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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
김구 지음, 배경식 엮음 / 너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읽었던 J.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 떠올랐다. 옥중에서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었는데, 영국의 지배를 받는 인도의 현실을 세계사적인 안목으로 균형있게 보려했던 점이 인상이 깊어 오랫동안 자주 꺼내어 읽는 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점과 우리에게도 이러한 어버이요. 민족운동가로써의 인물을 염원하기도 했었다. 그러했던 것이 모두 나의 무지였음을 이제야 시인해야 할 것 같다. 책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마도 속 내용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바로 그러한 책 『백범일지』가 있었던 것이었다. 눈앞에 두고도 오랜 시간 동안 찾아뵙지 못했으니, 나라에 대한 불충이라는 면에서나 존경받아 마땅한 큰 위인에 대한 불찰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는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이제라도 백범일지를 그것도 올바르게 바로 풀어쓴 노력으로 객관적인 의미파악이 가미된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천만 다행이라는 표현을 쓴다. 내게 이 책은 너무도 중요한 책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말해두고 싶다.
첫 줄에 언급한 세계사 편력은 백범일지와 위대한 정도가 비슷하지만, 이 책에 조금 더 가치를 두자면 올바르게 풀어쓴 노력 때문이다. 백범도 당시의 정황이나 상황을 기록함에 있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지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나, 저자의 노력으로 객관적인 사건인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옳고 그른 부분을 바로 잡는 작업은 대단히 신중하다. 아마도 너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새로 작업된 백범일지는 매우 뜻 깊다 할 것이다.
『백범일지』는 너무도 유명해 누구나 언급하지 않는다는 실수를 저지르는 책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우선 백범일지는 백범이 기록한 일지라고 할 수 있다. 매일의 기록인 일지(日誌)가 아닌 숨겨진 기록, 즉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일지(逸志)다. 백범이 일지를 작성하게 된 경위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은 두 아들에게 전할 유서로서의 상권과 후일 광복 이후 민족에게 남기고자 한 기록인 하권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평생을 독립을 위해 노력한 분이고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이 많았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어버이로서의 인간 백범과 민족지도자로서의 백범을 아는 일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우리의 힘든 시기에 당당하고 힘찬 발걸음을 하는 백범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생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역수어”의 모습이 그 본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죽은 고기가 되지 말고 목적이 있는 산 고기가 되어 순류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신다. 백범이 위대한 이유는 뜻을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모습 때문이었던 것이다.
백범 자신은 백정의 ‘백’ 그리고 범부의 ‘범’을 가져와 호를 지었다. 자신을 보통사람으로 본 것인데, 보통의 사람이 자신과 같다면 민족의 독립은 어렵지 않다라는 것을 모든 이에게 호소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뜻을 세우기는 어렵지 않으나 실천은 어렵다. 끊임없는 반성과 절제의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삶이었으니 백범은 보통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이였다.
상권의 내용은 어린 시절부터 고국탈출까지 하권은 임시정부의 활동을 대부분 다루고 있다. 백범의 모습은 단아한 한복 저고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 학자로서의 면모를 떠올리게 하지만 오히려 무인으로써의 면모가 많았던 분이셨다. 어린 시절 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시절이 좋지 않아, 나라를 위해 동학군 활동을 했던 일이 있고 의병장들과 교류하였으며 변장한 일본인을 때려죽인 일도 있었다. 이로 인해 옥중생활을 했고 탈옥을 시도하여 성공해 도피생활 중에는 중이 되기도 했었다. 유학자들과 친했고 동학을 통해 새 시대를 열고자 하였으며 중이 되어 불도를 닦기도 했었다. 모든 학문을 두루 접했지만, 하나의 사상에 취해 다른 것을 물리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백범을 가까이 하였으며 독립활동을 이끄는데 많은 힘이 될 수 있었다.
3.1운동을 배경으로 정부수립 활동이 활발해질 무렵 근거지를 상해로 옮겨 독립운동을 해 나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 하권이다. 아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활동이 이 시기일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운 것이었다. 외교를 통한 독립 쟁취, 사상의 분열 등으로 인한 침체 때문일 것인데 이봉창의사, 윤봉길 의사와의 만남과 의거가 인상 깊다. 일본의 대륙침략으로 인한 임시정부의 이전 등 어려운 일이 많아질수록 더욱 단단해져 가는 백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번 뜻을 세우고 절대 굽히지 않았던 절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후 광복군의 활동을 비밀리에 벌이는 모습까지 이 한 권의 책은 근대사의 면면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과는 달리 이야기책처럼 쉽게 읽히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어린 아들과 민족에게 전할 것을 염두 해 둔 목적 때문인지 차근차근 이야기하듯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에 나오는 지명이나 인물들이 다소 생소해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도 직접 겪어 설명하는 글이기에 이해가 쉽다. ‘한 민족’이라는 표현이 국수주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어 지양하는 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민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과 분열의 조짐은 함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점에서, 백범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모색해야할 민족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