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Written by Scott Fitzgerald의 분별 있는 일 중에서
4월의 봄길을 마냥 걷다 보도에 떨어진 꽃잎을 무심코 밟아버렸다. 황급히 발끝을 들어보니 서글픈 꽃잎하나가 나의 무심함에 무참히 짓밟혀 있었다. 괜스레 미안한 맘에 꽃잎을 살짝 들어 보았다. 가벼움... 너무나도 여려서 슬픈 생명하나가 그렇게 죽어있더라.
꽃은 져도 말이 없다.
황동규의 꽃의 고요의 시구가 떠올랐다.
일고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은 울며 지지도, 왁자지껄 웃으며 지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그냥 질뿐이다. 고요하게 침묵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끝나가는 것을 소리 없이 알린다. 4월이 잔인한 까닭은 바로 꽃의 죽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나도 꽃처럼 질 순 없을까?
April in Paris
4월이 되면 항상 듣게 되는 곡이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다. 겨울이 되면 늘상 시벨리우스를 듣게 되는 것처럼...
이 곡은 러시아 태생이었던 베논 듀크가 파리에서 생애 처음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4월을 겪어보고 비로소 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껴, 작곡한 작품으로 1931년 뮤지컬 ‘Walk a Little Faster'에서 처음 소개 되었다. 이 곡의 명반으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Swing의 진가를 느끼게 해주는 Count Basie를 빼놓을 순 없겠지만, T. S. Eliot의 잔인한 4월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Thelonious Monk의 를 적극 추천한다.
Monk의 April of Paris를 듣고 있노라면, 난 늘 세잔의 “Mont Sainte-Victoire” 를 떠올리는데 몽크의 음악과 세잔의 그림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몽크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의 음악에 뚜렷한 윤곽선을 안겨주는 스타카토(staccato) 주법과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터치, 갑작스런 휴지부(休止符)에 이은 자유롭고 절제된 코드진행 등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음악에 인위적인 옷을 입히기를 싫어했던 그의 음악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Piano에 감성적 색채를 부여하는 음색(音色)의 조탁을 포기하는 대신, 강렬하고 투박한 터치와 뚝뚝 끊어치는듯 한 스타카토로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정적을 둠으로써, 깊이감과 전혀 강요되지 않는 자연스런 조화를 창조해 내었다.
세잔이 전통적인 원근법을 포기하는 대가로, 색채를 통한 새로운 원근법을 창조해 낸 것처럼(색깔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데, 어떤 색은 뒤로 물러나 보이고, 어떤 색은 앞으로 나와 보이는 느낌을 주게 된다. 세잔은 색을 통해 부피, 흐름, 확장과 수축 같은 여러 가지 감각을 자신의 그림에 부여했다.) 몽크는 음색을 통한 음악에의 감성적 접근을 차단하는 대신, 실수로 옆 건반을 잘못 눌러 버린듯한 불협화음과 음과 음사이의 짧은 정적, 그리고 갑작스런 휴지기를 통한 긴 침묵 등으로 음악에 새로운 플롯(Plot)을 부여해 준 것이다.
Monk의 April in Paris는 Duke Jordan이나 Eddie Higgins의 Piano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영롱한 음색따윈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감상하기엔 다소 불편할 뿐 아니라 신경에 거슬리기 까지 할 터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음악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眞情性)이 있다.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마음 속 가시’를 품고 살아가듯이, 그의 불협화음에는 그런 가시가 있다. 그의 파리의 4월은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며,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처절하기 까지 하다. 그것이 Monk의 4월이며, 엘리엇의 4월이기도 하고, 나의 4월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Splinter in the mind, driving us mad!"
우리 마음 속 가시가 우릴 미치게 한다.
몽크의 음악엔 우릴 미치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