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황의 자취를 따라 중령 옛길 - 도산서원, 소수서원 - 도산서원과 도산자택 사이의 그의 시의 배경이 되었던 산책로 중 일부 - 영남 전통 촌락(권씨과 이씨의 촌락) - 청량산을 두루 들러보았다. 

중령 옛길은 한적한 흙길로 예전에는 주막길이 있었다 하나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다.
우리 兪씨도 경북 경주 인근에 모여살았으니,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아마 이 산길을 넘어 청운의 꿈을 꾸며 서울로 향했을 것이다.  

중령길은 퇴계의 형 온계가 사화에 휩쓸려 죽음을 당하기 전 애닳은 이별시를 주고 받으며 마지막 이별을 한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 높다란 고개길 뒤로 어지러운 정치사를 뒤로 하고 물러선 퇴계의 마음의 장벽이기도 했으리라.
 

 
중령숲길 

다음은 영남지역의 전통 마을을 방문하였다.
지자체 마다
서울닮기 관광도시화가 한창인듯,
교통이 꽤나 험한 이 곳도 마을 정비 사업이 한창이었다.
소박한 우리네 기와를 대신해 어디서 급히 공수해 온 기와 모냥을 흉내낸 것들과
플라스틱으로 번쩍번쩍 하는 검정 기와들을 보니 마음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각양각색 다양한 나지막한 돌담들을 뜯어내고,
양반내 담벼락을 흉내낸 모습으로 천편일률로 마을을 고쳐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깨끗한 물과 산
정갈한 어르신들 모습,
소담한 흙길,
여름의 들판의 모습은
보는 내 마음도 넉넉하게 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스친다.
고속도로가 뚫였으니, 이런 모습이남아 오년은 버틸 수 있을까? 

벌써 도로로 강이며 논밭이 마구 잘리어 나가니,
저 자리에 다음에 올때는 밥집이나 모텔이 들어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쪽 집에서 보인다는 까치구멍

ㅁ자 주택 안뜰에 가지런한 장독들

겨울 걱정없이 싾여있는 장작들

외할머님 생각이 나 찍어 보았다. 우리 외할머님의 택호는 싸립골댁이었다.  
우리 외가가 있던 언덕이 싸립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친정이름을 딴 자명댁으로 불리었고,
난 예전 같으면 아마 신광댁이 되었을 것이다 ^^ 

배산임수. 뒤로는 높은 산, 앞은 개울과 나즈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봉화 닭실마을 
투자로서의 집이 아닌, 주거로서의 집,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생각해 본다.

도산서원에 들렀다. 70년대 난개발로 덕지덕지 분칠한 건물들은 마음속 그래픽으로 지우고 원래의 소박한 도산서원을 본다. 세 칸 짜리 강당 하나, 도서관 하나, 책 만드는 곳 하나. 주변의 산과 우물에도 이름을 지어주어 자신을 반추했던 학자 퇴계를 본다.  오직 학문에만 힘쓰며 흐르는 물처럼 매일 배우며, 손톱만큼의 융통성도 없던 소박한 옹고집 퇴계. 이마가 넓적했다던 후손들에 의해 얼굴마저 조작된 채 그이의 사상마저 흔적 없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수서원은 퇴계 사후에 임금이 하사한 것이니, 퇴계와는 무관한 것이나, 그 시절 학습장소가 참으로 좋아보인다. 나도 산중 저런 곳에서 책읽으며 공부했다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여기서도 후손들이 지은 삐까번쩍한 흉물 건물들이 눈에 가시다.  



도선서원의 도서관 광명당 


소수서원 내 기숙사인 학구재. 책을 통한 배움을 뜻한다. 

혹여 기회가 되신다면 봉화 청량산도 한번 들러보셨으면 한다. 
높지않은 산에 요소요소에 숨은 재미가 있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하였으나, 김생이 공부하였다는 김생굴과 그 옆에  
난데없이 나타나는 산 중 폭포도 신비하였고,
(김생체는 청량산의 풍경을 본뜬 것이라 한다)
청량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종교가 없는 나도 자연의 숭고미에 눌려
두루 평안한 한해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봉화 청량사의 부처님. 수려한 자연풍광에 이유없는 눈물이 흐른다.

   
 

이황 :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 - 책 읽는 것은 산 오르는 것과 같다) 

讀書人說遊山似  사람들 말이 책 읽기는 산의 유람과 흡사하다 했는데

今見遊山似讀書  나이 들수록 산 유람이 책 읽기와 같다는 걸 일깨우네

工力盡時元自下  공력을 다한 다음에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같고

淺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같네

坐看雲起因知妙  가만히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 보면 묘미를 알게 되고

行到源頭始覺初  산행이 시냇물 근원에 이르매 비로소 원초 이치 깨닫네  

絶頂高尋免公等  산마루 정상에 높이 오르기를 그대들에게 기대하노라 

老衰中輟愧深余  노쇠하여 중도에서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하나니

 
   

이황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네 선조들도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였거늘
오늘의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과연 역사를 통해 배우는 동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길다면 길었던 길에서 책읽기를 마치며, 
자연을 통해 스스로를 반추했던 퇴계를 배우며,
그 완고함은 반쯤만 배우나,
그 끊임없는 향학열과 소신, 소박함은 잊지 말아야겠다.
뛰어난 퇴계도 앎에 가까이 가기 위해 평생 노력했거늘
나같은 보통사람이야 말해무엇하겠는가 
조급해 하지말고, 더 겸손하게 더 소박하게 더 느리게
매일 조금씩 배우기에 힘쓰리라
다시한번 불끈 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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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5-2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부석사-소수서원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곳들 중의 하나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5-26 17:52   좋아요 0 | URL
저는 도산서원이 소수서원보다 소박한 것이 왠지 더 좋습니다 ^^
시한 수 붙여 봅니다.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쇠종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하나 짓네

푸른바다 2009-05-2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도산서원엔 가보지 못했답니다. 소수서원과 부석사만 갔던 것 같아요. 전 소수서원이 더 소박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군요^^ 도산서원은 퇴계 사후 제자들이 도산서당을 크게 증축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시 감사합니다.

선묘 낭자의 애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듯 하군요...
숭고한 이상을 위해 개인적인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름다운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것이
언젠가 깨어질 환상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느껴질 때까지
사랑해 보는 게 인간다운 것인지...
답이 없는 질문이겠지요?^^

저도 시 한수 붙여 봅니다.

먼 산

천상병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은 없지만
하늘의 이치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산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