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중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가사가 있다.
김진영은 자신의 작은 골방에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이별'에 대한 지독한(?) 성찰의 성격을 볼 때 그는 이 글을 아마 젊은 20대에 적었을까?아니면 30대에?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불혹을 넘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의 글의 느낌은 그의 글 쓴 시기와 배경을 추측해보게 된다.
'난 너를 영원히 사랑해.'
'난 널 죽도록 사랑해.'
이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렇게 고백했고 맹세했더랬다. 그런 다짐과 맹세를 철없는 나이엔 하지만, 철이 들면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고...모든 것이 끝이 있다는 것을.
사랑...이별....회자정리...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런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꼭 만나야할 사람에게 신은 우연이란 다리를 놔준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 사람도 결국 이별을 하게된다.
2
김수미의 먹방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 5년 전에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세 남자아이의 아빠가 손님으로 등장했다. 막내가 1살일 때, 아내인 엄마가 죽었다는데. 아이는 엄마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없는 채. '새 엄마'가 있었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연을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막내에겐 '엄마'란 단어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먹방 프로그램 보다가 눈물을 흘리다니...
3
'이별'이라고 하는데, 난 '죽음이라는 이별'을 생각해본다. 김진영은 고인이 되었다. 사후에 책들이, 그의 글들이 수면 위에 떠오른 듯 싶다. 요즘 글쓰기가 안 된다. 그냥 게을러진 같기도 하고. impulse가 생기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영감의 부재...
4
부재...이별....상황과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
"부재의 힘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그것 때문에, 오로지 그것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리라"
-T.S.엘리엇 <황무지>
상처는 남지만 그 상처는 또 다른 재생의 힘을 부가하는 듯. 그래서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가 있기에, 존재가 있고, 탄생이 있고, 잉태가 있고, 출발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의 힘이라...
'처음에는 이별이 너무 힘들었어....잠에서 깨어나면 이별이 내 곁에 함께 누워있곤 했어. 나는 이별을 아파하는데, 이별은 그런 나를 아파하는 것 같았어. 나를 위안해 주는 것 같았어. 마치 자기만은 나를 잊지 않겠다는 것처럼. 결코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이별과 함께 사는 일이 편해졌어. 그 사이에 이별과 정이 든걸까? 이제는 이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이별이 끝나면 몹시 아플 것 같아."(K의 말)
"사랑과는 이별을 해도 이별과는 이별을 할 수 없는 걸까?"
칼 하인츠 보러: "이별은 존재의 원풍경이다. 우리는 이별과 더불어 태어나서 이별과 더불어 살아간다."(86-87p)
5
내가 좋아하는 황동규 시인의 시이다.
<더 쨍한 사랑 노래>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저녁 하늘
바다 가까이 바다 냄새 맡을 때쯤
바다 홀연히 사라진 강물처럼
황당하게 나는 흐른다.
하구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도요새 몇 마리
비칠대며 걸어다닌다.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
무연히 서 있다.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
혹 수평선도 지평선도 여느 금도 없는 곳?
시에서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것은 없는데, 보여주는 풍경으로 모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그대와의 이별을 '그대 기척 어느덧...휘발하고...'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자연의 무한한 풍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명사 '하늘', '바다', 그리고 '하구', '뻘'...그리고 거기에 날아드는 피조물 '도요새'....
이별의 분위기를 은근히 압도하는 시가 더없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6
어쩌다 발견한 천양희 시인의 시이다.
<별이 사라진다>
나는 1초에 16번 숨쉬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뛰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죽을 때 빠져나가는 내 무게는 21그램인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1분에 0.5리터 공기를 마시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성은 7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하루에 12번 웃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별은 세상에 마음이 없어 사라지고
세상에 마음이 있어 사람들은 무섭게 모여든다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시인 안도현은 사리사욕이 없기에,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별과 속세에 아직도 미련이 많은 인간들은 '무섭게 모여'드는 인간의 욕망을 대조하여 보여줬다고 말한다.(『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안도현 엮음. 150-151p) 자신의 존재의 사라짐과 부재에 대해 자연스러운 별을 보면서 존경이 일어난다. 이별에 대해, 부재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존재의 부재 앞에, 독배를 마시기 전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이 얼마나 될까?
7
"사건들이 두서없이 일어나는 삶 속에서는 행복도 엇갈리면서 찾아온다. 즉 내가 그것이 꼭 있었으면 하는 그때에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150p)
내가 있어야 할 존재의 자리나 내가 꼭 유지하고 싶은 상황과 환경속에서의 그 무언가가 부재한다는 것,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 부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 자체를 통제할 수 없음 보여준다. 내 인생이라고 해도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내 통제력 너머의 일이란 생각, 그것이 내가 크리스천이기도 한 이유이다.
8
시인 김언희의 시다
<한점 해봐, 언니>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니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시이다. 이렇게라도 기억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시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어 회'는 한번도 못 먹어 본 것 같다. 괜히 고등어회가 먹고 싶다...
Epilogue...
<이별의 푸가>라고 했는데, '푸가'란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는데,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 말인데 해독이 안 된다. 아마도 음악의 문법이 들어가 있어 더 어렵게 느껴진 듯하다.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한다는데, 내 뇌의 셧트가 '푸가'란 단어 앞에 차단막을 쳐서 더 이상 알고싶지 않은 게으름을 피우는 듯 싶다. 이러면서도 나는 더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문법을 힘들어했다. 국어든, 수학이든, 영어이든, 음악이든...'법'이란 로직한 언어 앞에 내가 무력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튼, 불능의 언어해독이다...
난 푸가란 단어와 이별하고 싶다...ㅋ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