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김성동 소설가의 이번호 이야기는 신발입니다.
신발은 짚신과 감발을 더한 말이라고 합니다. 감발은 오늘날 양말처럼 발에 감던 무명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동학농민군과 빨치산을 무엇보다 괴롭웠던 것도 신발이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손이 얼면 비비거나 겨드랑이 사이에라도 넣을 수 있지만 발이야 말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열심이 몸다지기를 하던 항쟁군이니 하루이틀이면 짚신은 닳아없어지고, 맨살로 차가운 산길을 내달렸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신발 하나를 보급하기 위해 적진을 침투하기도 했고, 빨치산 작가 이동규는 맨발로 산을 헤매다 발이 동상으로 썩어 돌아가시기도 했다니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요.
원래 우리 민족은 가죽신을 신던 민족인데 북쪽 너른 영토를 잃어버리고 반도로 쪼그라 들면서 고만 짐승가죽이 들어오지 않아 짚신만 신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1% 정도의 지배층은 계속 가죽신을 신었겠지요. 잘못은 높은 양반들이 하고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백성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네요.
양말이며 신발이며 장 한가득 넘쳐나는 요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니 새삼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야기 둘
시사인 71호에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의 신년강좌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중에서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아 이곳에 옮겨봅니다.
장일순 선생이 사시는 마을 이웃에 장사하시는 할머니가 한분 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기차를 타고 오시다 고만 원주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신 것이지요. 그 돈이 무척 귀한 것이라 할머니는 장선생님을 붙잡고 울며불며 하소연을 하셨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선생님이 매일 같이 원주역에 출근하시어 앉아있으셨답니다. 이 노인이 일주일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같이 역에 앉아 있으니 주변에서 물어도 오고 연유가 소문이 났답니다. 일주일 되던 날 소매치기가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일부는 소진했고, 나머지는 여기 있습니다. 쓴 돈은 벌어 곧 갚겠습니다' 하더랍니다. 그 돈을 할머니께 전해드렸답니다. 여기서부터가 더 감동적인 부분인데 선생이 다음날 소매치기를 찾아가 "내가 자네 일을 방해했지?" 하며 소주를 사며 달래주셨다고 합니다.
사람간의 관심과 만남이 살아있는 소도시라 가능했던 일이라고 김종철 선생은 말합니다. 간디의 마을마다 하나의 공화국, 자생적인 협동조합만이 살 길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늘 지역운동에 관심이 있다고 하지만, 장선생님의 일화를 보니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이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앞으로 힘겨운 일이 있으면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아직 충분히 내가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라고, 가끔 이 이야기 떠오를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