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교육정책이 엄청 바뀔 조짐이다. 지금도 내 생각엔 넘쳐나는 특목고들이 더 넘쳐날 것이
고, 평준화정책은 수십년만에 이제 바뀐다고 하니 바뀐다면 어떻게?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예전
의 입시정책으로 돌아간다는 소리밖엔 상상이 안되는데...
물론 대학이 자기네 필요한 사람을 자기네 기준으로 뽑는것은 원칙적으로 맞다. 하지만 그게 어떤
모습으로 한국에서 나타날지가 거의 뻔한 -아닌가? 역시 내 상상력의 부재인가?- 상황에서 지금
내가 취해야할 행동은?
어제 오랜만에 알던 엄마와 국제전화임도 잊고 통화를 한시간여 했다. 우리딸처럼 이제 7살이 되
는 아이들이 가는 수학학원에 대해 얘기해줬다. '소마' 라고 사고력, 창의력 수학을 하는 곳이란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지난 12월에 입학시험을 봤는데 떨어진 집들은 입다물고 있고, 합격한 -
대학입시야? 웃겨- 집들은 자랑에 바쁘단다. A~E까지 등급이 있는데, 보통 합격해도 C반에 합격
하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허나 가끔 A반에 합격한 애들이 있는데, 이 애들은 주로 또 CBS인가 뭔
가 하는 영재학원에 다니던 애들이라고 한다. 양재동 costco's 근처에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
데... 결국 그 소마인지 뭐시긴지 하는 학원에 입학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다시 그 전에 cbs인지
뭔지 하는 학원에 다니고... 그럼 그 cbs인지 뭐시깽인지는 입학시험 안보나? 아님 소마에 합격한
애들은 두번의 입학시험에서 벌써 영예롭게 합격장을 먹은 것인가? 쓰다보니 나도 웃긴다. 푸하
하.
여기서 유치원 간지 4달 된 우리 딸은 아직도 영어 잘 못하고, 그래서 친구들과 잘 못놀아 나는 그
게 속이 상하는데 -영어 못하는거 말고 친구랑 잘 못놀아 혼자 노는것-, 한국서 영어 유치원 다니
는 애들이 오히려 집에 와서 또 영어 과외받고 문법하고 해서 영어를 더 잘한다. 이것도 웃기네?
나랑 통화한 집 딸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가 다 된단다. 7살인데. 물론 그 애는 내가 보기에도
언어천재적인 요소가 많은 아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 한국에 우리 딸같이 무작정 대책없이(?) 노
는 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들 스케줄이 꽉 찼다. 우리 딸은 뭘 시키고 싶어도 시킬 게 없다. 여긴
학원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인건비가 비싸 피아노 레슨 같은건 엄두를 내기가 힘드니까. 집으로
와주는 선생님 없으니까...
그럼 여기는 애들의 천국인가? 여기 애들은 공부 부담이 없는가? 물론 대부분은 그렇다. 하지만 아
닌사람들도 역시나 있다. 한국서 그렇게 시키는 집들이 솔직히 아무 대학이나 가도 좋다는 심정으
로 그렇게 시키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다 목적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에 비해 여기는 땅덩이가 워
낙 넓어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시키는 사람이 동네에 흔하질 않아서 안보이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시간당 수백달러짜리 과외를 시킨다고 하고, 돈만 있음 가는게 아닌가 했던 기숙형 사립고교들도
그 비싼 학비를 -연간 4만달러 이상- 내는 것만으로 가는게 아니라 철저히 준비를 해야한다고 한
다. 명문대 가려는 사람들은 최고 한국나이로 중 3때부터는 준비를 하고, 일찍 준비하는 사람들은
중1때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명문 기숙형 사립고교도 준비는 초등학교 5, 6학년정도부터는 한다고
하고. 여기도 시킬 사람들은 다 시키는 것이다. 다만 워낙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 부자들이, 열내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지 않으니까, 동부나 서부 좋은 주거지에만 많이 보이니까 다른 지역에 사는 한
마디로 한국식으로 하자면 시골사람들 눈에 안보이는 것일 따름이다.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신랑의
사촌형은 애를 한국식으로 하면 종합학원에 보낸다. 영, 수 다 가르치는. 그 동네에서는 그게 일반
적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중국인이나 인도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또 교포들
은 대체로 부유층이 아니므로 자기들 삶에 바빠 그런 흉내를 못 내니까 우리가 또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좋은 대학 보내려는 사람들은 한국이고 미국이고 간에 열심히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소리다. 좋은 대학에 욕심이 없는 대다수 미국인이니까 -그냥 성적 좋으면 장학금 받고 주립대 가
고 하니까. 그래도 그 주에서는 취직해서 괜찮게 살 수 있으니까. 굳이 뉴욕에 가서 살 필요 없으니
까- 우리처럼 열내지 않겠지. 안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우리는 안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나?
성적순이 행복순은 아니라고, 자기를 사랑하며 만족하며 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솔직
히 그렇다고 해도 내 애가 영 공부 안하고 놀면 그 때는 좀 달라질 것도 같다- 이제 평준화 시대의
마감이 도래했는데 아직도 그런 소신으로 살 수 있을까? 이것도 다 평준화 시절이었으니 할 수 있
는 한가한 소리가 아니었나? 고교 등급제가 시행되면 내신특혜도 생길 것이고, 그럼 더욱 특목고
는 활개를 칠 것이다. 그런데 그냥 너 행복하면 공부 못해도 되지 하면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이제
부터라도 죽어라 공부를 시키는 무서운 엄마로 돌변해야 하나? 아, 소신의 취약으로 인해 소신과
현실 사이을 방황하는 나는 어찌해야할까?
어쨌건 평준화 시절에도 고달팠던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더 고달파질 것은 거의 확실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