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겸 3만명 돌파 축하 이벤트 -

1. 전 커피중독입니다.  

모 임원님이 제 책상을 보고 '다방 차렸냐?'라고 핀잔주고 가셨습니다.
그 후 티포트랑 인퓨저랑 드리퍼랑 대형물통은 탕비실에 옮겨뒀지만,
여전히 제 책상 위에는 커피와 홍차와 녹차와 감로차가 상비물품으로 있습니다.
감로차 대신 보이차가 놓여지기도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만델링이지만 가끔 기분 전환으로 다른 걸 시킬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봉투 안에 보헤미안 믹스가 들어 있습니다. ^^ 

2. 전 TV와 관련된 일을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분류하면 '요구공학'에 가깝습니다.
문과 나온 내가 왠 공학?인가 싶지만,
고객과 마케팅에서 쏟아져나오는 각종 요구사항들을 분류/조직하여 개발자에게 전달해주고,
개발자의 전문용어를 일반인(?)이 알아먹을 수 있게 표현해주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인 거죠.
'통합리모콘 사용법이 어려워요' 또는 'VOD를 많이 팔고 싶어요'라는 요구사항을 접수하여
새로운 리모콘을 RF로 만들 건가 IR로 만들 건가 또는 러버냐 메탈돔이냐를 결정하고,
키코드 입력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UI로 표현하는가 등의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여
결과적으로는 '리모콘 사용과 VOD 구매가 편리해졌어요'라고 보고하는 게 일입니다.
어찌 보면 고객/마케팅과 개발자 사이의 거간? 혹은 통역?에 해당하는 일이므로,
이공계보다는 문과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3. 전 '엄마'입니다. 

 

바삐 일하다 보면 집안일이나 아이들 일을 까맣게 잊을 때도 있습니다.
책상만 보면 '엄마'인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삭막한 사람인지라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휴지통과 그룹웨어 메신저 바로가기만 있고,
디지털방송일을 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인간인지라 수첩, 낙서장, 일정달력을 씁니다.
요샌 일이 좀 몰리는 터라 고백하자면 책상 왼쪽과 아래에는 온갖 자료가 첩첩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힘들고 지칠 때면 핸드폰 액정화면의 애들 사진을 봅니다.
우리 딸은 요새 제법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착한 효녀이며,
우리 아들은 정신 사나운 장난꾸러기지만,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한 소년입니다.
그래서 전 다시 힘내고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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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9-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 뭔가 무척 감동적이에요. 솔직하고 담백하지만 뭐랄까 그래서 더 깊달까. 요즘 제가 영어도 못하고 한국어도 못하는 바보가 되서 잘 표현 못하겠는데 정말 좋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조선인님 처음 봤을 때 선생님같다고 했잖아요. ㅎㅎ 직업 얘길 하시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나요. IT 업계에 종사했던 문과생으로 무척 동질감을 느끼네요. 더 이상은 아니지만.
그니까 말하자면 조선인님은 이 페이퍼에서 조선인님이 설명하시고 있는 조선인님보다, 그리고 제가 상상해왔던, 그리고 경험해왔던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는게 막 느껴져요. 그래서 감동한 것 같아요. 이 이벤트를 기획한 제 자신이 기특하네요. 히히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축하 무척 감사해용. ^^

stella.K 2010-09-0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제야 조선임님을 쫌 알겠군요.흐흐

ChinPei 2010-09-0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남을 도와주시려는 상냥함을 느껴,"사람을 직접 도와줄 일을 하고 계실 것이다"라고 제멋대로 상상하였거든요.
그러니까 NPO 직원, 간호사, 사회단체 사무원이라든가 그런 일을요.
정말 의외였어요.

산사춘 2010-09-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렵고 멋진 일을 하시는군요, 엄마~
그리고 책상이 깔끔하세요.
전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제 책상은 완전 엉망진창이었어요.

Arch 2010-09-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참 좋은 페이퍼예요. 담백하고(나로선 상상도 못할) 간결해요.

이벤트를 생각한 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아마 쑥쓰러워서 죽었다 깨나도 못할 액션이지만.

2010-09-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니 글도 언니처럼 참 담백하고 예뻐서 좋아요.

조선인 2010-09-0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겟터블님, 아하하 선생님 같다는 말, 부디 좋은 쪽이기만 빌 뿐입니다.
스텔라님, 제가 좀 소개가 된 거 같으신가요? ^^
친페이님, 오해하셨군요. 전 회사에서 쌈닭으로 통합니다. 쿨럭.
산사춘님, 업무상의 결벽증이랄까. 집안꼴은 엉망이랍니다. 흑흑
아치님, 난 님처럼 맛갈나고 정감넘치는 글이 쓰고 싶은 걸요? ㅠ.ㅠ
귄, 고마워. 헤헤.

pjy 2010-09-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임원은 부러웠던 겁니다ㅋㅋ 커피를 사랑하시는 조선인님^^
그냥 엄마도 위대하지만, 일하는 엄마는 초콤 더 위대해요~

조선인 2010-09-06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jy님, 저에게 잘 보이면 가끔 차 대접을 해드릴텐데, 그걸 모르세요. ㅋㄷ

같은하늘 2010-09-0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에 대해 아주 조금 알게 해주는 마음 따뜻한 페이퍼군요.^^
전 커피는 잘 안마시지만, 그 외의 차들이 가득한 책상이 부러워요.

조선인 2010-09-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말씀만 하세요. 왠만한 종류의 차는 거의 다 보유하고 있답니다. 움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