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내 퇴근 시간은 5시. 그런데, 2년 전 부터인가...출근 시간이 좀 앞으로 당겨지면서 4:40분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퇴근 후 집까지 가는 자투리 시간이 마냥 아까웠던 나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입을 닫았다. 20분이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서점에 들리고 싶은 경우 : 4:40분 칼 퇴근, 마을 버스 15분+서점에서 책 구경 30분+마을 버스 15분 = 5시 40분 귀가.
집에서 알기로는 : 5:00시 퇴근 + 도보 40분 = 5시 40분. 정상 귀가.
물론, 시부모님께서 저런 걸 일일이 체크하시거나, 내가 퇴근 후에 놀고 오는 것을 뭐라 하시는 분들은 아니다. (그 반대다. 나는 꼭 주 1~2회 각종 계모임, 회식, 친구와의 만남에서 저녁을 먹고 놀다 들어가는걸.^^;) 하지만...어른들께 아이 둘 맡겨 놓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지레 신경쓰이기 마련.

이 토막 시간에 하는 일들은 모두 어찌나 새록새록 재밌는지!


헌데 오늘, 페이퍼에 자주 등장하는 미남전산요원이 퇴근 방향이 같다며 태워준다고 한다. 자아~계산을 해 보자, 4:40분 칼퇴근, 집 근처 도서관까지 차로 5분 + 책 빌리기 50분 + 집까지 도보 5분 = 5시 40분. 와아~~~ 50분이나 도서관에서 놀 수 있다!

오랜만에 제법 넉넉한 시간을 확보하고 들러서,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꼭 빌리려고 벼르던 <미학 오디세이>는 대출중이라, 그냥 정처없이 이 책 저 책 집었다 놨다 부산을 떨었다. 그러다가, 아, 보고 싶었던 책이 떠올랐다. 왜...그런 책 있지 않는가? 보고는 싶은데, 막판에 꼭 장바구니에서 밀려 보관함으로 들어가는. 그래서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난 <장미의 이름>과 <개미>가 오랫동안 그런 책이었는데, 요즘들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검색해 보니, 있다!! 앗싸아~를 외치며 열심히 서가로 갔는데....어? 없네. 검색 컴퓨터와 서가 사이를 몇 번 왔다갔다 해봐도....결국, 사서분께 여쭸지만 그 분도 못찾으신다. 간혹 이런 책이 있다며 <부재 도서 열람 신청>인가...그런 대장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가면 나중에 찾는대로 연락 주신단다. 히잉...이렇게 인연이 비껴가남? 결국 고른 것은 두 권, 진중권의 <레퀴엠>과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 둘 다 꿩 대신 닭들이군.^^

수선을 떨다보니 예상 시간보다 몇 분 초과. 그런데 허억! 창 밖을 보니 비가 무지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런...요즘은 비맞을 일이 왜 이리 자주 생기는거야. TT 오늘 배송된 차력당 선정도서랑 예진이 그림책까지, 가방이 책으로 그득 차서 지퍼도 안 닫히는데.... 나는 비를 맞아도 책들은 젖게 할 수 없지! 광고지 몇 개로 책을 덮고 비 속을 열심히 걸었다.

어....그런데, 집 앞, 마을버스 하차장에 아버님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신다. 언제 올 줄 알고...전화라도 하시지. 며느리 그 잠시 비 맞을까봐 그리 기약 없이 기다리시는 아버님을 보니....분치기로 실컷 놀다 온 내가...가슴이 뭉클해진다. 잘 해드려야 하는데. 그래도...분치기 놀~이는 계속 하면서 효도할 방안을 찾아볼께요, 그래도 되지요?^^ (음....질문으로 글을 맺으려니...마태님이 와서 '그럼 안 되지!' 어쩌고 하며 울 아버님마저 사칭할 것 같은 불안감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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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7-0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분치기 놀~이는 계속 하시면서...다른 효도법을 찾아야죠. 그나저나 감동임다. 며느리 비맞을라 버스 정류장에 마중나오신 시아버님....음...님이 알려진것보다 훠얼씬 더 괜찮은 며느리이거나...님이 '복받은 인생'이거나....흐흐.

panda78 2004-07-0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으신 시아버님--- 매일 책 구경하는 즐거움 놓치시면 안되죠! ^^ 분치기 놀이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쭉----;;; 박민규 지구영웅전설 읽으시면 평 좀.. ^^

starrysky 2004-07-0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아버님.. 역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님이라더니.. (이거 맞는 표현이죠? 갑자기 헷갈려서..) 가슴이 뭉클하면서 따뜻한 저녁이시겠네요. 부럽사와요. ^-^

다연엉가 2004-07-0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이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시고..그것만 봐도 진우밥이 효부구먼^^^^
나는 직업상 매일 분~~치기를 하고 앉아 있으니 ㅋㅋㅋㅋ. 울 시어머니는 전화만 했다하면 돈 벌인다고 고상한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아니거든.ㅋㅋㅋㅋ

물만두 2004-07-06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덕이 많아 복받으셨네요...

반딧불,, 2004-07-0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미학오디세이...

지금...제 대기목록 일번이옵니다^^;;

비로그인 2004-07-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행복한 사람입니다. ^^

마태우스 2004-07-0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안되지!!!!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데.... 서운하네.

진/우맘 2004-07-0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니임~ 울 아버님은 저 안 키우셨거든요? 울 서방님 키웠는데..^^;;;

미완성 2004-07-0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자세..!
역시, 양촌리 이장댁 둘째 며느리다우십니다.
시아버님 저녁 밥상에 술 한 잔 올려드림이 어떤지...;;

부리 2004-07-0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 그만 하지!

ceylontea 2004-07-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아버님이시네요... 분치기 놀이 정말 멋져요...
분치기 놀이 계속하면서 효도하세요...

sooninara 2004-07-0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그짬시간에 도서관까지...역시 진우맘은 대단해..^^
어버님이 정이 많으시구만..

책읽는나무 2004-07-0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쓴것 다 날아가버렸네.......ㅡ.ㅡ;;
분~~ 치기 조금씩하고...다른 효도법을 강구하는 저자세!!
만인이 본받아야할듯??^^
진우맘님은 도대체 어찌 시부모님께 공양을 하길래....저런 사랑을 받누??^^
진우맘님....당신이 아마도 숨은 효부인듯!!.....^^

진/우맘 2004-07-0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무님....모르시는군요! 그 어떤 효부도 딸래미만큼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그냥 딸인척하고 개기는 자세가...오늘의 진/우맘을 낳지 않았나, 싶군요. 물론, 시부모님 나름이겠죠. ^^;; (자랑이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