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했다 네시가 넘어서 퇴근했는데 마감 하느라 나만 늦어져서 짜증이 났다. 퇴근길에 서점에 들렀는데 너어제뭐먹었어4 권은 반디 사당점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홍대까지 가서 사자니 오전 근무만한 신랑이 목빼고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전철타고 집으로 향했다. 전철엔 또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모두 네시쯤 퇴근했나보다. 난 늦은게 아니었다.
전철 바닥이며 플랫폼이 물기로 질척한데 마침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을 읽는 중이였다. 어느날 갑자기 끝도 없이 비가 내려 세상이 물에 잠기자 엄마의 시신을 뗏목에 실고 사람들 찾아 나서는 주인공과 한시간 넘게 질척거리는 전철바닥을 뚫고 퇴근하는 나, 기필고 이 인간들이 없는 집으로 가려는 나와 인간을 찾아나선 주인공. 어쨌거나 우린 둘다 힘들고 배고팠다.
앞으로 여자와의 통화는 더 드물어질 것이고 간혹 이어지는 만남은 지루할 것이고 말투는 무뚝뚝해질 것이며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럴수록 여자는 더 자주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소홀하고 무관심한 김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서운함과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울컥하여 화를 내고 얼마 후에는 화낸 것을 사과할 것이다. 그런 일이 얼마간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오로지 마음을 되받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며 김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데 시간을 쓸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일을 되풀이할 정도로 김을 사랑하지 않으며 어쩌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해탈해질 것이다. 김으로서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그때 비로소 여자에게 애틋한음 느끼게 될지도 몰랐다.
저녁의 구애 - 편혜영 中
밥먹고 신랑 무릎을 베고 누워 책을 계속 읽는다. 왠지 로맨틱해야할듯 하지만 신랑은 돼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돼지 소리를 내고 있다. 왜 돼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소리를 내고 싶은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한 말 몇마디를 던졌더니 내 우울함을 무심으로 대처하는 신랑은 내 머리를 잠깐 스다듬어줬다.
몇 차례의 실망이 지나간 뒤에야 그 여자는 남편이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는 또래보다 학위가 늦었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특별하게 친화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고유한 개성이라고 불러야 할 독특한 무심함이 있었는데, 그 체념에 가까운 무심함 덕분에 어떤 좌절이나 분노도 조용히 비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열정이나 연민, 깊고 끈끈한 사랑까지 침착하게 씁쓸히 지나쳐 갔다.
훈자 - 한강 中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두루 마음에 들었다. 아 우리 모두 정말 이렇게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편은 시처럼 감정이 농밀하게 뭉쳐져 있어서인지 마음이 쓱 하고 베이는 듯 하다. 아비에게도 마음속 칼을 품고서야 다가갈 수 있는 아들도 있고,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 된 아비도 있고, 자식을 사랑할 시간도 없이 생활에 쫓기는 어미도 있고, 어디 말할 곳 없이 홀로 마음속에 영화를 만드는 할아버지도 있다.
측은지심.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마음이라 했다. 옆 사람을 더 많이 안타깝게 생각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