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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됐다. 미국을 대표한다는 서평가의 자서전이라니. 유년 시절에서 대학 시절까지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썼다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고3 때 수시 모집에 합격하고 자서전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연습장에 태어나서 고3까지의 기억나는 일들을 차근차근 적어내려갔다. 나이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덧붙여야지 마음먹었는데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오픈 북》을 알게 되고 읽으면서 나도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읽은 동화책 말고 기억에 남는 처음 읽은 책은 생일 선물로 받은 88년에 인쇄된 바른사의《한국전래동화》두 권이다. 지금도 책꽂이에 있는데 몇 번씩 읽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외사촌 집에서 읽으라고 주신 두꺼운 세계문학전집도 좋아하던 책인데 네 번이나 이사하면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엄마랑 엎드려서 <소공녀>, <올리버 트위스트>, <비밀의 화원> 등을 읽었다. 15년 이상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읽었던 느낌 때문에 지금도 명화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6학년 때 선물 받은 94년 1월에 푸른마을에서 펴낸《초콜릿 나무》는 제목과 초콜릿 색의 표지와 일러스트가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아빠께서 서울로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대형 서점에 들러서 꼭 책을 한 권씩 사다 주셨다. 한번은 신문에서 오린 듯한 도서 목록을 보여주시며 한 권을 고르라고 하셨다. 도서출판 유진의 세계으뜸문고 목록이었다.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흥미로운 제목들이 많았지만 난 독일아동문학상 수상작가의《핵전쟁 뒤의 최후의 아이들》을 선택했다. 그 책을 고른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제목에서 뭔가 강함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중1 때 동네 친구의 추천으로 열린책들의《개미》1권을 직접 샀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 당시에 책을 적은 분량씩 아주 오래 읽었나보다. 중2 때 2권을, 중학교 졸업하던 달에 3권을 샀다고 적혀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세 권에 걸친 긴 장편소설을 읽은 게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개미》를 읽은 뒤, 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 되어 있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은 건 대학 입학하고 나서였을까. 고등학교 때는 청소 시간마다 도서실에 자주 갔지만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였는지 전이었는지 아빠께서 주문하셨던 삼국지와 태백산맥 10권 세트를 읽은 기억 뿐이다. 미니홈피에 대학 시절부터 읽은 책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보고는 무척 놀라워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과제 때문에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실험 리포트를 쓰기 위해 과학 도서 쪽에 있었는데 눈에 띄어 꺼내본 책이 사이언스북스의《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였다. 그날 이후로 넓은 도서관을 구석구석 살피며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냈다. 토요일마다 도서 신문을 꼼꼼이 읽으며 관심있는 책의 제목 리스트를 작성하여 도서관에서 찾아 보곤 했다.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한국 소설이었는데 책 안에서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했다. 며칠 후 학교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하서출판사의 명작선 틈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는 바로 샀다. 2년 후, 조이스 메이나드의《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를 읽을 때는 심각한 내용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대학 시절 엄청난 양의 책을 읽으면서 소설에 국한되어 있던 독서 범위는 여행, 예술, 인문 등으로 넓혀졌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을 좋아하게 되었고, 여행과 봉사(奉仕)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비야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외수 작가의 시원스런 문체도 마음에 들고, 국사 점수는 엉망이었지만 역사소설도 좋아하게 되었다. 김점선, 한젬마의 미술 이야기도 재미있고, 여행과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는다. 어린 시절 많은 책을 선물해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고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