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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멤버 교체로 인해 그룹의 존폐에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40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면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저니(Journey)는 아메리칸 하드 록 필드의 대표적인 주자로서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음악 색깔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그룹이다.

73년 산타나(Santana)의 매니저였던 허비 허버트(Herbie Herbert)에 의해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em Section)이란 이름으로 결성된 그룹의 오리지널 멤버로는 이전 산타나의 멤버였던 닐 숀(Neal Schon, 기타), 그레그 롤리(Gregg Rolie, 키보드), 로스 발로리(Ross Valory, 베이스), 프레어리 프린스(Prairie Prince, 드럼), 조지 티크너(George Tickner, 리듬 기타·리드 보컬) 등이었다.
73년 12월 31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Winterland)에서 만 명의 관중이 모인 라이브 무대로 데뷔한 이후, 이들은 그룹 이름을 저니로 바꾸고 재즈 록과 솔로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이 특징인 음악을 구사하며 [Journey](75), [Look Into the Future](76), [Next](77)를 발표한다.
그러나 지극히 연주 위주였던 이들의 음악은 그다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이 시기에 프레어리와 조지는 앤슬리 던바(Aynsley Dunbar, 드럼)와 알란 프로젝트의 보컬이었던 스티브 페리(Steve Perry)로 교체된다.

자신들의 음악적 색채를 평범하지만 훨씬 세련된 소프트 록으로 바꾼 이들은, 앤슬리의 뒤를 이어 새로 영입된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드럼)와 78년 새 앨범 [Infinity]를 녹음한다.
프로듀서 로이 토마스 베이커(Roy Thomas Baker)에 의해 저니의 사운드에 힘차고 역동적인 음색이 덧입혀진 이 앨범은 공중파 방송을 타고 히트를 기록한 'Wheel in the Sky'에 힘입어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뒤이은 이들의 공연은 매진사례를 보일 만큼 저니는 명실공히 스타 밴드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연이어 발표한 [Evolution](79)과 [Departure](80) 역시 빠르게 몰아치는 기타 사운드와 거친 하드 록의 정수를 보여주며 스타덤을 유지시켜주었다.
원년 멤버인 그레그의 뒤를 이어 새롭게 밴드에 가담한 조나단 케인(Jonathan Cain, 키보드·기타·보컬)이 구사하는 독특한 사운드에 힘입어 81년 톱 텐 히트곡 'Who's Crying Now', 'Don't Stop Believing', 'Open Arms'으로 인기를 모으고, 앨범 차트 1위와 9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라는 기염을 토한 [Escape]의 대성공에 이어 저니는 [Frontiers](83)를 발표했다.
이 앨범으로 600만 장의 판매고를 거두고 'Separate Ways', 'Faithfully' 같은 히트곡으로 80년대 초까지 그룹의 인기를 성공적으로 이어간 이들은 잠깐의 휴식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무렵 팀의 리더 역할을 하던 스티브 페리와 로스 발로리, 스티브 스미스 간에 음악적으로 불협화음이 불거지면서 86년 플래티넘 앨범 [Raised on Radio](86)를 끝으로 87년 저니는 해체된다.
88년 밴드의 소속사였던 콜롬비아사는 저니의 [Greatest Hits Collection]을 발표, 8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아직 이들의 명성이 시들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90년대 중반까지 각자 솔로로, 다른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여전한 인기에 힘입어 95년 재결성해 [Trial By Fire](96)를 발표, 어덜트 컨템포러리 라디오 부문에서 히트를 기록했고, 98년 영화 [Armageddon]의 사운드트랙에 싱글곡을 수록하면서 현재까지 웨스트 코스트가 자랑하는 최고의 록그룹으로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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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록 밴드로서 1997년 30주년을 맞이한 시카고(Chicago)는 한 마디 로 7, 80년대를 풍미한 히트곡 제조기였다.
가히 전설의 그룹이라 할 수 있는 8인조의 대규모 밴드 시카고는 18장의 골드 앨범과 13장 의 플래티넘 싱글 앨범, 12개의 톱 텐 앨범, 5곡의 넘버원 싱글, 20곡의 톱 텐 히트곡 등을 기록하며, 총 1억 2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매년 미국 전역을 포함해 전세계를 순회하며 공연을 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대형 그룹이다.
1967년 록, 클래식, 재즈 등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가진 7명의 젊은 뮤지션들 -테리 케 이스(Terry Kath: guitar, vocals), 피터 세트라(Peter Cetera: bass, vocals), 로버트 렘 (Robert Lamm: keyboards, vocals), 월터 페러자이더(Walter Parazaider: saxophone), 데니 세라핀(Danny Seraphine: drums), 제임스 펜코우(James Pankow: trombone), 리 로우넨(Lee Loughnane: trumpet) -이 재즈 역사의 중요한 거점인 Chicago에 모여 그룹을 결성한다.
초기에 이들 그룹의 명칭은 미싱 링크(Missing Links)였고, 이후 빅 씽(Big thing)이라는 이 름으로 바꾸었다가, 같은 해 매니저인 짐 구에레코(Jim Guercio)의 제안으로 시카고 트렌짓 오쏘로티(Chicago Transit Authority)로 확정짓는다.
이들 그룹은 호른 섹션(horn section)을 갖춘 로큰롤 밴드(rock'n roll band)라는 점에서 기 존 Beatles의 4박자 리듬을 본따고 기타-베이스-드럼 구성이 주가 되는 여타 60년대 중반의 록 밴드들과 차별된다.
결성 당시(67 and 68)에는 LA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69년에 콜롬비아 레코드 (Columbia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첫 앨범을 발표한다. 데뷔 앨범은 사실상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70년도에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 'Beginnings'등 싱글 곡이 히트하면서 팝계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 그룹명도 Chicago로 줄여서 활동을 시작한다.
시카고는 1991년 [Chicago 21]에 이르기까지 앨범 타이틀에 넘버를 매기는 것으로 유명하 다. 물론 4번째 앨범 [Chicago At Carnegie Hall], 12번째 앨범 [Hot Streets], 14번, 20번 째의 [Greatest Hits Volume]등 앨범 타이틀을 따로 정해 발표한 것들도 있지만, 이 앨범 들은 넘버링한 앨범에 비해 크게 어필하지 못한 징크스가 있다. 각 앨범마다 그룹 로고를 다양하게 변형시켜 쟈켓 디자인을 하는 것도 특징이고, 커버 디자인 중 몇몇은 Graphic Design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70년대 초기부터는 기존의 재즈 사운드에서 주류 팝으로 성향을 바꾸면서 Light-rock풍의 'Color my world'같은 곡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72년부터 1975년 사이 5개의 앨범이 연속적으로 차트의 톱을 점유했고, 1976년 'If you leave me now'같은 팝 발라드 곡들이 인기를 얻으며 그 명성을 높여갔다.
70년대 후반에는 매니저와의 결별, 초기 멤버 테리 케이스의 죽음(권총 오발 사고), 몇몇 멤 버의 교체, 음반 판매 부진 등으로 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프로듀서로 82년 [Chicago 16]을 발표, 이 앨범에 수록된 불후의 명곡 'Hard to say I'm sorry'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슈퍼 밴드의 위치를 되찾게 된다.
1985년 세트라가 솔로 활동을 위해 그룹을 탈퇴함에 따라 작사, 작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 방면의 재주를 가진 제이슨 세프(Jason Scheff)를 영입해 [Chicago 18](86)을 발표했는데, 'Will you still love me?'가 빅히트를 하면서 골드 셀링(gold-selling)을 기록하게 된다.
또 88년 발표한 19번째 앨범의 'Look away'는 시카고의 곡들 중 가장 빨리 # 1 hit에 오 른 싱글 곡으로 알려져 있다.
시카고는 활동 초기에는 재즈-록 사운드를 구사하다가 팝 발라드로 널리 알려지면서 때때 로 음악적 정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하드록에서 라이트 팝, 재즈,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합하려는 그들만의 독창성과 음악적 유연성(musical flexibility)은 30여년 동안 여전히 팝계의 major commercial force로 인정받고 있다.
팝 뮤직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이브 밴드인 시카고는 그들의 오랜 역사만큼 이나 타 아티스트들과 전 세계 팝 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자리잡을 것이다.

출처;음악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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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 Aid의 오리지널 구성원들입니다. 필 콜린스, 보노, 듀란 듀란 등의 모습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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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은 기타와 멜로트 론(Mellotron,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한 전자 건반 악기)의 명인인 로버트 프 립(Robert Fripp)을 중심으로
초기 5년 동안 팝이나 사이키델릭한 감성을 거부하면서 재즈와 클래식을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영국의 진보적인 밴드이다.

 

Micheal Giles(드럼·보컬), Peter Giles(베이스·보컬), 로버트 프립이 1967년 말 결성한  Giles, Giles & Fripp 이라는 트리오로 시작된 이들은 1968년 첫 싱글 One in a Million을 발표한 뒤 68년 데뷔 앨범 The Cheerful Instanity of Giles, Giles & Fripp을 발표하지만 앨범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트리오는 해체 되고 맙니다.

 

1969년 초 마이클과 로버트는 Ian McDonald(보컬·기타), Gregg Lake(보컬·베이스)를 영입해 새로운 밴드를 구성하고, 객원 작사가 Peter Sinfield 와 함께 킹 크림슨을 결성 불멸의 신화를 시작 하게 됩니다.

1969년에 발매된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진보적인 록계 역사상 귀중한 음반이며 타이틀 곡인 Court of Crimson King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프로그레시브 록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곡으로 평가 받았으며, 동시에 대중들을 사로잡아 UK 5위, US 28위를 차지합니다. 

 

국내에서는 프로그레시브팬 뿐만 아니라 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알려진 명곡 

Epitaph 가 수록된 음반 이기도 하죠.


하지만 미국 투어를 마친 후 그룹은 분열의 양상을 띠게 되고, 이안과 마이클은 지속되는 공연에 따른 스트레스와 음악적 방향에 대한 불만으로 그룹을 탈퇴했고, 그렉 또한 두 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1970)을 끝으로 Emerson,Lake & Palmer 를 결성 하기 위해 그룹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킹 크림슨은 프립을 중심으로 새로 영입된 Gordon Haskell (보컬·베이스),

Mel Collins(색소폰),Andy McCullough(드럼)와 함께 작업을 지속해 Lizard(1971)를 발표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고든과 앤디가 탈퇴 하고,Boz Burrell(보컬)과 Ian Wallace(드럼)가 가담해

Islands(1972)를 발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킹 크림슨은 미국 순회공연에 이어 또 다시 붕괴되고 맙니다.

표면적으로 킹 크림슨의 역사는 끝장난 것처럼 보였지만, 로버트는 다시 이전 예스(Yes)의 드러머였던 Bill Bruford, 그룹 Family에서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던 John Wetton,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David Cross, 퍼커션의 Jamie Muir, 작사가 Richard Palme-James로 새로운 라인업을 구성하여 크림슨의 명반으로 평가되는 Larks' Tongue in Aspic을 발표 합니다. 그러나 1974년 Starless and Bible Black 발표 이후 킹 크림슨은다시 균열되어 로버트, 존, 빌의 트리오로 축소 된 채 중기 명반 [Red](1974)를 완성한 후 로버트는 그 해 9월 공식적인 밴드 해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이후 7년 간의 공백기를 거친 1981년 로버트는 빌, 베이시스트인 Tony Levin,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Adrian Belew와 함께 Discipline 이라는 그룹 명으로  다시 록 씬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들은 킹 크림슨으로 밴드 이름을 바꾼 후 포스트 모더니즘에 입각한 창의적이고 야심만만한 음악으로 그룹의 부활을 시도하게 됩니다.1994년 다시 로버트, 아드리안, Trey Gunn(스틱,백 보컬), 토니, 빌,Pat mastelotto(어쿠스틱/일렉트릭 퍼커션)로 재정비된 King Crimson은 1995년 신보 Thrak 를 발표했으며 2001년 현재까지 순회 공연과 음반 발매 등을 통한 활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불멸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King Crimson 의 신화는 현재 진행형 인 것이며 그들의 신화가 멈추지 않고 계속 되는 한 그들의 음악도 늘 우리 곁에 자리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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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독특한 역사를 가지는 르네상스는 최초 밴드명이 사용된 이래 약 30년 동안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를 내세운 세 개의 그룹으로 맥을 이어 왔다.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인 키스 렐프(Keith Relf)와 드러머 짐 맥카티(Jim McCarty)에 의해 결성된 1기 르네상스가 시도했던 클래식과의 접목은 거의 완벽한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이름은 클래시컬 아트 록의 대명사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애니 해슬럼(Annie Haslam)으로 대표되는 2기 르네상스는 1기의 클래시컬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표했다

 

 

 

 

 

ANNIE HASLAM & RENAISSANCE 클래시컬 아트 록의 대명사  

 

 

수많은 팝 스타들이 명멸해 갔지만 최근에 뜨는 신세대거나 왕성하게 활동하는 뮤지션이 아니고는 일반 대중에게 소개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호를 통해 약속드린 대로 이번 호부터 새롭게 노장 아티스트들에 대한 지면을 마련했다. 이어지는 ‘Portrait Of Maestro’ 역시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 지면은 솔로건 그룹이건 간에, 또 장르를 불문하고 팝 음악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아티스트들을 다루어보기로 한다.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아티스트도 있지만 현재까지도 일선에서 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코너는 스크랩 해두면 훌륭한 아티스트 사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편집자 주).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아트 록(art rock)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인지되는 개념은 바로 ‘록과 클래식의 혼합체’로서의 음악이다. 이는 이 장르의 음악이 태동하던 무렵의 인상적인 실험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선구적인 대열에 있던 몇몇 밴드들의 음악은 사운드의 내용이나 구성에 있어 클래식으로부터 차용된 방법론에 의거한 부분이 많았고, 그것은(상업적인 성공의 유무를 떠나)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고전음악가의 유명한 작품들에서 차용한 주선율을 주제로 한다든지-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나이스(The Nice),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대규모 관현악단이나 실내악단을 동원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운드의 표출을 이룬다든지-에니드(The Enid),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Barclay James Harvest),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딥 퍼플(Deep Purple)-하는 등의 시도들은 장르의 개념 확립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소위 클래시컬 록(classical rock)으로 불리던 이러한 음악들이 지니는 특유의 서정성은 많은 음악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반면 단순히 ‘표면적인’ 감성만으로 일관되던 이 음악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한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그룹들은 다른 방향으로의 음악적 변화를 꾀하며 나름대로의 진보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극소수의 예외적인 이들을 제외하고는.

1. 르네상스, 그리고 애니 헤이슬럼
클래시컬 록의 대명사격으로 군림하며 데뷔 이래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의 음악 노선을 견지(堅持)해 온 그룹 르네상스(Renaissance)는 그 음악 스타일 하나만으로 여타 그룹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밴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의 음악이 지니는 가장 큰 매력이라면 낭만파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듯한 아름다운 선율과 부드러운 사운드, 그리고 록과 재즈, 포크 등의 요소를 포함한 화려하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악곡의 전개 등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이들의 음악은 텐션(tension)과 파워 등의 측면에서 동시대의 다른 록 그룹들의 사운드와 동떨어져 있었으며, 심지어 에니드나 네덜란드의 트레이스(Trace), 엑셉션(Ekseption) 등과 같은 클래시컬 록의 범주에 포함되는 밴드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귀에 쉽게 들어오는 서정적이고 맑은 음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70년대 초, 중반) 유행하던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 구성을 따르면서도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사운드를 이루었던 이들은 밴드 자체가 지니던 구조적인 모순 탓으로 득(得)과 실(失)을 동시에 떠 안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라는 그룹의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 애니 헤이슬럼(Annie Haslam)이다.
굳이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트 록 그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보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분명 보컬리스트의 카리스마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듯한) 여러 그룹들, 즉 예스(Yes)나 제네시스(Genesis), 카멜(Camel) 등의 경우와는 다르다.
예컨대 존 앤더슨(Jon Anderson)의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가 예스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대표한다고는 해도 그것은 공인된 뛰어난 뮤지션 집단의 일원으로, 철저한 계산 하에 구축된 사운드의 바탕 위에서 하나의 뚜렷한 색깔을 제시하는 역할을 떠안고 있는 것이요, 다른 밴드들에 있어서도 ‘싱어’라는 개념보다는 작곡가와 연주인의 개념으로서 프런트 맨의 자리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애니 헤이슬럼이라는 탁월한 보컬리스트 1인을 위해 존재하는 밴드인 양, 모든 시선이 애니에게로 향해지고 밴드가 마치 ‘애니 헤이슬럼의 르네상스’인 것처럼 보여지게끔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실험’보다는 정립된 한 스타일의 완성을 추구하는 음악 성향이 대부분의 앨범들을 엇비슷한 사운드로 일관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늘이 내려준 지극히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그룹으로서는 크나큰 선물이기도 했지만 결국 밴드는(작곡과 연주력에 있어 결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녀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밴드가 지닌 이러한 핸디캡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까닭 또한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정말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뱃사람을 유혹하는 요정 사이렌의 그것과도 같이 듣는 이를 강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이는 게 아닌가!

애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밴드에서만 빛을 발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밴드의 전성기인 ''77년에 솔로 데뷔작 ANNIE IN WONDERLAND를 발표한 이래 지난 ''94년까지 네 장의 정규 솔로 앨범을 발표하여 자신의 매력을 과시했으며, 다른 많은 뮤지션들과의 교류와 협연, 그리고 왕성한 활동으로 지치지 않는 음악에의 열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곡을 쓰며 자신의 예술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싱어 송라이터가 아니다. 결국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그녀의 동반자는 ‘르네상스’라는 밴드였고,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화려한 빛을 내뿜었던 때는 역시 밴드의 전성 시절인 ''72년에서 ''78년에 이르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아래에 열거되는 애니의 솔로 앨범들은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멜로디와 아름다운 목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ANNIE IN WONDERLAND (''77, Sire)
르네상스의 걸작 NOVELLA의 발표 이후 곧바로 공개된 애니의 첫 솔로 앨범인 ANNIE IN WONDERLAND는 그녀의 지명도나 참여 뮤지션들의 이름에 비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이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의 전신 그룹인 무브(The Move)를 이끌었던 로이 우드(Roy Wood)에 의해 기획되고 제작된 이 앨범은 의욕만을 앞세운 채 제대로 정돈하지 못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애니가 들려주는 예의 소프라노 보컬은 여전히 아름답게 곡들을 수놓지만 어딘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은 아마도 곡들 자체의 완성도 탓일 것이다. 하지만 Rockalise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맑은 천상의 화음과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 그리고 드보르작의 ''신세계''에 곡을 붙인 Going home의 서정성은 최상의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로이 우드가 기타, 건반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해주고 있으며, 르네상스의 동료 존 캠프(Jon Camp)가 몇몇 곡에서 베이스를, 이후 HOOKED ON CLASSICS 시리즈로 유명해지는 루이스 클락(Louis Clark)이 스트링 어레인지먼트를 담당했다.

■STILL LIFE(''85, Spartan)-''98년 국내 발매
2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앨범인 TIME-LINE(''84)의 발매 이후 애니는 오랜 친분을 두고 있던 루이스 클락과 밴드 시절의 작사가인 베티 대처(Betty Thatcher)와 함께 새로운 작품의 준비에 들어간다. 이미 그녀의 첫 솔로 앨범인 ANNIE IN WONDERLAND(''77)와 밴드의 A SONG FOR ALL SEASONS(''78)에 참여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루이스 클락은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와 로얄 합창단(Royal Choral Society)을 이끌고 유명한 클래식 소품들에 가사를 붙인 곡들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루이스 클락 특유의 ‘귀에 쉽게 들어오는’ 편곡은 애니의 목소리와 더불어 가장 편안히 들을 수 있는 팝/클래식 크로스오버를 이루었고, 베티의 서정적인 가사는 마음 속의 따스한 정서를 자극하여 소박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편곡한 타이틀 곡을 비롯하여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편곡한 ‘Glitter & dust,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에 노래를 붙인 Careless love 등 편안히 들을 수 있는 곡들로 가득하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편곡한 Save us all은 이미 밴드 시절 TURN OF THE CARDS(''74)에서 Cold is being이라는 제목으로 불리웠던 노래이기도 하다.

■ANNIE HASLAM (''89, Epic)
르네상스의 해체 후 그녀의 주 활동 무대는 본국인 영국이나 유럽이 아닌 미국과 일본이었다. 그녀는 ''89년, 미국에서 [에픽(Epic)] 레코드와 계약을 이루었고 곧 세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Moonlight shadow를 첫 곡으로 하여 무디 블루스의 저스틴 헤이워드(Justin Hayward)의 작품인 The angels cry 등 파퓰러한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평범한 작품이었다. 예전의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이 앨범에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세월의 흐름’을 단적으로 느끼게 할 정도로 변모된 것이었고, 그들에게는 ‘평범 이하’의 작품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매기 라일리(Maggie Reilly)의 청순한 목소리로 들려지던 Moonlight shadow]가 애니 헤이슬럼에 의해 이런 식으로 불리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에픽 레코드사는 앨범의 홍보에 완전 실패했고 덕분에 애니의가장 덜 알려진 앨범이기도 한 작품이다.

■BLESSING IN DISGUISE (''94, Hoffman)
유방암으로 인해 음악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애니는 다행히 완전히 치유되어 다시 음악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93년, 그녀는 이전의 밴드와는 전혀 별개의 그룹인 자신의 밴드 애니 해이슬럼의 르네상스(Annie Haslam''s Renaissance)를 결성했다. 그녀는 이전에 르네상스의 작곡가인 마이클 던포드(Michael Dunford)와 베티 대처가 그러했듯 브리티시 록계의 명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함께 곡을 써 나갔다. 그녀가 가사를 쓰면 토니가 곡을 붙여 나가는 식으로 작업은 이루어졌고 ''94년, 새 앨범 BLESSING IN DISGUISE가 발매되었다. 에픽에서의 전작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르네상스 시절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 앨범은 다시 회생한 듯 아름답게 반짝이는 애니의 보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르네상스’라는 밴드명을 붙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멤버들은 세션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애니의 목소리를 받쳐주는 연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 카펠라 형식의 아름다운 타이틀 곡과 던포드-대처 콤비의 작품 Love lies, Love dies 등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파퓰러한 성향을 지닌 열 네 곡의 기분 좋은 소품들로 이루어졌다.


2. 르네상스의 발자취
그룹 르네상스는 참으로 독특한 역사를 가지는 밴드다. 이들은 최초의 그룹명이 사용된 이래 두 번의 커다란 멤버 변동을 겪었으며 그 때마다 다른 세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내세웠다. 그리고 사운드의 변화와는 상관 없이 보컬리스트와 멤버의 변동에 따라 밴드는 편의상 1기, 2기, 3기로 구분되어지며, 일반적으로 이 그룹을 지칭할 때는 애니 헤이슬럼이 재적하던 2기 르네상스를 생각하면 된다(사실상 3기 르네상스는 사운드와 곡의 진행면에서 밴드의 본령(本領)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전혀 별개의 그룹으로 여겨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① 1기 르네상스, 해산 후의 다양한 활동
1기 르네상스의 시작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야드버즈(Yardbirds)의 해체로부터 비롯되었다. 메인스트림 록의 계보를 보자면 야드버즈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제프 벡(Jeff Beck), 지미 페이지(Jimmy Page)라는 3인의 걸출한 기타리스트를 배출한 그룹이요, 해산과 더불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전신격인 뉴 야드버즈(New Yardbirds)로 재탄생한, 록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밴드로 기록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록 팬들은 여기까지만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뉴 야드버즈가 록의 새로운 부흥을 예고하며 레드 제플린이라는 거대한 몸짓으로 거듭나려 할 즈음, 다른 한켠에서는 그와는 전혀 별개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1968년 초,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키스 렐프(Keith Relf)와 드러머인 짐 맥카티(Jim McCarty)는 어쿠스틱 밴드 투게더(Together)를 결성하여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를 통해 한 장의 싱글을 발표하는데, 이들은 이듬해에 새로운 멤버들을 모아 정식 그룹을 출범시킨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이 그룹은 이들 둘 외에 로컬 그룹 내시빌 틴스(Nashville Teens) 출신의 키보디스트인 존 호큰(John Hawken)과 베이시스트인 루이스 세나모(Louis Cennamo), 그리고 키스의 여동생인 보컬리스트 제인 렐프(Jane Relf)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이들은 같은 해에 아일랜드(Island)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매한다.

■RENAISSANCE (''69, Island)
앨범의 프로듀스는 야드버즈의 베이시스트였던, 그리고 이후 캣 스티븐스(Cat Stevens)나 올 어바웃 이브(All About Eve) 등의 앨범 제작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폴 샘웰 스미스(PaulSamwell-Smith)가 담당했다. 이 앨범은 야드버즈 시절의음악과는 판이한, 여러 클래식 소품들에서 차용한 멜로디와 클래시컬한 서정성을 내세운 사운드로 가득한 작품이었고 영국 차트 60위에 오르는 등 소폭의 성공을 거둔다. 10분이 넘는 두 곡의 대곡을 포함하여 총 다섯 곡을 수록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존 호큰의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연주가 빛을 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곡들에서 이들 특유의 서정성이 잘 나타난다. 영국 외의 유럽 지역에서 앨범 타이틀로 쓰이기도 했던 첫 곡 Kings and queens와 이들의 초기 명곡으로 자리할 만한 Island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 그룹의 독창적인 음악적 성향과 앞으로의 방향을 확고히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ILLUSION (''71, Island)
같은 라인업에 의해 녹음된, 데뷔작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이은 두 번째 앨범은 영국이 아닌 독일에서 발매되었다. 전작에 비해 완성도 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이 앨범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밴드는 이미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1970년, 밴드의 유럽 투어가 시작될 즈음 짐 맥카티가 그룹을 떠났으며 키스와 루이스는 머리 속에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밴드가 완전히 해산되기 전에 짐은 그의 친구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마이클 던포드를 새로운 멤버로 맞이한다. 그는 이전에 존 호큰과 함께 내시빌 틴스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재능있는 뮤지션이었으며 앨범의 수록곡 Mr. Pine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다. 또한 이후 르네상스의 모든 가사를 쓰게 되는 콘월(Cornwall) 주(州)의 여류 시인이자 제인 렐프의 친구인 베티 대처가 이 앨범부터 참여하는데, 국내에서 크게 사랑 받았던 Golden thread와 Past orbits of dust의 가사를 담당했다. 제네시스와 반 데어 그라프 제너레이터(Van Der Graaf Generator) 등의 앨범 커버로 유명한 폴 화이트헤드(Paul Whitehead)의 커버 아트가 돋보이는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는 해체되고 멤버들은 각기 다른길을 가게 된다.

존 호큰은 스푸키 투스(Spooky Tooth)에서 활동을 하다 스트롭스(Strawbs)에 가입하여 두 장의 걸작-HERO & HEROINE과 GHOSTS-에 참여를 하며, 짐 맥카티는 ''73년에 자신의 그룹 슈트(Shoot)를 결성하여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루이스 세나모는 콜로세움(Colloseum)에 잠시 참여한 후 자신의 그룹 액시스(Axis)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다 하드 록 그룹 스팀해머(Steamhammer)에 가입한다. 그리고 루이스는 다시 키스 렐프와 만나 ''74년, 스팀해머의 기타리스트 마틴 퓨(Martin Pugh)와 블루스 사이키델릭 밴드 캡틴 비욘드(Captain Beyond)의 드러머였던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과 함께 강한 헤비 록 성향의 그룹 아마게돈(Armageddon)을 결성하여 셀프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한다.
1976년 5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자신의 연습실에서 새로운 곡들의 리허설을 하던 키스 렐프가 기타 연주 도중 감전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1977년, 르네상스의 오리지널 멤버들인 짐 맥카티와 루이스 세나모, 존 호큰, 그리고 제인 렐프는 폴 샘웰 스미스와 함께 새로운 그룹을 위하여 다시 모였다. 이들은 서드 월드 워(Third World War)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존 나이트브리지(John Knightbridge)와 스트레인지 데이스(Strange Days)의 드러머 에디 맥닐(Eddie McNeil) 등 두 멤버를 보강하여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일루전(Illusion)을 밴드명으로, 역시 같은 성향의 두 앨범 OUT OF THE MIST(''77)와 ILLUSION(''78)을 발표한다. 1979년에 녹음된 세 번째 앨범 ENCHANTED CARESS는 1990년에 와서야 발매될 수 있었다.

② 2기 르네상스, 전성기 그리고 쇠락
''70년 말, 마이클 던포드를 제외한 르네상스의 모든 멤버들은 그룹을 떠난 상태였고 밴드의 매니저인존 미셸(Jon Michelle)은 새로운 라인업의 모집을 위해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지(誌)에 광고를 냈다. 그리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그룹과 거의 동격으로 역할하는 여성 싱어 애니 헤이슬럼이 모집에 응했고 키스 렐프와 짐 맥카티를 만나 오디션을 치른다. 애니 헤이슬럼은 무려 5옥타브에 달하는 음역(音域)을 지닌,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정식으로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재원(才媛)으로 당대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시빌 나이트(Sybil Knight)로부터 교육을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ILLUSION의 수록곡 Past orbits of dust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베이시스트 닐 코너(Neil Korner)와 드러머 테리 슬레이드(Terry Slade), 보컬리스트 테리 크로우(Terry Crowe)는 마이클 던포드, 키보디스트 존 타우트(John Tout)와 애니 헤이슬럼과 함께 새로운 르네상스의 투어를 시작한다. 하지만 밴드의 매니저였던 마일스 코플랜드(Miles Copeland)-폴리스(Police)의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eland)의 형인-는 그 라인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새로운 오디션을 통해 베이시스트를 존 캠프로, 드러머를 테렌스 설리반(Terence Sullivan)으로 교체해 2기 르네상스가 정식으로 출범된다.
마이클 던포드가 작곡과 제작에만 전념하기를 원했던 까닭에 그의 자리는 젊은 기타리스트 믹 파슨스(Mick Parsons)가 대신하였다. 하지만 그는 첫 앨범의 녹음 직전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고 결국 새로운 기타리스트 롭 헨드리(Rob Hendry)가 앨범에 참여를 하여 연주를 들려주게 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기 르네상스의 데뷔작이자 믹 파슨스에게 바쳐진 앨범인 PROLOGUE가 소버린(Sovereign)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다.

■PROLOGUE (''72, Sovereign)
ILLUSION 앨범에서부터 밴드와 인연을 맺은 이래 르네상스의 모든가사를 쓰게 되는 베티 대처와 밴드와의 관계는, 초기 킹 크림슨(King Crimson)-피트 신필드(Pete Sinfield)나 프로콜 하럼-키스 리드(Keith Reid), 후기 카멜(Camel)-수잔 후버(Susan Hoover) 등의 관계와 같은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베티 대처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가사 역시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커다란 요소로 자리한다. 여섯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짐 맥카티가 작곡한 두 곡과 마이클 던포드가 쓴 네 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의 걸작들에 비해 그다지 돋보이는 곡들은 보이지 않지만, 존 타우트의 현란한 건반과 애니의 스캣이 돋보이는 타이틀 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에서 주제를 차용한 Kiev, Sounds of the sea 등의 아름다운 선율의 진행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이전의 제인 렐프에 비해 보다 고음역을 오가는 청아한 애니 헤이슬럼의 목소리는 가장 돋보이는 요소이며,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 특유의 감각이 잘 표현된 커버 아트워크 역시 인상적이다.

■ASHES ARE BURNING (''73, Sovereign)
Prologue의 발표 이후 롭 헨드리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 최초의 걸작으로 인정되는 앨범 ASHES ARE BURNING이 발표된다. 전작에 비해 웅장한 맛이 사라진 대신 어쿠스틱한 서정성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명곡 Can you understand?와 Carpet of the sun, Ashes are burning, 그리고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소품 Let it grow 등이 수록된 멋진 앨범이었다. 각 곡들에서 드러나는 클래시컬한 감성은 보다 ‘구체적인’ 미적 감흥을 전해주고 있으며, 특히 일렉트릭 악기들과 병행되는 오케스트레이션의 효과는 그룹의 정체성을 무엇보다도 잘 말해주고 있다. 타이틀 곡에서의 기타는 위시본 애시(Wishbone Ash)의 기타리스트 앤디 파웰(Andy Powell)의 솜씨이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밴드의 ‘아웃사이더’였던 마이클 던포드가 정식으로 가입을 한다.

■TURN OF THE CARDS (''74, BTM)
1974년, 그룹의 매니저인 마일스 코플랜드는 자신의 레이블 BTM을 설립했고, (당연한 일이지만)밴드의 세 번째 앨범은 이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보다 많이 방송이 됨으로써 유럽과 미국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가져다 준 최초의 앨범인 이 작품과 전작과의 차이라면, 보다 스케일이 커지고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꼽을 수 있다. 특히 9분 여의 대작 Mother Russia의 정적(靜的)인 동시에 드라마틱한 전개는 그들의 어느 곡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음악적 완성도를 표출하고 있으며 관악, 현악과 타악기, 그리고 애니의 소프라노가 이루는 멋진 조화는 흔치 않은 감동을 전해준다. Ocean gypsy와 더불어 국내의 심야 방송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편곡한 Cold is being의 오르간 연주에 실린 애니의 숙연한 목소리 또한 오랫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SCHEHERAZADE AND OTHER STORIES (''75, BTM)
이들의 곡들 중 가장 짙은 실험성을 지니는 곡을 꼽으라면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된 24분여의 조곡 Song of Scheherazade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총 아홉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이 곡은 원래 근대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작곡에 참여한 밴드의 멤버들인 마이클 던포드와 존 타우트, 존 캠프의 역량이 집결된 걸작이다. ‘천일야화(千一夜話)’의 화자(話者)이자 잔인한 술탄(Sultan)의 현명한 아내인 셰헤라자데의 이야기를 이토록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역시 이들의 탁월한 재능이다. 이 한 곡만으로 앨범은 가치를 지니지만 국내에서 유달리 사랑을 받았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노래처럼 되어버린 Ocean gypsy의 아름다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이 인정하듯 최고의 클래시컬 록 앨범으로평가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4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밴드는 맨체스터, 버밍햄, 런던, 뉴욕 등지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하는 등 클래시컬 록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밴드의 인기는 절정에 올라 있었다. 뉴욕의 WNEW-FM 방송이 뽑은 ''75년도 최고의 아티스트 톱 파이브에는 르네상스가 포함되어 있었고, 레코드 월드(Record World) 지(誌)는 그 해의 베스트 보컬리스트로 애니 헤이슬럼을 선정했다. 바야흐로 밴드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LIVE AT CARNEGIE HALL(''76, BTM)
로얄 앨버트 홀에서의 공연과 로얄 필하모닉과의 협연 등 가장 주목되는 공연들 중, 1975년 6월 20일에서 22일에 걸친 3일간의 콘서트는 밴드로서나 팬들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행해진 이 라이브는 그들의 모든 것을 거의 완벽하게 표출한 훌륭한 공연이었다. 이듬해에 두 장의 LP로 발매된 카네기 홀 실황 앨범에는 Mother Russia, Can you understand?, Ocean gypsy, Carpet of the sun 등 명실공히 밴드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애니 헤이슬럼의 뛰어난 보컬은 물론 멤버들의 탁월한 연주력이 돋보이는 이 앨범은 아트 록 라이브 걸작들 중 하나로 꼽힌다. 역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단 두 곡이 담긴 두 번째 LP라 할 수 있는데, 특히 30분 가까이 연주되는 조곡 Scheherazede와 존 캠프의 멋진 베이스 즉흥 연주를 포함하여 원곡의 두 배 이상 늘려 연주된 Ashes are burning은 이들을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 일컫는 까닭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NOVELLA (''77, Sire)
성공의 가도(街道)를 달리던 밴드는 결국 메이저 레코드 회사인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와 계약을 맺고 그 첫 작품으로 NOVELLA를 발표한다. 르네상스의 골수 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 앨범을 밴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앨범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우선 기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클래식 소품과도 같은 사운드에 가해진 변화를 들 수 있다. 즉 보다 탄탄해지고 짜임새 있는 구조 하에서 더욱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에 근접한 면모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각 곡들의 코러스 부분과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각종 키보드 사운드들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애니의 목소리에는 청아한 아름다움만으로 일관되지 않는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치솟는 듯한 ‘힘’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수려한 멜로디와 맑은 하늘에 덧칠한 푸른 색 물감과도 같은 짙은 감흥은 여전히 강한 향내를 뿜는다. 처치마우스(Churchmouse)라는 이(또는 집단)에 의해 그려진 동화적인 분위기의 커버 아트워크 또한 이들의 모든 작품들 중 최고의 자리에 위치할 만 하다.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는 마일스 코플랜드와 결별하고 뉴 저지 출신의 유명한 프로모터인 존 셰어(John Scher)와 계약을 맺는다.

■A SONG FOR ALL SEASONS(''78, Sire)
베이시스트인 존 캠프의 작곡가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작용된 이 앨범은 밴드의 사운드가 변화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우선 그 동안의 모든 앨범들이(라이브 앨범을 제외하고) 여섯 곡 이상의 수록곡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여덟 곡이라는 수록곡의 수는 어떠한 의미에서든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시대의 조류는 이미 고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른바 새로운 물결(New Wave)은 기존의 뮤지션들에겐 하나의 도전이었고 응징이었다. 르네상스의 경우, 그 시작은 이 앨범에서 이루어졌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사용되었지만 옛 사운드와의 연계성은 사라져가고, 보다 파퓰러한감성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타이틀 곡을 비롯, 존 캠프가 리드 보컬을 맡은 Kindness(at the end)나 아바(ABBA)의 선율을 연상케 하는 Back home once again, 영국 차트 10위를 기록한 싱글 Nothern lights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애니의 솔로 앨범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루이스 클락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했다.

■AZURE D''OR(''79, Sire)
이제 르네상스의 음악은 완전히 변했다. 밴드는 당시의 유행을 좇아 더욱 많이 팔기 위한 대중적인 노선을 택했고, 열 곡의 수록곡들은 모두 방송에 적합한 러닝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오케스트레이션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위해 더욱 다양한 키보드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였다. 애니의 목소리는 ‘천상의 아름다움’ 대신 평범한 팝 가수의 그것과 같은 분위기를 이루었고 그 이름도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클래식’적인 요소는 Golden key나 Forever changing, The discovery 등에서의 미약한 향기를 제외한다면 거의 제거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완전한 실패. 적어도 밴드의 옛 팬들에게 새로운 변화는 너무도 낯설었던 것이다.

1980년의 짧은 이스라엘 투어에서 돌아온 후, 키보디스트 존 타우트는 음악계와 투어의 연속인 삶에 회의를 느끼고 밴드를 떠난다. 드러머인 테리 설리반 역시 그의 오랜 친구인 존 타우트를 따라 오랜 그룹 활동을 중단한다. 설상가상으로 워너 브라더스사는 AZURE D''OR의 저조한 판매고를 이유로 이들을 매몰차게 등지고,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에 들어선다. 존 캠프는 로이 우드(Roy Wood)의 밴드인 헬리콥터스(Helicopters)에 가입했으며, 애니 헤이슬럼과 마이클 던포드는 키보디스트 피터 고슬링(Peter Gosling)을 맞이하여 새로운 그룹 네바다(Nevada)를 결성했다. 이들은 폴리그램(PolyGram)과 계약을 맺고 두 장의 싱글을 발표하여 소폭의 히트를 기록한다.

 

■CAMERA CAMERA (''81, IRS)
1981년, 또 다시 르네상스의 결합을 원했던 마이클과 애니, 존 캠프는 피터 고슬링과 드러머 피터 바론(Peter Barron)을 영입하여 새로이 밴드의 진용을 갖춘다. 당시 이들의 옛 매니저인 마일스 코플랜드는 폴리스, 고고스(Go-Go''s) 등이 소속된 뉴 웨이브 전문 레이블 [IRS]를 운영하고 있었고, 밴드는 새로운 레이블을 통해 새 앨범 CAMERA CAMERA를 발표한다. 이제 예전의 모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뉴 웨이브 밴드로 변한 이들은, (단순히 컴백에 대한 일시적인 호감이었을 뿐일지라도) 예상 외로 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앨범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약간의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다. 여러 면에서 AZURE D''OR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이 앨범은 잠시 동안 빌보드에 오르기까지 했다.

■TIME-LINE (''83, IRS)
2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앨범은 ''83년에 발표된 TIME-LINE이다. 전작에 비해 비교적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보이는 이 앨범에는 록, 댄스에서 발라드까지 담겨 있지만 여전히 형편없는 졸작에 그쳤다. 특기할 만한 것은 베티 대처마저 그룹을 등지고 존 캠프가 몇몇 곡들의 가사를 담당했다는 사실 정도이다. 상업적인 실패를 기록했음은 물론 최악의 혹평을 받았던 앨범이다. 이후 이 3인은 다른 멤버들의 모집을 위해 또 다시 멜로디 메이커에 광고를 내는 등 옛 영광을 되찾으려 애를 쓰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③ 3기 르네상스, 새로운 시작?
밴드의 해산 후에도 마이클 던포드는 베티 대처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들은 한 뮤지컬 녹음 세션 도중 미국인 여성 보컬리스트 스테파니 애들링턴(Stephanie Adlington)을 만났고, 몇 주 후 마이클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르네상스의 ''78년도 앨범 A SONG FOR ALL SEASONS』에 수록되었던 히트곡 Nothernligh ts의 새로운 버전의 녹음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르네상스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THE OTHER WOMAN (''95, HTD)
마이클과 베티는 ''94년 한 해 동안 새로운 곡들의 음악과 가사를 써 왔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르네상스의 앨범을 위한 준비였고, 애니 헤이슬럼을 대신할 수 있는 스테파니 애들링턴과 베이스에 필 멀포드(Phil Mulford), 드럼에 데이브 다울(Dave Dowle), 기타에 스튜어트 브래드베리(Stuart Bradbury)와 키보드와 프로그래밍에 앤디 스필러(Andy Spillar) 등 밴드는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마이클 던포드는 어쿠스틱 기타를 맡았다. THE OTHER WOMAN이라는 타이틀이 암시하듯, 새로운 밴드는 보컬리스트 스테파니에 많은 부분을 집중하고 있었다.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의 스테파니는 ''80년대의 풍성한 대중음악적 토양 위에서 자랐으며, 로체스터의 이스트맨 음악 학교(Eastman School Of Music)와 런던의 왕립 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음악적 소양은 확실히 ''90년대의 감성에 어울리는 파퓰러한 것이었고 그것은 신생 르네상스의 음악에 고스란히 투영이 된다. 그녀에 대한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새 앨범의 사운드는 평범한 팝 록에 그치고 말았다. 애니 헤이슬럼의 ''94년작 BLESSING IN DISGUISE에 수록되었던 Love lies, love dies]의 잔잔한 멜로디와, 완성도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업템포의 흥겨운 곡 Nothern lights 정도에 관심이 갈 뿐이다.

3기 르네상스의 시작은 아쉽게도 그 지속성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해주지 않았다. 아련한 옛 향기의 추억은 거두어졌고, 마치 숲이 있던 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듯 완전한 변화의 흔적만이 같은 자리에 남았다. 물론 ''97년도에 발표된 앨범 OCEAN GYPSY를 통해 스테파니가 다시 들려줬던 옛 르네상스의 곡들은 그녀의 가능성에 대한 어떤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문제는 그런 류의 음악과 시대와의 괴리(乖離)이다. 만일 이들이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그것이 지니는 모양새와 향기는 과거와는 별개로 진화할 것이다. 이제 ‘클래시컬 록 그룹’으로서의 르네상스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의 이름은 그것이 내포하는 색깔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양, 다른 의미로서 역할했고 받아들여졌다. 애초의 그 이름처럼 그것이 또 다른 모양과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하게 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출처:Naver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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