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13. 영화 '바그다드 카페'와 '슈가 베이비'

어제 저녁 '바그다드 카페' 사진을 내 방 사진으로 바꿔 걸었다. 7월 중순이었나? 알라딘 서재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어느 님의 방에서 저 그림을 발견하고 뛸듯이 기뻤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야스민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여행중에 남편과 싸우고 트렁크 하나 들고 사막 한가운데서 차에서 내려버린 야스민. 어쩌자고 그녀는 턱 아래까지 꼭꼭 단추를 채웠고 정장 차림이다. 비대한 몸뚱이와 넙적하고 큰 얼굴에서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 아아, 정말 '비지땀같은 인생을 생각하는가'가 아닐 수 없다.(전영경의 시에서 인용)

이 사막 중간의 낡고 우중충한 모텔의 여주인 브렌다.  그녀는 게으름뱅이에다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남편을 방금 쫓아냈다. 걸레를 아무렇게나 쥐어짜 놓은 듯 심통스럽고 침울한 그녀의 얼굴. 이 두 여인이 만났다. 그리고 더이상 좋을 수 없는 음악 '콜링 유'가 흐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7박 8일쯤. 내내.

나는 내가 그 뚱뚱한 여인 야스민 같기도 하고 심통난 브렌다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텔에 장기투숙하고 있는 무명의 괴짜 노인 화가 같다고 느낀다. 브렌다가 외출한 틈을 타 그 엉망진창이고 사방이  찐득찐득한 모텔을 깨끗이 정돈하고 청소하는 야스민 같은 친구가 한 명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외출했다가 돌아와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깨끗해진 자신의 모텔을 보고 야스민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브렌다가 좋았다. 아무렴, 사람은 그 정도의 자존심은 가지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는 퍼시 애들론. <연어알>과 <영거 앤 영거>의 감독이다. 이 두 영화도 기가 막힌데......

그러니까 가설라무네 13,4년 전, <바그다드 카페>를 본 직후 사무실의 이 선생님과 함께 진주로 1박 2일의 출장을 가게 되었다. 차안에서 자연스레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선생님은 50대 중반의 우아한 여성으로 평소 점퍼 차림에 청바지 등 불량한 복장으로 출근하는 나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려나, 나는 또 나대로 너무 세심한 데만 신경쓰고 잔소리가 많고 자신이 하이클래스임을 은근히 자랑하는 그녀가 싫었다. 그런데 어떻게 진주 남강변 수주 변영로의 '논개'  시비 제막식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차를 한 대 기사님과 함께 보내주었다. 요즘 재밌게 본 영화가 뭐냐고 물어서 <바그다드 카페> 라고 했더니 이 선생님은 <슈가 베이비> 이야기를 해주셨다. 역시 퍼시 애들론의 작품으로 무시무시하게 뚱뚱한 노처녀가 전철 역무원인가 운전사를 짝사랑한다는 스토리였다.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어보는데 거울 속의 그녀는 예뻐지긴커녕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는 얘기. 그 뚱뚱한 노처녀가 바로 <바그다드 카페>의 야스민(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이었다니 나는 아주 환장을 하며 들었다.

차 안에서 영화 얘기로 죽이 맞은 우리는 진주에 도착하여 행사가 끝나자마자 가는 길에 눈여겨봐둔  시내의 영화관으로 갔다. (나는 흥이 오르면 주위 사람 혼을 빼놓는 데 뭐가 있다.) 그리하여 탄광촌 주변을 그린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을 낯선 도시의 재개봉관에서 관람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술집으로 직행했다. 이 선생님같은 고상한 초로의 여성이 등장하자 손님도 없던 터 그 술집 주인은 싱글벙글하며 서비스가 만점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무슨 얘기를 그렇게도 열렬히 나누었던 것일까? 이 선생님은 재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는 거나 이렇게 생긴 주점은 처음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조금 머쓱한 얼굴로 만나 밥을 먹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를 탔다. 이상도 하지? 죽이 맞아 열광했던 지난밤의 일이 꿈만 같이 여겨졌다. 인생에는 알수없는 그런 순간이 가끔 있는 법이다.

 

* 좋은 이미지 사진을 소개해주신 투풀님, 고맙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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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1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제가 좋아하는 제 글(?) 중 하나예요.
눈도 밝으셔라.^^

인터라겐 2005-04-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드무비님 서재에 가면 늦게 시작한만큼 찬찬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로드무비 2005-04-1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뻔뻔한 이벤트'라는 제목으로 조금 전 올린 페이퍼 보시고
주소 남겨주세요. 서재 주인보기로......^^

인터라겐 2005-04-12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다....좋은글 보는것만으로도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