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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t In The Wind'로 유명한 1970년대의 인기 록 밴드 캔사스(Kansas)의 드러머인 필 이하트(Phil Ehart)가 1951년 2월 4일 태어났다.
그룹 캔사스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와 전형적인 미국 정통 록 사운드를 적절히 배합해내 1970년대에 대중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록 밴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이한 것은 당시 이들의 음악은 음악 평론가들로부터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대중들로부터는 대단히 환영받았고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AOR(Adult Oriented Rock) 사운드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
1970년 고등학생이던 케리 리브그렌(Kerry Livgren:기타), 데이브 호프(Dave Hope:베이스), 그리고 드러머 필 에하트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이들은 학교 밴드로 연주를 하다가 이듬해에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스타인하트(Robby Steinhardt)가 가세하면서 이름을 화이트 클로버(White Clover)로 바꾸게 된다. 다시 그 이듬해인 1972년 스티브 월시(Steve Walsh:보컬, 키보드)와 리처드 윌리엄스(Richard Williams)의 가세로 짜임새 있는 진용을 갖추게 된다. 꾸준한 투어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이들은 결국 레이블 계약을 따내고 1974년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다지 큰 주목은 받지 못한다. 하지만 꾸준한 투어를 계속한 끝에 이들은 지지 팬층을 넓혀갈 수 있었고 1975년의 3집 [Masque]는 드디어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게 된다. 이들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것은 'Carry On Wayward Son'이 들어있던 [Leftoverture] 앨범. 빌보드 차트 5위권에 진입하며 무려 300만 장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의 대표곡인 'Dust In The Wind'가 담겨있던 1977년의 [Point of Know Return] 역시 이를 능가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그 뒤 멤버들이 처음으로 프로듀싱을 해낸 [Monolith]는 차트 톱 텐에 진입하는 성공을 기록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며 밴드는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이미 보컬 스티브 월시가 [Schemer Dreamer]란 솔로 앨범을 낸 바 있는데 캔사스의 1980년 앨범 [Audio-Visions]가 나온 이후에는 데이브 호프와 케리 리브그렌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특히 케리 리브그렌은 솔로 앨범 [Seeds Of Change]를 내놓기도 했고 이들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의 변신은 여타 멤버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스티브 월시는 그룹을 탈퇴하고 새 밴드인 [Streets]를 결성했고 그 대신 존 엘레판테(John Elefante)가 보컬로 가담해 [Vinyl Confessions](1982)에서 'Play The Game Tonight'을 히트시키는 등 밴드 활동에는 흔들림이 없는 듯이 보였지만 그 이듬해 앨범 [Drastic Measures]를 내고는 그룹은 전격 해체되어 버렸다.
그 뒤 1986년에 필 이하트를 주축으로 캔사스는 재결성되었는데 현재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로 활동중인 스티브 모스(Steve Morse)와 빌리 그리어(Billy Greer:베이스) 등을 가담시켜 낸 앨범 [Power]에서 'All I Wanted'를 히트시켰다. 그 뒤 [In the Spirit Of The Things](1988)를 낸 뒤 무려 7년 만에 새 앨범 [Freaks Of Nature]를 내놓았고 [Always Never The Same](1998)에 이어 창립 멤버 케리 리브그렌이 다시 가담해 [Somewhere To Elsewhere](2000)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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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키스(Kiss)의 에릭 카(Eric Carr)가 출생했다. 앨리스 쿠퍼(Alice Cooper)의 메이크업과 무대 분장 및 연출 기법에 충실한 한편
하드 한 펑크 록을 지향한 글램 록(glam rock) 밴드 뉴욕 돌스(The New York Dolls)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은 키스(Kiss)는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의상과 분장과 무대 장치 밖에 기억할 것이 없던 그룹이지는 않았다. 하드 록이 팝 메탈로 진화하는 분수령에 서 있었고 거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강한 멜로디 라인 그리고 스트링 편곡이 조화 이룬 지극히 대중적이고도 익숙한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다. 뉴욕에서 활동한 무명 하드 록 밴드 출신인 베이스 주자 겸 보컬리스트 진 시몬스(Gene Simmons)와 리듬 기타 주자 겸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Paul Stanley)가 주축이 되어 1973년 이후 본격적인 팀 워크를 갖춰 언더 신 및 공연 활동 위주로 영역을 넓혀 갔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의 공연 시 세션 드러머로 활약했던 피터 크리스(Peter Criss) 그리고 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한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레흘리(Ace Frehley)가 가세하면서 보다 극적인 면모를 갖춘 밴드로의 모습이 갖춰졌다. 프로듀서 빌 어코인(Bill Aucoin)에 의해 발탁된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계약해 1974년 2월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앨범 차트 87위까지 오르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아직 그들의 무대가 보여주는 진면목을 접한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4월까지 무려 3장의 앨범을 부지런히 찍어낸 그들은 저변 확대 차원의 라이브 공연에 열중했고 그 결과물이 1975년 가을에 출시된 [Alive!] 앨범이다. 이 앨범에 이르러 그들은 비로소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고 앨범 차트 10위는 물론 싱글 'Rock N' Roll All Nite'가 싱글 차트 12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1976년 3월 발표한
[Destroyer] 앨범은 이들 최초의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며 피터 크리스가 작곡한 파워 발라드 'Beth'가 히트했다. 1977년 말 <갤럽(Gallup)>이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 최고 인기의 밴드였다. 이들은 각종 상품의 캐릭터로 또 TV 드라마 및 만화 주인공으로까지 그
명성을 드높였다. 'Kiss Army'라는 이름의 팬클럽까지 결성되어 막강한 기세를 드높였다. 그런 와중 1978년 이들은 멤버 넷이 모두 같은 날에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는 진귀한 이벤트를 가지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진 시몬스의 것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1979년의 [Dynasty] 앨범 이후 피터가 팀을 탈퇴하고 세션 드러머 안톤 피그(Anton Fig)를 영입해 [Kiss Unmasked] 앨범을 1980년에 출시했으나 그 이후로 그들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이스가 팀을 떠나고 비니 빈센트(Vinnie Vincent)가 1982년 영입되었으며 계속적인 부진에 자극 받은 이들은 1983년의 [Lick It Up] 앨범부터 분장을 지우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반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해 몇 년만에 처음으로 플래티넘 디스크를 수여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빈센트의 탈퇴 이후 팀이 다시 위태로워져 재정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1990년 히트 발라드 'Forever'로 다시금 제2의 절정기를 맞았다. 중기 키스와 함께 했던 프로듀서 에릭 카(Eric Karr)가 요절한 1990년 11월 이후로는 초기 그들과 호흡을 맞췄던 밥 에즈린(Bob Ezrin)을 재기용했고 1992년에 [Revenge] 앨범을 발표했으나 전성기는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1996년 오리지널 멤버들로 재결성된 키스는 다시 분장을 시작하고 무대 장치를 한껏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세계 투어에 돌입해 인기몰이에 성공해 노장 밴드의 진면목을 보였다. 1998년에 정규 앨범 [Psycho Circus]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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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룹의 탄생
Rock계의 3대 산맥 중의 하나로 불리는 Deep Purple은 새로운 멤버들을 보강하고 74년 앨범 [Burn]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게 된다.

즉 이전의 직선적이고 격렬한 Hard Rock 대신 Soul, Funk를 도입한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다. 이어서 [Stormbringer]를 발표할 때는 음악적 주도권이 새로 가입한 멤버들에게로 많이 넘어가게 된다. 결국 이에 불만을 품은 기타 연주자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는 75년 초 유럽 공연 이후 평소 자신들의 공연에 오프닝을 서서 친분이 있던 그룹 Elf의 멤버들을 독일의 스튜디오로 불러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에 몰두하였다.

여기서 평소 하고싶던 음악을 순조롭게 녹음한 리치는 결과에 만족하고 Deep Purple의 탈퇴를 선언한 뒤 Elf 멤버들과 자신의 그룹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하게 된다. 이는 거대한 3대 산맥이 여러 갈래의 줄기로 갈라지는 순간이었으며, 진자줏빛이 여러 색깔과 더불어 무지개빛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와의 전성기
데뷔 앨범 [Ritchie Blackmore's Rainbow]에서는 2기 Deep Purple의 음악과 비슷한 직선적이고 격렬한 Hard Rock에 리치 특유의 클래식, 동양적인 선율이 절묘하게 결합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리치는 더 나은 음악을 하기 위해 보컬인 디오를 제외한 모든 멤버를 교체하여 드럼에 코지 파웰(Cozy Powell)등 최고의 멤버로 구성된 라인업으로 최고의 앨범 [Rising]을 발표한다. 특히 대작 "Stargazer"는 크게 주목받았다.

앨범 발표 후 76년 최고의 멤버에 의한 세계 순회 공연을 하는 등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베이스가 Uriah Heep 출신의 마크 클라크(Mark Clarke)로 교체되었다가 새 앨범 작업 도중키보드인 토니 케어리(Tony Carey)와 함께 탈퇴함에 따라 새 앨범 녹음 대신 76년의 공연 내용으로 실황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77년 실황의 격렬함과 독특한 편곡이 조화된 명 실황 앨범 [On Stage]를 발표한다. 78년 멤버를 보강하고 [Long Live Rock & Roll]을 발표하여 2집의 격렬함과 1집의 다양한 음악성이 조화된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드러머 코지 파웰을 제외한 전원을 교체하고 리치는 새로운 음악을 구상하게 된다.

3. 옛 동지 로저 글로버(Roger Glover)와의 작업
새로 보강된 멤버는 디오와는 다르지만 헤비메틀 보컬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주는 그래험 보넷(Graham Bonnet), 그리고 Deep Purple 시절 같이 활동했던 베이스 주자 로저 글로버였다. 특히 로저는 그룹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외에 키보드로는 돈 에이리(Don Airey)가 참가한다.

80년 [Down to Earth]를 발표하는데 여전히 강렬한 음악을 들려주긴 하지만 디오 시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나며, "Since You''ve Been Gone"은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다.
이듬해 "Monsters of Rock" 콘서트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준 뒤에 그래험 보넷과 코지 파웰이 탈퇴한다.

새로운 보컬로 조 린 터너(Joe Lynn Turner)를 영입하여 좀 더 멜로디 중심의 대중적인 Rock을 하게 된다. 81년 [Difficult to Cure]를 발표하여 "I Surrender"를 크게 히트시켰다. 또한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을 편곡한 타이틀곡이 이후의 기타 중심의 음악을 자극시키기는 하지만 예전의 팬들로부터는 점차 외면을 받는다.

82년 [Straight Between the Eyes]와 83년 [Bent Out of Shape]에서는 변화된 그들의 스타일을 더 발전시키지만 전성기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84년 2기 Deep Purple의 재결성으로 그룹은 공중분해되고 만다.

그 후 86년 후기 레인보우의 공연 실황을 중심으로 하되 각각 디오와 그래험 보넷이 있던 시절의 미발표곡과 실황을 모은 회고 형식의 앨범 [Finyl Vinyl]이 발매된다.

4. 재결성
재결성한 Deep Purple은 처음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과거만큼 신선하지 않은 음악과 불안한 멤버 변동 끝에 93년 리치가 결국 다시 탈퇴하고 새로운 뮤지션들을 오디션 하여 95년 새 앨범 [Stranger in Us All]을 발표하게 된다.

과거에 향수를 가진 예전 팬들에게 환영을 받기도 했으나, 리치는 포크와 발라드 중심의 새로운 프로젝트 Blackmore's Night과 활동을 병행하다가 결국 새 프로젝트에만 전념하여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가 된다.

하지만 레인보우는 리치가 이끌었던 그룹인 만큼, 초기의 "Rainbow Eyes", "Catch the Rainbow" 등에서 보여준 전통을 새 프로젝트가 계승하고 있다.

5. 후기
수많은 훌륭한 뮤지션들이 그의 그룹을 거쳐가면서 그때마다 각각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었으며 끝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추구해 온 리치 블랙모어는 이 후의 기타리스트들에게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80년대의 수많은 속주 기타리스트들 중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상당수이다).

50이 넘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신의 음악 스타일과 많이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 Blackmore's Night에 전념하는 등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고 있다.

관련 그룹, 그룹을 거쳐간 솔로 활동 가수들:
Deep Purple, Elf, Dio, Black Sabbath,
Wild Horses, Joe Lynn Turner, Graham Bonnet, Cozy Powell
Blackmore's Night

영향받은 그룹, 가수들:
Yngwie Malmsteen, Impelliteri,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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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는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에 의해 83년에 조직된 정통 헤비메틀을 들려주는 밴드이다. 리더이자 보컬인 디오는 어렸을 때는 클래식 트럼펫을, 청소년기에는 베이스를 연주하다가 70년대 초 그룹 Elf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Rock의 3대 산맥 중 하나인 대 그룹 Deep Purple의 오프닝 밴드로 공연에 동반하던 중 Deep Purple의 기타 연주자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권유로 75년 Rainbow에 가입하여 힘차고 거친, 그 자체로 헤비메틀의 전형인 보컬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뒤 음악적 차이로 탈퇴한 그는 이번엔 역시 Rock의 3대 산맥 중 또 다른 대그룹인 Black Sabbath에 80년 가입하여 명성을 더욱 널리 알림과 동시에 슈퍼 그룹에만 참가하는 거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역시 음악적 차이로 82년 탈퇴하고 비로소 자신의 그룹 디오(Dio)를 결성하게 되었다.

멤버는 먼저 Black Sabbath에서 데리고 나온 드러머 비니 어피스(Vinny Appice)와 Rainbow 시절 호흡을 맞췄던 옛 동료 지미 베인(Jimmy Bain), 그리고 지미 베인이 찾아낸 북아일랜드 출신의 속주 기타리스트 비비안 켐밸(Vivian Campbell)로 구성되었다.
과거 Rainbow의 기타 연주자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가 오랜 Deep Purple 시절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그룹 Rainbow를 조직한 초기에 자신의 음악 생애 최대의 전성기를 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디오 역시 오랜 그룹 소속 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의 그룹을 결성 한 뒤 발표한 초기의 세 앨범 [Holy diver](83년), [The Last in Line](84년), [Sacred Heart](85년)에서 음악적 성향이 가장 무르익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 앨범들에서는 80년대 헤비메틀의 정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순수하고 격렬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캠벨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연주는 디오의 거친 보컬과 또 다른 조화를 이루어 과거 Rainbow, Black Sabbath와는 또 다른 맛을 내고 있다.

80년대 중반에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 앨범 [Hear and Aid]를 기획하고,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Hungry for Heaven'을 [Vision Quest]에, 'Hide in the Rainbow'를 [Iron Eagle]에 수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이렇듯 전성기를 달리던 디오는 3집 발표 후 투어에서 기타 연주자 켐밸이 탈퇴하면서부터 음악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등 하강의 길을 걷게 된다.

Geoffria 출신의 새 기타리스트 크레이그 골디(Craig Goldy)와 실황 앨범 [Intermission](86년), [Dream Evil](87년)을 발표하였으며, 89년 멤버 전원 교체의 진통 속에 오디션으로 선발한 새 기타리스트 로완 로버트슨(Rowan Robertson)과 90년 [Lock up the Wolves]를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만다.

91년 Black Sabbath와 잠깐 재결성하였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93년 강력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트레이시 지(Tracy G)와 함께 'Strange Highway'를 발표하여 그룹 디오로서 재출발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통 메틀을 고수한 디오는 이후 [Angry Machine]을 발표하고, 98년엔 실황 앨범 [Inferno: the Last in Live]를 발표한다.

관련 그룹 디오가 거쳐온 그룹들을 빼 놓을 수 없다.

70년대 초의 Elf, 70년대 후반의 Rainbow, 80년대 초의 Black Sabbath에서의 그의 보컬과 그룹 디오의 음악을 대조하는 것은 재미있다.

이 외에 베이스인 지미 베인이 조직했던 Wild Horses, 기타인 비비안 켐벨이 있던 Sweet Savage, 그의 후임이었던 크레이그 골디가 있던 Geoffria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비비안 켐벨의 디오 시절 연주와 탈퇴 후 가입한 Def Leppard에서의 연주를 대조해 보는 것도 재미있고, 드럼 비니 어피스의 형인 카마인 어피스(Kamine Appice)의 연주도 기회가 닿으면 찾아 들어보는 것도 좋다.

현재 베이스로는 앨범 제작에만 제프 필슨(Jeff Philson)이 참가하고 있는데 그는 도켄(Dokken)에서도 활동하는 2중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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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10일 유투의 보노(Bono)가 태어났다. 유투(U2)는 `78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보노와 아담 클레이튼을 주축으로 래리 멀린 주니어, 에지가 가세하면서 스쿨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78년 미니 앨범 [U2-3]를 발매한 이후, `80년 '아일랜드(Island)' 레코드와 계약하고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의 프로듀스로 첫 앨범 [Boy]를 발표한다. 2집 [October]를 거쳐 3집 [War]에 실린 'New Years Day'가 영국 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 톱 10에 랭크되는 성공을 거두고 `84년 '롤링스톤(Rolling Stone)' 지의 평론가들이 꼽은 올해의 밴드에 선정되면서 유투는 명성을 얻게 된다. `83년 겨울, 일본 투어 중 방문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사진전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유투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니엘 라노아(Daniel Lanois)를 공동 프로듀서로 영입, 앨범 [The Unforgettable Fire]를 선보인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한 첫 싱글 'Pride(In The Name Of Love)'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거두면서 유투는'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떠오른다. `87년에 발표된 [Joshua Tree]는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전세계적으로 140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고,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을 모조리 휩쓴다. [Joshua Tree] 발매 후 가진 미국 투어 중 다큐멘터리 영화 'Rattle And Hum'을 만들어낸 그들은 밥 딜런(Bob Dylan), 비비 킹(B.B.King) 등이 참여한 동명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면서 '80년대를 마감한다. 다음 앨범 [Achtung Baby]에서 그들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등의 밴드들을 프로듀스 해온 플러드(Flood)와 함께 새로운 변신을 꾀한다.
[Achtung Baby] 투어가 끝나고 3개월의 휴식 후에 다음 앨범 녹음에 들어간 그들은 '93년 [Zooropa]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에지는 기타, 보컬은 물론 플러드, 브라이언 이노와 더불어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한다. 앨범의 발매와 함께 유투는 '주 티비 투어(Zoo TV Tour)'를 시작하는데 전세계에서 157회의 공연을 통해 400만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유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이후 유투는 영화 '배트맨 포에버(Batman Forever)' 사운드트랙에 'Hold Me, Thrill Me, Kiss Me'를 제공하고 이노를 비롯한 친구들을 규합, 가상의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 [Passangers]를 '95년 발표한다. 특히 여기서 파바로티가 참여한 'Miss Sarajevo'가 싱글 커트되었다. 한편, 아담과 래리는 짝을 이루어 영화 'Mission:Impossible'의 주제 음악을 맡았다. 새 앨범을 위해 [Passangers] 작업에서 알게 된 하위 비(Howie B)를 프로듀서 및 엔지니어로 영입한 그들은 `97년 발표한 [Pop]에서 또 다른 변신을 꾀했다. 특히 첫 싱글 는 기존 팬들이나 평론가들을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2000년 10월에 발표된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는 2001년과 2002년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유투의 두 번째 베스트 앨범 [Best Of 1990-2000]가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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