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인터넷 서평꾼에다가 인문학 블로거인 저자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려니 손가락이 떨린다. 이 냉정한 서평가는 자기 책에 대해서도 책머리글과 프롤로그에 정확하게 묘사해 놓아서 따로 서평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저자가 지젝에 대해 한 말 그대로를 저자에게 돌릴 수 있겠다. 이 글은 6년차 직장인이자 비인문학 전공자인 내가 읽기에 때로 어렵고 딱딱하다. 그러나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의 어려움과 딱딱함을 생각하면 꽤 읽을만하고 도전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 예술, 철학, 지젝, 번역의 다섯가지 카테고리로 크게 나뉘인다. 나는 지젝과 번역 비평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었고, (그 재기발랄한 비유와 신란한 비평에 한 열번쯤 웃었다) 예술과 문학편 중의 김훈, 김규항 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가장 쉽게 공감 할 수가 있었으며, 역시나 철학은 다소 어려워 읽다 종종 길을 잃기도 했다.
하기는 저자도 언급했듯이 문학이란 자연어를 낯설게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낯설음에 주목하게 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속에 뜻 밖의 성찰을 얻기도 하니 어려움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딱딱한 글 사이사이에 언뜻언뜻 보이는 툭 내뱉는 저자의 유머는 평소 유머가 없는 것이 콤플렉스인 나로서는 더 공부하다보면 이렇게 유머에 대한 통찰도 생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든다.
철학 페이퍼의 마지막은 오규원의 시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를 인용하며 마무리 짓고 있다. 저자는 빈틈이 없는 철학적 로고스보다 '깨어져 있음'에 대한 관심이 문학적 로고스에 끌리도록 만든다고 고백한다. 그런 만큼 딱딱해 보이는 그의 책 역시도 깨어져 있음에 대한 관심을 가진 문학적 로고스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저자의 글이 실리기도 했던 창작과 비평 여름호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몇 마디를 옮겨본다.
문화평론가 오창은은 인문학을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학문으로, 지금의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소통 그리고 인간 윤리의 재구성이라고 봤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씨스템의 공세 속에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치 자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현장 속에서 삶의 바닥까지 내려가 몸을 엉키며 대화하는 '시민인문학''실천인문학'의 문제의식이 가치있다고 봤다.(p55)
나는 저자의 인터넷 글쓰기에서 위의 언급한 것과 같은 인문학의 가치, 앎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고봉준, 앞의 책 p58)을 발견한다. 평범한 다수의 대중의 '다른 삶의 대한 욕구' '인문학에 대한 욕구' 그 자체를 존중하고, 자신이 가진 인문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고된 노력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는 곁다리 인문학자가 아니라 참의미의 인문학자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