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면 별별 일을 다 겪는다 하더니...제 얘기는 아닌 줄 알았죠.
어제는 보건휴가였습니다. 쉴 상황은 아니지만, 에잇!하고 과감히 쉬고, 연우 예방접종도 하고 격조하던 친구집에도 놀러 갔지요.
아침에 예진양, 유치원으로 가는 길에 "있다가 끝날 때는 엄마가 데리러 와~"하고 신신 당부를 했기에, 네시 좀 넘어서 택시를 타고 돌아와 집 앞에 내리는데, 어, 예진양이 "엄마!" 부릅니다. 낯선 또래 여자아이 하나와 함께요.
'아직 끝나서 올 시간이 아닌데?'
"조예진, 너 왜 벌써 왔어? 얜 누구야?"
"어, 내 친구 아라야. 우리집에 놀러 왔어."
'앗...며칠 전부터 아라가 놀러온다고 하더니, 빈 말이 아니었구나! 유치원에서 친구집 방문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하는 건가? 어...분명히 주간교육안내를 봤는데....에구...내가 그렇지, 덜렁거리다가 또 못 봤나보다.'
"그런데 어디 가?"
"응, 문구점에 가. 엄마, 나 문구점 가서 뭐 사게 만원만(!) 줘." 
"ㅎㅎ 조예진, 너 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줄 알아? (천원짜리 한 장 꺼내며) 자, 이걸로 친구랑 뭐 사. 그런데 길 건너야 되잖아. 차 잘 보고 건널 수 있어?"
"응. 갖다 올게!"

황당해 하며 집으로 갔습니다. 당연히 두 아이와 함께 가야 했지만, 마침 잠든 연우를 안고 있었는데다가 너무도 또랑하고 당당하기에 엉겁결에 믿어버린거죠. 연우만 내려놓고 뒤쫓아 가리라 들어갔더니, 어? 어머님이 유치원에 전화를 하고 계십니다.

두둥..... 두 아이가, 말도 안 하고 유치원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며칠 전부터 놀러오네 놀러가네 하더니만, 선생님께 허락 받아야한다거나 하는 건 까맣게 무시한 채 둘이서 가방 매고 나와 6차선 큰길을 건너 집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얼른 문구점으로 가서 물으니, 뭘 사가지고 나갔다는데 집으론 안 들어오고, 유치원 선생님도 놀라서 뛰어 오고, 근처 놀이터를 뒤지고, 아라라는 친구 집 주소를 수소문하고....난리 법석을 떠는데, 길 건너 집 앞으로 예진양이 뛰어 옵니다. 막 울면서요.
대충 정리를 해 보니, 다른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기로 하고 둘이 걸어가는데, 슬슬 모르는 길이 나오자 진이는 돌아가자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라라는 친구가 싫다고 하니 덜컥 겁이나 저만 뛰어왔다는군요.

진이는 할머니에게 딸려 집으로 보내고, 유치원 선생님과 흩어져 나머지 친구를 찾았습니다.
"응, 하나 아파트에서 욜로(요기로) 가서 졸로(저기로) 갔다가 다시 욜로 갔거든?"
끙....이런 부실한 정보를 믿고 한참을 뒤지는데,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가 돌아왔다구요.

선생님은 제대로 관리를 못 했다며 미안해 하고, 저는 저대로 황당한 사고뭉치 딸을 맡겨 미안하고....
다섯 살 조예진, 대형 사고 한 건 냈습니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사고가 나거나 길을 잃었다면.....끙. 어쩌겠습니까. 똘똘한 부작용(?)으로 그런 사고를 쳤다고 믿어야지요.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정말이지 해독 불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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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0-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다행입니다. ㅎㅎㅎㅎ

조선인 2004-10-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허걱!!!이네요.
우리딸 다니는 놀이방에서도 그럽디다.
미아방지 지문인식 단체등록 접수를 받으면서... 마로랑 00은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어찌나 부끄럽던지 -.-;;

Laika 2004-10-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식 통 크네...만원만 달라고 당당히 말하고....ㅎㅎ 역시 애키우는건 어렵군요....놀라셨겠습니다.

깍두기 2004-10-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흥....우리 소현이도 네살 다섯살 때 어린이집 문을 소현이 때문에 잠근 적이 있죠. 말없이 휘딱~ 나가서 동네를 돌아다녀서 말입니다. 동네 빵집에 가서 찾는 등.....선생님들의 고생이 막심했죠.(어찌나 미안하던지....)
예진이, 마로,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게 크면 우리 소현이처럼 되거든요.(그건 더 걱정되는 일인가?^^)

숨은아이 2004-10-1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 (글치만 혼자 힘으로 집도 찾아오고 스스로 약속도 하고... 어쩐지 장해 보이는걸요. ^^)

니르바나 2004-10-1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경험있습니다.
7세니까 집에 혼자 올 수 있다고 해서 보냈더니,
집에선 아직 안왔다고 하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드디오 말로만 듣던 사고가 터졌구나 싶었죠.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흐르고...
선생님들이랑 정신없이 아이의 동선을 따라 헤메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애 왔어요"
부모님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잘해야 본전인게 아이들 보육하는사업입니다.

sweetmagic 2004-10-1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의 집에 가서 여기는 우리집이니 여기 있는 사람 다 나가라고 횡포를 부렸답니다.
그것도 여러차례......

아파트, 어린이들 집찾기,,,, 너무 어렵고 헷갈려요...

부리 2004-10-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길 만나면 무섭죠.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어릴 때는요, 가끔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죠.^^

조선인 2004-10-1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현이처럼 될 수 있다... 유혹적인 제안이긴 한데 정말 겁나는 건 사실이에요.
마로 녀석 밖에 풀어놓으면 길을 따라 쭈욱~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앞으로~ 갑니다.
사람 많은 데 가면 벌렁 벌렁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꼭 너 같은 딸 낳아봐야 내 심정 안다고 어머니께서 두고두고 말씀하셨던 걸 실감하고 있어요.
파출소에서 날 찾았다는 연락 받을 때까지 안달복달하시곤 했을
어머니 모습이 이제서야 눈에 선히 보입니다.

마냐 2004-10-1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간 떨어지셨겠다...철렁.. 얼마나 다행입니까..휘유..

근데...진/우맘님은 다섯살 진이를 문구점에 그냥 보내는군요. 애들끼리 어딜 보내본 적이 없어서리..쩝. 우리 어렸을 적엔...다섯살이면 온 동네는 물론 뒷산까지 헤집고 다녔던거 같은데...우리 애들은 ㅠ.ㅠ

비로그인 2004-10-1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저는 아침에 유치원 차 타고 유치원에 도착해서는 그 곳이 집인 줄 알고 혼자서 집에 간다고 사라졌었다네요. -_-;; 3시간 만에 지하철 역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나 전혀 울지도 않았고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선생님들이 기절초풍할 뻔 했었다던데 --;;

nugool 2004-10-1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세븐데이즈 인가 하는 프로그램 보니까 6살짜리 여자애 찾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이혼한지 한달 된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가 그리 된 모양인데.. 어쨌거나 애를 잃어 버리면 찾기 너무 어려운가봐요.. 휴우.. 정말 큰일 날뻔 했군요. 그나저나 예진양.. 간 큰데요? 울 진형이는 5살때 혼자 어디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겁쟁이 녀석이었는데....

진/우맘 2004-10-1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다섯살이지만, 1월생이라 내후년엔 학교 가야 하는걸요.^^
여대생님> 역쉬...그 때부터 비범한 기운이!
마냐님> 하야시 아키코의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 이슬이가 다섯 살이더라구요. 그 책을 본 후 부터, 찻길 건너지 않는 슈퍼는 가끔 일부러 혼자 보냈습니다만...문구점은 저도, 얼떨결에...ㅡ.ㅡ;
조선인님> 그래도, 마로같이 이쁘다면야~^0^
부리님> 과연 이 녀석이 자라서, 이 사건을 기억이나 할까요?
매직님> ㅋㅋㅋ (매직님께만 안 들리게) 매직님같이 자라면 안 되는데! ^^;;
니르바나님> 그러게요. 저도 몇 번 우리 반 아이들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선생님들께 더욱 죄송하더라구요.
숨은아이님>사실은 저도, 5% 쯤 그런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
깍두기님> 소현이처럼 롱다리로~~~~
라이카님> 누굴 닮았는지...저는 절대 안 그랬다구요!!!! (앗...따가운 불신의 눈초리가.^^:)
치카님> 그러게요. 다 키워놓고 잃어버리면...흑흑.

ceylontea 2004-10-1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저도 어렸을 때 길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전 기억도 안나요.. 이모님 이사하시는 날인데... 제가 길을 따라 쭉 걸어간 모양이에요. 정말 어린나이에 멀리도 갔다지요. 경찰서인가에서 제 삼촌이 발견했다는 것 같아요... 덕분에 이모는 장판을 잃어버렸다는 군요... 예쩐엔 이사 할때 장판도 가지고 다녔었으니까...

세실 2004-10-1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말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저도 올 봄에 여섯살 환이가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없어졌다는 시어머니 전화받고, 온 동네를 찾아 헤매고 파출소에 연락을 했는데, 아 글쎄 집앞에서 쭈구리고 앉아서 울고 있더라구요. 물론 집에도 갔었는데 길이 엇갈렸는지.....
아이를 키우다보면 정작 엄마가 더 놀랄일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