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수를 만들어준다는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깡마른 여성출연자가 나와서 '거위의 꿈'을 부르는데, 목소리가 안나온다.
연습이 과했을까?
연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 간절해보여서
그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엉엉 운다.
연휴를 시작하는 날 김영하가 번역한 게츠비를 읽었다.
김영하는 이 소설의 핵심은 게츠비가 그토록 원하는 데이지가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데 있단다.
킹콩을들다라는 영화에 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연습하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보상한푼 받지 못하고 실업자되기 십상이고,
어디 써먹을 데도 없고, 여자가 근육생겨서 우락부락해질지도 모르는데 역도가 꿈인 친구들이 나온다.
아 이 역시 감동적이라 눈물이 난다.
꿈이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좀 더 내가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게 변해하는 과정이니
그 대상에 가치 여부는 별 상관없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간절히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을 며칠 보았더니 기왕이면 산에 올라가는 길도 즐기면서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간절한데 가지지 못한게 너무 많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 일까. 실패를 잘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라는 걸 알아서일까. 그도 아니면 저 열정 이후의 삶이 더 걱정 되어서일까.
요즘 선후배들을 만나면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그 때 이후 열심히 산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신랑이랑도 연애 시작할때쯤 이야기만 많이 하는듯해 그것도 속이 상한다.
우리의 꿈과 관계들은 비쩍 말라서 과거에 박제되어 있는듯 하다.
그래서 꿈에 대한 글만 봐도 눈물이 나나보다. 할머니들처럼 내 꿈을 추억하다보니.
설날이 지났으니 진짜 한살 더 먹었는데 나는 꿈을 기억하는 사람 말고, 자꾸자꾸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자꾸자꾸 꿈을 만들고 꿈지럭 되면서 지내는 모습이 즐거워서 다른 사람들도 자꾸자꾸 꿈을 같이 만들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말이다. 나는 꿈의 공기번데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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