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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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일이야 무엇이든 못하겠는가라는 자조섞인 말을 되뇌일 때가 있다.오죽했으면 젊은 몸뚱이로 '도둑질만 빼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엇을 못하겠는가 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어느 시대,어느 사회든 생계의 수단,방법으로 돈이 고귀한 몸이 되어 버렸다.일명 배금(拜金)시대 살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돈과 물질을 세상을 지배하는 물신숭배시대에서도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3D현상도 여전히 현대인의 뇌리에 박혀 있다.이를 알량한 자존심 내지 체면의식이라고 본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직업의 수가 어느 정도인가 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자신이 하는 일,즉 1차적으로 생계를 위해 해야 하고 하는 일에서 돈이 되는 직업이 있고 돈이 되지 않은 직업이 있다.직업도 인간의 수명과 같이 생사필멸의 과정을 겪는 사회적 영향이 크기도 하다.그런데 순수문학 가운데 시(詩)가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 직업일까.과연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시조.시인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일까.내가 느끼는 시를 쓰면서 시로 밥을 먹고 시로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그런데도 시가 자신의 분신이고 소명의식으로 여기는 분들은 과연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다.

 

 이렇게 돈이 세상을 호령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돈이 되지 않은 시(詩)를 오상고절과 같이 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시를 전문으로 하는 시조.시인도 시.시조가 비스무레하게 본류인 것처럼 비칠 뿐이다.돈이 되는 본업을 꽤 차지 않으면 사는게 죽도 밥도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돈이 자본주의의 꽃봉이이지만 인간의 내면세계마저 완전지배할 수는 없다고 본다.아이러니하지만 돈이 자본주의의 분신이지만 인간의 정신,언어를 뛰어 넘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물물교환시대에서 돈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세상을 아귀다툼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돈이 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시일 수도 있다.그런데 시인은 돈이 되든 안 되는 괘념하지 않고 돈에서 자유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도서는 2013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 《경향신문》에 '돈-詩'라는 자리를 빌려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시인이면서 저자인 정끝별은 내게는 생소하지만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의 감각에 맞춰 각 시인들이 쓴 시를 앞에 소개하고 해당 시를 해설하고 있다.제법 알려진 시인들의 시 작품들이 소개되어서인지 친밀감이 일기도 했다.당연 소개된 시 안에는 시인의 생각과 정념이 담겨져 있다.시가 생성하게 된 사회의 이념과 풍속,단상 등이 절 버무려져 있다.작품이 사회에 출간하게 되면 으례 검열.통과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김지하의 《타는 목마음으로》는 '납본필증'없이 사전 배포되었다 하여 안기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당시 창비 실무책임자였던 이시영은 '재산포기각서'를 강제로 쓰고 압수당한 1만여 권의 시집은 분쇠기에 파쇄당했다고 한다.결국 폐휴지값 5만 8천 원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파월(派越) 용병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통킹 만 사건으로 베트남 전쟁이 터지게 되고,당시 한국은 미국의 월남 파병 제안을 받아들인다.1965년 파월이 1973년까지 이어진다.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한국병사의 희생도 꽤 컸다.수많은 전사자,부상자가 발생했다.그곳에서 고엽제 피해로 10면여 명이 고통을 받고 그들에 대한 처우는 미미한 수준이다.참전수당으로 1인당 월 200달러를 받기로 계약했지만,정부는 국가경제 부흥 명목으로 30∼40달러만 지급했다는 것이다.아직 접하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를 그린 〈슬픈 고엽제 노래〉가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무심결 뿌려지는 물보라에 입벌려 맛본 고엽제,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겼던"참극이었다.

 

 조만간 중국 위화의 작품 《허삼관 매혈기》가 각색되어 개봉예정이다.이와 연관지어 연상되는 작품이 팝니다,연락주세요(최금진 작)이다.

 

 (중략) 변기통의 물을 내리고

 씩씩하게 지퍼를 올리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으로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화장실 벽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제일 싼 血 팝니다

 자본주의 만세!

 

 신자유주의 시대는 자본가,기업가,힘과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소수계층의 배만 불리고 있다.정부는 그들에게 세금을 적게 하고 기업의 유연화를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것과 진배가 없다.최소임금(5,240원/시(時))이 늘어만 가는 한국사회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집장만하는 것은 이제 사치스러운 말이 되었다.본능이라는 의식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돈이 있어야 부모형제,마누라,자식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돈의 시대에 시(詩)로 먹고 사는 것은 어려워도 한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시인은 돈타령,사회타령은 멀리 하고 오로지 사명감과 직업의식으로 시(詩)밭에 시 씨를 뿌리고 잡초 뽑으며 가을날 잘 익은 시 수확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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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걸지 마
수작가 글.사진, 임선영 그림 / 별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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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말이나 행동,계획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흔히 수작(酬酌)을 들 수가 있다.점잖게 표현하면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로도 사용한다.이를 요즘말로 하면 이성에 대한 관심 표명의 첫단계로 작업을 건다라는 말로도 쓰이지 않을까 한다.누군가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말과 행동으로 나설 용기는 나지를 않고 그렇다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넘어가다간 상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대부분 젊은시절 좋아하는 이성과 쉽게 맺어지는 경우는 흔치가 않다.우여곡절이 빈번하다.될 듯 말 듯 하다 맺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인간의 마음,감정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으려는 경향이 짙다.일생 한 번 밖에 없는 결혼인 중대사이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법이다.

 

 <수작을 걸지마>를 쓴 수작가는 내성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적면공포증과도 같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어렵다 보니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말과 행동을 제대로 연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나도 어린시절 꽤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지옥보다 더 불편했다.특별하게 나설 기회가 많지도 않았지만 내 자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주의.주장을 내세운다든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재치와 순발력으로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거의 없다.누군가가 징검다리가 되어 주어 이성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갔던 기억이 많다.지금이야 꺼릴것 없이 담담하게 내가 말하고자 행동하고자 하는 바를 토로하고 있지만 학창시절의 내 자신은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았다.

 

 얼마전 개인적으로 쇼킹한 일이 있다.네이번 밴드를 통해 중학교 동창 모임이 생겼다.중학교 시절 남.녀 공학이었지만 한 반에 남.녀학생이 혼재하여 학습은 하지 않고 같은 학교 울타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동창이 중학교도 연결하여 동창생활을 했던 것이다.그런데 밴드 모임을 결성(?)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생각도 못한 여학생에게 문자가 '떡'하니 날라왔다.이름하여 "나 00인데 기억하고 있느냐?"며 밴드모임을 통해 연락처를 알았다면서 기회가 닿으면 연락이나 하자는 것이었다.문자를 보자마자 이름과 얼굴 모양,대략의 성격만 알고 있는 여학생이지만 기억과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통화연결을 하여 장장 1시간 이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옛이야기에 넋이 나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그런데 동창생이 하는말,"나,사실은 중학시절 네게 마음이 가 있었는데,직접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었다.시간과 세월이 흘러 이제야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것 같았다.이에 "그랬구나"하고 하면서 내 자신이 그녀에게 과연 적합한 학생이고 존재였는지 통화가 끝난 뒤 내내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이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먼 길을 걷고 달렸다.이제는 서로가 좋은 추억,좋은 감정으로 앞으로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면서 긴 통화를 마쳤다.

 

 일상에서 소소한 일들이 참으로 많다.사람이 갖고 있는 '희노애락애욕정'이라는 감정이 그날의 상황과 습관,기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일상의 대부분은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에서 발생되는 것이다.그 가운데 사랑만큼 개인을 성장시키는 모티브는 없는 것 같다.'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 좋아하는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연결되면서 사람의 신경세포를 비롯,호르몬작용은 흥분과 설렘,행복이라는 호르몬 기제로 바뀌면서 몸과 마음이 들썩거린다.그런데 사랑이라는 행위도 중용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몸과 마음이 타버릴 듯한 정열적인 욕망과 애욕행위는 타버리고 나면 재와 같이 가벼워지고 형상은 없어지듯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다.대신 사랑하는 사람과의 육체적인 행위도 삶에 활력소를 안겨 주지만 긴 세월 한 울타리에서 살다 보면 정신적인 교호작용과 동반자적인 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그것은 어떠한 계기로 한쪽이 부재일 때 그 부재의 크기와 폭이 넓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감할 때 있을 때 든든하고 고마웠던 기억들이 잔잔하게 마음 속으로 밀려 오는 것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소소한 일상과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잊혀지지 않은 멋진 시간,멋진 추억을 그려보고자 했던 젊은 시절이 새록새록 두껍게 봉인된 기억의 캡슐을 뚫고 마음을 흔들어 댄다.거창하지도 않고 요란스럽지도 않게 이번 주말에는 소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개인의 소소한 추억과 사연이 모여 사회집단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다 꺼내지는 않고 조금씩 비유와 상징 때로는 직유를 곁들이면서 추억거리를 만들려 한다.수작가의 글이 아기자기하게 매우 사랑스럽고 솔직담백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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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수업 -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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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시절 느꼈던,영원할 것 같았던 삶이 이제는 삶의 태양이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 가고 있다.시간과 세월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화살과 마라톤과 같이 하염없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길지도 않고 극히 찰라와 같이 짧기만 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후회가 없을까.그런데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생명이 사라지는 죽음에 대한 소식은 자연순환의 논리에 따라 죽어가는 자연사도 많지만 물리적인 도구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야만 하는 사건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소름이 돋을 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데,종교,인종간 문제를 비롯하여 국가간 자원전쟁과 같은 이익상충이 빚어낸 갈등과 전쟁도 무수하다.현대에는 무기가 첨단화되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종말이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시대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전쟁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무고한 양민들이 전쟁의 희생이 되곤 한다.

 

 나는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지난달 갑작스럽게 찾아온 질병으로 인해 자칫 삶을 내려 놓을 뻔했다.다행히 적시에 수술을 받고 가족의 간병,의사와 간호사들의 처치 및 돌봄 그리고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작용하여 이제는 몸이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그런데 질병이 찾아와 병원으로 실려가던 중 나는 죽음이란 한순간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고,전신마취를 하면서 무의식 속에 수술이 진행되었는데, (비록 약물에 의한 마취였을지라도)의식이 없는 열 몇시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기 이전의 시기로 돌아간 무념무상의 시간이었다.바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장기 입원하고 퇴원하여 이제는 가벼운 운동과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스트레스 받지 않고 멋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그간 갖지 못했던 용기와 담대함을 실천으로 옮겨 나가려 한다.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매체에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사람을 죽이려 했던 당시의 순간은 무슨 일이든 못하겠냐만은 인간이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자세로 한 발 물러서고 타협과 조정,중재가 끼어 들었다면 소위 묻지마 살인을 비롯하여 힘없는 여자,소녀,억린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원한과 결핍현상의 누적,인간관계의 불량,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분열증은 개인의 힘으로 치유와 치료가 쉽지는 않다.인성이 삐뚤어지고 사회에 대한 반감의 증폭,사회에서 배제되었다고 스스로 낙인을 찍는 자포자기현상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애정이 미치지 않은 한 그늘진 음습한 사회현상은 뿌리가 뽑히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잘먹고 잘살 수는 없지만 사회가 안전하게 돌아가고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사회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살인사건과 같은 범죄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살인 잠재성이 있는 이들을 사회차원에서 관심과 애정으로 교화하면서 자꾸 세상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 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삶을 되돌아 보고 남은 삶을 보다 더 유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다.예를 들어 '내게 단 하루가 남아 있다면/김인선지음/서울문화사' 비롯하여 '코끼리의 등/아키모토 야스시 지음/바움'를 읽은 적이 있는데 지난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남은 유족에 대한 배려와 애정 그리고 소유보다는 내려 놓기를 통해 삶을 더 넓게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된다.또한 한층 원숙한 인간미와 상실한 인간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나는 코끼리의 등을 통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중년남자가 삶의 종국에 털어 놓은 솔직하고 겸허한 몇 일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슴 찡한 울림을 갖게 되었다.살아서 잘못하고 실수하고 못다한 것들이 주마등과 같이 스칠 것이다.시한부 삶이라 잘못된 모든 것들을 원만하게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평안한 상태에서 흉금없는 상태,분위기 속에서 속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것이다.가족과 지인은 이제 당사자의 마음을 읽고 이해했고,물질적인 문제까지 모두 내려 놓으며 청산했으니 더 이상 어깨에는 아무런 짐도 없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 것이다.그리고 가족들과의 따뜻한 비호 속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름다운 의례일 것이다.

 

 에리카 하야사키 저자가 쓴 이 글을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3년 간의 취재와 관찰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교도소,호스피스 등을 취재하고 관찰했던 것들이다.몰래 관찰하는 방식,능동적인 수강생이 되고,작문 숙제를 성실히 수행하고,현장 학습에 따라 나서는 참여적 태도,서사적 재구성 형식을 띤 취재로서 해당 사건에 대한 목격자와의 인터뷰,일기,일지,학과 숙제,사진첩,비디오,신문,경찰 보고서,진료 기록,법원 문서 등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통합.정리한 결과물들이다.즉 서사적 논픽션물로서 죽음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견해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또한 에리가 하야사키 저자는 심리학,철학,과학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임종,정신건강과 관련한 논문을 100편 가까이 읽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학문적 연구,자신의 생각과 견해 등도 중간 중간 삽입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진부하지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인사유명人死留名)'라는 명언을 따라 남은 삶을 보다 알차게 살아 가고,(언젠가는)찾아 올 죽음은 해탈의 심경으로 맞이하려고 한다.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더욱 충실히 하고 사랑하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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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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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성경을 갖고 있다.성경 구절이 신화적인 요소가 매우 짙지만 구절들을 자세히 음미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이것은 삶이 흔들리면서 방향타를 잃었을 때 누군가 조타수가 되어 주는 것과 같이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믿음이 약했던 세상이 새롭게 보이면서 잃었던 삶의 희망의 끈을 다시 부여잡고 전진해 나가는 것과 같은 생각을 한다.인간은 지식과 지혜로만 살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유약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을 계도해 주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도 든다.

 

 깊은 산속에서 오랫동안 도(道)를 닦고 속세로 내려 온 도인과 같은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이외수 작가는 주로 시적이고 감성적이며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잠언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이외수 작가의 작품 가운데에는 장편소설도 있지만 산문에 가까운 에세이가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이야기의 내용이 그리 딱딱하고 무겁지도 않지만 전적으로 돈과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태에서 잊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되짚어 주는 진짜 스승과 같은 면모가 글 속에 천착되어 있다.산업화 초기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나 역시 학창시절에는 가부장적인 유교체제가 짙었던 시대에 성장해 왔지만 정치민주화,서울 올림픽이 끝나고부터는 해외여행자유화,(자식들 유학으로)기러기 가족의 증가,서구형 교육으로 인해 개인주의,이기적인 분위기 팽배,님비현상의 증가 등이 현사회가 안고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이러한 분위기,사회구조를 전적으로 탈피해 나갈 수는 없어도 사람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돈과 물질,사회적 신분과 명예가 우선이다 보니 자식이 부모,스승,어른,인간관계를 소홀히 하게 되어 버린 부자연스럽고 볼성 사나운 세태를 꼬집으면서 좀 더 인간적이고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존중과 배려의 싹이 트이기를 이외수 작가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어투로 언급하고 있다.

 

 때로는 산을 넘고 때로는 물을 건너 험난한 인생길 걸어가면서,한평생 남의 짐 덜어주는 존재가 되지는 못할망정,한평생 남에게 짐이 되는 존재로 살아서야 되겠는가.젊었을 때 부디 촌음(寸陰)을 아껴 쓰고,몸과 마음을 다해 실력 연마에 매진하기를. -P25

 

 이번 글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낱말이 슬갑(膝匣)이다.겨울에 춥지 않기 위해 바지 위 무릎에 껴입는 옷이라고 한다.남의 글을 몰래 훔쳐 제멋대로 사용하는 사람을 슬갑도둑이라고 하는데,블로그를 비롯하여 글쓰기가 보편화되다 보니 출처도 밝히지 않고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주인잃은 글들이 많다는 지적이다.물론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은 다독,다상량,다작이 필요할 것이며,남이 쓴 글을 모방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시하는 블로그 및 글쓰기 대회에 올리는 글들은 글을 쓰는 사람의 캐릭터와 무늬가 깊게 스며져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사람은 평소 얼마나 직.간접적인 경험을 했는가에 따라 글 속에 생각과 감정,이성과 논리가 온존하게 반영될 것이다.

 

 또한 이외수 작가는 오타쿠 현상 늘어나는 것에 대해 자중을 요구하고 있다.오타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인식이 늘어나면서 또 다른 사람 차별이 심화되면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나도 글을 읽게 되면서 오타쿠족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한 분야에 심취되고 애정이 가득한 현상을 폐쇄적이고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내지 인식화하려는 집단의식마저 생겼다는 점에서 이상현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어떠한 일에 모든 시간과 영혼을 다 바치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사회 구성원은 개개인에게 재능과 집념,사랑법이 따로 있는 것이기에 다름을 인정하고 상생해 나가려는 마음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21세기는 바야흐로 전문가의 시대가 아닌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모든 시간과 영혼을 다 바치고 행복해진다고 하면 이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남이 잘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도 다된 밥에 재를 뿌려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감동받은 구절이 또 하나 있다.바로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이지'이다.

 

 새싹이 머리가 뽀죡해서 언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새 생명이 가는 길은 만물이 비켜준다. -P207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강과 숲들은 자신의 가슴 안에 많은 생명들을 키우는데,사람 가운데에도 그러한 존재들이 있다.시인이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강과 숲처럼 모든 생명들을 키우고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생명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살아가는 길이는 다를지언정 생명은 소중하기만 한 것이다.매미는 7년을 땅 속에서 기다리다 태어나 겨우 7일을 울다 떠난다고 한다.생명이란 얼마나 거룩하고 눈물겨우며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니런가.인생도 마찬가지이다.인생이 잘 삭혀진 발효식품이 되기 위해서는 희망,절망 모두 필요하다.꿈을 놓지 않고,포기없이 꾸준히 살아가려는 삶의 의지만이 생명은 보다 값지고 형형(熒熒)해지는 법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통례이다.이미 만들어 놓은 규율과 질서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것도 실상이다.내가 살기 위해,내 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우리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합집산을 하면서 사는 게 속좁은 인간이고 유약한 인간이다.다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어야 할 보편적 가치와 사항은 잊지 말고 잃지 않아야 한다.그것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법이다.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지,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강구연월과 같은 태평세월은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돈과 물질이 인간을 가름하는 세태에서는 요원한 문제일 것이다.제도와 체제,의식이 바뀌면 상실한 인간성과 공동체,상생의 문제도 제자리를 찾아 갈지 모르겠다.나도 나 자신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에 통제를 못했다.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보다 더 잘 알고 내일의 꿈을 놓지 않으려 한다.이제 내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내년에는 엔돌핀이 살아나는 활기차고 멋진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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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시집
김영랑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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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 시인하면 먼저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첫행부터 끝행까지 좔좔 암송할 수는 없어도 몇 구절은 아직도 내 가슴에 깊게 파묻혀 있다.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하나 슬픔의 봄을'이라든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가 바로 단적인 예이다.비록 짧은 시귀들이지만 얼마나 자연친화적이고 순수한 미의 탐구를 갈망했던가.

 

 이제 가을이 깊어만 가고 있기에 겨울은 멀지 않으리라.1년이라는 시간 속에 사계가 뚜렷한 한국의 공기와 자연은 참으로 축복을 받아 크나큰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이 시구만 보아도 김영랑 시인은 자연을 관찰하고 일체가 된 심정으로 맑고 싱그러운 어조를 담아냈던가.게다가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지만 고독으로 씹고 삼켜 버리는 『내 마음을 아실 이』도 애간장을 타게 한다.'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만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기 내 혼자 마음은'에서 시인이 애모하는 연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뒤치적거리고 있음을 아련하게 그려본다.

 

 김영랑 시인은 1930년대 《시문학》에 몸을 담으면서 시문학사에 모습을 보이고,그뒤 《문예월간》,《시원》,《문학》 등에서 활동을 했던 순수문학의 선구자라고 여겨진다.김소월 시인도 자연을 소재로 삼아 전통적인 시형을 끌어 들였지만 한정된 소재에 머물렀지만 김영랑 시인의 경우는 전통적인 운율을 살리면서 자연,사계,사랑이라는 3중주를 아름다우면서 서정적인 감각을 재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가 있다.시인은 한국전쟁 속에서 적군의 총탄에 맞아 아쉽게도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한국전통미와 서정성을 띤 섬섬옥수와 같고 인공미,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친환경 소재가 내 어린시절을 상기하게 한다.

 

 시가 장르소설와 같은 영역에 밀리면서 찬밥신세를 지고 있는 요즘,운율과 함축미를 더욱 함양해 가고 싶다.가을은 깊어 가고 산하의 산천초목도 늙어 세포들이 나날이 시들어 가고 있다.세상은 자연의 순환섭리에 맞게 늘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데,우리네 인생도 자연의 순환섭리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시인은 애닯은 어조로 저무는 『가을날 무너진 성터』를 그윽이 관조하면서 묘사하고 있다.

 

 무너진 성터에 바람이 세나니

 

 가을은 쓸쓸한 맛뿐이구료

 

 희끗희끗 산국화 나부끼면서

 

 가을은 애닯아 속삭이느뇨. - P134

 

 

 

 

 

 어린시절 학교를 가기 위해 사립문을 열고 고샅길을 걷노라면 이웃집들이 돌담으로 엮어져 있고 그 곁에는 우물,장광,이웃집 아줌마의 아침밥 짓는 모습이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하기만 하다.아침 7시를 넘긴 시간이라 햇살이 우물물이 내려 앉으며 우물가에 핀 갖가지 꽃들과 감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붉고 노오랗게 물들어 가는 것을 늘 바라보면서 성장했다.순수하게 물들어 가는 가을녘은 사람,사물,농작물과 같은 존재에서 가을이 깊어만 가는 것을 느끼곤 했는데,『오―매 단풍 들것네』 아침 등교길 이웃집 돌담이 가을빛을 받아 여물면서 완연한 가을의 내음을 온몸으로 맘끽했던 것이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 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P51

 

 우리의 인생은 짧기만 하다.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리는 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살다 순명하는 것이 지혜롭고 섭리에 맞는 것이다.옛날 같으면 50이 넘으면 할아버지,할머니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팔청춘'이다.그런데 할아버지,할머니 묘에 앉아 그 옛날을 상기하면 나도 언젠가는 명부에 누워 있을 때가 있겠구나 라고 체념을 한다.그 마음을 담은 시가 바로 쓸쓸한 뫼 앞에 이다.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가라앉은 앙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 이는 향 맑은 구슬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 - P13

 

 

 김영랑 시인은 다작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 남긴 시들은 자연과 사계,인간과의 관계 즉 사랑과 사모,죽음과 같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묘한 울림을 안겨 준다.나는 김영랑 시인의 시들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부르고 싶다.깊어만 가는 만추(晩秋)의 한자락에서 시인의 시를 읽노라니 사립문,돌담,하늘,땅,물,불,공기,사랑,고독,죽음과 같은 일상에서 흔히 왔다 가는 소재들이 한 폭의 소묘(素描)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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