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
조정래 지음 / 해냄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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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아리랑'을 읽고 나서 저는 마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앉아 은근히 풍기는 화장실 냄새와 싸우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때였었어요. 논두렁에서 새참을 먹고 있던 농부에게 통마늘을 안주삼아 탁주를 한 사발 얻어먹는 장면에서, 생마늘이라고는 입에도 안 대본 주제에 어느새 입안 그득 침이 고이면서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집에 도착해서 가방도 풀기전에 찬밥에 물을 말아 마늘에 쌈장을 푹푹 찍어 두 그릇이나 비웠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던 엄마의 얼굴과 함께 그 때의 개운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리랑을 읽으면서 울기도 많이 하고, 분개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제의 탄압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생생히 살아 숨쉬던 우리네 삶이었습니다. 끈끈한 정과 순진한 민심이 천성인 우리 민족, 그러한 민족성이 깔려 있었기에 질긴 외세의 탄압에도 그 맥이 끊기지 않고 면면히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고려청자 조선백자도 중요한 우리 문화이지만 아리랑을 읽고 나서 저는 '민족성'이라는 것이 무었인지, 또 우리네 민족성이 얼마나 정감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태백산맥보다 아리랑을 윗길에 두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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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몬 1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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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를 뒤늦게 접한 내가 그 흥분을 채 지우기 전에 이 책이 발간되었다.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신간을 '기대'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손에 들게 된 것이다.

에~ 솔직히 김이 좀 빠졌다. 발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새로운 세계였지만 투탕카몬 판 람세스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발굴권과 자금을 둘러싼 암투가 조금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덤을 파헤친 자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떠들썩한 가십과 유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에 가려진 발굴자들의 열정을 되짚어 보기에는 좋은 책인것 같다.

이집트 문화의 과거와 현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나 크리스티앙 자크의 골수 팬에게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람세스'에 대한 기억은 싹 지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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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현대문학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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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읽으면서 잠시 은희경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몽상의 경계선에 있는 '그녀'와 주인공의 관계는 '댄스댄스댄스'에서의 키키와 주인공의 관계와 무척 많이 닮아 있었다. 하루키의 열성팬이고 은희경의 조용한 지지자인 나는, 당장에 책을 구해 읽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그 느낌이 하루키와 전혀 달랐다. 하루키는 담담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고, 삶의 목적인양 '그녀'를 갈구하며 결국은 뭔가를 깨닫는다. 반면 은희경은 좀 더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그녀'를 포장했다. 그리고 하루키의 그녀가 구원의 여신이라면 은희경의 '그녀'는 다분히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것은 꿈이었을까'가 하루키를 닮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겠지. 아쉬운 점은, 인터넷을 연결해 놓고 비틀즈의 노래를 열심히 찾으면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목으로 쓴 노래를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소설의 깊은 곳에 다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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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6 -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완결
이우혁 지음 / 들녘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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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네 개 정도가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별은 퇴마록의 대장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으신 이우혁 작가에게 헌정합니다.^^ 참 성실한 작가입니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시리즈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끝내다니 말입니다. 국내편, 세계편을 거쳐 혼세편을 찍고(?) 드디어 말세편의 마지막권을 덮은 감회는, 퇴마록의 팬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것일겁니다.

사실 혼세편과 말세편에 접어들어서는 잠깐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이우혁은 대단한 이야기꾼이지만 능숙한 작가는 아니라고나 할까요. 배경의 범위가 넓어지고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넘쳐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작가가 숨차게 설명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1, 2년정도 시간을 더 가지고 두 세권을 더 보탰으면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려 놓고 어찌 수습을 하려고 그러지...' 내심 불안했었는데, 원만하게 수습(?)을 하신 것을 보니 재미보다 안도의 한숨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끝을 보고 실망을 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울만큼 퇴마록의 열성팬이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끝나고 '현암은 나중에 승희와 결혼해서 아들을 하나 두고 행복하게 살다가 한날한시에 죽었다.' '준후는 준호와 팀을 이뤄 퇴마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박신부는 북한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구호하는 일에 전념했다' 뭐 그런 식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국식 결말을 좋아합니다만은, 퇴마록의 품격을 위해서 얼토당토 않은 욕심은 접어야겠지요.

한국형 환타지의 장을 연 퇴마록이, 얼른 외전까지 나와서 훌륭하게 번역이 되어 수출도 되고, 만화, 게임, 캐릭터도 나오고, 가능하다면 제대로 된(?) 영화도 다시 찍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름을 떨치는 모습을 지켜보면 참 흐뭇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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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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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는 매우 존경스럽지만 쉽게 좋아할 수는 없는 작가이다. 쉽게 읽은 후에 따르는 어려운 고민이 언제나 머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농담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영빈과 그의 아내, 정부. 그의 여동생과 가족(그렇게 비열한 집단도 가족이라 칭할 수 있다면)을 둘러싼 어찌보면 간결한 이야기는 남녀간의 사랑, 불륜, 남아 선호 사상, 황금만능주의의 폐해까지 수많은 화두를 품고 있다.

심영빈의 이야기보다는 그 여동생에게 집중하게 된 것은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몸을 담은 여자이어서일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가족과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육당하고 유린되는 과정은 분노를 넘어선 비애를 맛보게 해주었다.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강력한 암시를 받았기에 감정은 더욱 극한으로 치달았다.

친구 하나가 박완서의 소설을 '처녀는 읽지 말아야할 책'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 시집가기가 싫어진다나. 여성 문제 자체보다 그 근본 이유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박완서야말로 진정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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