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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이미 읽은 듯한 책이 있다. 아니 이미 읽기도 전에 지겨워진 책이 있다. 이 책에 대한 40자평을 쓰라면 '전혀 지겹지 않다. 꼭 읽으라' 이렇게 쓰고 싶다.
1984는 내게 이런 식으로 단단히 오해되어 있었다. 꽤나 긴 세월 무수히 이 책을 인용한 다른 책들을 보면서 '쳇 딱딱하고 오래된 뻔한 이야기'로 잘못 알고 있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이 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다 읽고난 지금 분명히 알겠다. 선생님이 말해준 책은 모두 지겨울거라는 오해는 주로 맞지만 때론 틀리다는 걸 이 책이 보여준다. 그리고 어제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전혀 의심할 바없는 완벽한 시의성마저 씁쓸하게도 보여준다. 인간사회가 이리도 변한게 없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오는 영사(이 책에 나오는 전체주의 정당)의 모토다. 내 보기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토와 정확히 일치하는 듯 싶다.
전쟁이 더이상 누구와의 싸움이라기 보다 현체재를 유지하기 위한 평화추구 행위(집권층의 입장에서)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누가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 거기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했을까? 그저 잔뜩 싾인 신무기도 소진하고 내부국민의 결속력도 높이는 기능이 저 '테러를 억제'하려는 기능보다는 컸을 것이다.
주인공 윈스턴의 문제는 사회는 직무와 관련된 부분적 지능을 지닌 욕망이 거세된 인간을 요구하는 데, 자꾸만 사유하려는 자신을 표현하고, 욕망하며, 사회를 비평하려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인간은 흔히 사회적으로 제거되어 진다.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평판을 낮추려는 공작이나, 삼성노조원들에게 가해지는 도청, 미행, 살해위협이 뭐 이 책의 수준보다 딱히 덜 해 보이지 않는다.
나역시도 효율이 최상위의 목표인 이 사회의 수도 서울이 책속의 런던처럼 티브이 속 모습과는 동떨어진 흉물스런 콘크리트 모음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가끔 우리 조상들이 꿈꿨던 세상이 과연 이런 것이 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기계를 발명하면서 고르게 적게 일하는 유토피아가 올 것을 꿈꿨을 것이다. 현실은 한쪽은 과로사하며, 한쪽은 일이 없어 구걸로 연명이다. 한쪽은 과잉생산물 때문에 가격 폭락으로 생산자가 자살하고, 한쪽은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한다. 저마다 다른 종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 끔찍하게 차이가 나는 부의 격차를 지녀야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명백하게 아이들을 경쟁의 종으로 만들고, 어른들을 자식에 대한 뒷바라지 외에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할 작전이 아니라면 이런 끔찍한 교육제도를 유지하고 있을리가 없다. 필시 무지가 힘이라고 생각하는게 틀림 없다.
더 끔찍한 것은 책 속의 그녀를 통해 나를 본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꽃피던 70년대말에 출생하여, 이 이외의 삶을 살아본적이 없는 나도 그저 그들이 내 개인적 삶을 귀찮게 하지 않는 이상 적당히 규제를 어기며 살아남는 쪽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개발사업에 골몰하곤 내 본능과 이성에 의지해 해보는 규칙 어기기란 취미생활 수준이다. 능수능란하게 내처지에 맞게 이중사고(필요한 것은 기억하고 불필요하고 불편한 사실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아니 필요하다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도 거짓기억을 할 수도 있다)를 해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내가 있을 것인가? 더 두려운 것은 우리 세대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다음 세상이다. 내가 내 부모로 부터 희미하게 맡은 자본주의 이전의 세상에 대한 향취도 그 아이들은 모르리라.
이 책은 누군가의 공상을 그려놓은 책이 아니다. 익히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현재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우리의 현실 역시 충분히 두려운 것이다. 이 책을 들여다보며 내 안의 노예근성, 내가 생각하는 개혁의 예속성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역시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지 않고는 역사의 수레를 일센치도 앞으로 끌어당길 수 없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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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몇 구절>
- 아주 길고 긴 밑줄긋기. 공상한 세상이 아니라 이미 내가 보아 알고 있는 것들.
수백명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구나. (중략) 왜 그들은 좀 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그 같은 함성을 지르지 않는 걸까(중략)
(배급하는 냄비를 두고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 여자들을 보면서)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노동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많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계속해서 일하고 아이를 낳는 한, 그들의 다른 행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마치 아르헨티나 초원에서 소를 방목하듯 내버려두면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본받아 자신들에게 맞는 생활양식을 찾을 것이다. (중략)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힘든 육체노동, 가정과 아이에 대한 걱정,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영화, 축구, 맥주, 도박이다. (중략)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배급량을 줄이는 데 대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호응하도록 당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원시적인 애국심 뿐이다. (p100~101)
현대 생활의 가장 두르러진 특징은 잔인함이나 불안점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적나라함, 추악함, 무관심이란 사실에 그는 놀랐다. 주위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텔레스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짓말은 물론이고 당이 달성하려는 이상과도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따. 심지어 당원들의 생활조차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것, 이를테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 지하철에서의 자리다툼, 구멍난 양말 꿰매기, 사카린 구걸, 담배꽁초 모아두기 같은 것들이다. (중략)똑같은 생각을 하며 똑같은 슬로건을 외치고, 끊임없이 싸우며, 승리에 도취하고 이단자를 박해하는, 똑같은 얼굴의 삼억 인민이 사는 나라, 전사와 광신자들의 땅이었다. (중략) 그의 눈에는 런던이 마치 백만개의 쓰레기통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폐허처럼 보였다. (p104)
과거는 지워졌고, 지워졌다는 사실마저 잊혀져서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렸다. (p105)
그녀는 당을 증오하는 만큼 혹독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당이 하는 일 전반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이상 당의 강령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식이다. (중략) 당에 맞서는 어떤 종류의 조직화된 반역도 결국 실패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현명한 것은 당위 규칙을 위반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일이었따. 그는 혁명의 시대에 성장하여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당을 마치 하늘과 같은 불변의 어떤 것으로 발아들이고, 당의 권위에 저항하기는커녕 토끼가 개를 피하듯 그저 회피하기만 하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 얼마나 많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p186)
"그건 단지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것을 택했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어. 하지만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p192)
당이 행하는 무서운 짓은 물질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모두 빼앗아 가는 한편,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억지로 인식시키는 것이다.(p233)
현대 전쟁의 기본적인 목적은(이중사고의 원칙에 의해 내부당원의 지도급 수뇌들은 이를 인정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한다.) 국민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공산품들을 완전히 소모하는 데 있다.(중략)
그러나 이 같은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의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 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 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p267)
문제는 세계의 부를 실질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데 있었다. 재화는 생산되어야 하지만 분배되어서는 안 되었다. 결국 이를 실제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는 전쟁뿐이다.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p268)
부가 늘고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고 개혁이나 혁명이 있었지만 인간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발전한 게 없다.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p283)
신어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식으로 명칭을 약어화하면, 그 명칭이 지니고 있던 다른 연상적 의미가 거의 제거됨으로써 뜻이 한정되고 미묘하게 바뀔 것이라고 여겨졌다. 가령 '국제 공산당'이란 낱말은 보편적인 인류애, 붉은 깃발, 바리케이드, 칼 마르크스, 파리 코뮌 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합적인 상을 떠오르게 한다. 반면에 '코민테른'이란 낱말은 단순히 엄격하게 조직화된 기관과 명백하게 정의된 강령만을 암시할 뿐이다. 이것은 의자나 책상의 의미처럼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데다 그 목적이 제한된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다. (p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