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우리집에 그런 책이 있다고?"

"응 집에서 본거야"

그녀는 '파랑이 어쩌고 하는 책' 내용을 설명했다. 아니 생면부지의 스토리인데 그런게 우리집에 있을리가? 내가 산 책을 전부 다 보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제목이나 주제는 알고 덮어두니까. 내용을 들어봐도 도저히 내가 좋아하거나 살만한 책이 아니었다. (그녀가 요약한 내용은 굉장히 추상성을 추구한 것 같았는데)

"작가는?"

"기억안나"

"단편이야?"

"응 여러 작가들이 있는거야"

오. 이건 힌트.

"혹시 마르케스랑 주제 사라마구랑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들의 단편도 있어?"

"잘 기억은 안나는데 그런것 같아"

알겠다. 내가 내용을 몰랐던 건 단편집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론 내 책이 아니었던 것. 과거의 여자친구에게 내가 선물했던 책이고 그녀는 다 보고 나에게 빌려주었다.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그 책 재밌어? 난 안봤어"

"나도 몇개만 골라봤어. 왜 안봤어? 여자친구가 빌려준거라며"

왜냐면 내 취향의 책은 아니고, 아마 마르케스의 단편이 있어서 내가 선물했을 것이다. 우리가 한창 바쁠때 선물했을 것이다. 책 내용을 굳이 살펴보지 않았고, 특별한 응답도 못 받았으니까.


화제는 다시 다른 사건으로 넘어갔다. 얼마전 친구가 책 한권을 - 아마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뽑아 폈을때 나는 순간적인 예감으로 그 책을 빼앗아 들었는데, 역시나 첫장엔 누군가 써준 메세지가 있었다. "와 되게 예쁜말이다. 너 좋겠다" 이런 유의해야할 암초 - 어쨋거나 제3자에게 공개한다고 했을때는 암초다  - 들이 책장 곧곧에 숨어있는데, 문제는 어느 책에 있을지 내가 다 기억을 못한다는 것.


오늘은

"그 책 봤어? 여자친구가 빌려준 책?"

"아니"

"봐봐. 어떤 단편은 되게 좋아"


그래서 책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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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2-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해서 가지고 있는데, 신간이 구간이 되도록 못읽고 있었네요. 의외로 엄청 손 안가는 책 중 하나에요 전 ;;; 파란 글씨는 저도 참고할게요. 파랑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에디 2010-12-16 10:32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이상하게 손이 안갔어요. 수전 손택 단편이 괜찮은 것 같아요 전.

다락방 2010-12-1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랑색 글씨들은 그러니까 전 여자친구가 써두고 빌려준건가요? 아, 얼른 읽어봐요. 마지막 문장 하나로 이야기가 시가 된다잖아요!

에디 2010-12-16 10:37   좋아요 0 | URL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썼어요. 수능 언어 영역 문제로 낼만하지 않나요? 본문을 읽고 다음 중 파란색 글씨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

다락방 2010-12-16 11:18   좋아요 0 | URL
'그녀' 가 쓴건가요? 에디님 집에 그 책이 있다는 것을 에디님께 일깨워준.

에디 2010-12-16 12:38   좋아요 0 | URL
'그녀' 라니까 이상하네요. 네 그 친구가요.
 

다시 웨스트윙

부수석 보좌관으로 정무를 담당하다 훗날 상원의원 매튜 산토스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캠프에 뛰어드는 조쉬 라이먼은 사실상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이다.

(참고로 산토스는 오바마를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드라마 제작 당시엔 비록 민주당의 유망주이긴 했지만 확실한 대선주자는 아니었다. 전국구에 막 모습을 드러낼 시기였는데 작가들이 오바마의 연설을 눈여겨 보고 산토스도 명연설가로 만들었다)

아무튼, 조쉬는 다른 캐릭터들보다 순수주의자의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주로 정무적인 일을 담당하다보니 마키아벨리적 성향도 자주 나타난다. 의회 표를 위해 의원들을 구슬리고, 협박하고, 니편 내편 가리지 않고 회유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때문. 조쉬에게선 손발이 오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땐 민주당의 진보파나 녹색당, 페미니스트들을 냉소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데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타협하는것도 주로 조쉬가 담당한다.

영상은 여성리더쉽연합(Women's Leadership Coalition)의 에이미와 처음 부딪히는 장면. 조쉬가 주로 압박당하지만 둘은 곧 사귀게 된다... 에이미가 우리가 너네를 위해 투표하는데 신경 좀 쓰라고 밀어붙이자 "Who else should you vote for?"로 냉소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즉 민주당이란 정당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추후 애인관계가 발전하다 여성권과 관련된 의회표결에서 에이미가 백악관과 반대되는 로비를 시작하자 조쉬는 에이미의 직장에 로비해서 에이미를 해고시킨다. 이렇게 쓰고 보니 냉혈한의 아주 나쁜놈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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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12-1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밑에 에인슬리 헤이스라는 분보다 에이미가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드는데염.
(무,물론 말귀도 다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라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요)

에디 2010-12-14 17:1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좋아해요 에이미. 어쨋거나 '범우리편' 이라 자주 나오는 편이고...
제가 메리 루이스 파커(에이미를 연기한 배우)는 그닥 좋아하진 않는데 웨스트윙에선 유독 매력적이라 한창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친구가 알려준 웨스트윙의 '에인슬리 스페셜' 클립. 아니 겨우 한 시즌 드문드문 출연하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배역의 스페셜 영상이 있다니. 역대 미국 티비쇼의 여성 캐릭터 중 가장 맘에 든다는 유투브 커멘트도 있는데, 나도 상당히 동감하는편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랐고 로스쿨을 나와 민주당 정부의 백안관에서 법률자문을 하게 되는, '금발 미녀 공화당원' 역이다보니 에인슬리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시리즈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많지만 민주당원인 캐릭터들과 부딪히는 오밀조밀한 긴장감이 꽤 신선하다. 

캐릭터의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다보니 그걸 활용한 조크나 싸우는 장면이 많다.


- 그녀의 첫 등장은 샘시본이 백안관측 패널로 티비 토론에 나왔을 때. 샘) 사회자에게 오늘 상대는 누구? 사회자) 잘 모르지만 끝내주는 공화당원. 샘) 금발 미녀의 (멍청한) 공화당원 전략은 구식인데 아직도 그걸 모르나? 하지만 실제 생방송 토론에서 샘은 캐발리고 백악관 동료인 조쉬와 토비는 그 장면을 보고 너무 좋아함. (토비 '팝콘이 어딨지?')


- 에인슬리가 파티에 갔다온 옷차림으로 사무실에 왔을 때. 샘 "와우, 미국 백인들을 위한 가족 수호 어쩌고 모임?" (난 이런거 보면 빵터짐-.-)


에인슬리가 열연하는 유명한,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에피소드는 ERA(남녀평등권리에 대한 수정조항)에 대한 것이다. 샘은 그녀에 ERA에 반대하는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데, 공화당원임을 생각하면 반대할 수 있지만 그녀는 여자고, 똑똑한 여자고, 잘나가는 여자니까. 도데체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계속 들볶는다.


에인슬리는 ERA가 불필요하다(redundant)고 하다가 샘이 계속 비웃으니 제대로 반격하는 장면이 3분30초쯤 나온다.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이 당연히 자신의 권리도 보장한다는 것.

"Because it's humiliating! A new amendment that we vote on, declaring that I am equal under the law to a man. I am mortified to discover there's reason to believe I wasn't before. I am a citizen of this country. I am not a special subset in need of your protection. I do not have to have my rights handed down to me by a bunch of old, white men. The same Article 14 that protects you, protects me. And I went to law school just to make sure. And with that, I'm going back down to the mess, because I thought I may have seen a peach."

 

 

멋진 언니지 아니한가? 

(사족을 달면, 에인슬리가 반대하는건 헌법의 수정조항이지 현실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법 집행이나 구체적인 법조항이 아니다)


에인슬리의 섹시함과 그 섹시함에 대해 착한 샘이 '일반적인 (수컷) 남성'과 전혀 다를바 없는 반응을 보이는데 대해 불편해하는 여성 백악관 직원들과의 마찰도 있는데 (샘이 억울해하고 에인슬리가 샘을 변호해준다), 역시 굉장히 흥미로운 논쟁.


반대로 커맨드 인 치프에는 여성 공화당 대통령이 ERA를 찬성하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는 볼 생각이 전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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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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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은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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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현재 치밀한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 같은 세대의 똑같은 '자유 직업을 가진 자' 로서 그녀가 말하려는 바를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우리들처럼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인간은 자신의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지킬 수 밖에 없고,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다이어트든 신체 단련이든, 자신의 신체를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해서 방향성을 정해 자기 관리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의 고유한 체계나 철학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그 방법이나 철학이 보편적으로 타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일상의 여백



어제가 생일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거의 십년째 생일 당사자가 밥을 사고, 선물을 받는 행사를 반복하고 있는데 당연히 밥 값과 선물의 가격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사실 그런척을 하며 농담하고 놀 뿐이다. 이게 95%정도는 진실.


고기를 먹고싶다고 전해주었다. 난 거의 한달째 고기를 못먹었다. 고기. 고기. 스테이크. 갈비. 생고기. 에그스크럼블이랑 베이컨 따위가 나오는 브런치는 개나 주라지. 스테이크를 먹을 줄 알았는데 삼원가든에 가자고 한다. 안되, 나 많이 먹고 싶은데 비싸잖아. 맘에도 없는 소리 약간.


....


그 후 미련하고도 참혹한 결과를 체험하고 난 후 생각난 하루키의 글. 하지만 에그타르트도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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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메일로 다시 말을 걸었던 적이 있어요. 그는 제게 문자메세지로 답을 주었었어요. 다시 연락해주어 고맙다고 했고, 그리고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어요.

[과식하지 마요!]

라고. 오, 저는 그 문자를 받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그가 있나,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나 싶어서요. 왜냐하면 그 문자를 받았을 때 저는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미친듯이 퍼먹고 있었거든요!

오래전의 일이네요. 아 가슴아퍼.

에디 2010-12-13 22:26   좋아요 0 | URL
샐러드바에선 미친듯이 퍼먹는게 예의인데 눈치보지 마셔야죠! 근데 제가 한번도 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말 같아요. 과식하지 말라니... 제가 들어본건 비타민 챙겨 먹어, 물건 잘 챙겨... 주로 챙기는 거구나..


과식, 과음하지 마세요. 연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