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이아무개 목사의 로마서 읽기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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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읽혀져 왔고, 또 지금 현재도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책 중에 하나가 ‘성서’임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온당한 이해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성서를 경전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의 경우, 성서를 해석하고 전하는 이의 취향에 따라 구미에 맞게 변용(變用)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구요. 그렇기 때문에 성서가 담고 있는 ‘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가장 오랜 담론이자, 미결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성서학자들은 성서를 구조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검증하면서 쪼개고 또 쪼개왔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일단의 성과 또한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성서 해석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지요. 그렇지만 물론 성서학자들 또한 그 연구에 있어서 어떤 객관적인 지표에 의거했다기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잣대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개인마다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전제없는 텍스트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일 겝니다. 가다머도 똑같은 주장을 반복했구요.) 따라서 성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회의적인 물음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원칙은 아마도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라는 대 원제에 그 기초를 두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성스럽게 읽기. 그것은 곧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전적으로 내가 배제된 상태, 곧 나의 에고(ego)가 사라진 자리에서의 성서읽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에고가 사라져야만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만한 바탈이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읽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체의 에고를 배제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애당초 웬만한 ‘마음모음’(mindfulness)없이는 그 말씀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성서읽기의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게 되곤 합니다.

 

 일반의 주석서들에서 차용되는 그 어려운 개념어들은 결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없겠지요. 오히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씌여진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책들의 ‘경박스러움’은 성서의 깊이를 경험하게끔 인도해주지도 못할뿐더러 성서의 본뜻을 가리우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좋은 길잡이를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노릇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길잡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책의 저자인 이현주 목사님의 경우는 아마도 좋은 길잡이에 속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아주 좋은 길잡이라고 할 수 있지요.

 본래 <로마서>는 바울이라고 하는 사도의 서신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성서의 “다이아몬드”라고 일컬어 질 정도로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평가가 되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바울이라는 한 사람에 의해 자신의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라는 사람의 삶과 사상이 고스란히 그 책 속에 나타나고 있는 바, 그것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건 간에 그의 삶의 현장에서 구성된 것이며, 오늘날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구체적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오고, 또 그 속에서 읽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뿐 아니라 모든 성서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 속에서 읽고, 관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적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은 근본 토대 위에 이현주 목사는 성서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나가면서 그 뜻을 자기 ‘나름대로’ 풀이해봅니다. 그 속에서 (서구문명의 산물 혹은 고안물인) 성서는 동양을 횡단하고, 불가(佛家)를 가로지르면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영을 살아 숨쉬게 합니다. 그러한 속에는 배타나 분리가 떠나있고, 하나님의 뜻이 총체적 하나로서 내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성서(로마서)는 기독자들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것이 됩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진면목, 즉 심원하고도 깊은 종교적 사유의 방대함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저자는 바울이라는 한 영혼과 대면하는 심정으로 겸손하게 성서를 읽어 나갑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바울의 깊은 믿음의 경지에 ‘나’를 위치시켜보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인간 이현주는 쏙 빠지고 본디 로마서를 썼던 바울과 ‘나’는 인간적으로 대면해보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를 경전으로 삼고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오늘날의 교회들과 지도자들의 작태에 대한 지적 또한 예리합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자신의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로마서 말씀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미에 철저히 따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나 지도자들의 모습이 성서와 얼마나 별리되어 있는가도 잘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지난 18주에 걸쳐서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 청년부와 더불어 한 장씩 로마서를 읽어나가는 와중에(참고로 로마서는 총 16장입니다)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성서를 읽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답답한 이들, 성서를 읽고 싶지만 그 어려움에 압도되어 시작조차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도반이자, 스승으로서 깊은 성서의 세계로 인도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던 생각입니다만 역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야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재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발견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길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아니되겠지요.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결국 우리네 삶의 구체 속에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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