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식이 우리와 닮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단지 그녀가 순종하는 자이기 때문은 아니니까 말이다. 병식은 세상이 '아더메치'함을 잘 알고, 그러한 세상을 경멸하고 냉소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런 세상에 철저하게 순응하며 산다. 결국 병식은 '복종하는 냉소주의자'이고, 이는 그녀가 공적인 복종의 의례와 사적인 냉소적 거리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은밀히 즐기는 냉소적 태도는 권력을 속인다는 자기 환상을 통해 순종하는 자신을 달래주는 자위기구에 불과하다. (중략)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는 "너는 자발적으로 그것을 해라!"라는 좀더 강한 요구가 숨어 있다. 이것이 관용과 배려의 역설이다. 현대사회의 힘은 바로 이러한 '자발적 순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마치 상대방을 올려주는 척하면서 상대방을 내려보라는 훈의 가르침처럼. (중략) 

병식의 자발적 순응의 결과(또는 의도)는 하녀 집단 내부에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임상수의 의도대로) <하녀>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일 수 있다면, 이는 하녀로 통칭되는 동일 집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헤게모니적 갈등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니까 은이는 전태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라 해도) 그녀가 자신의 계급을 주장할 때 그것이 비약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허망한 제스처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행위(공적인 순종을 벗어나 아니오!라고 외치는 행위)를 보여주는 순간에도 상징적 현실은 변할 수 없다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냉소적 태도없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은이는 처음으로 훈과 해라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기회를 얻지만 그것이 주는 계급적 역전의 쾌감은 스펙터클과 함께 연소된다. 이러한 면에서 은이의 분신은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의 냉속적 행위이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을 한다'에 가장 적절히 부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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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계급내 갈등. 

무기력한 냉소. 

잘난 척하며 이런저런 비판적 소리를 내어봐도  

결국은 세상이 그렇지 하며 순응하고 마는 나를 읽을 수 있구나. 

너와 내가 바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저버리면 남는 것은 냉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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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6-10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믿음보다도...그저 과정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근데 평론글이 왜이리 어려운건가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0-06-11 08:24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면 그게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는거 같아요.

언젠가 노사모와 진보정당 당원들의 열정의 차이는 뭘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된다는 믿음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는 말들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을! 뭐 이런 ㅎ

나중에 뵈면 더 말씀 나눠요.

머큐리 2010-06-11 08:37   좋아요 0 | URL
나 휘님한테 순대 얻어 먹으러 가야하는데...ㅎㅎ

비로그인 2010-06-11 09:25   좋아요 0 | URL
나두 휘님한테 순대 얻어 먹으러 가야하는데...ㅎㅎ

머큐리님~~휘님이 우리 배불리 먹여줄까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1 09:3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빚을 내서라도 배부르게 먹여드리겠습니다. 걱정마십시요.

아가들도 데려오셔도 됩니다 ㅎㅎㅎ

후애(厚愛) 2010-06-1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비가 내립니다... 한국은 많이 덥겠지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1 09:39   좋아요 0 | URL
밤에 더워 그렇지 낮은 사무실에 에어컨 빵빵하니 더위를 모릅니다.
후애님도 몸튼튼 마음튼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