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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이제까지 진중권씨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진중권씨라는 이름이나 미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표지의 르네 마그리트 때문이었다. 읽고 난 지금은? 정말 후회한다.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는지.
나는 르네 마그리트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좋아하며, 그의 그림 속에 녹아들어있는 철학적 뉘앙스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하고, 전기를 읽고, 화집으로 보충수업을 하고, 미술사 관련 책으로 컨닝까지 해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로 남아있었다. 쉬운 내용이 아닌 관련 서적들을 더군다나 원서로 접하다보니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고 알쏭달쏭 갸우뚱함이 더욱 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우리나라 학자가 마그리트에 대해 쓴 글이 있다니!! 이걸 왜 이제까지 몰랐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무릎을 쳤던가! 진중권씨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상들을 요리조리 어찌어찌 끼워서 대강의 틀을 잡는다. 거기에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여주고, 에셔를 언급하며, 달리와 뒤샹을 예로 들면서 아름다운 하나의 추상적인 직물을 짜낸다. 같이 실린 도판과 함께 글을 보면 머리가 끄덕여진다. 직물에 그려진 무늬가 어떤 모양인지 알것도 같다! 아하~! 그렇구나~! 그러나 마지막 순간 옷감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다시 알쏭달쏭해진다. 물론 이것도 진중권씨가 의도한 것이다. 진중권씨의 손가락을 따라 더듬더듬 길을 찾아나가지만 결국 정해진 길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식이다.
이 책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가끔 유머도 섞여나온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십대 아이들처럼 토닥토닥 말장난을 하면서 서로 우겨대는 것도 귀엽다. 딱딱한 설명만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구어체로 재미나게 설명해 놓은 부분도 많고, 글자들로 눈이 아파지면 마그리트의 환상적인 그림속으로 도피하는 것도 좋다. 마그리트의 팬이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행복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는데, 이렇게 많이 조사를 하고, 이렇게 많이 생각을 하고, 이렇게 많이 공을 들여 쓴 책을 나는 홀라당 하루 이틀에 다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미학, 철학, 근현대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물론, 모나리자나 천지창조를 보면 아 정말 잘 그렸다 하면서도 현대 미술관에만 가면 '엥;;;저게 도대체 뭘 그린거지???' 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