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보수적인 사람이구나, 혹은 경상도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건
아무래도 관혼상제를 치르거나 보게 될 때인 듯 하다. 
특히 상례의 경우 관습 혹은 예절을 안 지키는 모습을 보면 확연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 상주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 무심결에 인사가 잘못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재빨리 사과해야 되지 않을까. 아버지 상 치를 때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정정 안 한 두 명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 

- 짙은 화장 또는 맨발로 오는 사람들: 급하게 오느라 예를 다 못 지킬 수 있다. 나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으니까. 하지만 매니큐어는 못 지워도 립스틱은 충분히 지울 수 있다. 옷은 못 갈아입어도 양말 사 신는 성의는 보일 수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 사진 촬영!!!: 친정은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지냈지만, 작은고모는 개의치않고 어머니 때도, 아버지 때도 곡을 올렸다.작은고모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가슴이 요동치며 눈물이 솟구쳐나온다. 작은고모의 애달프고 구성진 곡소리가 당신 장례에는 안 울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 이 광경이 이채롭다고 사진촬영을 한 이가 있다. 하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솟구칠 지경. 그런데 요새는 디카와 스마트폰의 보급 때문인지 상가에서 사진촬영하는 이가 예사로 많다. 심지어 우리 회사 모 임원님 모친상 때 근조화환이 많이 들어왔다고 이를 상주 자식들이 기념으로 찍더라. 오늘은 페이스북에 리영희선생님 상가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며 사진이 올라왔는데,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 결혼할 때 납폐일에 박을 깨고 수문신과 성주신에게 인사 올리고(북향재배) 봉치떡을 놋주발로 떼서 먹었다. 이 얘길 듣고 교회 다니는 시부모님이 언짢아 하셨다. 

* 마로 때도 해람이 때도 삼칠일과 백일에 삼신상을 올렸다. 납폐일 소동(?)이 있었던 터라 시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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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0-12-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납폐일, 북향재배, 봉치떡, 삼신상... 다 처음 듣는 말이에요.
제가 너무 관혼상제 예절에 무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상주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짙은 화장을 하고 맨발로 상가집에 간 적은 없어요.
적어도 상례만큼은 각별히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꿈꾸는섬 2010-12-0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면에선 보수적이에요.
상갓집에서는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구요.
저도 현준이 현수 삼칠일 백일에 삼신상 올렸어요. 애들 건강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죠.

hnine 2010-12-0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님은 보수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본받고 싶습니다.

조선인 2010-12-0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우리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낯설어하더라구요. 납폐일은 함 들어가는 날이고, 북향재배는 북쪽향해 절을 두 번 드리는 거고(문을 지키는 신과 집을 지키는 신에게 새식구가 든다는 인사의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봉치떡은 함시루떡이고, 삼신상은 새벽에 이밥과 미역국과 정안수 올려 아이의 건강을 빈 뒤 산모가 먹지요.
꿈꾸는섬님, 마로 삼칠일 때는 시어머니가 와 계셨었어요. 시어머니 새벽예배 간 사이에 후다닥 올리고 치우느라 애먹었답니다. ㅋㅋ
hnine님, 아하하, 우리 애들도 아마 안 따라할걸요. 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잖아요.

Joule 2010-12-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을 '까 놓고 쌩하게' 말하자면요. 상주에게 인사하는 건 음 조선인 님이 뒤끝 있음을 말해 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구요. 장례식에서 진한 화장 문제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저는 잘 이해를 못하겠어요. 장례식에 추레한 몰골로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 좀 싫거든요. 음, 극단적인 예로는 아빠 장례식 때 언니들의 옷차림이며 표정 등등이 좀 흐트러져 있는 게 신경에 거슬려 기어이 방으로 끌고 가 끊임없이 옷매무새를 바로 잡아주고, 표정 잡아주는 줄모 양? 사진 촬영도 그게 뭐 문제되느냐 하는 쪽이구요. 곡소리에 담겨 있는 위선이 전 좀 싫거든요. 상가집에서의 곡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쑈잖아요. 보여주기 위한 것. 보여주기 위해 곡하는 걸 사진 찍는 게 이상한 일 같지는 않아요.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판단력이 유아보다 못한 수준이므로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가치 판단을 자신이 하지 않고 소위 '신'이라는 개념에 모두 떠맡겨버리는 '지적으로도 한없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얼른 생각해 봐도 좀 터무니없지 않나 싶어요.

ChinPei 2010-12-0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나이 45살이 되어도 관혼상제의 예절을 제대로 갖추었던지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장례식에선 아무 말 말고 그저 진지한 표정을 할 뿐.
기껏해야 "뭐라 드릴 말씀을 찾지 못합니다..."해서 애매하게 말할 뿐이지요.
결국 그것이 가장 무난한 것 아닐까요?
"모른다면 아무 말 하지 않을 것." 좀 어른으로썬 한심하지만.

조선인 2010-12-0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난 쥴님의 이런 점이 좋아요. 나 정말 메조히스트인가봐.
친페이님, 사실 상 당한 사람에게 무슨 위로가 귀에 들어오겠어요. 가장 무난한게 가장 배려심있는 거죠. ^^

2010-12-0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참 절 예뻐해주시던 분이었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옆에서 어른들이 곡을 해야하는거라며 막 다그치시더라구요. 그게 예의와 법도에 맞는 것일지 모르지만 억지로 울 순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막 다그치시던 분 중 한 분이 동영상 찍고 계시대요. 먼 친척도 아니고 당신 형이 돌아가셨는데 말이죠. 저 그 때 다짐했어요. 작은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내가 가서 사진 찍을거라고.

전.. 그저 철없고 뒤끝 긴 사람일 뿐~

조선인 2010-12-0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 동영상... 꼭 뒤끝 있길 바란다.

마녀고양이 2010-12-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의 페이퍼를 자주 접하면서
배우고 싶은 점들이 참 많아집니다. 옳고 그르고, 따라하고 싶고 아니고를 떠나서
소신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면서 사는 님의 모습이 참 멋집니다.

그리고, 메조히스트인 부분...... 특히 좋습니다. ^^

같은하늘 2010-12-09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세대의 조선인님이지만 참 많이 다르다고 느껴요.^^
그래도 상가집의 '안녕하세요'는...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절로 눈물이 나서 아무말도 못하겠던데...

조선인 2010-12-0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어머, 제가 메조히스트인 거, 소문내시면 안 되요. ㅋㅋ
같은하늘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친정이 좀 독특했어요. ㅋㄷ

^^ 2010-12-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형식이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배려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군요.

어린시절 모두 보리밥 먹을 때 손주에게 쌀밥 한그릇 떠주시며
"밖에 가서 절대 쌀밥먹었다고 자랑하지 마라"며 당부하시던 모습.
"뜨거운 물 함무로 버리지마라, 죄없는 미물들 다죽인다"
대보름날 오곡밥 지어 놓고 조리들고 밥얻으러 온 아이들에게 내주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던 대보름 풍경.
제사지낸 후 첫 음식은 동네 어르신들 집으로 퍼나르던 일,
10월 산등성이 산소마다 메사지내는 모습보고 동네아이들은 작은 손수건 하나씩 들고
떡얻어 먹으러 다니던 모습, 그 떡 집으로 가져와 할머니께 먼저 주던 손주들 ...
어느 산소 주인이 인심이 후덕한지 어린시절부터 꽤뚫고 있었죠.

의료 혜택은 엄두조차 못내고, 방울장수가 파는 활명수와 고약 한 봉지가
유일한 의료혜택이던 시절, 삼신, 지신, 오방신 가릴거없이 빌어야 했던 시절이었죠.
목숨이 자기 의지대로 붙어있지 못하던 시절에 생겨난 풍습들은 그 만큼 애절하고 간절하죠.

현실에 그것을 적용하자고 말하면 억지가 되겠지만
과거의 경험, 추억에서 생각하면 너무나 인간적인 형식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잃어버린 건 절하는 인간의 모습인거 같군요.
그래서 겸손이 부족한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인 2010-12-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뜨거운 물 함부로 버리지마라... 아... 기억납니다... 외할머님 말씀이셨죠. 그리 보면 지금은 참 죄많은 인생을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