피자가게건) 불친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