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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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소유와 부에 집착하는 이교도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은 대개 사회적, 물질적 이기심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믿었다. 이야말로 모든 이교도의 실책이며, 또한 패배를 가져오는 그들의 약점이었다. 진정한 전사는 세속적 욕망보다는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바에 따라 움직였다. 경제적인 면이 최우선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가 최우선이었다. 

423쪽 

"인간은 불행히도 도덕관념을 지닌 탓에 파멸한다." (중략) 인간의 본성만이 수상쩍고, 이리저리 잘 변하지. 인간만이 선을 알면서도 악을 행할 수 있단다. 인간만이 가면을 쓰지. 인간만이 스스로를 실망시킨단다.  

156쪽 

너무 많이, 너무 쉽게 믿으면 죽는다. 그러나 믿지 않고서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인간관계에 깊이와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건 우리가 미래까지 짊어지고 가게 될 피해야." 막스는 생각했다. 불신이란 기만당하게 될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마음에 포탄 구멍을 남긴다. 

280쪽 

그런데 과연 판에 박힌 이야기라는 게 뭘까? 어떤 삶이든 뚜껑을 들추어보면 이상한 데가 있는 법이잖아. 조용한 가정집 대문 뒤마다 별별 기막힌 것들이 숨어 있을걸. 정상이라는 건 신화일 뿐이야. 인간은 원래 정상이 아니야. 우리는 다 어딘가 이상해. 그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어딘가 잘못되어 있고, 비정상이야. 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지. 

288쪽 

사람들은 고대로 부터 서로를 나누고 미워하며 죽여왔다. 

그 나누는 기준은 사소하기 그지없어서 지금도 일부지역에서는 피부색의 농도차에 따라 종이 되고 주인이 되기도 하며, 우리나라 처럼 다 똑같은데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무슨 이유에서인가 (아마도 배가 고파서? 전쟁에 져서?) 종이 된 이유로 종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아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죽이는 이유 따위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혹은 필요에 의해서 너무나 쉽게 적은 만들 수 있다. 

세계대전은 그 선이 얼마나 긋기 쉬운지 이용당하기 쉬운지 또 얼마나 빨리 생겨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긴 세월 함께 살아온 마을을 삽시간에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역시 한 개인 안에서도 혼재한다. 이 책의 막스는 유태인 홀로코스트 피해자이지만, 미국의 무기 판매상으로 무수한 사람을 죽인 가해자 이기도 하다. 광대 샬리마르는 학살의 피해자이고, 가담자이다. 이로서 우리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외로운 개인의 사회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 속의 삶의 전형들 너무나 낯이 익다. 카슈미라에서 한반도까지 그들의 성격이나 인품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이유없이 포탄에 맞아죽고, 강간당하며, 고문당했다. 이유없이 누군가를 강간하고 고문했고 죽였다. 빨갱이가 악이 되기도 하고, 힌두교가 악이 되기도 하며, 이슬람이 악이 되기도 한다. 그를 죽이는 누구도 그가 선량한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광기를 살인으로 풀어놓을 수 있는 시대, 그 욕망의 대상이 돈이나 권력을 가진 침입자와의 거래나 이상한 약물 같은 터무니 없이 행복과 동털어진 것과 짝지어진 시대가 아니었다면.(현재도 그럴지라도) 그는 그냥 일류 광대가 될 수 있었고, 그녀도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인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시대 앞에 사람은 어찌나 나약한지, 평화로운 죽음을 원한다면 행복한 운명을 원한다면 평화로운 마을, 평화로운 시대를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온갖 분쟁의 이유들의 터무니 없음을 세 남녀의 인생사를 따라가며 보여준다. 멋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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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6-2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을거에요. 내일모레 지르기 위해 장바구니에 얌전히 들어가있어요. 그런데 브론테님의 페이퍼도 읽었고 휘모리님의 이 리뷰를 읽었는데도 이 소설은 대체 무슨 소설일지 짐작이 잘 되질 않아요. 음, 역시 반드시 읽어봐야겠어요.

참고로 저 지금 [롤리타] 읽고 있는데요, 와, 이거 엄청나게 관능적이네요. 어휴-

무해한모리군 2010-06-29 14:04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은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야긴거 같아요.
모든 걸 버리고 욕망을 따라나서지만 결국 충족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여자.사랑을 배신당한 남자의 증오, 긴 세월을 기다린 끝에 하는 복수,
그 배경이 되는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의 풍경.

롤리타를 읽으면서 영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어요. 도대체 원래 표현이 뭐였을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