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기행 일정에서 제외되어 제일 아쉬운 곳이 호야지리박물관이다.
사실 이곳을 숙소로 삼아 세미나실도 빌리고 지리강연도 듣겠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는데,
사림기행이라는 촛점에서 살짝 벗어난다는 지적과
아무리 역사기행이라고 해도 하루 저녁에 2개 강연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반대로 무산...
하지만 지리라는 개념조차 없는 아이들조차 관장님의 숙련된 강의에 폭 빠져드므로
초등학생이 있는 학부모라면 정말 강추하고 싶다.
고등학교 지리 교사 정년퇴직 후 평생 모으신 재산을 바쳐 이 곳을 세우셨다는데,
개인박물관치고 자료도 매우 풍부한 편이다.
호야지리박물관의 또 다른 장점은 지리적 위치인데
주천강이 바로 옆이라 물놀이가 가능할 뿐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요선암과 요선정이 있다는 것이다.
요선정에 오르면 주천강과 그 주변 산세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지형이 험한 것도 아니요, 산이 높은 것도 아닌데, 산맥의 기운이 참 강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일부러 신작로를 내어 백두대간의 지맥을 끊었다 한다.
아래 사진 산 중턱에 튀어나온 바위가 호랑이 발톱 중 하나라고 주민들은 말하는데,
사진에는 안 나와 있지만 저 바위 반대편 산허리를 끊는 길이 하나 있다.
요선정 옆에는 고려 시대의 마애불상이 있는데,
잘 생긴 부처는 아니나 유독 커다란 코와 귀가 아주 후덕해 보인다.
게다가 바위의 원래 형상을 그대로 살려 조각하되 얼굴만 두드러진 양각이라
부처는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 마을을 열심히 내려다 보는 형상이 된다.
주천강을 끼고 사는 주민들에게 물난리가 나나 안 나나 굽어보는 어머니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일까. 인근 마을의 어머니들은 이 마애불상에 와서 자식의 안녕을 기원한단다.
우리가 간 날도 막 꺾은 듯한 생화가 발 밑에 놓여있어 그 소박한 정성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불상이 자리잡은 아래 암단에 큰 금이 가
상황을 봐서 여차하면 불상을 좀 더 안전한 자리로 옮길 수도 있단다.
이하 퍼 온 사진 2장.
지금의 요선정은 일제시대에 세워진 것이고, 그 전에는 절터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왠 정자, 왠 양반놀음?이라 의아할 만도 하지만,
영월에는 단종의 장릉이 있는 터,
그 인근 정자에 조선 시대 숙종, 영조, 정조의 어제시가 걸려 있었단다.
그런데 정자가 무너져 민가에서 보관하고 있던 어제시를
일제 시대 이곳으로 파견된 일본 경찰청장이 뺐어가 자신의 집에 떡 하니 걸자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를 돈 주고 되찾은 뒤,
요선정을 지어 어제시를 봉안했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와서 그럴까.
마로는 뜬금없이 태권도 시범에 열심이고, 아들래미는 정자에서 뛰어내려 보겠단다. -.-;;
하지만 이곳의 묘미는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보다 아래서 노니는 것이다.
온 가족 이구동성으로 꼽은 영월의 명소 첫번째가 청령포요, 두번째가 바로 요선암.
석회암은 모두 녹아버리고 살아남은 거대안 화강암 너럭바위들이 주천 강변에 군락을 이뤘다.
마로는 처음에 주저하더니 이내 바위 사이를 건너뛰는데 재미가 들려
이미 늦어버린 점심시간을 재촉하지 않았으면 아예 눌러앉을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