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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서경식 선생은 일어로 쓰고 나는 조선글로 읽는다. 때로 일본어로 쓰여진 그의 문장 느낌을 상상해 본다. 조선말을 할 때의 너무나 겸손한 그의 어투를 떠올리고 그의 글도 그럴지, 아니면 상까지 받은 에세이스트니 아주 유려할지 궁금하다. 언어라는 장벽을 넘고자 미술과 음악을 도구로 부리면서도 언제나 이물감을 남기고자 애쓰는 것도 번역전에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홍성담의 욕조
이 책을 읽고 이 그림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물고문을 당하고 끝내 거짓자백을 강요받았던 화가는 그를 고문하던 물을 밥이자 놀이였던 고향 바다로 바꾼다. 너무도 배고팠던 이중섭이 그렸던 소박한 낙원이 떠오른다. 인간다움을 모두 내려놓기를 강요받은 그때, 그들은 너무나 놀라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머, 상상, 낙관.
때로 걸개그림이나 다수의 대중이 모여서 작업한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직접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 물질감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농악을 실내에서 듣고 절대 그 진가를 알 수 없고, 걸개는 사진으로 봐서는 그 박력이 전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긴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심박이 빠르게 뛴다. 내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이 무수한 이들의 노동임을 알면서도 떡허니 걸린 걸개를 보고 새삼 인간의 힘에 놀라는 것이다.
정연두 - 내사랑지니
정연두의 내사랑지니를 보자. 오늘과 꿈을 찍는다.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생인 그녀는 언젠가 알래스카를 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 다수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허망하다. 헛된 꿈과 어쩔 수 없이 살아하는 현실에서 '우리'를 본다.
나는 근대를 지나온 우리 다수가 디아스포라라고 느낀다. 우리 다수는 고향에서 쫓겨났으며, 원치않는 오늘을 강요받고 허망한 꿈을 꾸다 느닷없이 죽음을 맞는다. 아니 이미 죽은 오늘을 산다.
허망한 꿈과 절망 사이에서 민중을, 서경식이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를 본다.
서경식 선생은 글의 말미에 지쳤다고 말한다. 팟캐스트에서 최근 일본의 상황이 한가하게 미술이야기를 한다고 누가 듣겠는가 하는 낙담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조선을 이야기하고 우리를 이야기해주겠는가. 월북작가들과 중국 조선족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후기에 이렇게 짧게 언급해서 잔뜩 궁금하게 한다음 끝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생이 더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기를 촉구한다.
무엇이 민중예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속에서 나는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 절망하면서도 살아남겠다고, 그것도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어쩔수 없다면 인간답게 죽어버리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희미한 무엇을 본다. 그렇게 살아낸 서경식 선생을 본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계속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