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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손흥민이 UFEA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즈베즈다와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4-0의 토트넘의 완승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골을 넣은 후 특이한 세레머니를 했다. 그 세레머니는 지난번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백태클로 인해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어 부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에게 보낸 제스쳐였다. 축구선수에게 부상은 악재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이청용은 부상이후 수술을 잘 마쳤지만, 예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부상은 운동선수에겐 절망적인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손흥민이 자신의 경기중의 태클로 인해 부상을 입은 고메스에 대한 사과와 미안함이 상대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축구선수는 세레머니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전달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손흥민이 골 세레머니를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고메스에 대한 엄청난 미안함이 가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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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영화를 보았다. 설경구와 조진웅이 주연한 <퍼펙트맨>이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예전에 보았던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 주연의<레인맨>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버킷리스트>를 짬뽕해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감상했다. 접근이 비록 이미테이션의 느낌이 있더라도 결과는 좋았다는 말이다.
특별히, 내가 이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퍼펙트맨>에서 보았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용서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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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영화에 대한 대목을 넘어가시면 좋겠다. 스포주의!
첫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아내와 딸이 죽었다. 남편은 불구자가 되었다. 휠체어신세를 지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그 운전자, 석현을 만나고 싶어했다. 장수(설경구)는 석현(윤상화)이 사과하기를 바랬다.
두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딸이 재벌 2세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피의자는 무죄선고를 받는다. 딸은 1년 후 자살을 한다. 석현의 딸이었다. 석현은 당시 피의자를 변호했던 변호사였던 장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한 가족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지금 석현과 장수는 서로에게 용서의 악수를 내밀고 있다.
딸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강간범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변호사의 차를 분노로 두 눈이 뒤집혀 들이받았던 석현, 석현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딸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휠체어에서 전신마비의 불구자로 평생 살아야 하는 시한부 환자, 장수!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고, 또 상처를 주었고, 또 상처를 받았다. ‘죄-벌-죄-벌’, ‘상처-상처-damage-damage’
이런 구도로 흘러간다.
세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영기(조진웅)는 20여년을 깡패 짓을 했다. 하지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장수(설경구)를 만나면서 그 비릿한 세계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공금횡령한 빚 7억을 갚지 못해 몸으로 때운다. 깡패집단의 보스, 범도(허준호)는 영기와 대국(진선규)이 조직세계에서 배신한 것에 대한 댓가로 영기의 다리를 절게 만들고 갚지 못한 빚 7억은 퇴직금으로 퉁치자고 한다. 영기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리를 절룩거린다. 나는 그 영기를 보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이란 인물과 오버랩되었다. 야곱Jacob도 환도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내가 본 영화에서 추려낸 3가지의 용서이야기이다. 그런데, 세 번째는 그렇다치더라도, 첫 번째, 두 번째 용서의 장면,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피의자인 장수와 석현의 만남은 이 영화가 코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코 끝이 찡해오는 감동이 있었다. 이 장면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 바로 장수(설경구)가 시한부 환자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그 친구(석현)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대목이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지 않겠는가! 장수는 영기의 도움을 통해 석현을 만나면서 ‘통곡과 화해의 장소’가 마련된다는 점이 너무 탁월하다. 이 장면은 또 한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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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민음사판에서 번역자는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죄와 벌』의 스포도 주의! 책임지지 않음).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환멸-<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도끼 살인의 동기는 여러 가지로 추려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인 악, 암적인 존재였던 전당포의 노파(고리대금업자)를 정의라는 이상적인 몽상에 의해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있다가 애꿎게 죽은 리자베타는? 노파는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고 하지만, 리자베타는 왜? 목격자였기 때문에 죽인 것 뿐이었다. 안 그래도 극빈자의 형편 가운데 우울증을 앓던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더 신경질적인 우울증으로 점철된다. 살인에 대한 논문까지 썼던 엘리트, 라스콜니코프의 이상적인 행동인 살인은 분명히 죄이다. 그렇다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의 값인 벌은? 라스콜니코프의 살인 후에 훔친 돈이나 보석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평소에 극빈자의 신세이면서도 선행을 베푼 점, 정신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던 광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다소 경미한 8년형의 2급 유형수라는 형벌에 처해지는 라스콜니코프! 하지만,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살인에 대한 정직한 반성이나 회개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법정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변명하지 않고 거짓 증언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념, 이상, 이론은 살인이란 행위로 인해 현실에 부딪히고 벌이란 제2급 유형수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거기에 싹튼 것이 소냐를 통한 희망과 재생과 회복의 삶이 도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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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라스콜니코프에게 <죄와 벌>이란 공식이 적용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네치카를 집요하게 사랑하고 집착했던 스토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아닐까 싶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모든 채무에서 벗어나게 해준 여인과 결혼을 계약적으로 하지만, 자신의 아내인 마르파 페트로브나에게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녀를 세상이 모르게 살해하고 자신의 궁극적인 희망과도 같은 두네치카를 오빠의 살인사건의 약점을 책잡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잔머리를 굴린다.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잡한 존재인지를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그렇지만, 루쥔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계획대로 따라와 줄 것을 요구하지만, 두네치카는 권총을 겨누며 꽁꽁 잠겨있는 방문을 나가게 해달라고, 열어달라고 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그러다가 두네치카의 권총을 발사된다. 다행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네치카의 총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두네치카가 던져버린 그 총을 가지고 혼자 자살하고 만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죄와 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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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알라딘 메일 뉴스레터에서 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생각난다. 재미있게 읽은 『대변동』에서는 개인과 국가의 굵직한 두 가지의 뼈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개인적인 차원은 저자의 아내가 임상치료사인 관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여러 나라에서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용서는 개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을 폴란드가 회개하지 않는 나치라고 혐호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백분율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잃은 나라였다. 또한 나치의 대형 강제수용소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1970년 12월 7일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43년 4월과 5월 나치의 점령에 항의한 유대인 폭동이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를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고는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치에게 수백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독일인을 끝없이 불신했던 폴란드인조차 브란트의 행동을 계획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 인정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요즘의 외교에서 비추어보면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행동은 가해국의 지도자가 큰 고통을 당한 피해국의 국민에게 보낸 진심 어린 사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대변동』, 293-294p)
-사진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빌리 브란트의 이러한 외교적인 행보로 인해 서독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침내 미국과 서유럽권은 서독을 민주국가로서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소련과 동유럽권은 서독을 주요한 무역 상대국으로 평가하며 더는 군사적으로 영토를 위협할 국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대변동』, 295p)
독일의 이러한 정직하고도 소탈한 면은 드문 예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잘못과 실수가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진정성 있는 접근과 태도는 외교관계에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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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자신들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도 통합 이념의 필요성은 1890년 황제의 교육교서에 대해 널리 유포된 1891년의 해석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다. 다른 나라를 무도하게 삼키려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전 세계를 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일본 국민이라면 사회적 의무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사회적 의무감은 자신의 목숨을 먼지처럼 가볍게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정신을 뜻한다(...)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요새를 짓고 전함을 건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한다면 백만의 가공된 적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대변동』,157p)
메이지 정부는 이런 노력은 역사적으로 ‘사무라이 정신’, ‘활복’, ‘가미가제 특공대’, ‘바카 조종사’(일반 전투기나 글라이더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해 자살한 부대), ‘가이텐 선원’(일본 선박이 발사한 어뢰를 타고 조종하며 적함을 향해 돌진한 부대) 등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대단한 우월한 자존심은 결국 침략전쟁으로 드러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지독하고 심각한 감정에 대해 일본인의 사과하지 않는 꼰대의 기질을 싱가포르 초대 초리로 일했던 예리한 관찰자 리콴유(1923-2015)의 평가를 통해 말한다.
“독일인과 달리 일본인은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제에 독소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이에게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시모토 류타로(일본 총리)는 1997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2주년 기념식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고, 같은 해 9월 베이징을 방문해서는 ‘충심의 회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 지도자에게 원하는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일본인이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사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과거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유감이나 회한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들은 난징에서 대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또 한국과 필리핀, 네덜란드 등 여러나라의 여성을 납치하거나 강제로 끌고 가 전선에서 일본 병사들을 위한 ‘위안부’로 삼았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게다가 만주에서는 한국과 중국, 몽골과 러시아 등 여러 국적의 포로를 대상으로 잔혹한 생물 실험을 시행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경우맏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일본인의 손으로 쓴 기록에서 발견된 후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장래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의 행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이다. 일본이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대변동』,388-3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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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침략에 상처입은 일본의 자존심은 다음 세대의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의 면모를 드러냈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들의 세계대전이나 수많은 전쟁에서의 보여준 일본인의 치부를 숨긴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들의 교육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편파적인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강의했던 캘리포니아대학의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들의 푸념에 따르면 일본 학교의 역사 시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수천년의 일본 역사에서 그 전쟁의 기간은 기껏해야 수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략자로서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수백만의 다른 민족과 역시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 군인과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외면한 채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12만 명의 일본인이 죽었다며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급급하며, 오히려 미국이 일본을 자극해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비난한다.’(『대변동』, 389p)
일본 유학생들은 캠퍼스의 학생모임에서 중국인 학생이나 한국인 학생을 만나 일본이 전쟁 기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그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일본에 대해서 아직도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충격을 먹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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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느 국가에게나 문제나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이전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란 저서에서 보여주듯이, 말 그대로 ‘국화와 칼’이란 이중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부드러운 ‘국화’의 이미지이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 일본인만이 가진 독특한 민족성을 루스 베네딕트가 지적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20대에 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관계란 것은 인간과 인간의 개인 대 개인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의 라스콜니코프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고백한다.
"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인 노파와 그 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명언 중에 그런 명언이 있지 않았나!
"Honesty is the best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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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이야기를 했고, 영화 <퍼펙트맨>이야길 했고, 도끼의 <죄와 벌>이야기, 그리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까지 이야기를 했다. 너무 길어졌다. 솔직히 오늘 글을 쓰려고 데스크탑에 앉았는데, 한글이 에러가 나서 다시 깔고 하는데 나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 우리 집은 독특한 구조라 서재에 보일러를 안 트는데, 추위도 나의 인내심을 계속 갉아먹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돼서 만족한다. 또 다시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오타와 미문장과 불완전이 드러날지 모를 일이지만, 더 쓰다가는 내 멘탈이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나 이만 쓰기로 한다. 이런 내 자신과 내 글에 대해서도 ‘용서가 필요해!’아닌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읽은 책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Something needs to 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