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삼천오백원짜리 카스 한병을 마시며 주인장이 저자에게 싸인 받은 습지생태보고서를 읽었다. 

 이 치료에 들어간 돈 1백2십만원. 누군가 혼자 살려면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에 시작한 이치료가 이렇게 대단한 공사가 될 지 나도 몰랐다. 대견하다 이제 치과에 다닐 만큼 돈을 번 내 자신이. 사는 낙을 추구하려는 내가..

 나는 최규석처럼 가난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부럽더라..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너 더 공부해봐라'는 졸업학기 때 선생이 해주던 말이 아직도 가끔 귀에 맴돈다. 그래 정치경제학 해봤어야 밥 굶었겠지.. 최작가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벌기위한 수단으로 자기 일을 이용하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나는 두려웠고 생활을 택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젠 치과도 다니고, 뜯어먹던 친구들한테 한 턱 낼수도 있고, 엄마 가방도 사줄 수 있고, 반듯한 집에서 잘 수 있고, 내 컴퓨터도 있으니까.  

나는 외모에 신경쓰지 않아서라고 말했지만 언제나 행사티에 민복바지가 꼭 좋아서만 입었겠는가. 때로는 나도 곱게 차려입고 싶던 날도 많았더라. 한벌뿐인 정장과 하나 뿐인 정장 백(한달 백만원 벌던 사촌동생이 취직했다고 없는 돈에 동대문에서 사다줬던)을 들고 출근하던 첫날, '아 내일은 뭘 입지.. 왜 남자들처럼 정장 한벌을 주구장창 입으면 안될까' 절로 한숨쉬어지던 날들.  

나는 없다는게 참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그랬다. 비록 빌어먹어도 고개 빳빳이 들고, 없어서 얻어먹는게 아니라 단지 술값을 너무 많이 쓴거라고 구차한 거짓말을 했던 참 모냥새 빠지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조카들에게 뭔가 해줄때 기분이 좀 이상하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는게 너무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뭔가를 요구하는게 너무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내겐 어색하다. 그래도 근검이니 절약이니 하는 말로 훈계를 할 만큼 꼰대는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다를 뿐이고, 결코 그 느낌을 알 수 없으리라..  

아 그냥 궁상맞지 않은 가난의 이야기가 내 허영을 톡톡하고 건드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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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2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음주독서의 내공이란... 이거 만화책인가요? 그림은 가난뱅이의 역습과 같은 그림체인데...

무해한모리군 2009-06-24 08:49   좋아요 0 | URL
네 가난뱅이의 역습 삽화에 이 작품 케릭터들을 사용했어요 ^^
아침에 보니 제목을 '가난을 추억하며'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 몰라요 ㅎㅎㅎ
엄청 여유로운 광경이잖아요. 퇴근후에 카페에서 맥주한잔을 마시며 만화책을 읽는 처자의 모습 ^^;;
요즘 내가 치열하게 사는 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삶을 멀뚱히 지켜보는 느낌이라서.. 읽고 좀 우울했어요.

카스피 2009-06-2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을 창피하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다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이 세상은 언제나 돈 많은 사람을 우대하더군여! ㅜ.ㅜ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2:54   좋아요 0 | URL
가난하게 이웃과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나만 홀로 가난하게 살아간다고 느껴지면 정말 견디기가 어려운듯 해요..

후애(厚愛) 2009-06-2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에 쪼달리고 살 때는 부자들이 부러웠지요.
그런데 부자들을 보면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게 낫다고 생각한 저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3:04   좋아요 0 | URL
이 작품에 보면 최작가가 한달 백만원 원고료를 계약하고 달라지는 자신을 보면서 '야 나 돈 많이 벌믄 안되겠다' 생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잡고 살아야 겠지요. 독서도 그래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게으름이 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