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
김덕진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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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묵시록적 전망의 시대였다. 기근, 질병, 죽음, 그리고 저주. 15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유럽의 회화와 문학이 암울하게 제시되듯, 자연세계는 철저히 비정해 보였다. 이 비정함은 후대 작가의 말로 표현하면 하늘의 변덕과 땅의 결핍 사이의 지속적인 투쟁인, 그 예측불가성만큼이나 컸다. 17세기의 속담은 “인간의 운명은 언제나 어둡다”고 한탄했다.      

                                                                                          -밤의 문화사 중에서-』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가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조선을 큰 위험으로 몰아간 경신대기근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그동안의 책들과는 다른 시도로 쓰여 졌다. 우선은 기후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룬 책이라는 점과 그동안 16 ․ 18세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다른 역사책들과는 달리 17세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17세기는 그 이전과 이후의 시기 사이에 있을 뿐 별로 주목받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오히려 18세기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 관심을 둘 것을 당부하고 있다.

17세기는 유럽뿐만 아니라 가까운 중국 대륙에서도 새로운 사회질서의 재편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조선에서도 전란, 북벌, 반정, 예송, 반란 등등의 크고 작은 혼란이 나타났는데, 이 모두가 당시의 기후 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는 오랜 연구의 결과로 나타났으며 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17세기가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인과 결과를 깊게 따지고 들자면 그 깊은 곳에 기후변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시기의 기후변동을 소빙기라 부른다. 당시에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농업이 국가의 중요산업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소빙기에 걸친 기온저하는 농업생산력의 악화로 이어져 여러 어려움이 많았다. 이 시기 어려움에 관한 조선의 현실과 해결방안의 모색을 다루면서 17세기 이후 나타난 조선의 여러 정책에 관해 설명한다. 정체되고 끼어있는 시기가 아닌 어느 시기보다 역동적이고 체계적인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시기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근은 재해로 인한 흉작의 결과였다. 단순히 굶주림에 그치지 않고 굶주려 죽는 이가 많아 민심이 동요하고 정권이 위태롭게 되는 상태가 대기근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경신대기근 또한 인구의 100만이 죽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대기근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당시 명과 청이 교체된 것을 기후변동에 원인을 둔 저자의 시도가 새롭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겠지만, 시기를 앞당긴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명이라는 대국이 망할 때에도 조선은 왕조를 지키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어떤 이유때문인가. 바로 이를 적절하고 조절하고 관리하는 체제를 정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잘 정비된 것은 아니나 기근이라는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자연스레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8세기 후반 영조와 정조시기에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재난관리를 견고하게 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후이상으로 인한 잦은 가뭄은 수차 보급의 확산을 가져왔고 대기근의 영향으로 공납을 현물 대신 전세화한 대동법이 차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치적 갈등의 증폭이었다. 유교적 자연관에 비추었을 때 대기근은 지배계층에 대한 도전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정쟁이 유독 활발했고 그 양상은 더욱 치열했다고 하는데, 그 동안은 이러한 정쟁을 사상과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였는데, 그동안 접해왔던 책들과는 다른 시도라는 저자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후변화에 의한 사회변화를 조선의 17세기를 통해 역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책읽기가 되었다. 아울러 조선이 위기를 기회로 맞아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아갔던 것을 기억하여 오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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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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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연쇄적으로 비슷한 유의 책을 찾게 되는 이유 때문일까,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을 근래에 자주 접하게 된다. 백범과 율곡에 관한 책 또한 아버지로써 자식을 이끌어주기 위한 책이었는데, 두 권 모두 유익하면서도 부정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었다. 한국사회가 바라는 아버지상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해 유난히 거리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살가운 말 한마디보다는 엄준한 꾸중을 하시는 분이라고 여겨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편지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허나 매섭기 보다는 자식을 걱정하고 귀히 여기는 모습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주제를 들라하면 역시 입신이 되겠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성공은 부모의 바람이 아니던가. 물론 고생보다는 편함을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큰 뜻을 품고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큰 뜻을 품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를 크게 나무란 부분이 각각의 편지마다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문인 혹은 예술가였던 이들의 편지이기에 본인이 빈한 생활을 하면서도 아들에게 이러한 길을 걷지 말라 당부하는 이는 없었다. 재물보다도 더 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길을 모색할 것을 끊임없이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하는 자로서의 공부법에 대한 내용이 편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의 공부법부터 공부를 게을리 할 경우의 나무람까지 오늘날 부모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의 성격에 대한 파악을 통해 각자의 맞춤 공부법까지 적절하게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아버지는 역시 큰 스승이라는 옛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다. 학문에 임하기 전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과 말을 다스리는 법 등등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들은 곱씹어 읽을 만한 글이 다. 다만 못된 점만을 부각하여 나무라는 부분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칭친은 고래도 춤추게 하건만, 당시에는 통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함에도 대부분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좇아 옳은 길을 갔던 것을 보면 아버지의 관심과 걱정이 잘 전해진 듯하다.

여러 명의 아버지들이 각자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이건만, 상황설명이나 세부적인 사항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비슷하다. 물론 오늘날의 아버지의 걱정과도 무척이나 닮았다. 예나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같은 것이 그 이유이리라. 오늘 날 아버지들도 자식들에게 손수 편지를 쓰는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은 가르침의 방식이 될 것 같다. 글이란 것은 말과는 다른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아버지의 심정을 전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 생각되어진다. 오늘 날 이 편지들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이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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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한정주 지음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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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본인의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 노력과 정성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학문을 하고 그 경지에 이르고자 한 사람으로써 그 과정이 쉽지 않았고,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해 나아간 여정 때문에 더 없이 고결하다 하겠다. 권력이나 부를 이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나서 당연히 마땅한 도리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여기에서 사람의 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진실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해 물음을 가질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답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고된 과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범인의 부류에 속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율곡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다.

우선 사람으로 나서 한 삶을 진실로 살고자 한다면 뜻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입지다. 뜻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에서 뜻이란 가시적인 결과로서의 목표보다는 삶의 철학으로서의 뜻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흔히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쓰는데, 이때에도 큰 뜻을 가진 자만이 실패를 성공의 도약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목표 혹은 조직에서의 목표 또한 중요하므로 무슨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 지향점을 찾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큰 뜻을 세웠다면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생길 터,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부다. 학문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학문을 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마음공부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은 조급해지고 학문의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을 경우 중도포기하게 마련이다. 어느 것에나 흔들리지 않을 마음의 안정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조급한 마음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율곡은 그 방법으로 욕심을 버릴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줄이는 것은 어느 경우보다 어렵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리라. 이러한 마음의 안정은 곧 홀로 있을 때도 삼가 하는 경우까지 나아가게 한다. 겉으로만 덕과 경을 말하면서도 홀로 되었을 때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어느 경우에나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결국엔 화를 입게 되는 것이라 했다. 사람은 9가지의 잘한 점 보다 1가지의 실수에 냉혹한 법이다. 특히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이 근독(謹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알고 실천하는 길은 학문에 있다고 했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독서를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유 때문에 율곡에게 독서란 죽어야 비로소 멈출 수 있는 평생의 과업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많은 책을 몇 번이고 되읽고는 했는데, 그 이유는 율곡이 경계하는 책읽기가 한 권의 책도 미처 모두 이해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책에 마음을 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욕심을 자제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겠지만, 가르침을 본인의 것으로 체화하여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독서법이라고 지적한다. 읽은 것은 생각하고 쓰기를 반복하여 반드시 제 것으로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부를 통해 깨달았던 점은 현실에서 적용해야 한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만 못하다는 율곡의 큰 가르침은 평생 자신에게 적용시켜 본보기가 되었다. 결단력과 추진력이 부족했던 선조 곁에서 부단히 노력했던 모습은 귀감이 될 만하다. 끊임없이 군주로서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자 한 율곡의 모습에서 감언이설로 상사의 마음에 들어앉을 생각만 하는 무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성이 모아지면 이룬다 했던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진성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율곡의 경우 평생의 정성이 당대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개인에 있어 그리고 이후의 가르침에 있어 뜻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정의 편에서는 이외의 사람으로서 행해야할 여러 가지들을 모았다. 의로움을 가까이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며 어진 이를 가까이하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모든 이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행함에 있어 어떠한 것들을 경계하고 가까이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외에도 독서를 하는 방법, 말을 다스리는 방법 등 이전이나 지금이나 적용되는 주옥같은 가르침이 곳곳을 메우고 있다. 이 모든 가르침을 하나씩만 되새겨보아도 성공의 길은 요원한 것이 아닐 것이다. 곳곳의 일화들과 말씀을 발췌해 놓은 부분 모두 다시보고 외워 익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로소 실천으로 나타날 때에야 내 자신이 성큼 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당색을 떠나 스승으로 삼고자 한 율곡의 가르침을 오롯이 담은 책을 만났으니, 더없이 영광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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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
김구 지음, 배경식 엮음 / 너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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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읽었던 J.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 떠올랐다. 옥중에서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었는데, 영국의 지배를 받는 인도의 현실을 세계사적인 안목으로 균형있게 보려했던 점이 인상이 깊어 오랫동안 자주 꺼내어 읽는 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점과 우리에게도 이러한 어버이요. 민족운동가로써의 인물을 염원하기도 했었다. 그러했던 것이 모두 나의 무지였음을 이제야 시인해야 할 것 같다. 책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마도 속 내용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바로 그러한 책 『백범일지』가 있었던 것이었다. 눈앞에 두고도 오랜 시간 동안 찾아뵙지 못했으니, 나라에 대한 불충이라는 면에서나 존경받아 마땅한 큰 위인에 대한 불찰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는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이제라도 백범일지를 그것도 올바르게 바로 풀어쓴 노력으로 객관적인 의미파악이 가미된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천만 다행이라는 표현을 쓴다. 내게 이 책은 너무도 중요한 책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말해두고 싶다.

첫 줄에 언급한 세계사 편력은 백범일지와 위대한 정도가 비슷하지만, 이 책에 조금 더 가치를 두자면 올바르게 풀어쓴 노력 때문이다. 백범도 당시의 정황이나 상황을 기록함에 있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지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나, 저자의 노력으로 객관적인 사건인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옳고 그른 부분을 바로 잡는 작업은 대단히 신중하다. 아마도 너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새로 작업된 백범일지는 매우 뜻 깊다 할 것이다.

『백범일지』는 너무도 유명해 누구나 언급하지 않는다는 실수를 저지르는 책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우선 백범일지는 백범이 기록한 일지라고 할 수 있다. 매일의 기록인 일지(日誌)가 아닌 숨겨진 기록, 즉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일지(逸志)다. 백범이 일지를 작성하게 된 경위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은 두 아들에게 전할 유서로서의 상권과 후일 광복 이후 민족에게 남기고자 한 기록인 하권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평생을 독립을 위해 노력한 분이고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이 많았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어버이로서의 인간 백범과 민족지도자로서의 백범을 아는 일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우리의 힘든 시기에 당당하고 힘찬 발걸음을 하는 백범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생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역수어”의 모습이 그 본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죽은 고기가 되지 말고 목적이 있는 산 고기가 되어 순류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신다. 백범이 위대한 이유는 뜻을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모습 때문이었던 것이다.

백범 자신은 백정의 ‘백’ 그리고 범부의 ‘범’을 가져와 호를 지었다.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본 것인데, 보통의 사람이 자신과 같다면 민족의 독립은 어렵지 않다라는 것을 모든 이에게 호소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뜻을 세우기는 어렵지 않으나 실천은 어렵다. 끊임없는 반성과 절제의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삶이었으니 백범은 보통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이였다.

상권의 내용은 어린 시절부터 고국탈출까지 하권은 임시정부의 활동을 대부분 다루고 있다. 백범의 모습은 단아한 한복 저고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 학자로서의 면모를 떠올리게 하지만 오히려 무인으로써의 면모가 많았던 분이셨다. 어린 시절 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시절이 좋지 않아, 나라를 위해 동학군 활동을 했던 일이 있고 의병장들과 교류하였으며 변장한 일본인을 때려죽인 일도 있었다. 이로 인해 옥중생활을 했고 탈옥을 시도하여 성공해 도피생활 중에는 중이 되기도 했었다. 유학자들과 친했고 동학을 통해 새 시대를 열고자 하였으며 중이 되어 불도를 닦기도 했었다. 모든 학문을 두루 접했지만, 하나의 사상에 취해 다른 것을 물리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백범을 가까이 하였으며 독립활동을 이끄는데 많은 힘이 될 수 있었다.

3.1운동을 배경으로 정부수립 활동이 활발해질 무렵 근거지를 상해로 옮겨 독립운동을 해 나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 하권이다. 아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활동이 이 시기일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운 것이었다. 외교를 통한 독립 쟁취, 사상의 분열 등으로 인한 침체 때문일 것인데 이봉창의사, 윤봉길 의사와의 만남과 의거가 인상 깊다. 일본의 대륙침략으로 인한 임시정부의 이전 등 어려운 일이 많아질수록 더욱 단단해져 가는 백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번 뜻을 세우고 절대 굽히지 않았던 절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후 광복군의 활동을 비밀리에 벌이는 모습까지 이 한 권의 책은 근대사의 면면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과는 달리 이야기책처럼 쉽게 읽히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어린 아들과 민족에게 전할 것을 염두 해 둔 목적 때문인지 차근차근 이야기하듯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에 나오는 지명이나 인물들이 다소 생소해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도 직접 겪어 설명하는 글이기에 이해가 쉽다. ‘한 민족’이라는 표현이 국수주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어 지양하는 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민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과 분열의 조짐은 함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점에서, 백범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모색해야할 민족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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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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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우리 역사의 이해』란 주제를 가지고 서울 지역을 답사하는 것을 연수한 적이 있었다. 매우 추운 날이어서 발가락이 얼 정도였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엔 빨리 끝내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드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열 강의를 펼치고 있는 교수님의 덕분인지 추위는 사그라지고 잔잔한 감동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쉬운 점은 작가가 우려하고 있듯이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고 외국 여행에서 본 베르사유 궁이나 자금성 등의 궁궐보다는 초라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몇몇을 위한 답사로 그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서울이 조선조 500여년의 수도인 때문에 곳곳에서 숨은 역사를 느낄 수 있음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잃은 지 오래라 아쉬움이 남았었고, 가끔 문화재청이나 특별한 연구 목적의 흥미를 가질 수 없는 팜플렛의 한 단편으로 소개하는 내용에 부족함을 느끼던 차에, 이런 좋은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쁘고 설레이기까지 해 책을 받자마자 펼쳐들었다.

자료의 풍부함과 옛 사진으로 만나는 서울의 면면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기쁠 일이었지만, 역시 작가의 장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은 처음 서울을 만나듯 생소하면서도 즐겁다.

왜 서울인가? 어릴 적엔 서울이 수도라는 말인 줄 알았다. 가끔 선생님들이 어느 나라의 수도 예를 들어 베이징을 설명할 때면, 중국의 서울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지명 속에도 다양한 해석이 들어있음을 제시하며 흥미를 돋운다.

서울은 애초에 계획도시다. 한양으로 천도를 계획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신권중심의 정치체제를 꿈꾸다가 결국 왕권중심의 정치를 원하던 이방원에게 제거된다. 둘의 동상이몽의 꿈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까지는 같았으나 그 이후로는 운명이 엇갈리게 된다. 이러한 둘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궁궐이라는데 정도전의 궁궐은 궐역 중심으로 이방원의 궁궐은 궁역 중심으로 나타나 후세의 우리에게도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궁을 즐겨 찾는 나로서는 저자의 설명에 찬탄이 절로 쏟아진다. 역시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똥물, 똥개라는 대목에서는 서울의 도시 하수처리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통해 중세 도시의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똥물이야 그렇다지만, 똥개라니...저자말대로 똥소나 똥말은 없다. 집집마다 개와 돼지를 기르던 사연이 기막히다.

땅거지는 또 어떤가. 서울의 옛 모습과 자취만 담은 책인 줄 알았더니,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기원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똥개나 똥돼지 만으로는 더 이상 분뇨를 감당해 내지 못한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이 늘면 의식주도 자연히 늘게 되는 법. 땔감 사용으로 인한 재가 하상에 쌓여 여름이면 홍수가 나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떨어진 영조의 준천 작업령에 의해 하천 양안에 두 산이 생겨난다. 거지도 그 수가 늘어 다리 밑 어느 자리도 낄 수 없던 거지들이 두 산을 파고 기어들자 땅거지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이 뱀을 잡아 팔 수 있는 독점권을 얻게 되는데 그들이 땅꾼이다. 서울로의 인구이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가 보다.

압구정과 석파정에서는 붕당정치의 폐단으로 말미암은 왕권 약화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산속의 정자는 왕도 능가하는 그들만의 정치가 있던 장소임을 가끔 쉬어가는 사람들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한 붕당정치의 폐단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영조와 정조의 탕평정치는 어찌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일임을 서울의 땅 소유를 통해 설명한다. 땅평이 제대로 되지 않은 끼리끼리 모여살기의 땅 소유 방식으로 말미암은 폐단이라는 것인데, 오늘날 강북, 강남의 차별도 결국 땅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이 점점 커지면서, 도심과 부도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종로와 전차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구도심 종로의 기억은 도심의 추억을 기억하는 이곳으로 모여드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지하철 1호선의 모습에서 아련하게 남아 기억되고 있다. 서울이 성장하며 팔각정, 시계탑, 제중원, 촬영국, 파리국 등은 추억 속에나 그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으로 치부되었고, 물장수와 복덕방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성장의 모습 이면에는 이렇듯 쇠락한 모습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쓸쓸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덕수궁 분수대의 건설배경에 대해 쓰고 있는데, 덕수궁에 가 본 사람은 알리라. 석조전과 분수대의 생뚱맞음을. 조선 시대에는 죄인의 집을 헐어 못을 팠다고들 하는데, 분수대라니 했었는데, 저자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하나의 시나리오는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린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의 모습이 한스럽기까지 하다.

처음 수도 서울이 탄생하게 된 시절부터 최근의 서울 모습까지 논리적이거나 기계적인 배열이 아닌 구성으로 찬찬히 서울의 모습을 둘러보고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된 책읽기였다. 조만간 아무래도 이 책에 나온 몇몇의 장소를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이 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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