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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 역시도 우리가 아는 세계가 아니다. 거기다 온갖 우연이 남발한다.
미래를 보는 한사내가 있다. 그 사내가 한 부자에게 그의 죽음의 일시와 상황을 알려준다. 그는 그 즉시 죽음의 공포로 죽은 것과 진배없는 상태가 되고, 그의 고명딸은 우연히 만난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그의 죽음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예정된 죽음과의 경주가 시작된다.
이 소설은 예정된 죽음 앞에서 유능한 비즈니스 맨이자 훌륭한 아비였던 사내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묘사는 하도 촘촘하여 읽는 나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분단위 초단위로 등장인물의 초조와 공포 불안을 5백쪽 남짓으로 풀어낸다. 추리소설답게 각장은 관계된 여러사람들, 사건의 당사자들과 경찰들의 입장으로 서술되며 사건과 관련된 정보의 조각들이 하나씩 둘씩 밝혀지지만 해결되기보단 점점더 예견된 죽음에 다가갈 뿐이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즉시 당신은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순진하고 공상적인 경찰 숀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진은 이 숨막히게 전개되는 소설의 유일한 숨쉴 구멍이다. 수사관별로 그려지는 사건보고도 그 수사관의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악한일지도모를 저 미래를 내다보는 사내를 포함해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일에는 엄격하면서도 순진한 성품이라 누구하나 미워할 수 없다.
일상적인 나의 생활공간에서 공기가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는 광경. 어둠이 찾아오고 평소에는 아름답게만 보이던 밤하늘이 나의 목숨을 노리고 매우 빠르게 덥쳐오는 광경. 그 밀도 있는 묘사에 허겁지겁 주인공의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책을 읽고 무척 화가 났다. 이런 소설이 긴 세월 부당하게 무시당해왔다는 사실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더 훌륭한 하드보일드한 소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에.
하나 다행인 것은 내가 글쟁이가 아니라 1940년대에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풀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