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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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시간에는 상상과 창조력이 꿈틀거린다. 살아 오면서 경험하고 체험했던 기억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게 되고, 이것들을 사유의 단상에 초대하여 내면과 질문하고 비판하면서, 내일의 문학과 사회에 비겁하지 않게 살았노라고 스스로 읊조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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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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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을 품고 까칠하게 자란 수염을 면도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결혼식이나 중요한 이벤트, 드물게 만날 법한 사람과의 면담을 앞두고 면도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의 묘한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수염이 많지 않은 타입이라 촉감으로 까칠다 싶으면 바로 전기 면도로 손질해 주면 그만이다. 매우 심플하다. 기대와 설렘, 긴장이 섞인 의례적인 면도식이라고 하면 거창한 표현일까. 이제 오십을 넘은 인생길이지만 기대, 설렘, 흥분, 긴장을 더 품을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덜 스트레스 받고 부풀어 오르는 소소한 세로토닌이 몸 안에 퍼져 갔으면 더 좋겠다.

 

 잡지 안안(Anan)에 실린 50여 편의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무라카미 작가다운 풍모가 선명하게 연상된다. 어디에 구속받지 않은 작가만의 자유분방함과 모던함이 어우러진 일상의 풍경을 담백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무미건조하게 재미없게 살아 온 내게는 이 50여 편의 글들이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하고 약간의 샘이 나기도 한다. 그만큼 세속의 기준에 내 자신을 까워 넣어 살아 왔던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이왕지사 다 잊고 지금부터는 더 멋진 내일을 향해 질주해 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어느 정도 인생의 강판 두께가 두툼해질 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족과 함께 맛난 음식 기행도 하고, 중국 칭장 열차를 타고 산업화에 때묻지 않은 청정지를 온몸에 담아 내고 싶다. 수도없이  마음으로만 갔다 오는 곳들은 마치 몇 번이라도 다녀온 듯한 착각과 친근감을 안겨 준다. 무라카미 작가는 여행과 음악, 케쥬얼한 차림으로 여러 곳을 주유(周遊)했던 체험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내려져 있다. 또한 그가 쓴 원서(原書)를 보면 군더더기 없는 현대 일본 표준어가 특색이다. 재즈와 클래식에 심취했던 무라카미 작가는 이러한 장르의 에피소드를 늘 싣고 있다. 누구나 음악을 싫어할 리는 없겠지만 무라카미 작가만큼 음악의 독보적 애호가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세상은 중고 레코드 가게이기도 하다"라고 한 멋진 대목은 연륜과 경험치가 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재킷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시기에 발매된 것인지 대충 안다. 무게와 종이 감촉만으로도 '이건 오리지널이군' '이건 재발매로군'하고 순식간에 구분한다. -p83

 

소소한 일상의 소재들을 한 편의 글로 실어 낸 이 글을 읽다 보니, 작가란 많은 곳들을 유랑자가 되어 듣고 쓰고 렌즈에 담아 내는 정신적 노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러한 행위들이 누적되어 창작의 모티브가 되고 수많은 독자들과의 교신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무라카미 작가의 사고방식과 느낌과 취향가 표현방법과 다양한 요소들이 골고루 배여 있다. 그가 쓴 다른 글을 읽는데에도 그의 생각과 취향,사고방식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명곡 윌슨의 〈캐롤라인 노〉를 들어 보련다. 인생과 시간의 합주를 고요히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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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 먹고 마시고 걷는 36일간의 자유
오노 미유키 지음, 이혜령 옮김 / 오브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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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과 여행에서 짐을 꾸리는 방법은 같습니다. 필요 없는 짐을 점점 버리고 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은 것만이 그 사람 자신인 것이니다. 걷는 것, 그 길을 걷는 것은 '어떻게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한 과정입니다." -p7

 

 인간은 제한된 돈과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돈과 권력과 같은 삶의 수단과 작용이 과욕과 남용으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을 더욱 혼탁하게 있다.돈과 권력이라면 도덕과 윤리라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관도 무용해지고 마는 법이다.더욱이 돈과 권력이 인간 사회의 최고점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모두가 앞,위만 보고 달릴 뿐,옆과 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개개인을 평가하는 관점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가벼웠던 인간의 과욕이 점점 무거워지고 버거워져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를 때, 우리는 어떠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무겁고 버거운 짐을 계속 등에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필요한 짐을 벗어 던지고 좀 더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각자의 삶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수하게 종교의 교리에 맞춰 생활하는 종교인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존경한다. 그것이 불교든 기독교든 상관없다.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단히 연마하며 고귀하게 살아가려는 자세와 태도가 무척 가슴에 와닿는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존재이기에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나가려는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타인 및 사회에 활력소를 제공한다면 자신 및 사회의 모습도 조금씩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모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교적 수양을 담고 있는  여행 에세이는 내게 또 하나의 삶의 의미,살아가는 이유를 동시에 던져 주어 읽고 나서도 길게 여운이 남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는 기독교 3대 성지(聖地) 가운데 하나다.이미 알고 있고 관련 도서도 읽어 보았지만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떠나고 싶어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프랑스 남부 생장 지역에서 산티아고까지 800여 키로(서울~부산 간 왕복 거리 정도)를 뚜벅이처럼 '뚜벅 뚜벅' 혼자 걷기도 하고, 세계 각국에서 순례길에 동참한 이방인들과 함께 걸으면서 산티아고 성지 길의 의미를 마음으로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시간을 갖기에 족하다.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을 거듭하다 한국인 교수의 조언에 따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로 결정한 오노 미유키(小野美由紀) 작가는 마음 속에 담긴 오욕칠정을 모두 비우고 영혼의 자유스러움을 되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30대 초반의 젊음을 무기로 낯설은 순례길을 36일 만에 산티아고에 두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오노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스페인어 기초 지식과 순례길에 나서서 겪었던 것들 이를테면 체질에 맞는 순례길 선택,스페인의 미식 거리 등을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걷고 쉬고 걷고 쉬기를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체질에 맞는 순례길도 있었을 것이고 숙박지 및 음식점에서 맛보았던 갖가지 스페인 음식들은 순례자들에게 미식거리로 남았을 것이다. 순례길 구간과 구간 사이를 일기 형식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평지도 있고 언덕길도 있고 산 속길도 있고 오솔길도 있고 고산지대의 길도 있었을 것이다. 순례자는 여러 갈래의 길을 걸으면서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동시에 틀림없이 다음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흔히 말하는 자신을 한 번쯤 리셋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 야고보의 묘가 있는 산티아고 성지를 향해 오늘도 묵묵히 걷고 있는 순례자들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행복과 자유를 되찾아 가는 삶의 여정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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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나무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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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일본인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면 일본에 대한 관심과 동경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우연찮게 일본어를 독학하면서 일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게다가 일본인 친구에게 소개받은 일본인 펜팔 친구와의 서신 왕래 및 서울에서의 만남은 대학시절 전공 이상으로 일본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반은 미치지 않았나 싶다.군대에 있을 때에도 군으로 서신 왕래를 했다.주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덕분에 일본어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학을 마친 후 일본 체험을 하기로 작정하고 일본으로 떠났다.관광 비자로 들어간 일본 체험 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내 입장과 처지를 아는 일본인 친구의 배려로 교통 수신 아르바이트,호텔에서 그릇 닦기 및 튀김 요리 하기 등을 했다.

 

 일본에 갈 기회는 내가 만들었던 셈이다.내가 일본에 체류하던 시기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던 6월에서 한여름의 절정인 8월 사이였다.더위를 무척 타는 체질이고 체류지인 교토는 분지로 유명해서인지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곤 했다.호텔에선 주로 그릇닦이를 하는 한편 오후에는 옥상에 설치한 비어 가든(Beer garden)에 오는 손님들에게 인스턴트 새우,감자 튀김을 튀겨냈다.무더운 여름날 교토는 각종 마쓰리(축제)로 들끓었다.양력 8월 15일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로 조상의 넋을 기리는 날로 귀성객으로 도로는 혼잡하기만 하다.내가 일했던 호텔에선 산에 다이몬지(大文字)라는 글자를 크게 새겨 불꽃을 피운다.호텔에 온 손님들은 다이몬지 축제를 응시하면서 시원한 맥주와 안주(삶은 풋콩 등)로 무더위를 쫓기도 한다.당시 다이몬지 축제를 보러 온 호텔 손님이 만석이 되자 호텔 사장은 전 호텔 직원들에게 만원사례라는 명목으로 1천엔을 선물로 화답했다.또한 기온 마쓰리가 교토 시내 중심가에서 열리는데,아쉽지만 호텔 아르바이트 때문에 직접 관람은 하지 못했다.

 

 이 글은 이런 저런 사유로 일본 각지에서 체류했던 일본 생활담을 솔직 담백하게 들려 주고 있다.모두 17인(일본인 1명 포함)의 일본 체험기는 나도 겪었던 지라 공감가는 부분이 꽤 많았다.일본 유학을 위해 어학 코스를 밟고 대학원 진학기,워킹홀리데이,한.일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로 인한 정착기,특별한 일본 사랑을 담은 이야기 등이 소개되고 있다.어떠한 연유로 일본에 가서 살든 의미 있는 일본 체험이 되었으면 한다.내가 일본에 체류하던 시절에는 재일 교포에 대한 각종 차별이 있었다.일본에서 고급 공무원으로 상승하는 것이 제한되고,지문 날인 제도 등이 대표적인 재일 교포 차별 정책이었다.근자에는 반(反)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법을 실행하려 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반헤이트 스피치법은 있지만 실제 일본 우익 단체 등이 재일 교포에 대한 편파적인 발언,언어폭력 등 폄하하는 발언이 얼마나 사그라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나는 좋은 일본 친구를 만나고 제한적인 장소,범위 내에서 생활해서인지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폭언,폄하성 발언은 직접 겪지는 않았다.다만 일본 공중파 방송 및 유 튜브 등에선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내보내고 있다.

 

 일본은 살기 좋은 것 같으면서도 살기 불편할 것 같은 면이 공존하는 곳이다.그것은 청결하고 질서가 잡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강한 일본인의 의식 구조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있다.반면 일본 사회 및 일본인의 의식 범위를 벗어난 규칙,규정에 대해서는 철저하리 만큼 배타적이다.예를 들면 일본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면 음식과 반찬이 함께 나오는데,반찬의 양이 너무 적어(고양이 밥 만큼이나) 반찬을 더 요구할 것 같으면 상냥하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난색을 표한다.반찬을 더 먹고 싶으면 반찬을 따로 더 주문하라는 식이다.한국의 음식점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다.그리고 교통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장기 일본 여행 및 일본 체류를 할 경우에는 예산을 잘 짜야 한다.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교통비,물가(소비세 따로 붙음)가 비싸기에 생활비 플랜을 잘 짜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일본에 단기 체류하는 경우에는 볼 거리,먹을 거리,체험할 거리로 쏠쏠한 기분이 들겠지만,장기 체류할 경우에는 생활비,일본 사회에 대한 적응,삶의 목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도전 정신,건강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일본에서 살아 보겠다'라는 의지가 서 있다면 젊은 시절일수록 좋을 것이다.일본 유학,일본에서 자격증 취득,일본에서의 비즈니스,일본인과 결혼 생활 등이 일본에서 살아볼 만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한.일 과거사 문제의 응어리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탓인지 일본에 대한 선입견은 그리 좋지 않다.하지만 무작정 혐일(嫌日)감정으로 일관한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경색되고 발전적이지 못할 것이다.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장기 체류하면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도 어두운 양국관계의 모습을 보다 밝고 희망찬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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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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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일 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또한 사람의 기본 욕구 가운데서도 본능이라 할 먹는 일은 살아가기 위한 바탕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윤기나게 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그래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는 가운데 음식에 대한 기억과 사람과의 추억이 더욱 깊어져 간다고 생각한다.눈 감으면 해묵은 기억이 솔솔 피어 오르며 아련한 추억이 감질맛 나도록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이유는 아닐까.누구나 먹는 일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황석영 작가와 함께 떠나는 밥도둑 타임 머신은 비록 누렇게 빛바랜 기억일지라도 마음 속엔 아직도 선명하게 낙인(烙印)이 찍혀 있다.늘 먹는 다반사를 비롯하여 특별한 만남 속에 특별한 음식과 함께 식복을 누리며 한때나마 사람들과의 관계가 촉촉하게 윤기를 더해 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관계도 좋아지고 일도 더 잘 되니 먹는 일이 어찌 빈 속을 채우는 일에만 머물 수 있단 말인가.속이 든든해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관계도 나아져 가는 먹는 일에 대해 내 기억과 추억 속으로 빠져 보고자 한다.

 

 언젠가의 그 맛집을 찾아가보아도 대부분은 사라져버렸거나 주인이 바뀌었다.만약 예전이 장소에 음식점이 그대로 있고 늙은 주인이 아직도 요리중이며 음식의 맛도 여전하다면 우리는 실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세상과 내가 동시에 변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맛의 기억을 더듬는 일은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며 고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고 스스로를 위무해준다. -P6

 

 눈을 감으면 음식 가득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논배미로 사뿐사뿐 걸어오시는 할머니 모습이 역력하다.그 날은 모심는 날이다.모심는 날엔 점심과 샛걸이 그리고 저녁까지 준비하여 모심는 일손들에게 대접한다.할머니께서 만드신 음식의 가짓수는 열 가지 정도였는데,가장 입맛을 돋구는 음식은 갈치와 감자 조림이었다.짭잘한 듯 구수한 듯 입맛을 돋구어 주었고,동네 일손들은 며칠 굶기라도 한 듯 밥 한 공기는 양에 차지도 않아 공기 밥을 뚝딱 해치웠다.모내기 점심이 끝나고 세 네시 정도 될 무렵엔 새참을 내오셨다.단연 할머니 몫이었다.막걸리와 겉절이 김치 그리고 봄나물로 버무린 각종 산나물들을 내오셨다.나는 못줄잡이로 대략 국민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벼가 익어 벼를 베고 홀태로 낱알을 훑어내는 날도 역시 갈치와 감자 조림은 할머니의 단골 메뉴였다.갈치의 삼삼한 맛과 감자의 포근하게 씹히는 맛에 구수한 조림 국물 맛이 내 기억에 깊게 남겨져 있다.이제 할머니께서는 고인이 되셔서 갈치,감자 조림 흉내를 완전하게 내는 것은 어렵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추억에 사무치게 되면 나는 직접 갈치,감자 조림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에서의 추억도 적지 않을 것이다.나는 행정병으로 자대를 배치받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행정병 티오가 차서 임시로 보조 취사병을 하게 되었다.주된 일은 허드렛일이었는데 홀 바닥을 쓸고 닦고,먹고 난 식기들을 닦고 건조시키는 일,때로는 고참병들을 따라 김치도 만들고 음식도 만들어 보곤 했다.군대는 기합이 센 곳이지만 식당 만큼 센 곳이 어디 있을까.늘 무서운 고참들 때문에 긴장과 눈치를 보면서도 먹을 때 만큼은 고참들이 신병들에게 베푸는 약간의 화기애애함으로 먹는 일이 말할 수 없이 즐겁기만 했다.군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리필용 고추장으로 밥을 비비고,어깨 너머로 배운 닭도리탕이 일품이었다.장교 후보생들을 지원하던 식당이었던 관계로 지위가 높은 인사,하사관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식당 주변을 청결하게 하면서 손색 없는 음식 맛을 내기 위해 재료의 적당한 배합과 맛의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행정병 티오가 나서 내가 일할 곳으로 배치되어 갔다.또 하나 행정병으로 근무할 무렵 부대 근처에 사는 방위병들이 출근하면 그들에게 부탁해서 술과 안주거리를 조달케 하여 마음에 맞는 동기,한 두달 고참,한 두달 후임병들과 조촐한 회식을 했다.삶에 있어 비공개적이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이젠 먼 추억으로 남아 있다.

 

 황석영 작가의 먹는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쓸쓸하게 혼자 먹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일 만큼의 밥도둑은 없다고 한다.동감한다.그래서 옛말이 '둘이 먹다 죽을 맛'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작가는 만주에서 태어나고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를 따라 한국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 왔던 분으로 밥도둑에 얽힌 기억과 추억은 고단하고 옹색했던 지난 날의 정겨움과 그리움을 응축하고 있다.먹는 일과 관련하여 기억과 추억도 많다.군대,감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작가 어머님이 들려 주셨던 온반의 기억,독일 가정식 추억,잠시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고자 절에서 겪었던 음식 추억,각 지역별 음식 추억,북녘 음식에 대한 추억 등을 담백하게 들려 주고 있다.

 

 내게 밥도둑이 뭐냐고 물으면,"어린 시절 온식구가 한 상에 둘러 앉아 콩나물 비빔밥을 먹던 추억"이라고 말하련다.열 명 가까웠던 대식구였던 어린 시절 겨울 날엔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도 고단하고 귀찮기만 하다.그래서 어머니는 콩나물 콩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을 뽑아서 밥 위에 콩나물을 앉혀 콩나물 밥을 만드셨다.콩나물 밥의 백미는 양념장이다.어머니께서 만든 양념장엔 간장,고춧가루,다진 파,다진 마늘,볶은 깨,설탕,참기름을 섞었다.조부모,아버지는 따로 콩나물 밥을 해 드리고,어머니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큰 양푼에 콩나물 밥과 양념잡을 적당하게 배합하여 쓱쓱비벼댔다.어느 정도 맛깔스럽게 비벼지면 게 눈 감추듯 맛나게 먹어 치웠다.반찬은 동치미 하나면 족했다.그 외 설이 다가올 무렵엔 전통 음식을 준비하셨는데,유과,깨강정,쑥떡,인절미 등이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나는 군대에서 취사병 생활,대학 시절 자취 생활 등으로 혼자 챙겨 먹어야 했던 고단함 속에서 내가 만들어 먹는 재미와 즐거움이 오래 남아 있다.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입에 댄 시장 골목길의 순대 맛은 주린 배를 채워 주면서 쫄깃쫄깃한 내장 맛이 인이 박혀서인지 속이 출출할 때면 동네 순대집을 자주 찾는다.순대 위에 떡볶이 국물을 얹어 먹는 매콤 달짝한 맛은 먹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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