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ies and Gentlemen




 

나는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습니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에요.

Oscar Wilde의 The Picture of Dorian Gray 중에서


오늘 아침 면도를 하다 거울을 봤다.

약간 덥혀진 증기로 인해 뿌옇게 서린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어! 언제 여기 잔주름이 생겼지?”


어느새 내 얼굴 위로도 삶의 고단한 편력들이 아로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죽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단숨에 빼앗아 가는 법이지만 늙음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부패시켜버린다. 갖고 있던 열정도, 꿈도, 사랑도, 시간의 침식아래 서서히 퇴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난 죽음보다 늙음이 두렵다. 존재를 상실하는 것보다 존재가 부패되고, 퇴락되어가는 것이 더 두렵다.

 Walter Raleigh 의 우울한 시구가 떠오른다.


믿지 못할 꿈처럼 나의 기쁨은 막을 내렸고,

내 좋았던 시절은 모두 과거로 돌아갔다네.

사랑도 잘못 되었고, 환상도 완전히 물러갔고

그 모든 지난 일 중에서 슬픔만이 남아있다네.


아침부터 시작된 씁쓸함은 종일 나를 괴롭혔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러곤 잠시동안 천장에 비쳐지는 그림자들의 희롱을 묵묵히 견뎌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스탕달의 말처럼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에 있다. 우린 그렇게 만들어 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TV를 봤다. 아! 반가운 사람을 나왔다. 제레미 아이언스다! 내가 좋아하는 정말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이다. 이란 다소 기묘한 이름의 영화였는데, 모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Patricia Kaas가 부르는 Jazz Standard를 들을 수 있어서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던젼 앤 드래곤즈였다.^^)보다 많이 늙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멋있었다. 그는 정말 내가 닮고 싶은 외모를 가졌다.





가끔씩 여자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나랑 제레미 아이언스랑 둘 중 누가 더 멋지냐?”

“그걸 말이라고 해! 터진 입이라도 말은 바로 해야지. 당연히 제레미지.”

“야! 나도 아는데, 그렇다고 바로 직사포를 때리냐? 아씨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짱나네.”

“흐흐. 확실히 제레미가 나은데 자네도 자네만의 멋이 있어.”

“그게 뭔데?”

잠시 침묵

“자네는 일단 착하고, 성실하고.....”

“야! 됐어! 관둬.”

 

자신이 가장 아름다울 때 죽을 수 없다면, 결국은 시간의 끊임없는 침식과 맞서 싸워야 하리라. 끊임없이 투쟁하고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승리하며 그렇게 마치 戰士의 몸에 새겨진 상처의 각인처럼 우리의 얼굴에도 그렇게 주름이 하나씩 늘어갈 것이다.


그 주름진 얼굴이 부끄럽지 않은, 오히려 당당해 보이는 그런 전사의 얼굴이 갖고 싶다. 삶의 고난함과 치열함을 그대로 드러내도 결코 추하지 않은...

 



 

아이언스처럼 멋지게 늙는다면,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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