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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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작가 서거하고 유작 및 개정판이 간간이 출간되고 있다.서랍장 속에 꼭꼭 숨겨 놓은 미필작이든 작가를 추모하기 위해 색다르게 탄생되고 있는 개정판이든 읽어 가다 보면 작가의 내면세계와 삶의 변주곡이 잔잔하게 물결친다.한국전쟁의 후유증을 그린 글부터 서거하기 직전까지 내놓은 작품들이 삶의 현장을 목도한 것들을 소재로 삼아 박완서 작가 특유의 입담과 필치로 전개되는 글들이 주가 되었다.소설,수필과 같은 삶의 다채로운 무늬를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하면서 삶의 진수를 맛보기 위한 마중물과 같은 소재거리도 내게는 오래 인상에 남고 있다.

 

 

 

  작가가 남긴 몇 편의 글들을 접하면서 '소풍 같은 날' 같은 언어를 제법 접했다.열심히 일한 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어디론가 떠나라라는 연상이 들 정도로 소풍,여행은 무거운 심신을 내려 놓고 다가오는 삶의 부족한 분(分)을 채우기 위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그래서 소풍과 같은 나그네 길은 모든 것이 신비롭고 자유스러우며 (어린 아이가)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소묘해 가는 과정은 아닐까 한다.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도,번잡함과 불안한 삶 속에서 타국으로 안내해 주는 나그네의 언어는 상큼하게 개인 맑은 창공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

 

 

 

 

 노래의 날개 위에 피어나던 선생님의 박꽃 같은 미소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에테르는 '항상 빛나는 것'을 뜻하는데,'거기로부터 사라질 리가 없는 하늘의 빛'을 의미한다. - 사진작가 민병일의 작가에 대한 그리움과 찬사(讚辭) -

 

 박완서 작가는 소리내어 웃는 모습보다는 수줍은 듯 하얀 박(조롱박)꽃과 같은 자태를 띠면서 윗니가 아랫니를 감싸는 듯 활짝 미소를 짓는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같아서인지 글귀들도 생활 속에서 직조된 것들이 많다.일상의 언어를 담담하고 현실감있게 풀어내는 박완서 작가는 당시 칠십을 앞두고 고지(高地)로 불리는 티베트와 네팔의 모습을 민병일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담고 여정의 후일담을 기록과 기억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티베트는 맑게 개인 청명한 가을날과 같이 푸르기만 하다.푸르름이 시린 쪽빛으로 변해 사람의 눈까지 빨려 가게 할 정도로 우주의 시원인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1990년대 중,후반의 여행기로서 20년이 좀 미치는 세월이기에 지금 티베트와 네팔의 모습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질문명이 침투되고 있지는 않을까 한다.라마교는 면면히 내려오는 티베트의 신성한 신앙이면서 죽기 전 포탈라궁(宮)을 직접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익히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라마교를 몸과 마음으로 숭상하는 것 같다.오체투지(五體投地)를 몸소 행한다.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토번(吐蕃)왕국의 송첸캄포 왕이 왕비 문성 공주가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석가모니불을 모시기 위해 창건했고,왕의 사후 공주가 선왕을 기려 창건했다고도 하는 절이 조캉 사원이다.신비스럽고 경외스럽기까지 한 티베트의 불교 사원이 가장 핵심 여정이 아닐까 한다.

 

 

 

 

 버스를 타고 여행지를 경과하는 과정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고 소박하기만 하다.야크가 농작의 일등 공신이며 야크가 죽으면 버리는 것이 없다고 한다.야크가 배설하는 분(糞)은 짓이겨 크기를 정해 햇빛에 말려 땔감으로 사용한다고 한다.해발 5천미터 이상에서 자라는 꽃의 강인한 생명력과 아기자기한 자태는 감탄의 연발이다.'연꽃 속의 보석'이라는 '옴마니반메훔'이 불교의 지혜로서 티베트에는 불교적 색채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이렇게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티베트와 같은 천혜의 풍광을 도시화,산업화로 짓이긴다고 한다면 이 행위는 신성모독(神聖冒瀆)이 아닐 수가 없다!또한 티베트 사람은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주로서 신성시하고 있다.

 

 

 

 

 티베트를 떠나 네팔로 진입하게 되면 티베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네팔 북쪽은 히말라야 산맥과 가깝고 남쪽은 습지 및 열대우림으로서 인종은 인도인과 흡사하다.네팔은 인도와 같이 사후 윤회사상을 믿으며 부타의 가르침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눈동자 절로 불리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중생의 삶을 멀찌감치서 관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징성을 띠고 있다.한국 물가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낮은 가격,화장의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죽어 한 줌 재가 되고 마는 덧없는 인생이라는 허무감이다.네팔에서는 포카라 가야 히말라야의 설산을 제대로 완상할 수가 있다.마치 알프스 몽블랑을 연상케 하면서 산맥 아래는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파노라마와 같이 펼쳐진다.

 

 

 

 

 티베트,네팔 경제소득 면에서는 한국보다는 낫지만 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한국인보다는 높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수분지족(守分之足)이 바로 그것이다.다만 절대 빈곤층이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다 보니 걸인과 노숙자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또한 위생시설,청결의식이 낮아 아직도 머리와 몸 안에서 이를 잡는 풍경은 1960,70년대를 연상케 한다.낯설지만 신비스럽고 때묻지 않은 티베트,네팔에서 배울 점은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인간과 자연이 물질문명을 숭배한 나머지 다가올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는 어리석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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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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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고귀하다

 

인간은 집착과 미련을 쉽게 내려 놓지를 못한다.그래서 마음의 병이 생기면서 씻을 수 없는 회한과 분노로 남게 되는 것이다.집착과 미련은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사항일 수도 있지만 길게 끌고 갈 사항 또한 아니다.그래서 집착과 미련은 잠깐 왔다 가는 뜨네기 손님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생각이 들며 오래 안고 품다가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져 생과 사를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즈음에 몸과 마음에서 체득한 것이다.

 

 나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과 같은 선(禪) 수행을 해보고 싶다.이것은 국민학교 동창에게 들은 얘기인데 하는 일,인간관계가 순조롭지 않고 몇 년간 지칠대로 지친 친구는 절에 가서 영가(靈駕)의식을 치뤘다고 한다.몸 속에 기생충과 같이 똬리를 틀고 있는 잡스러운 생각과 번민에서 벗어나고자 영가 의식을 했는데,지금은 몸도 마음도 말끔해지면서 일,인간관계,부부관계도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나 역시 가정사,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여 몇 년 동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 내 자신을 깊게 성찰하고자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 잡으려 하고,마음 속에 집착과 미련과 같은 것들을 쓰레기 분리수거하듯 하나 하나 정리하고 버리면서 나에게서 멀리 멀리 보내려 하고 있다.또한 명상집을 들으면서 마음을 정화시키면서 뇌를 좀 더 가볍고 청량감 있게 스스로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소유라는 의미와 실체,본령을 알아가려 노력하고 있다.법정 스님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스님들의 선 수행과 같은 말씀,현실적인 삶 속에서 처세,가족과 사회에서의 의무와 책임과 같은 본령을 인식하면서 내 방식대로 삶아왔던 잘못된 방식,방향을 수정하고 새롭게 다져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 삶의 의미를 한층 부여했다고 생각한다.먹고 살기 위해 모든 개개인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삶의 전쟁터에서 몸은 지치고 마음의 영혼은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무겁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심상을 가볍고 단순하게 재조정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기울인다면 각박하고 재미없는 삶에 더욱 살 맛 나는 윤기를 더해 주지 않을까 한다.그러한 맥락에서 허허당 스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놀랍고도 신비로운 예술이라는 말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여기시는 허허당 스님의 함축적인 언어와 서정적인 시적 묘사는 절로 감흥을 일으키게 되었다.

 

 부제목이 모두 잠자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머물지 마라,그 아픈 상처에,찾지 마라,잃기 쉽다.지금,그대는 무얼하고 노는가,마음 감옥에서 나오니 눈이 떠지네,마음이 헛헛할 때 허허하기에서 집착과 미련이라는 그릇된 욕망과 탐욕,질시라는 본능에서 한차원 높은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소소하고 보잘것 없는 미물(微物)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고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사람과 사물,자연이 합일(合一)하게 되는 세상을 마음으로 그려 보았다.고등동물인 인간이 우주 만물 중에 가장 영리하면서 가장 사악한 존재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는 생각도 허허당 스님의 글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특히 내것으로 삼으려는 고집불통의 소유욕이 가장 인간의 심신을 망가트리는 원인이라고 본다.매사 미리 준비하고 궁리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겸양지덕,세상에서 필요한 소금이 되기 위해 자신의 그릇을 키워 나가려는 확고한 신념과 열정과 같은 마음 챙김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꼭 필요한 삶의 근간이 아닐 수가 없다.머리가 복잡하고 불안하며 힘들 때에는 어린 시절 자연을 벗삼아 자라던 시절을 마음의 사진첩에서 다시 끄집어 내곤 한다.

 

 달은 겨울 달이 최고

 알몸의 산 능선을 구르는 달

 빈 나뭇가지에 걸린 달

 찬바람에 씻긴 듯 핼쑥한 달

 그리고

 손을 들면 콱 무는 달  - P123

 

 허허당 스님은 사람,차,건물,이기심으로 혼탁한 도시를 떠나 산과 들,해와 달,곤충과 동물과 같이 사람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유익하고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면서 친밀성을 높이자는 언어들이 무수히 많다.스님의 글들을 읽어가다 보니 어느덧 마음 챙김이 새로워지면서 삶의 방식,생각의 틀마저 바뀌어 가고 있다.잊혀지고 쉽게 지나치고 있는 존재들에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불어 넣으면서 인생의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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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뉴욕 - 뉴욕 시 다섯 자치구에 띄우는 그림 편지
줄리아 로스먼 지음, 김정민 옮김 / 크리스마스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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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향심이라는 말이 있다.자신이 태어나 성장했던 고향 내지 오랫동안 생활해 가고 있는 제 2의 고향과 같은 곳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말이다.살고 있는 고장이 늘 사랑스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말도 먼저 건네고 미소로 화답하는 멋진 풍경을 연상케 한다.현대 도시는 돈과 물질,지나친 개인주의로 흐르면서 까칠하고 차가운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그러한 도시 풍경 속에서도 자신이 자라고 생활하는 곳이 마음을 담아 오마주를 바치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헬로 뉴욕》의 작가 줄리아 로스먼이다.천 만이 넘는 인구,다양한 인종이 섞여 일상이 연출되어 가는 뉴욕은 정치,경제,문화,예술와 같은 분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마치 세계의 인종이 집합되고 건물과 자동차로 넘치는 이미지를 안겨 주는 뉴욕은 작가에게는 모든 것이 낭만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인가 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줄리아 로스먼 작가는 다양하면서 현장감이 넘치는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선보이고 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감상하다 보니 마치 뉴욕 어느 곳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시티 아일랜드에서 자란 뉴요커 로스먼은 자신이 성장했던 시티 아일랜드부터 안내를 해 주고 있다.대도시 뉴욕 항구 안에 자리잡은 시티 아일랜드는 얼핏보면 바이올린 악기와 같이 길쭉한 형상을 보이며 대로,소로가 얼키고 섞인 모습이 바이올린의 줄을 연상케 한다.독립기념님을 맞이하여 시티 아일랜드를 즐겨 찾는다고 하는데 한가로운 해변의 풍경과 창공을 유유히 비상해 가는 새들의 자유로움이 무척 시원스럽기만 하다.

 

 시티 아일랜드는 고작 5,000여 명도 되지 않은 곳이라 주민들 간에 공동체적인 삶을 산다고 한다.빈티지한 분위기의 골목길과 서로를 잘 알고 지내는 이웃 간의 나눔의 정이 부럽기만 하다.작가의 할아버지 선조가 폴란드 이민 출신이면서 대대로 시티 아일랜드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비록 좁고 작은 마을과 같은 시티 아일랜드이지만 입맛 당기는 음식도 제법 많다.기혼인 작가는 복잡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뉴욕 생활에 이미 적응하고 뉴요커로서 뉴욕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시댁과는 멀리 떨어져 살아도 뉴욕의 일상은 이제 사람과 자동차가 하나가 된 듯 안정적이고 행복하기만 하다고 한다.

 

 

 거미줄과 같이 얽혀 있는 뉴욕의 지하철,세계에서 가장 큰 그랜드 센트럴 역 풍광,뉴욕 공립 도서관,맨해튼의 숨겨진 명물들인 다채로운 건물군,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져오고 싶은 열 가지 보물,각종 박물관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그외 일반인들의 식도락 거리,휴식 장소(찜질방),교통 수단(택시),싸고 맛있는 간식거리,유대교 커뮤니티,유해동물과 반려동물,브로드웨이,자유의 여신상(맞은편엔 미네르바 여신상이 있음)을 간접 체험할 수가 있다.아기자기하면서도 시복을 안겨 주는 곳들과 작가만의 뉴욕에 대한 사랑법이 생기발랄하게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작가의 섬세하고 일러스트는 살아 꿈틀거리는 뉴욕 현장을 리포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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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어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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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츠키 히로유키 작가를 알게된 것은 <청춘의 문 시리즈>를 통해서이다.마치 작가의 청년시절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프레임이 가득 깔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와세다 대학 러시아문학과를 다니다 학비가 없어 퇴거(중퇴)를 하고 마는데,청춘의 문의 주인공이 바로 경제적 결핍과 정신적 방랑을 하는 시기를 그린 글이었다.청춘의 문을 읽으면서 문득 지난 내 청춘은 과연 알차고 튼실했던 시절이었는가를 성찰해 보는 값진 시간이었다.그외 불교적 인생관이 잘 담겨져 있는 <타력>과 <대하의 한 방울>도 여운과 울림이 컸다.

 

 이번 작품은 이츠키 히로유키 작가의 전반생에 있어 회고와 성찰을 담은 글로서 유년기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의 생활과 청년기,작가로서 작품 활동과 그와 교유했던 사람들과의 편린이 잘 담겨져 있다.인생은 부평초와 같은 존재이련가.작가는 한 곳에 지긋하게 정착을 하지 못하고 집시(jipsy)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글 전반에 드리워져 스산한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소학교시절을 보내면서 주로 관사에서 생활을 하고 한국학생들과는 거의 소통과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전라도,평안도,서울(경성)을 오고 가면서 종전(終戰)을 맞게 된다.전쟁 패전국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 작가는 평양에서 일본인들끼리 숨어지내다 판문점을 넘어 귀환하게 되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다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학업을 마치지 못하게 된다.

 

 가난하고 풍족하지 못했던 1940,1950년대 담배 한 개비도 반으로 찢어 불을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풍족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작가는 르포라이터,방송작가,편집자 등을 거쳐 <창백해진 말을 보라>로 1967년 나오키(直木)상을 수상하면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게 된다.주거는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에 적(籍)을 두고 활동은 도쿄에서 이루어진다.서울과 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쿄를 떠나 유유자적한 생활이 가능한 가나자와에서의 삶은 그에게 정신적 풍요로움과 작품의 소재,영감의 활력소가 되었으리라.이츠키 히로유키 작가는 유년시절 친부께서 하이쿠(俳句)의 작법을 사사받은 것이 후일 창작의 유훈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황량한 바다에 내던져진 존재인지도 모른다.거칠고 무심한 망망대해에서 본능적인 생존법으로 몸부림치는 존재일 것이다.거친 풍랑을 헤치고 살아가려는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존재는 세상에 빛줄기가 될 것이다.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평범 이하의 수준에서 머물 것이다.세상일이 녹록치가 않은 매몰찬 경쟁시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노작가로서 지난 시절의 단편적인 필름 조각들을 스스로 영사기에 비춰 작가의 추억을 비춰주고 있다.삶의 경륜과 세월의 진한 흔적들이 촘촘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중간 중간 한국에서의 유년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반추하는 것을 보니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생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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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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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목월 시인의 삶과 인생을 밤에 읽는 심정으로 접했다.박목월 시인에 대한 너무도 단편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는 옹골차게 다가서는 느낌이었다.박목월,조지훈,박두진 3인방이 모여 엮은 청록집(1946년)은 세 분이서 각자 15편씩 시를 골라 교정을 본 뒤 만든 시집이다.청록집은 몇 년 전에 읽었던 터라 청록파 시인의 시들은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많아 매우 인상 깊고 공감을 자아내게 했다.

 

 경주에서 태어난 박목월 시인은 이십대 초반까지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시작(詩作)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박목월 시인은 30년 가까운 시작 생활 가운데 세 권의 시집을 냈다.<산도화(山桃花)>,<청담(晴曇)>,<난(蘭).기타>를 냈다.청록집이 나온 후 10년간의 작품들을 정리 수록한 것이 산도화이고,그 후 5년 간격으로 작품화한 것들이 각각 청담과 난.기타이다.세 작품들은 시기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산도화는 초기엔 운율을 중시하면서 짧으면서도 함축미를 꾀한 것이 많았지만 후기에 이르러서는 한국전쟁,육친의 죽음,사랑과 운명을 체득하면서 인사(人事)문제로 기울어지고 내면에의 성찰력도 깊어져 갔다.청담에서는 시의 형식이 완만하게 흘러가면서 소재도 구름이나 달 같은 천상적인 것에서 지상적인 것,일상생활의 비근(卑近)한 것에서 얻은 것들이 많다.난.기타 인생의 운명이나 사랑을 다루면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성장과 변모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삶의 중후함과 노련미를 넓고 긴 정신적인 차원에서 그렸던 것이다.

 

 박목월 시인의 가정적인 삶과 부부애,사랑과 고독,가장으로서의 삶의 책임과 전인적 변모 그리고 청록파 시우(詩友)들과의 만남과 헤어짐,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잘 담겨져 있다.기독교 집안으로서 시인 박목월을 이해하고 내조하는 부인의 얘기와 오로지 시작에만 몰두하는 시인의 삶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생계와 (자식들에 대한)교육은 늘 뒷전이었다.시인의 아내라고 생계를 등한시하는 남편에 대해 서운한 감정,불만이 없겠느냐마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남편이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내조했던 것으로 보인다.아내는 자식들이 성장해 가면서 공납금,등록금 등을 챙기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돈을 챙겼을 것이다.큰 딸이 첫직장에서 첫월급을 타와서 봉투째 부모님께 드리는 장면을 접하면서 마음이 뭉클했다.시인은 자식도 돈 쓸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월급봉투를 받지 않고 물렸지만 큰딸은 부모님,오빠,동생들에게 모처럼 선물을 돌리면서 가족애를 한껏 발휘했다.세대간 격차가 큰 만큼 요즘 젊은이들이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또는 형제자매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예전과 같이 부모님의 내의를 사드린다든지 하는 풍습은 거의 찾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박목월 시인은 사랑과 고독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하고,진정한 행복은 인간의 감정의 샘에 무지개의 뿌리가 박히는 경우 무지개가 행복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독을 즐기는 사람만이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 여기고 사랑은 순간적이고 허무한 성적인 쾌락을 넘어 각자의 삶을 주체적이고 견고하게 해 나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깊은 사랑의 맛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나아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각종 성형수술,보톡스 등을 행하면서까지 행복을 찾으려 하는 요즘 일부 계층의 경박한 행위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행복의 정의는 매우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실체적인 것이다.행복을 느끼는 점에서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행복은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내면심리가 정결해지면서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오래도록 삶을 함께 나누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행복은 잡으려고 하면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사랑과 평화가 가득찬 시간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행복의 샘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글의 말미에서는 <독서의 즐거움>을 피력했다.

 

 독서는 의무의 길이 아니고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한다. -P234

 

 다양한 분야의 도서와 저자(작가)와의 만남을 마음으로 접하고 책속의 내용을 지식으로 주입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음미하는 가운데 독서의 즐거움이 더해 갈 것이다.의미없게 강요된 독서보다는 자신이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삶의 질을 고양시키고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도서들을 선정하여 읽어야 제대로 된 독서가 될 것이다.그러한 독서가 심화되어 간다면 인격을 고취하고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박목월 시인의 소소한 삶의 이력과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관조하게 되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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