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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3 ㅣ 밀리언셀러 클럽 21
에드 맥베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평점 :
한동안 즐거움을 주었던 제프리 디버 선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의 마지막 권이다. 당분간 새로 나올 단편집이 별로 없어 보여 아쉬움이 남는데, 곧 윌리엄 아이리쉬의 새 단편선이 나올 예정이라 몹시 기대되는 바이다.
3권의 포문은 얼마전 타계한 경찰소설의 대가 에드 맥베인의 작품이다. 영어권 추리소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 대표 추리소설가 10명씩 뽑는다면 미국팀 10명 중에 들어갈 만한 작가로 본다. 제목은 <즐겁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뉴욕으로 이사 온 시골뜨기는 도시생활의 모든 것이 즐겁다. 더구나 1년 중 가장 즐거운 크리스마스 아닌가. 들뜬 기분으로 술집에 들어간 그는 옆 손님에게 자신의 즐거운 마음을 알리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옆 손님은 기분이 별로다. 솔직히 결말이 싱겁지만 에드 맥베인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대사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집은 '서스펜스 걸작선'이다. 주인공 두 사람의 충돌이 점점 더해지면서 느껴지는 서스펜스는 꽤 뛰어난 편이다.
할란 엘리슨의 <번스타인 죽이기>가 뒤를 잇는다. 할란 엘리슨은 잘 모르는 작가지만 미국에서는 사회 비평가, SF소설가, 추리소설가로 꽤 명망이 있나보다. 장난감 회사의 중역이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번스타인이라는 여자를 죽이지만 다음날 그녀는 멀쩡히 출근한다. 번스타인을 3번이나 죽였지만 계속 출몰하는 번스타인. 그는 번스타인의 비밀을 추적하는데...흥미로운 단편이다. 초반부 장난감 회사의 실상 이야기도 재미있고, 마지막 결말도 재미있다. SF소설가로 유명하다더니 결말은 SF소설에 가깝다. 이 작품도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번스타인으로 인한 서스펜스가 출중하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범죄소설가 중 한 사람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작품도 있다. 국내에는 그의 장편이 두 편(<도끼>,<인간사냥>)밖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모두 뛰어나다. <인간사냥>은 멜 깁슨 주연의 영화 <페이백>의 원작이다. 매력적인 <인간사냥>의 주인공 파커 시리즈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여기에 실린 단편은 <이것이 죽음이다>. 이건 옛날에 본 작품인데, 목을 매달아 자살한 소심남이 자신이 죽은 방에 못 박혀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보면 절대 자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후회와 아픔 등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 뛰어나다. 소름이 오싹 돋는다.
<비탄에 잠긴 집>은 여탐정 워쇼스키 시리즈로 유명한 사라 파레츠키의 작품이다. 얼마 전 워쇼스키 시리즈의 최근작 <블랙리스트>가 국내 출간된 바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워쇼스키 시리즈는 아니다. 허황된 로맨스 소설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좀 더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담당 편집자, 돈 되는 책에만 혈안이 된 출판사 중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여기나 거기나 편집자 인생은 어쩜 그리 비슷한지...베스트셀러 작가의 창작혼(?)이 어디서 나오는지, 작가에게 베스트셀러를 쓰게 만들기 위해 출판사 중역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흥미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섯 번째 작품 <울타리 뒤의 여자>는 미키 스필레인이 썼다. 미키 스필레인은 1950년대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 말이다. 1915년생인 그는 여전히 살아 있고, 최근까지 작품 활동을 했다. 전성기가 1950년대인 작가라 웬지 낡아보이는 느낌을 주는 작가이다. 수 크라프톤의 킨시 밀혼 시리즈에서 미키 스필레인 책을 읽는 노파가 등장할 때 그 노파 취향 한 번 올드하군, 했었다. 다시 말하지만 미키 스필레인은 현재진행형의 작가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혼탁한 사회 속에서 주먹과 총으로 사회악을 일소하는 마이크 해머를 등장시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 뒤의 여자>는 총과 주먹은커녕 삿대질 한 번 등장하지 않는 서정적(?)인 단편이다. 우리는 이 책을 보고 증권가가 옛 친구이자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여운이 깊게 남는 괜찮은 단편이다.
<호수 위의 남자>는 로버트 바나드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거의 소개된 바가 없는데, 소개글을 보니 크리스티, 마저리 앨링엄, 루스 렌들 등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다. 미국의 남자 작가인 그가 영국의 여성 코지 미스터리 대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코지풍의 단편을 썼다. 프로필만으로는 더 알고 싶은 작가이다. 호숫가에서 발견된 정체 불명의 남자 시체의 비밀을 풀어가는 경찰의 이야기와, 부유하지만 치매끼가 있는 노인과 결혼해 재산을 빼앗으려는 악녀의 이야기가 병행되다 나중에 합쳐진다.
<수상한 금발 여인>은 미국 하드보일드의 가장 탁월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의 단편이다. 로스 맥도널드는 사색적인 탐정 루 아처의 활약을 그리면서 일그러진 미국 사회의 현실과 파편처럼 조각난 미국 가정의 참혹한 현실을 아울러 담아내고 있다. 20편 남짓한 루 아처 미스터리는 현대 미국 추리소설의 금자탑으로 찬란히 빛날 것이다. <수상한 금발 여인>에도 루 아처는 등장한다. 경호 의뢰를 받은 그의 눈 앞에서 의뢰자가 권총으로 피살된다. 사건의 이면에는 언제나처럼 망가진 가족사가 떠오른다. 다소 짧은 게 아쉽다. 루 아처는 역시 단편보다 장편이 어울리는 듯...
<인생은 카드치기>는 단편의 대가 빌 프론지니의 작품이다. 빌 프론지니는 무명탐정(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이 활약하는 일련의 단편들로 유명해졌으며. 단편 앤솔로지를 만들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는 무명탐정은 등장하지 않고, 갱들의 불법 도박장을 터는 악한(?)을 그리고 있다. 도박장을 터는 장면과 무서운 갱들의 콧털을 뽑은 후 사후 대처하는 프로페셔널한 악한의 행동들이 주는 재미가 크고 마지막 악한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도 멋지다. 프란지니가 단편을 얼마나 잘 쓰는지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재수 옴 붙은 날>은 에드 고먼이라는 낯선 작가의 작품이다. 주인공은 재수없게도 아내의 옛 연인에게서 온 연서를 훔쳐본다. 기분은 처참하기 그지없는데 그날따라 일어나는 일마다 재수가 없다. 그야말로 재수 옴 붙은 날이다. 다행히 결말은 해피엔딩이니 안심하시길...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엄청나게 재수 없는 일들의 와중에 계속되는 서스펜스가 제법 근사한 편이다.
<추억의 유물>은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셔린 맥크런의 단편인데 한 마디로 대단한 작품이다. 단편 하나에도 엄청난 실력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록스타와 20년 후 만난 인생이 고단한 웨이트레스. 그녀는 자기처럼 퇴락한 록스타에게 연민을 느껴 마음을 다해 그를 위로해준다. 그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꿈 많았던 자기 학창시절의 추억의 유물이므로...아름다운 추억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문장력도 좋고, 뒷이야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작가의 실력도 좋다. 결말도 일품이고. 무엇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록스타 한 번 좋아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협곡 너머의 이웃>은 위에 언급한 로스 맥도널드의 전부인 마거릿 밀러의 작품이다. 부부가 모두 비평가들에게 절찬을 받았고, 각각 미국추리작가협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두루 인정받은 작가들이다. 외딴 협곡에서 어린 딸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그들의 행복은 협곡 너머에 젊은 스미스 부부가 이사오면서 깨진다. 어린 딸이 부모보다 스미스 부부를 더욱 따르는 것이다. 분노한 부부는 스미스 부부네 집으로 쳐들어가지만...미스터리나 서스펜스보다는 공포물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잔잔하게 시작해 점점 긴장의 압력을 높여가는 마거릿 밀러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도 날 막을 수 없다>는 미국의 존 맥도널드의 작품이다. 이 사람도 미국에서는 꽤나 대접받는 작가인데 국내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다시피 하다. 시골 카운티의 보안관이 감옥에 갖힌 용의자를 공개 처형하려는 마을 사람들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다소 짧고 큰 임팩트는 없는 소품이지만, 서스펜스 느낌은 좋다.
<너무 젊고, 부유해서 죽은 사나이>는 존 루츠가 썼다.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 마이홈을 장만한 부부. 옆집에는 거부가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의 부의 정체는 강도짓이었다. 그런데 그 강도가 걸작이다. 부부와 경찰에게 자신이 강도짓을 하는걸 천연덕스럽게 밝힌다. 경찰들은 분통이 터지려 하지만 남편은 이 강도의 호탕한 성격이 웬지 마음에 들어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곧 남편은 강도가 자신의 아내까지 훔치려하는 걸 알고 격분한다. 경쾌하게 시작해서 어둡게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초반부의 경쾌한 필치의 느낌이 좋았기에 끝까지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3권의 수록 작품들을 대강 살펴 보았다. 여느 때처럼 3편만 뽑아보자면...조금 어렵다. 3권의 작품들은 거의 전부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꼽자면 <추억의 유물>, <울타리 뒤의 여자>, <비탄에 잠긴 집>을 선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