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함박눈이 왔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아파트 앞을 쓸고, 학교 앞 육교에 가 염화칼슘 한 포대를 뿌리고, 그러느라 20분쯤 지각했다.

지난해, 나는 옆지기에게 투덜거렸다. 우리집 말고 눈 쓸러 나오는 집 없다고, 10킬로짜리 염화칼슘 포대를 들지 못해 내가 혼자 낑낑 대도 아무도 안 도와준다고. 옆지기가 나에게 일침을 가했다. '너가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을 남이 안 한다고 짜증내지 마라. 비난하며 일하는 건 안 하는 것 못지 않게 남에게 독이다.' 

그래서 오늘은 짜증내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제 성격이 어디 가나. 수원시청 홈페이지에 건의사항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효성육교를 아침 저녁으로 이용하는 가족입니다. 효성육교가 생긴 후 학생들의 교통사고가 확 줄어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눈이 와도 효성육교 위까지는 관리의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염화칼슘이 든 제설함이 2개나 설치되어 있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제설함을 열어보면 10KG짜리 염화칼슘 포대만 3-4개 들어있을 뿐, 포대를 뜯을 수 있는 가위나, 이리저리 뿌릴 수 있는 삽 등의 공구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의 등하교가 걱정스러워 집에서부터 가위며, 장갑 등을 바리바리 챙겨와 애써보지만, 여자 혼자 힘으로 그 큰 포대를 꺼내 뿌리고 다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할 수 없이 오늘은 아예 그릇까지 들고 나와 조금씩 덜어 뿌려봤지만 아무리 종종거려도 1포대 뿌리는데 30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덕분에 회사까지 지각했습니다.)
저의 제안은 염화칼슘이 1-2Kg 단위로 포장되어 있으면 제설함에 쓰여 있는대로 '누구나' 꺼내서 간편하게 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포대를 쉽게 뜯을 수 있도록 지퍼락 형태로 만들면 더 좋겠지만, 하다못해 가위나 커터 같은 게 제설함에 같이 비치되어 있어도 금상첨화겠습니다. 시민들이 보다 실용적으로 제설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부디 검토 바랍니다.

(덧붙임)
1. 효성육교 제설함에 써 있는 관리주체는 '팔달구청'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팔달구청 홈페이지에는 건의사항을 올리는 기능이 없었고, 이왕이면 수원시 전역에 적용되길 희망해 이곳에 건의합니다.
2. 가능하시면 팔달구청에 요청하시어 '구치소' 방향 제설함을 예년대로 '효성초교' 앞으로 이동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구치소' 방향은 일반인의 왕래가 거의 없으나 '효성초교' 앞은 버스정류장, 창현고등학교, 유신고등학교 등과도 이어져 있어 가장 통행량이 많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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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들이 주를 이루는 제가 사는 동네도 예전처럼 눈이 오면 각자 자기 집 앞과 길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사람들이 확실히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결론은 날씨라도 영하로 떨어지면 골목길이 죄다 빙판길이 되버리죠..^^

2009-12-2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
존경!!!!!

꿈꾸는섬 2009-12-2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도 조선인님 열심히 눈 쓰셨던 게 기억나요. 근데 우린 또 놀다가만 왔네요. 부끄러워요.

2009-12-2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12-2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우리 동네도 그늘진 곳은 장난 아닙니다.
속닥님, 메롱~ =3=3=3
휘모리님, 아앗, 부끄럽지만 나르시즘의 엑스터시가 느껴집니다.
꿈꾸는섬님, 아하하하, 그런 말씀하면 제가 더 민망해요.
속닥님, 님도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水巖 2009-12-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생각 나는군요. 나는 조금만 미끄러워도 절절매는 통에 일반 주택에 살 때는 회사 현장 소장에게 부탁해 매년 두포대 정도 실어다 달라고 해서 골목길에 뿌리곤 했는데 원래 염화칼슘은 눈 온뒤 보다는 눈 내릴때 뿌려야 한다더군요. 마로 해람이 잘 있죠?

perky 2009-12-2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선수범하는 모습 정말 대단하세요.
추천을 한번밖에 못한다는게 아쉬워요.

울보 2009-12-2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할말이 없네요,
눈이내리면 경비아저씨들이 쌓이기 전에 쓰시는모습에 생각을 못했던 부분,,,
정말 멋진 조선인님 이시어요,,

BRINY 2009-12-2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멋지세요. 저도 어린 시절 이후로는 눈을 쓸어본 기억이 없네요.

qualia 2009-12-2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 님, 조선인 님의 옆지기 님한테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져요.
가끔씩 소개해주시는 옆지기 님의, 일상 의식을 꿰뚫는 일침 혹은 “설파”가 옛 성현의 경지에 이르신 듯해서요...
두 분 다 참 존경스러워요.^^

조선인 2009-12-2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어어, 어째 자뻑 페이퍼가 된 듯한...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어요. 내일 아침엔 우리 꼭 같이 눈 쓸어요~

같은하늘 2009-12-30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존경~~~ ^^ 회사를 지각하면서까지...

조선인 2009-12-3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지각은 예정에 없던 건데...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