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작고 귀찮은 모기 하나가
주위를 윙윙 거리며
나를 좀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저 살아있기에
살아있으려고만 했던 나에게
모기는 분노를 가져다주었고
그 잔혹한 지겨움에 발버둥 치며
불을 켰다.
아귀에 꽉 들어찬 이글거리는 힘들이
샘솟고 있었다.
강렬한 스피드와 무게가
에너지를 발산하였고
모기는 이 내 피를 다 흘려내도록
압사 당하였다.
시간은 정지한 듯
적막 속에 멍한 존재의 망각이
불을 껐다.
숨어있던 모든 모기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너를 위한 기도
한 영혼의
가엾이 흔들리는 자태를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손 끝 하나
닿은 떨림에
휘청거리며 견디는
그의 가녀린 발 끝 저림을
머리 자올 하나
가만히 흔들림을
견딜 수 없어 소스라치고 마는
그의 시린 등 뒤를
다가설 수 없었기에
그저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바라보았음에
그저 한없이 바라보았음에
단 한 밤 너를 지켜내기를
기도해낸다.
달팽이
아직 한 번도 날개를
펴 보지 못한 나비,
시린 한 겨울 지켜주던
허물을 벗으려
힘겹게 얼굴을 내밀고
발을 내밀고
버둥버둥 날개를 펴려다 그만
단단히 굳어버린 허물에 갇혀
하늘 꿈 버리고서
바닥을 기기 시작한다.
꿈틀꿈틀 느릿느릿..
그래도 지렁이처럼
느물느물해 질 순 없어
행여 닿으면
단단한 허물 안으로 숨어
산산이 부서지는 꿈, 꿔보지만
아무도 모르고 아모도 몰라
하늘빛 그리움으로 길게
목을 내민다.
눈 내리는 날 묻다
눈이 내린다.
하얗게 흩어지는 벚꽃처럼
봄날을 가장하며 눈이 내린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모두
밖으로 나온다.
강아지 새끼들도 신이 나
꼬리를 흔든다.
어여쁜 아가씨들도 좋아라고
미소를 띠운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정말로 모두 알고 있는 걸까?
이 날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지독히도 추워져
밟히고 밟힌 눈발은 단단히 굳은 채
검게 물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 위로 지나가던 바로 그네들이
모두 미끄러져 내리고
자신 때문에 추악해진 눈발에
가혹한 침을 뱉어버린다는 사실을!
그렇게 스스로 녹아져 나리는 꿈
버리고서 나려지는 나락이라는 사실을!
그런 슬픔이라는 사실을
.
그러나 그 모든 슬픔이 이토록
황홀히 아름다운 것은
내.어.쩔.수.없.다.
사랑에 관한 짧은 문장
그대의 구들장 밑 감춰진 오래도록 해묵은 잿더미들을
나는 매일 들춰내 닦아줄 수 없다.
그러나 군불로 지펴진 뜨거운 아랫목 같은 그대 가슴에
연일 고단히 내려앉은 흙먼지들을
나는 매일 샅샅이 핥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