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처럼 스무살에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를 만났다. 에세이까지 포함한다면 내가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작가들 중 하나다. 늘 좋기만 했던건 아니지만 상실과 고독, 공허를 그려내는데 참으로 탁월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시간도 음악도 그는 공간으로 멋들어지게 그려낸다.
이 책 여자없는 남자들에서
조용한 바닷속 물에 산란된 빛은 가지가지 색으로 반짝이고 바다바닥에 빨판을 붙이고 물구나무서서 송어가 오기를 기다리며 하늘거리는 칠갑장어.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고독이다.
이런건 어떤가. 어느날 눈을 떠보니 인간이 된 애벌래. 먹고 움직이는 것 자체도 고되고 낯설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같은 공간을 오가던 어느날 문득 자신은 이 세상에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고, 익숙한 공간은 낯설고 위험한 곳임을 인식하게 된다.
또 다른 글에서 그는 헤어진 옛연인을 14살에 만났어야만 하는 인연이었다고 말하고, 그녀를 잃자 자신의 14살을 잃었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어느순간 만져지는 마음속 빈구멍을 기가 막히게 그리는 것이다.
이 부유하며 지적인 중년의 작가는 자꾸만 커지는 마음의 구멍을 참으로 성실하게 써내고, 나는 이렇게 바람이 휑하게 부는 날이면 그의 글을 읽고 내 구멍을 만져본다. 곱게 달이 뜬 밤 숭어를 기다리는 칠갑장어처럼 고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