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키스(Kiss)의 에릭 카(Eric Carr)가 출생했다. 앨리스 쿠퍼(Alice Cooper)의 메이크업과 무대 분장 및 연출 기법에 충실한 한편
하드 한 펑크 록을 지향한 글램 록(glam rock) 밴드 뉴욕 돌스(The New York Dolls)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은 키스(Kiss)는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의상과 분장과 무대 장치 밖에 기억할 것이 없던 그룹이지는 않았다. 하드 록이 팝 메탈로 진화하는 분수령에 서 있었고 거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강한 멜로디 라인 그리고 스트링 편곡이 조화 이룬 지극히 대중적이고도 익숙한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다. 뉴욕에서 활동한 무명 하드 록 밴드 출신인 베이스 주자 겸 보컬리스트 진 시몬스(Gene Simmons)와 리듬 기타 주자 겸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Paul Stanley)가 주축이 되어 1973년 이후 본격적인 팀 워크를 갖춰 언더 신 및 공연 활동 위주로 영역을 넓혀 갔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의 공연 시 세션 드러머로 활약했던 피터 크리스(Peter Criss) 그리고 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한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레흘리(Ace Frehley)가 가세하면서 보다 극적인 면모를 갖춘 밴드로의 모습이 갖춰졌다. 프로듀서 빌 어코인(Bill Aucoin)에 의해 발탁된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계약해 1974년 2월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앨범 차트 87위까지 오르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아직 그들의 무대가 보여주는 진면목을 접한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4월까지 무려 3장의 앨범을 부지런히 찍어낸 그들은 저변 확대 차원의 라이브 공연에 열중했고 그 결과물이 1975년 가을에 출시된 [Alive!] 앨범이다. 이 앨범에 이르러 그들은 비로소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고 앨범 차트 10위는 물론 싱글 'Rock N' Roll All Nite'가 싱글 차트 12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1976년 3월 발표한
[Destroyer] 앨범은 이들 최초의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며 피터 크리스가 작곡한 파워 발라드 'Beth'가 히트했다. 1977년 말 <갤럽(Gallup)>이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 최고 인기의 밴드였다. 이들은 각종 상품의 캐릭터로 또 TV 드라마 및 만화 주인공으로까지 그
명성을 드높였다. 'Kiss Army'라는 이름의 팬클럽까지 결성되어 막강한 기세를 드높였다. 그런 와중 1978년 이들은 멤버 넷이 모두 같은 날에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는 진귀한 이벤트를 가지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진 시몬스의 것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1979년의 [Dynasty] 앨범 이후 피터가 팀을 탈퇴하고 세션 드러머 안톤 피그(Anton Fig)를 영입해 [Kiss Unmasked] 앨범을 1980년에 출시했으나 그 이후로 그들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이스가 팀을 떠나고 비니 빈센트(Vinnie Vincent)가 1982년 영입되었으며 계속적인 부진에 자극 받은 이들은 1983년의 [Lick It Up] 앨범부터 분장을 지우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반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해 몇 년만에 처음으로 플래티넘 디스크를 수여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빈센트의 탈퇴 이후 팀이 다시 위태로워져 재정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1990년 히트 발라드 'Forever'로 다시금 제2의 절정기를 맞았다. 중기 키스와 함께 했던 프로듀서 에릭 카(Eric Karr)가 요절한 1990년 11월 이후로는 초기 그들과 호흡을 맞췄던 밥 에즈린(Bob Ezrin)을 재기용했고 1992년에 [Revenge] 앨범을 발표했으나 전성기는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1996년 오리지널 멤버들로 재결성된 키스는 다시 분장을 시작하고 무대 장치를 한껏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세계 투어에 돌입해 인기몰이에 성공해 노장 밴드의 진면목을 보였다. 1998년에 정규 앨범 [Psycho Circus]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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