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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하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평점 :
상권 마지막 왕이었던 예종이 안팎으로 힘을 다했지만 고려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부의 적으로 그리고 후일에는 안과 밖의 적들에 의해 그러했다. 고려를 처음 위기에 몰리게 한 이들은 문벌귀족이었다. 고려의 여느 왕보다 유명한 이가 이자겸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종의 장인으로 왕을 능멸하고 국사를 좌지우지 하려했던 그는 이러한 문벌귀족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때이니만큼 왕권은 약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자겸은 결국 제거되었지만 약화된 왕권은 다시 세우기가 어려운 것인지 또 다른 파란이 몰려온다. 서경천도 운동이 그것인데 국내적으로는 지역싸움이 국외적으로는 자주적 혹은 사대적 외교정책과도 맞물린다. 알다시피 실패한 운동의 결과는 개경파의 득세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때였다. 인종의 시대에도 이랬지만 그의 아들 의종 시기에는 더욱 심란한 상황이 되었으니 이는 전대의 왕권약화가 그 원인이리라. 문벌귀족의 득세는 결국 한 세력의 권력집중을 보이고 그 외 세력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가져온다. 다만 불만 세력이 병권을 쥐고 있을 때에는 반란이 여지가 많음을 몇 차례의 역사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여서 무신들은 문신들을 몰아내고 왕을 가두는 등 권력을 거머쥐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부터 우리는 생경한 왕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국사에서는 무신집권기의 권력자들의 변천만이 나올 정도로 왕들의 입지는 약한 것이었다. 의종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왕을 세우고 제거하는 것도 무신들이었으니 왕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명종, 신종이 그러했고 강종이 그랬다. 고종 때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최씨의 무인정권이 몰락하기는 하였지만 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몽고의 침입 때문이다. 안의 적들을 밖의 적들이 처단한 것이니 이들의 간섭이 얼마나 심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때로 몽고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고는 하지만 직접지배와 마찬가지로 고려의 원 간섭기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을 또 다시 기만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총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등의 시호만 보아도 짚이는 것이 있으리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의 국력이 약화되었으므로 고려에도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이때에 왕위에 오른 인물은 또한 반원적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기도 하였으며 개혁적인 인물이기도 한 공민왕이다. 반원을 내세우며 개혁에 착수한 공민왕은 변발, 호복의 철폐를 시작으로 정동행성, 쌍성총관부 등을 폐지하여 자주적인 국권회복에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권문세족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더욱이 어려운 점은 외적들이었다. 원명교체기에 큰 세력으로 성장한 홍건적이나 왜구의 침입은 국가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신돈이라는 카드를 내밀어보기도 하였으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이 아직은 무리수 였던 듯 싶다. 왕비의 죽음 이후 기이한 행위들을 보이는 공민왕의 기록은 영화 쌍화점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호위무사격이었던 홍륜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어떤 학자는 영민하고 총명했던 공민왕의 이러한 기록이 조선왕조의 창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이라고 하였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왕에 있어 더욱 뚜렷하다. 이성계 세력에 의해 폐위 당했기에 고려사의 세가에도 오르지 못했고 기록도 인신공격의 성격을 지닐 정도다. 그의 아버지가 신돈이었다는 설로 일축하고 마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의 기록 또한 승자의 기록인 것을 입증하는 임금이 바로 우왕일 것이다. 폐위된 우왕의 아들 창왕을 왕위에 앉힌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다. 공민왕의 후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폐위되었다는데 그의 아들이 왕이 되다니.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처음부터 임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정당성의 문제라든지 민심 문제 등 이씨가 임금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왕이 일 년 만에 죽고 잠시 공양왕을 왕위에 올리기도 하였지만 마지막은 이씨왕조의 창건이었다. 이성계 혼자만의 욕심이었다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허나 고려의 운은 이미 시간을 달리하고 있었다. 왕씨의 고려는 국가의 위기를 헤쳐 나갈 만한 힘이 없었다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고려가 막을 내리자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날이 밝았다.
이 책은 고려 전반의 역사를 담은 책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고려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뜻도 이유도 모르고 재미없어 보이는 국사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 될 것이라는 생각도 보탠다. 문벌귀족들의 발호로 시작하여 무신정권 그리고 몽고의 간섭기 까지 어려운 시기였을 테지만, 그 대응에 있어 미흡했던 점들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린 당대의 지배층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 두 권으로 고려사를 한 눈에 알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세부적인 고려의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책읽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