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 이노우에 마기
기적의 존재를 믿는 탐정 우에오로 조. 그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사건의 여러 가설을 전부 검토하고, 모든 가능성을 낱낱이 제거해 나간다. 최후의 최후까지 파헤쳐봐도 끝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결국 기적이 존재함이 증명되는 것이 아닌가! 기적으로 보이는 불가능범죄 속의 트릭을 밝혀내고, 불가해한 기적을 인간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게 일반적인 탐정의 역할이라면 이 소설은 정반대다. 이 참신한 역발상이 제대로 먹혔다. 예전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처럼 대전게임의 형식을 빌어 기적을 믿는 탐정에게 속속 도전하는 능력자들. 그중에는 전직 검사도 있고, 프로페셔널 킬러 같은 범죄의 전문가도 있다. 그들은 현장을 분석해 다양한 물리 법칙 등을 내세워 몇 가지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지만 끝까지 다 들은 탐정은 오직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가설들을 논리적으로 파해하는 탐정의 활약이 재미 포인트다. 즉, 도전자는 트릭을 풀려 하지만 탐정이라는 작자가 어떻게든 트릭을 미궁으로 남기려 하는 역할의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보통 추리소설에서탐정의 도전자는 대개 범인으로서 트릭이 밝혀지면 끝장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한계에 달한 본격 추리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린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 개의 흥미로운 가설이 세워지는 이런 추리소설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탐정의 진짜 해결 방법이 가장 강력해야 하는데 그 점이 살짝 아쉽다.
4위 <진실의 10미터 앞> - 요네자와 호노부
일상계 학원 미스터리로 시작해 본격 추리, 중세풍 판타지를 가미한 추리소설 등 손 대는 장르마다 성공시키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기린아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이다. 전작 <왕과 서커스>에서 활약한 여성 기자가 일본의 각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취재하는 도중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짜 얼굴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다치아리이 마치는 대단한 추리력의 소유자로 사건 관계자에게 듣는 사소한 몇 마디로도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는데 전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섯 개의 수록작 중 잡지 연재 사정상 급하게 써야 했던 '정의로운 사나이' 말고는 대부분 수준이 높고, '고이가사네 정사'와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이름을 새기는 죽음' 같은 작품들은 최상급이다. 특히 '고이가사네 정사'는 2010년대 일본 단편 추리소설을 모두 통틀어서도 버금 가는 작품이 없어 보인다. 기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취재 윤리 및 기자로서의 마음가짐 등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통찰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요네자와를 오늘의 요네자와로 만들어준 독특한 장점, 즉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한동안은 작가가 그린 세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문학적 여운'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해 더욱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