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팀전 > 동지에게/체 게바라

 
  동지에게 (미래의 착취자가 될 지도 모르는)                    

지금까지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그 맹세가

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

근래들어 가장 바쁜 어제였다.왔다 갔다 하면서 뉴스로 중계되는 대추리 만행을 보았다.저녘 뉴스시간에 TV를 보고.....코 끝이 찡하고 ...한숨이 나오고...답답했다.군인들 참 일도 잘하더군.주황색 체육복 입고 어찌나 빨리 철조망을 가설하는지..전경들도 참 열심히 쳐들어가고....

얼마나 순진했는가? 자신들이 모시던 몇 몇 의장님과 선배들을 여의도에 보내주면 달라져도 뭐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나의 현실적(?)인 대학선배님들은....그들을 믿어보자던 마음 착한 선배님들은...지금 어디서 저 화면을 보고 있을까...

어린이 날인데 회사에 나왔지만 그것 보다 하늘은 더 답답하다....

나 정말 따뜻한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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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존 업다이크의 신작

 

 

 

 

 

 

조선일보 미디어리뷰를 알라딘에서 찾아보다 발견.  [내 얼굴을 찾으라]

 

버몬트 주에 은둔한 79세의 노화가 호프 샤페즈가 뉴욕에서 온 젊고 야심에 찬 잡지사 기자인 캐스린 디'안젤로와 하루 동안의 긴 인터뷰를 한다는 형식을 지닌 존 업다이크의 20번째 소설은 그 틀 안에 과거 미국이 세계의 미술계를 주도하던 때를 포획하겠다는 거대한 시도를 담고 있다. 추상 표현주의와 팝아트, 그리고 다른 예술의 '형식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 Publishers Weekly

 

<내 얼굴을 찾으라>에서 호프의 첫 번째 남편 잭 맥코이의 모델은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인 잭슨 폴록리 밀러(?)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남편 가이 할로웨이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레스 올덴버그, 웨인 티보 등을 혼합해 놓은 인물이다. 작가는 느리면서도 화려한 문장으로 복잡하게 얽힌 인문들 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억지스러운 성격묘사에 치중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주요한 미술계의 문제, 역사적 사실 등을 포개놓았다. - Regina Marler

 

작가는 소설의 상당부분을 잭슨 폴록 연구서와 추상 표현주의 명화집에 기대고 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피카소는 별로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해낸다. 마티스는 괜찮다, 모든 것에 외적인 절제가 있고 노력을 통해 달성하며, 검소한 부르주아다. 피카소는 집시고, 강도고, 볼셰비키다.’(50쪽)

잭은 그림이 꾸며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지저분하거나 깨진 유리잔을 물감이 아직 마르지도 않는 캔버스에 던지거나, 더러운 신발로 캔버스 위를 걸어다니기도 했다.’(76쪽)

-조선일보 미디어 리뷰 중

잭슨 폴록

1912년 1월 28일 와이오밍 주()에서 출생하였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하였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그것은 떨어뜨린 도료()의 궤적()을 거듭하여 화면의 밀도를 높여 감과 동시에 작가의 다이내믹한 제작행위를 직접 화포에 기록하는 것이었으므로 액션페인팅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나리자 스마일]에도 나온  Lavender  Mist

 


액션 페인팅 중인 폴록.



크리스 올덴버그 (Claes가 어찌하여 크리스인지..?)

올덴버그 [Oldenburg, Claes Thure, 1929.1.28~]

 팝 아트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도미하여 예일대학과 시카고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9년 최초의 개인전을 뉴욕에서 갖고, 1950년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오브제(objet)가 관객과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전개하는 일련의 충격적인 작품을 시도하였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석고로 형체를 본떠서 극채색()의 에나멜을 칠한 햄버거나 핫도그 등으로, 그는 식품 오브제를 모의 식품점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청소기나 선풍기 등의 경질기계제품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1960년대 말경부터는 오브제를 거대한 모뉴먼트로서 도시 공간에 설치하는 데생과 구상을 발표하였다.

 


담배 꽁초

 

 

Spoon Bridge

 

 

웨인 티보 Wayne Thiebaud 

 


woman in tub

 

 

 



Around the Cake

 

 


등을 보이고 앉은 남자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 [Lichtenstein, Roy, 1923.10.27~1997.9.29] 

 

뉴욕 출생. 팝 아트의 대표자이다. 1960년대 초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인쇄의 망점(:dot)까지 그려넣어 만화의 이미지를 확대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매스미디어 방법에 준하여 묘사한 전형적인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았다.

1970년대가 되자 주제가 확대되어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축과 정물화 등으로부터 피카소와 레제, 그리고 미래주의 등 모던 아트의 명작에까지 미쳤고, 그 표현방법은 인쇄미디어를 의제()한 망점이나 사선이 전개되어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청동이나 철판에 에나멜로 채색한 조각도 다루었다.


 

 

 

 

 

앤디 워홀
워홀 [Warhol, Andy, 1928.8.6~1987.2.22]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19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 9월,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팝아트전이 개최되었다. 주요저서에 《1970년대의 조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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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Written by Scott Fitzgerald의 분별 있는 일 중에서


4월의 봄길을 마냥 걷다 보도에 떨어진 꽃잎을 무심코 밟아버렸다. 황급히 발끝을 들어보니 서글픈 꽃잎하나가 나의 무심함에 무참히 짓밟혀 있었다. 괜스레 미안한 맘에 꽃잎을 살짝 들어 보았다. 가벼움... 너무나도 여려서 슬픈 생명하나가 그렇게 죽어있더라.

꽃은 져도 말이 없다.


황동규의 꽃의 고요의 시구가 떠올랐다.


일고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은 울며 지지도, 왁자지껄 웃으며 지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그냥 질뿐이다. 고요하게 침묵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끝나가는 것을 소리 없이 알린다. 4월이 잔인한 까닭은 바로 꽃의 죽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나도 꽃처럼 질 순 없을까?


April in Paris

4월이 되면 항상 듣게 되는 곡이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다. 겨울이 되면 늘상 시벨리우스를 듣게 되는 것처럼...

이 곡은 러시아 태생이었던 베논 듀크가 파리에서 생애 처음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4월을 겪어보고 비로소 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껴, 작곡한 작품으로 1931년 뮤지컬 ‘Walk a Little Faster'에서 처음 소개 되었다. 이 곡의 명반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Swing의 진가를 느끼게 해주는 Count Basie를 빼놓을 순 없겠지만, T. S. Eliot의 잔인한 4월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Thelonious Monk의 를 적극 추천한다.


Monk의 April of Paris를 듣고 있노라면, 난 늘 세잔의 “Mont Sainte-Victoire” 를 떠올리는데 몽크의 음악과 세잔의 그림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몽크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의 음악에 뚜렷한 윤곽선을 안겨주는 스타카토(staccato) 주법과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터치, 갑작스런 휴지부(休止符)에 이은 자유롭고 절제된 코드진행 등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음악에 인위적인 옷을 입히기를 싫어했던 그의 음악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Piano에 감성적 색채를 부여하는 음색(音色)의 조탁을 포기하는 대신, 강렬하고 투박한 터치와 뚝뚝 끊어치는듯 한 스타카토로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정적을 둠으로써, 깊이감과 전혀 강요되지 않는 자연스런 조화를 창조해 내었다.

세잔이 전통적인 원근법을 포기하는 대가로, 색채를 통한 새로운 원근법을 창조해 낸 것처럼(색깔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데, 어떤 색은 뒤로 물러나 보이고, 어떤 색은 앞으로 나와 보이는 느낌을 주게 된다. 세잔은 색을 통해 부피, 흐름, 확장과 수축 같은 여러 가지 감각을 자신의 그림에 부여했다.) 몽크는 음색을 통한 음악에의 감성적 접근을 차단하는 대신, 실수로 옆 건반을 잘못 눌러 버린듯한 불협화음과 음과 음사이의 짧은 정적, 그리고 갑작스런 휴지기를 통한 긴 침묵 등으로 음악에 새로운 플롯(Plot)을 부여해 준 것이다.


Monk의 April in Paris는 Duke Jordan이나 Eddie Higgins의 Piano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영롱한 음색따윈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감상하기엔 다소 불편할 뿐 아니라 신경에 거슬리기 까지 할 터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음악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眞情性)이 있다.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마음 속 가시’를 품고 살아가듯이, 그의 불협화음에는 그런 가시가 있다. 그의 파리의 4월은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며,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처절하기 까지 하다. 그것이 Monk의 4월이며, 엘리엇의 4월이기도 하고, 나의 4월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Splinter in the mind, driving us mad!"

우리 마음 속 가시가 우릴 미치게 한다.


몽크의 음악엔 우릴 미치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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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E. M. 포스터를 아시나요 [2]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는) 그 다리가 없으면 우리는 모두 의미없는 조각들, 절반은 수도승이고 절반은 짐승인 채 인간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서진 아치들일 뿐이다. (중략) 단지 연결하라! 그녀의 설교는 그게 전부였다.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라. 그러면 그 양쪽이 모두 고양되고, 인간의 사랑은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는 조각난 삶을 살지 말라.” - <하워즈 엔드> 중에서

<인도로 가는 길>과 더불어 포스터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하워즈 엔드>(Howards End, 1910)는 계급의 전쟁을 그린 소설이다. 전원 저택 하워즈 엔드가 상징하는 ‘영국’을 누가 상속할 것인가를 놓고, 식민지에서 부를 축적한 산업자본가 윌콕스가와 진보적 중류층 슐레겔 자매, 중산층의 문화를 동경하는 도시 근로자 레너드 바스트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벌인다. 결국 하워즈 엔드는 물질과 문화, 전원과 도시를 ‘연결’하려고 애쓴 마가렛의 손을 거쳐 헬렌과 레너드의 사생아에게 상속된다. <하워즈 엔드>로 자리를 굳힌 포스터는 1912년 인도를 처음 방문하고 마수드와 재회했다. 1913년 포스터는 시인이자 동성애인권운동가인 에드워드 카펜터를 방문하며 얻은 영감으로 <모리스>(Maurice)에 착수했다. 케임브리지 시절 휴 메러디스와의 연애가 녹아 있는 이 소설을 포스터는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서 <E. M. 포스터>의 저자 로버트 K. 마틴은 <모리스>가 동성애 권리를 탄원하는 소설이 아니라 동성애 의식의 발전을 그린 소설이라고 지적한다. 여성혐오가 깔린 고대 그리스적 동성애에서 섹스를 포함한 온전한 동성애로, 다시 동성애의 사회·정치적 결과를 성찰하는 사랑으로 모리스의 의식은 확장된다. 작가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들은 연고도 돈도 없이 계급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하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다.” 포스터는 탈고한 지 47년 만에 쓴 저자의 말에서, 대중이 동성애와 관련해 정말 싫어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고 회고했다.

포스터의 성적 취향이 그의 문학세계에 끼친 형성력은, 동성애를 제재로 취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영문학자 김선형은 성(性)이라는 사적 영역에 공적인 요소가 끼치는 압력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기에 포스터는 사적인 인간관계의 오염과 단절을 극복할 방안을 평생 부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소통 가능성을 중성적 가치인 인간적 소통과 유대에서 찾는 데에서 그의 성정체성이 암묵적으로 드러난다”고 평한다. <모리스>를 탈고하던 해, 포스터가 사랑했던 두 번째 남자 마수드가 결혼했다. 그리고 1924년 <인도로 가는 길>이 있기까지 포스터의 첫 번째 작가적 침묵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은 불모의 시간은 아니었다. 포스터는 1917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전차 차장 모하메드 엘 아들과 난생처음 육체와 정신이 합일된 사랑을 경험했다. 1차대전이 끝난 1918년 결혼한 모하메드는 4년 뒤 폐병으로 죽었다.

“왜 우리는 지금 친구가 될 수 없지?” 상대방이, 그를 다정하게 잡으며 말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데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인데.” 그러나 말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서로 갈라졌다. 땅이 그것을 원치 않고 바위들을 올려 보내 말 탄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통과하게 만들었다.” - <인도로 가는 길> 중에서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1924)이 제목을 빌린 휘트먼의 시는 동서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는 시였으나 포스터의 소설은 동서의 만남에 비관적이다. 영국 처녀 아델라는 인도에서 판사로 일하는 약혼자 로니의 어머니 무어 부인과 함께 인도를 찾는다. ‘진짜 인도’를 보고픈 두 여자의 소망을 정착지 영국인들이 무시하는 가운데, 무어 부인은 친절한 이슬람 의사 아지즈와 친교를 맺는다. 한편 약혼자에 대한 감정에 확신을 잃은 아델라는 무어 부인과 함께 마라바르 동굴 소풍에 동행했다가 갑자기 아지즈를 강간미수로 고발한다. 영국인들의 집단 히스테리 속에서 인도인에게 우호적인 교육자 필딩은 아지즈 편에 선다. 제국주의가 조직한 세계가 개인의 우정을 조각내는 광경을 그린 <인도로 가는 길>은 영국에서는 정치적 논란을, 미국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고 후일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에게는 “제국주의의 인간적 얼굴을 강화하는 소설”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인도로 가는 길>의 구조는 겉으로는 미스터리지만 정작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는 텅 빈 이야기다. 포스터는 그 속에서 그저 인물을 사건과 정황에 부딪히게 한 다음, 돌아오는 메아리를 통해 그들을 고립시키는 힘의 실체를 가늠한다. 포스터는 “연결하라!”를 좌우명으로 삼았지만 공존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과제인지 입증하는 데에 그의 소설을 바쳤다. 필딩과 아지즈는 친구가 되는 데에 실패한다. <모리스>의 게이 연인들은 숨어들 숲을 찾아야 하고 <하워즈 엔드>의 화해는 불안한 휴전일 따름이다. 포스터는 심지어 <전망 좋은 방>에서도 조지가 나무에 깔려 죽는 결말을 써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부정과 탐욕이 진정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에 매달려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이 오고 있으니까.” - <하워즈 엔드>의 헬렌 슐레겔

소설가 포스터의 두 번째 침묵은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45살에 <인도로 가는 길>을 출간한 그는 서평, 에세이, 전기를 쓰며 46년을 더 살았다. 현대 문학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불리는 포스터의 침묵에 대해서는 추론이 분분하다. 그가 사랑했던 세계가 전쟁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일까? 현대사회 비판이 이미 쓰러진 나무에 가하는 도끼질처럼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완전한 사랑을 맛본 그에게 더이상 픽션의 위장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포스터는 다만 이렇게 변명했다. “현대의 세계는 시인에게 더 어울린다. 현대 세계가 가진 광대한 화두는 소설이 다루기 어렵다.”

포스터는 주도면밀하게 회색 지대를 사수한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국가와 계급, 문화를 자성하면서도 그것의 반명제가 가진 한계까지 파악해 선악의 복잡다단함에 근접했다. 그는 제인 오스틴을 잇는 도덕적 사실주의자이면서 인간의 의식에 도사린 결함을 간파한 모더니스트였다.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행동을 묘사하는 그의 문장은 비유나 접속사도 아끼는 경제성을 자랑하지만, 곳곳에 간결한 암시와 상징으로 의미의 웅덩이를 파놓는다. 사적 인간관계와 윤리를 세상의 유일한 반석이라 믿는 까닭에 개인을 종교, 국가, 가족와 마찰시키며 부단히 회의하는 포스터의 소설은 성격 급한 독자의 짜증을 부르기도 한다. “E. M. 포스터는 언제나 차 주전자를 덥히기만 한다. 아주 세련되게. 그렇지만 차를 대접하는 일은 없다”라 불평한 캐서린 맨스필드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학자 라이오넬 트릴링의 변호대로 끝없는 회의는 도덕적 좌표를 아예 내던져버리려는 세태에 유용한 방패다.

신으로부터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통보라도 받았을까. 포스터는 소설로 형상화했던 반인습과 진보의 정신, 자유주의 가치를 직접화법으로 옹호하며 45살 이후 반생을 살았다. 49살에는 레즈비언 소설 <고독의 우물> 판금에 항의하는 캠페인을 주도했고 59살에는 “조국을 배신하는 것과 친구를 배신하는 것 가운데 선택하라면 조국을 배신할 용기를 갖고 싶다”는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81살에는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에 변호인쪽 증인으로 나섰다. 사랑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1925년 만난 해리 데일리와 3년을 사귀었고 1930년 만난 경찰관 밥 버킹엄과 사랑에 빠졌다. 버킹엄의 결혼은 53살의 포스터에게 또 한번 채찍을 내리쳤으나 쓰러뜨리진 못했다. 버킹엄 아들의 대부가 된 포스터는 버킹엄과 평생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다. 어머니가 향년 90살로 세상을 떠나자 67살의 포스터는 “아주 젊은 사람이나 아주 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라고 부른 킹스 칼리지로 거처를 옮겼다. 1970년 방에서 쓰러진 91살의 포스터는 밥 버킹엄의 집으로 옮겨진 다음에야 숨을 거뒀다. 이번만큼은 연인이 그를 떠나기 전에, 그가 먼저 연인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 마침내 <모리스>가 출간됐다. 그토록 필사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난 소설을 누구도 쉽사리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E. M. 포스터와 영화

영화를 불신한 소설가, 영화가 짝사랑한 소설가

<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는 영화를 불신했다. “나는 사람들이 읽으라고 책을 썼다”고 단언한 그는 생전에 영화판권을 팔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분노한 나머지 미국 자본으로 만드는 영화에 원작 제공을 거부했다는 설도 있다. 작가 사후에 완성된 첫 번째 포스터 원작 영화는 1984년작 <인도로 가는 길>. 조셉 로지, 제임스 아이보리 등을 제치고 데이비드 린 감독이 판권을 잡았고 페기 애시크로프트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영화계의 포스터 권위자는 <전망 좋은 방> <모리스> <하워즈 엔드>를 만든 머천트-아이보리팀이다. 흥미로운 점은 포스터 문학의 정수를 영화로 옮긴 이들이 철저한 코스모폴리탄 집단이라는 점. 이스마일 머천트는 뭄바이 출신의 무슬림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작자고,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한때 인도에서 거주했다. 작가 루스 프라워 야발라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독일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온 다음 인도 건축가와 결혼했다.

머천트-아이보리팀이 꼽는 포스터 원작의 영화적 매력은 “좋은 스토리, 훌륭한 캐릭터, 시각적 파워”다. 에드워드조 영국사회와 영국 제국주의라는 한정된 맥락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의 소설은 서사의 기본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머천트-아이보리판 <전망 좋은 방>(1986)은 흥행 성공 뒤 오스카에서 8개 부문 후보 지명을 받아 각색상, 의상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남자들이 숲에서 벌거벗고 뛰어놀다가 숙녀 일행과 마주치는 신은 영화사상 가장 우스운 장면의 하나로 비공식 인정받고 있다(“악 저것 봐! 아니, 보지 마!”). 1987년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한 <모리스>는 클라이브 역의 신인 휴 그랜트에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1991년에는 찰스 스터리지 감독이 <천사들이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을 스크린에 옮겼다. 1992년 오스카에서 에마 톰슨의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3개 트로피를 안은 <하워즈 엔드>로 머천트-아이보리의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포스터 원작 영화를 비롯한 유산영화(Heritage Cinema)는 미장센 과잉의 허영스러운 장르로 비난받기도 했다. 비판자들은 유산영화의 유일한 장점이 “원작을 사서 읽게 한 점”이라고 비꼬았는데, 실제로 영미권 서점가에서도 E. M. 포스터 소설은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크게 판매고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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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E. M. 포스터를 아시나요 [1]

“<전망 좋은 방>? 아, 그거 영화로 봤지. <오만과 편견>이랑 원작자가 같은 것 아냐?”

따지고 보면 다 영화 때문이다. 우리가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 <모리스>의 원작자 E. M. 포스터(1879∼1970)를 한 세기 앞선 제인 오스틴이나 뉴욕에서 태어난 헨리 제임스 심지어 <남아있는 나날>을 쓴 가즈오 이시구로와 혼동하게 된 것은. 우선 그들이 창조한 남녀는 대체로 약혼과 결혼을 둘러싼 소동을 빈번히 일으키고, 유산을 놓고 갈등하며,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인생의 의미를 각성하기 일쑤다. 부풀린 스커트 자락과 티파티, 녹색 장원의 이미지는 이방 관객이 그들의 작품을 한 덩어리로 기억하도록 현혹한다. 세월이 흘러 영국 중산층의 계급성과 완고한 매너도 유적이 된 지금, 문학도가 아닌 우리에게 그들을 분별하는 과제는 얼 그레이와 다르질링 홍차의 구별만큼이나 긴급할 게 없다.

영화의 감미로운 잔향만으로 만족하는 이들에게도, 지난 3월 말 완간된 한국어판 E. M. 포스터 전집(고정아, 민승남,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은 사양할 수 없는 만찬이다. E. M. 포스터는 “언어의 장벽은 간혹 좋은 것만 통과시킨다”는 낙관을 표명한 바 있지만, 이제야 번역된 그의 소설은 찬장 속에서 뒤늦게 발견한 꿀단지와 비슷한 기쁨을 안겨준다. 사회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관찰하는 영국 소설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개인의 내면을 모더니스트의 눈으로 그려낸 포스터의 장·단편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세계관 사이에 팬 골짜기- 종종 그 골짜기는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있다- 에서 피어나는 드라마를 주말 연속극만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호흡 짧은 독자라면 반짝이는 문장과 통찰을 건져올리는 재미만으로도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E. M. 포스터의 서재를 방문하기로 하자. 그곳은 오로지 먼 나라로의 여행과 책, 두 가지에 삶을 반분했던 E. M. 포스터에게 세계의 반쪽이기도 했으니.

“(케임브리지는) 그에게 약간 웃어 보이면서 (중략) 소년 시절은 청년기의 널찍한 방으로 이어지는 먼지 가득한 복도였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 <기나긴 여행> 중에서

프로이트에 경도된 예술사가들이라면 E. M. 포스터의 유년 시절 이야기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1879년의 첫날, 런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2살도 되기 전에 건축가 아버지를 여의고 영국식 장원에서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이모 메리앤 손튼이 여덟살 소년에게 물려준 8천파운드의 유산은 평생 독서와 자유로운 여행의 재원이 된다. <하워즈 엔드>의 머리말인 “오직 연결하라”는 포스터 문학의 모토로 오늘날까지 회자되지만 정작 소년 포스터는 세상과 부드럽게 연결되지 못했다. 기숙학교 시절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변태성욕자에게 추행당하는 사고를 겪은 포스터는 “나는 용감해지느니 겁쟁이가 되겠다. 왜냐하면 용감하면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 하니까”라는 슬픈 혼잣말을 남기기도 했다. 포스터가 후세에 알려진 대로 ‘우정의 달인’이 된 것은 1897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 입학한 뒤였다. 고전과 역사를 공부한 그는 엘리트 그룹 ‘사도들’에 가입했고 뒷날의 블룸즈베리 그룹과 어울렸다. 친구들 가운데 포스터를 무신론으로 이끈 휴 메러디스는 알려진 대로 영화 <모리스>에서 휴 그랜트가 연기한 클라이브 더럼의 모델이다. 24살의 포스터는 메러디스와 연인이 됐다. 플라톤의 <향연>이 설파한 에로스에 감화된 플라토닉한 연애였다.

“로맨스는 오직 인생과 함께 죽는다. 그 어떤 집게도 우리에게서 그것을 뽑아낼 수는 없다.” -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중에서

20세기 초는 제국주의와 여행의 시대였다. 국경을 넘는 영국 여행자 무리 중에는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프 콘래드, 서머싯 몸 그리고 포스터가 있었으니 이들은 이국의 태양 아래서 영국 문화의 결핍을 보았다. 대학을 졸업한 E. M. 포스터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 그리스를 돌아봤고 독일에서 가정교사로 몇달을 보냈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기나긴 여행> <전망 좋은 방> 등 초기작에 등장하는 이국 풍경도 이때 포스터의 마음에 들어왔다. 26살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천사가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Where Angels Fear to Tread, 1905)은 포스터가 “세계의 학교이자 놀이터”라고 예찬한 나라 이탈리아의 몬테리아노와 영국 소스턴을 오가며 펼쳐지는 멜로드라마다. 죽은 남편의 가족이 요구하는 규범에 매여 살던 릴리아 헤리턴은 이웃 처녀 캐롤라인과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핸섬한 청년 지노에게 반해 몬테리아노에 주저앉는다. 가문의 재산과 명예를 염려한 헤리턴 부인은 아들 필립을 보내 막으려 하지만 둘은 이미 약혼한 터다. 헤리턴 가족이 다친 자존심을 추스르는 동안 신혼부부의 문화적, 기질적 차이는 그들의 결혼에 그늘을 드리우고 릴리아는 아기를 낳다 숨진다. 체면에 떠밀린 헤리턴 부인은 이번에는 아기를 데려오라고 아들과 딸에게 명한다. 풍속 코미디로 출발한 소설은 비극적 멜로드라마로 고양됐다가 “가장 멋진 일은 지나가버렸다”는 깨달음으로 끝난다. 포스터는 “내 소설에는 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세 가지 인간형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처녀작 <천사가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으로부터 그 구도는 명확하다. 인습을 초월한 척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필립, 천진하고 아름답지만 탐욕스러운 지노, 오만과 편견으로 만사를 그르치는 해리엇은 이후 포스터의 작품 세계 속에서 각기 계보를 형성한다.

처녀작을 호평받았으나 젊은 작가는 끔찍하게 불행했다. 그즈음 휴 메러디스가 결혼했기 때문이다. 자살까지 상상하던 포스터는 라틴어를 교습한 인도인 유학생 사이드 로스 마수드에게 마음을 옮긴다. 친구의 결혼이 가져다준 배신감은 1907년작 <기나긴 여행>(The Longest Journey)에 점점이 배어난다. 유전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연애운이 없는 리키는 “착한 아들, 다정한 남편, 책임감 있는 아버지… 자연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고 친구에게는 그 나머지 시간이 할애된다”라며 우정의 보잘것없는 지위를 탄식한다. 케임브리지 철학도 리키는 친구 앤셀과 교감하지만 실질을 숭상하는 여인 애그니스와 결혼하면서 점점 황폐해진다. 기숙학교 교사로 시들어가던 그의 삶은 어느 날 찾아온 앤셀과 몰랐던 사생아 동생의 존재로 다시 전환을 맞는다. <기나긴 여행>은 변덕스럽고 감상적인 플롯으로 악명 높다(그의 장편 중 유일하게 영화화되지 않았다). 죽음이나 치명적 사고가 느닷없이 독자를 혼비백산시키는 포스터 소설의 특징이 이보다 노골적인 작품도 없다. 평론가 윌 베버리지의 착실한 계산에 따르면 <기나긴 여행>에서는 갓난아기를 제외한 등장인물의 44%가 돌연사하는 운명을 맞는데 이러한 비운은 주인공도 비켜가지 못한다. 비평가 라이오넬 트릴링의 지적대로 <기나긴 여행>의 리키는 성장하는 대신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처럼 깨달음을 끌어안고 산화한다. 미학적으로 방기된 듯한 이 야성적 소설에 대한 작가의 편애는 대단하다. 포스터는 <기나긴 여행>이 유일하게 그를 먼저 ‘찾아온’ 소설이라고 소개하며 “반문학의 정신이 팔꿈치로 밀어내기라도 하듯 일부러 잘못된 길을 택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당신을 보면 어떤 전망이 떠올라요. 특정한 종류의 전망이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보고 방을 떠올린다고 잘못된 건 아니죠.” - <전망 좋은 방>의 세실 바이스

20대 후반의 포스터는 암탉이 달걀을 낳듯 소설을 썼다. <기나긴 여행>과 연년생인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08)은 포스터의 가장 쾌활하고 낙천적인 로맨스다. 남의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던 영국 처녀 루시와 염세적 무력감에 빠져 있던 청년 조지 에머슨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나눈 키스를 계기로 각자의 감옥에서 벗어난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희생자가 루시의 약혼자인 금욕적 신사 세실 바이스. “저는 직업이 없습니다. 제 데카당스한 면을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례죠”라는 대사가 우습긴 해도, 포스터가 세실을 다루는 태도는 경멸과는 거리가 멀다. 유산으로 먹고살며 사회의 관찰자로 남는 남자 캐릭터에게 포스터는 번번이 희미한 연민을 표한다. <전망 좋은 방>은 산들바람 같은 문체, 행복한 결혼으로 끝나는 결말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비교된다. 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의 해피 엔딩이 꽤나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방 없는 전망’이라는 제목을 붙인 ‘지은이의 말’에서 포스터는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조지와 루시가 어디서 사는지 떠올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결혼과 연애 앞에 포스터가 설정하는 장애는 좀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의 연인들은 계급은 물론 인종, 성적 취향, 민족성을 저울질한다. 한편 포스터의 인물들은 오스틴의 인물에 비교하면 훨씬 불합리하고 충동적이다. 예컨대 <오만과 편견>의 리즈는 다아시가 악당이 아님을 확인하고야 감정을 확정하지만 루시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포스터의 인물들이 오스틴의 인물들과 언쟁을 벌인다면 백전백패일 것이다. 포스터의 윤리적 스타일에 주목한 영문학자 제이디 스미스에 따르면, 19세기 작가 오스틴이 세계와 자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를 원했다면 20세기 작가 포스터는 인간들이 그러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겁낸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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