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속에 새벽녘에 눈을 떴지만
정신이 든것은 쓴커피 한사발에
녹차 한주전자까지 들이킨 후다.
아직 어둑한 아침
월요일의 우울을 좀 상쇄시킬 수 있을까해서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를 출근길에 뽑아들고 왔는데, 첫 에피스드만 읽어봤는데 아직은 다소 평범.
주말동안은 헤밍웨이 위조사건을 읽었는데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졌다. 이 작품은 영원한 전쟁으로 유명한 조 홀드먼이 중편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조, 이야기, 소재가 완벽하게 맞물린 작품이다.
독서경험이 일천한 내게 헤밍웨이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미국은 영화 속 브루스윌리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거칠고 술담배도 잔뜩하는 나쁜 어른인데 가부장적 책임은 끝내 버리지 않는. 조 홀드먼 역시 헤밍웨이 처럼 참전 군인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그들을 사로잡아 전쟁터로 내보낸 이유가 무엇이든 그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며 살과 피가 튀는 장면일 것이다. 나 같은 소심한 인간은 무서움에 진작에 미치거나, 인간 존엄에 대한 회의로 사람을 무차별하게 죽이거나, 그러는 내가 무서워서 총을 입에 박고 자살했을텐데 이 위대한 인간들은 글을 쓴 것이다. 운명이라는 덫에 걸린 인간들의 모습을.
우리의 작가 조 홀드먼을 꼭 닮은 주인공은 실감나게 다양한 종류의 죽음을 경험하고, 점점 나쁜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배나온 중년의 헤밍웨이 덕후가 세상종말과 관련이 있다니, 인류란 참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죽일 수 있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읽자 마자 다시 한번 읽고, 나온 연도를 확인하고 놀랐다. 평행이론을 다룬 다른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있지만 주제와 이렇게 멋지게 어울리는 작품은 드물다. 훌륭한 소설이다.
아이의 텐트에 마노아님 서재에서 본 꽃책을 놓아주었다.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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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폰으로 찍어 엉망이지만 실제로 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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