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이차세계대전 중 독일침략하 체코의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그 조그마한 동네의 조그마한 역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생의 목표가 오직 승진인 역장, 모든 관심사가 '가슴빵빵'인 여자와 '엉덩이 빵빵'인 여자인 역무원, 그리고 고작 여자랑 첫경험에서 제대로 못했다고 죽으려는 수습생이다. 

전쟁은 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다수는 조국을 침범해 오는 독일군을 피해 집에서 이블을 뒤집어 쓰고 피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 평범한 사람들도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말한다. 또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자식을 잃었으며, 자기처럼 평범한 가장을 쏘아죽여야 했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임을 잊지도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전쟁의 참상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이 생생히 들어나 있다는 것이다.  

오월이다. 우리에게도 멀지않은 광주에서 내 나라 군인에 의해 내나라 국민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지 불과 20여년 전이다. 그리고 명령의 의해 광주의 이웃을 죽여야 했던 이들은 나의 오빠요, 한 가정의 가장인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권력에 휘둘려 우리 보통사람들은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된다.  

그러나 마을에 독일인들이 쳐들어 올 때 모두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고 농기구라도 들고 힘껏 떨쳐 일어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한 마을이 힘껏 일어섰다고 해서 전쟁의 결과를 달라지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광주에게 짧은 시간의 해방구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전국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듯이.. 그러나 힘껏 떨쳐일어나지 못하면 시대에 휩쓸려가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광주의 희생이 우리의 근대사를 바꾸었듯이, 그 잠깐의 지연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광폭한 자본주의하에 우리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고 생존할 수 없는 이 시기, 승리할 수 없더라도 힘껏 몸부림 쳐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공산체제와 전쟁에 대해 슬픈 풍자로 풀어냈던 체코의 슬픈 왕이라 불리었던 보흐밀 흐라발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면 꼭 일독을 권한다. 

<책 속의 몇 구절>

p16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졌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저 바보 멍청이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처럼 독일군 앞을 막아서되, 손에 무기를 들고 대항했더라면 독일이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p58
도로를 따라 여기저기 사람을 뛰어갔다.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사이렌이 울리면서 응급차가 몇 대 달려갔다. 그때 온통 찢기고 엉망이 된 사람들이 날아와 떨어졌는데, 그들은 마치 실성한 사람들처럼 웃고 있었다. 잔디 위에 등이 부딪히며 떨어져 누운 채 웃고 있었다. 웃느라 그들의 몸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오직 한사람만이 몸을 돌려 비소차니 방향을 가리크며 말했다. "정말 지독한 공습이네요, 여러분!"그는 이말을 하고서는 잔디 위에 나뒹구는 커다란 팻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원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팻말이 쓰여 있는 문구를 반복해서 읽었다. "5분 완성."

( 여자친구와 첫경험에서 결정적인 순간 백합처럼 풀이 죽어버린 물건 때문에 실패하고 난 뒤 갑작스런 폭격을 당하고, 사진관의 5분 완성이 자신의 첫경험 실패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폭격보단 첫경험 실패에만 마음이 가 있는 철없는 주인공) 

p134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머리 독일군을 총으로 쏘아 죽인 후)

p156
이 나무는 공공의 소유죠. 하지만, 내 행동과 생각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소유가 되는 것처럼, 이 나무 역시 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나는 공중 화장실이나 공원과 마찬가지로 공공의 것일 수 있구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소개된 보흐밀 흐라발의 책이다. 체코의 근현대사와 부자집단에 끼는게 일생의 목표였던 어느 웨이터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었다.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두작품 모두 영화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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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5-25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이리멘젤이 만든 가까이서 본 기차, 란 영화와 겹치네요.
보흐밀 흐라발의 책이 원작인가봐요. 이리멘젤이란 감독도 늘 유머를 잃지 않아요.
언제나.. 비극보다 희극이 어려운거 같죠-

잘 지내셨죠? ^^

무해한모리군 2009-05-25 16:18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도 건강하신지요?
네 저는 건강히 잘지내고, 짬짬이 책도 읽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 영화제목은 저것인가 보네요 ^^
그럼요 희극은 정말 쉽지 않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