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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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오지 않는 버스를 한참을 기다리며 눈물이 범벅인 채로 책을 덮는다.


서경식 선생의 신간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다루는 첫번째 화가는 신경호다. 신경호는 518의 진정한 증언자의 예술작품은 없다고 단언한다. 진정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죽었기에 자신처럼 그저 언저리를 배회하던 자의 증언이 '얼마만큼 그순간의 진실'을 증언하는 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생사를 갈랐든 생존자들은 프리모 레비처럼 끝없이 증언하다 지쳐 죽거나,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내가 인간이라는 치욕"을 견디는데 온 힘을 소진해버린다.


한강은 무수한 자료를 살피고 증언을 듣고 글을 쓴다. 자신을 야만의 현장에 두고 글을 쓴다. 작가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뇌수냄새와 써근내가 진동하는 거리에 서 있는데. 


왜 그들은 도청에 남았을까. 어리디 어린 중학생 부터 직장인 노동자 그들이 죽기 위해 그곳에 남았을까.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기에 가지는 '존엄'에 대한 갈구가, 희망이 그들을 그곳에 남게 했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야만적인 시대에 아주 작은 흔적만 남기고 그들은 사그라든다. 


아직도 518 광주를 빨갱이폭동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다. (부끄러워 그런 것이라면 이해해봄직도 하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왜곡된 진실로 덮으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여전히 우리사회의 지배층이다. 


아이를 품고 십수년을 소중히 키워왔는데, 이제 그 아이를 잃은지 채 반년남짓 되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가족이 아홉인데 포기하라고 잊으라고 한다. 갈무리 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시작조차 못했는데 잊으라고만 한다. 


여기 또다른 남겨진 이들의 삶을 기어코 장례식이 되게 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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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4-12-2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고 느끼는건 역시 살아남은 자의 자괴감, 그리고 25년전 그날 이후로도 한치도 변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 그래서 아무말도 하기 힘든 먹먹함이었습니다. 아 우리는 그자리에서 아직도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구나 싶은....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무해한모리군 2014-12-29 14:20   좋아요 0 | URL
읽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참담한 날들이라 조금 각오를 하고 읽었는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제는 쌍용차 후원달력을 또 받아보았습니다. 한해만 받고 말 줄 알았던 이 달력을 계속받다니 가슴이 답답하네요. 이곳을 도망치지 않을수 있을지요.

fiore 2015-01-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518에 관한 소설인가요. 읽어봐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5-01-06 09:19   좋아요 0 | URL
작품 자체로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