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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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두드리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정식 암기는 수면 중에 이뤄진다던 강사의 말은 실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잠은 더이상 죄책감을 실어나르진 않았다. 그때 만났다. <고령화 가족>은 읽었는데 늘 이 책이 명치에 걸려 있어서 최근작을 읽기 위해 먼저 읽었다. 폭발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현실로 꿈으로 삶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갉아먹었다. 빠져들기 쉬웠기에 나오기도 쉬웠고, 다시 들어가기도 쉬웠다. 시도때도 없이 먹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했다. 8년째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이 이것 뿐인 건 아니었다. 장식용이었던 시절, '스토리'는 무작정 매력적인 소설의 요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폭발하는 힘'이나 '이야기의 끊임없는 향연'이란 뻔한 수식어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는 없나 싶던 우려는 금세 반감되었다. 내 영역이 아닌 곳을 넘본 것 같은 민망함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한 줌 쥐고 머리로 걸러 손으로 타이핑 했을까.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존재하던 모든 이야기를 지웠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잘 안다.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은 사실 쓸 거리가 없어 쓰지 '못하는' 거란 거. 그만큼 표현력은 중요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동시에 충족 되어야 가능한 영역이 소설이고, 서사력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봉이다. 물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가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문학인들이 고민해야 할테지만 독자로 존재하는 동안만큼은 골치 아픈 판단을 피해갈 수 있어 좋다. 물론 판단을 종용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흡인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정작 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앞서 출발한 모든 소설의 서사 앞에 우뚝 섰다.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들어본 듯도 하며 약간 신파 같고 또 뻔한 여자의 일생이 담겨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우리 모두의 생활이고 삶이다. 신화이자 전설이고 현실이자 판타지다. 모든 영역에서 이처럼 또렷하고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벽돌공장의 신화는 모든 이들의 삶을 그러모은다. 그들은 살아왔지만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소설의 '실용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일테지만 소설이 실용적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고래>를 들이밀고 더이상 책임지지 않겠어,하는 건 문학도로서 아쉽긴 할 것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가깝고도 먼 세상을 묘사한 이런 장면이 고스란히 상상돼서 좋다. 이 소설은 정말로 차라리 영화를 닮았다.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 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해의 섬들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멀리서 아른거렸고 그녀가 앉아 있는 바위엔 끊임없이 파도가 부딪쳐 포말이 일었다. 무심하게 고깃배 위를 오가며 끼룩대던 갈매기들이 어느샌가 쏜살같이 해수면으로 날아들어 물고기를 낚아올리기도 했다. (p.49)

 

읽던 날은 하늘에서 강아지가 떨어진 날이었다. 독수리 먹잇감이 될 뻔하다 땅으로 낙하한 귀여운 강아지는 좋은 주인의 품에 날아들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 정도가 어울린다. 금복과 춘희와 이 특이한 모녀를 둘러싸거나 둘러쌌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 만찬으로 초대되려면 말이다. 나보다는 부모님과의 나이차가 더 세기 빠른 이 훈남 작가의 프로필 사진과 약간은 촌스러운 시대에 대한 삶의 수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자꾸만 다음 페이지로 빨려들어 얼른 끝을 보고 싶었다. 춘희와 금복과 쌍둥이자매와 노파와 애꾸눈 딸. 남자보다는 여자의 삶에 눈길이 더 갔다. 그리고 춘희와 점보(코끼리)의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에 더 눈물 지었다. 이 시대, 소설은 얼만큼 위로할 수 있나. 얼만큼 소통할 수 있나. 얼만큼 빠져들 수 있나. 문학을 배운 적이 없고 소설가를 꿈꾼 적이 없다던 등단이 늦은 어느 작가의 첫 장편소설 이후 8년. 한국문학의 길이 늘 새로웠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낱 출판사의 작품상 하나가 문단 전체를 뒤집을 순 없을 터, 여전히 고민하고 지리멸렬하며 난삽하고 재미없고 진부하고 뻔하고 미숙하다. 훌륭한 한국문단의 작가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독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기에 만족할 만큼 작품수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주어(나)와 뻔한 수식어(아름다운 꽃)와 뻔한 연결어를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했지만 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결심한 것보다 더 빈번하게 써왔다. 고민의 길에는 정답이 없었다. 시간이 변화를 예고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좋다. 3대로 흘러내려오는 노파-금복-춘희의 삶이, 토속 역사소설처럼 깔리는 배경에도 굴하지 않고 전복해버리는 시공간적 배경, 환상적 수다가 작렬하는 멈춤없고 끝없는 이야기가, 그녀들이 늘 조금 넉살스럽고 단단하고 헤프고 고풍스럽지 않은 것이 전부 다 좋다.

 

그날 이후,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된 대신 그의 눈앞엔 기억 속에 담겨 있는 풍경들이 아무 때고, 순서도 없이 불규칙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먼 과거에서부터 눈이 멀기 전까지의 긴 시간에 걸쳐 그의 인생을 모두 기록한 사진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희 풍경과 전쟁터에서 목격한 온갖 끔찍한 장면들,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벽돌공장을 다닐 때 보았던 낯선 이국의 풍경들, 그리고 떠오를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들의 얼굴, 또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벌이던 금복과의 정사와 혼자 남발안에 남아 벽돌을 굽고 있을 때의 한없이 쓸쓸했던 겨울의 풍경 등, 그의 전 생애에 걸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아둘 수 있었다면 한 평범한 사람의 생애에 그토록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또한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토록 많은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한편,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과 심리학 등 여러 인문학 분야에서 더할 수 없이 귀한 자료가 되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모든 장면들은 몇 년 뒤, 그가 버드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p.266)

 

文은 이웃소년, 어부, 걱정, 생선장수, 칼잡이 등 그밖의 모든 금복의 남자 중 가장 오래 남는다. 집안력으로 눈이 멀어갈 때나 의붓딸 춘희에게 벽돌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점보 잃은 그녀의 새 친구가 되어준 것, 금복에 대한 소유욕이 집착적이지 않은 것 등 온통 외로움과 고독으로 뭉친 사내지만 그의 눈이 멀었을 때 본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생애가 남긴 이미지가 위 네 문장에 보편성을 띤 채 담겨있다. '고래'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광경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고래문양으로 만들어진 금복의 영화관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얼마나 많은 고래들의 인문학이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인가. 삶이 하나의 수수께끼 혹은 미로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수련은 은교 같다. 이미 여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남성성을 획득하려 하는 순간 금복에게 수련은 다시 태어나면 훔치고 싶은, 젊고 아름다워서 훼손하고픈 대상이다. 결핍과 질투는 계열이 같고, 젊음과 늙음, 남자와 여자, 세대는 필연적으로 전복된다. 전반적으로 전쟁 겪은 세대가 금복이라는 여성의 권력에 의해 주물러지는 현실이 그렇다. 남자의 꿈은 여자의 영역에 존재하고, 단 한 번도 금복을 능가하는 남성성을 가진 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술술 흘러간다고? 작가는 여자가 아니면서, 여자 금복에게 남자를 투여했다. 그러고보면 이 소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 중 없는 이야기가 없고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다. 신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기 전에 이 둘은 하나였다. 성이 전복되는 순간 이야기는 성경, 전설, 신화, 구전 등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채 진행된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불온한 것들)이 이해도 되고 수긍도 되고 동의도 되고 그런 것 같다. 바깥에서 보기에 고래는 그저 거대한 한 덩어리일 뿐이지만 고래(상어) 뱃속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크고 넓은 각각의 방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바깥의 화자와 속의 화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고래 등과 고래 뱃속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면서 확장했다 축소했다를 반복할 수 있는 읽기다. 남은 기간이 길면 세세한 부분을 보고, 시간이 짧을 경우 전체적으로 덩어리를 기억하라던 말은 암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마 그 방법이 이 시대 소설의 영역확장에도 도움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흡인력은 숨가쁜데 앙금처럼 남은 이 미친 몰입감의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작가는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나를 끌고 들어갔단 말인가. 삼키면 언젠가는 뱉는 것이 세상의 이치건만 여전히 당혹스럽고 낯선 영역이 단지 나만의 체험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그나저나 춘희를 빼먹었네. 얘는 왜 이렇게 몸매,성격,운명 뭐 하나 멀쩡한 데가 없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예뻐해주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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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5-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작년에 읽었어요, 꽤 늦었죠. 그 전에 이미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고령화 가족>을 읽은 터라 더 인상깊게 여겨지더군요. 21세기에 쓰인 가장 놀라운 (한국)장편소설, 이라는 건 확신할 수 없지만 최고의 등단작 중 하나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신인이라서 그런건지 신인이라 그럴수 있었던건지. 천명관 씨는 자신의 등단작을 넘기 위해 애쓸 수 밖에 없을거라는 많은 이들의 의견에 얼마간 동의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5-24 21:51   좋아요 0 | URL
재밌긴 한데 저는 소설이 스토리텔링만 가능하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가만보면 내용이 약간 신파같기도 해서요. 시대상이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읽으면서 내내 <혼불>이나 <토지> 그런 시대극이 생각났거든요. 그런 대하소설에 담긴 엄청난 인간군상이 단권에 담겨있는 건 놀랍지만 신인이기에 가장 놀라울 수 있었던 것과 문학상에 이변을 일으킨 수상작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이 책 사실은 오래 전에 읽으려다 여러 번 관둔 적이 있어서 저는 기대가 좀 없었어요. 유일하게 본 <고령화 가족>도 별로였고.. 가족을 다룬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최근 읽은 소설 중 술술 넘어가고 술술 읽히는 걸로 봤을 때 확실히 흡인력은 있었어요^^

이진 2012-05-2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아이님 <고래>읽었군요!
저도 마침 팟캐스트 듣고는 읽고보고 싶어서 샀고, 지금 제 책상에 떡하니 얹혀있는데 아이님께서도 읽으셨다니 저도 얼렁 읽고싶어요. 지금은 수행기간이라 빡세서 도저히 못 읽겠고(마음먹으면 읽을 수는 있지만) 음, 내달에 읽을까요.
석식먹으러 가야겠어요. 갔다와서 리뷰 다시 읽어봐야지 ㅎㅎ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5-24 21:54   좋아요 0 | URL
아.. 그..누구지..팟캐스트요? 빨간책방 아닌가. 소이진님 페이퍼에서 봤는데 읽다가 또 까먹..( '') 그거 예고편때부터 기다렸다가 두 번 다 올라온 첫날 들었었는데..(아이팟 충전기 샀으니까요ㅋㅋ) 요즘은 [서정욱의 미술토크]인가 그거 주로 듣거든요. 짧은데 화가 한명한명 시대사조 하나하나의 요점을 확 짚어내주는 것 같아요. :)

수행평가기간..( '') 누나가 뭐 도와줄 거 없어요? 자료찾는 거 이런 거는 해줄 수 있는데.. 석식 먹고 야자하고 피곤하겠어요! 이제 집에 왔어요, 소이진님?

댈러웨이 2012-05-2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이거, 이책도 장바구니에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천명관, 이 사람 무지 셀 것 같은데, 그래요?

뻔한 수식어, 주어, 저도 고치려고 의식 많이 했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아이님, 센 작가들로 요즘 한국 작가들 세 명만 좀 추천해줘요, 라고 나 막 부탁해도 되요? ㅎㅎㅎ
(김연수 성석제 김영하 배수아 한강 박민규 빼고요 =>이 중에는 좋아하는 이도 있고 별루인 이도 있음요.)

왜 배를 두드리고 잤을까? 아이님 잘 때 배 두드리고 자요? 막 이렇게 아이님이랑 친한 척하고 싶은데... 음... 거리 지키기... --;;

잘 자요. ^^

아이리시스 2012-05-24 22:09   좋아요 0 | URL
저도 정상적(?)인 시간에 알라딘 들어오고 싶어요. 어젠 피곤해서 썼던 글 두 편 올리고 쓰러졌어요ㅋㅋ
저는 60년대생들로는 전경린, 하성란, 정미경을 추천하고요. 보편적이지만 신경숙을 제일 좋아해요.('깊은슬픔'이나 '풍금이 있던 자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같은 거요) 세 작가의 책이 신경숙보다 들 팔리는 게 단지 신경숙 작가의 네임밸류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전부 대학 때 읽어서(그땐 작품집들도 좋았는데요, 저는 단편을 워낙 싫어해요, 좀 몰입하면 끝나ㅠㅠ) 지금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70년대생부터는 한국소설 거의 안 읽었어요. 뭐랄까, 한국문학이 주는 아련함이 최근 세대로 올 수록 없어지면서 아무래도 좀 더 동시대성을 갖잖아요. 그게 별로라서요..

배수아는 지나치게 시니컬하면서 난해하고, 한강은 지나치게 감정과잉이라서 스타일이 정 반대지만 둘 다 저는 별로거든요. 그래서 요즘 한국 작가들은 전작 스타일 보다는 잘 선별해서 작품별로 한 권씩 읽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히히히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요ㅠ 누워있다가 잠든 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배를 두드리고 잤을까요ㅠ(두드렸을 수도 있음) 거리.. 물리적 시간적으로도 우린 충분해요, 댈러웨이님!!!

댈러웨이 2012-05-25 16:49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엔 한국 작가들은 단편이 좋더라구요. 반대로 외국 작가들의 단편은,,, 읽은 건 별루 없지만... 영.
추천작가가 전부 여성작가네요. 인상적이에요. 고마워요. ^^

아이리시스 2012-05-26 21:05   좋아요 0 | URL
꼭 여자만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저는 뭘 고를 때 호불호가 명확한 스타일은 아니예요. 그렇게 사니까 발전도 없고 여튼 고집쟁이가 돼서요. 저 원래 한고집 하는데 들키기 싫어요.푸핫. 사람한테도 안그럴려고 해요. 세상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여러명이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ㅎㅎ 좋고 싫은 건 분명 있겠지만 그건 취향일 테니 그것만 접하는 건 치우칠 여지가 많잖아요. 제가 말한 작가들은 댈러웨이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 저(!) 저한테 물으셨으니 나름 제일 제 스타일로 호호. 제가 저분들의 소설에 끌렸던 것 같아요. 남의 것을 읽는 것과 내가 쓰고 싶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읽은 게 별로 없어서 추천이 저렇게 된 거예요. 별로 없어요ㅠㅠㅠㅠ

제가 다시 잘 읽어보고 좋은 거 추천하고, 댈러웨이님이 읽으시고 추천하고, 우리 다시 추천놀이 하면 안될까요?ㅠㅠ

맥거핀 2012-05-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소설 재미있기는 재미있나봐요. 제가 아는 한 분은 이 책보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때 지나쳤다고 하던데...나도 읽어볼까..오..shining님이 21세기 최고의 등단작 중 하나라고 했군요.

아이리시스 2012-05-25 00:13   좋아요 0 | URL
네! 재밌어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요즘 집중이 잘 안되는데도 이 책만 펴면 잘 읽히더라고요. 오..저 말은 문단에서 했을걸요. 출판사에서 써먹었거나..언론플레이에서 했거나.. 샤이닝님은 21세기 아니고, 최고의 등단작이라고..( '')

맥거핀님 읽어요. 우리 다 읽었으니까 맥거핀님만 보시면 돼요!!! 아, 소이진님도 봐야 되고^^

이진 2012-05-25 00:40   좋아요 0 | URL
오, 맞아요. 21세기 최고의 등단작. 안 읽었지만 왠지 그럴거 같아요.
그런데 첫문장은 제 스타일 아닌 거 같아 보여서 걱정은 살짝 되는데.

아이리시스 2012-05-26 21:0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주말 잘 보내요^^
 
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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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쯤 쓴 헤밍웨이 저작권 만료 페이퍼 후에 딱 두 권을 샀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가지고 있는 옛날 전집에 있긴한데 관심 밖이었다. 예전에 읽은 건 <노인과 바다> 뿐인데 사실 그것도 기억에 없긴 마찬가지다. 읽으나마나. 어쨌거나 처음부터 장편 초기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관심이 있었다. 첫 아내 해들리와의 추억을 담아낸 소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에 나오는 여인이 바로 이 회고록에 나오는 아내일 것이다. 폴라 매클레인은 헤밍웨이가 쓴 1920년대 파리 시절에 대한 회고록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A Moveable Feast)>를 읽다가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을 두고 말한 대목,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를 마주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해들리에 대한 전기 작품을 읽기 시작했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도서상세페이지에서) 그가 계기로 삼았다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또 한 권은 <킬리만자로의 눈>인데 이건 아직이다.(중,단편 편식이라서) 초기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번갈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산문체라 더 빨리, 더 현실적으로 잘 읽혔다. 개인적으로 재미는 별로였지만(여긴 파리도 아니고, 파리에는 헤밍웨이를 능가하는 나만의 눈부신 추억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힘들 수밖에) 흥미를 능가하는 소소하지만 특별한 그 무엇이 여기에 있었다.

 

제목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가.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과의 친분과 그녀 집에 드나들던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 피카소가 있었던 것, 뒷부분에 자세히 할애되는 스콧과 젤다와의 인연 등은 이미 우디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봤던 바, 아, 이 책을 토대로 파리에서의 헤밍웨이를 생각하면 당시(1920년대) 거리마다 카페마다 반짝였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파리를 떠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헤밍웨이는 작품을 위해 고뇌하는 외로운 영혼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아내 해들리가 언제나 함께 있으므로 가난과 고독, 무료한 일상을 더욱 풍부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들도 태어난다. 그야말로 평화로움 속에서 일렁이는 풍요로운 삶이다. 경제력으로만 보면 그럭저럭이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야 한다는, 써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삶의 지위에서 바닥인 적이 없었다. 헤밍웨이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다양한 파리의 인간군상과 경마 혹은 경륜에 대한 단상, 좋아하고 또 영감받은 여러 명의 작가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51)

 

화려하지 않지만 특별한 일상은 더 큰 화려함보다 더욱 수려하게 휘어잡는다. 걷고, 사색하고, 글쓰고, 책읽고, 다른 작가나 화가를 만나면서 얻은 소소한 영감을 그는 소중히 여긴다. 호오로 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해주는 것이 글쓰는 이의 미덕이기도 할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축제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가난한 것마저도 탐스럽게 느껴졌다. 배고플 때 빵냄새가 더 고소하게 느껴지고, 세잔의 그림이 더 또렷이 보인다는 헤밍웨이가 뤽상부르와 여느 카페들을 오갈 때, 나도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관심은 작가에 한하지 않고 음악과 그림에까지 미친다. 에밀 졸라, 에즈라 파운드, 스타인 여사,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투르게네프, 고골, 톨스토이, 캐서린 맨스필드, 장 콕토, 콜 포터,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 등에 대해 얘기하는 모든 의견들이 한 줄기 빛처럼 독서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한다. 헤밍웨이니까, 파리니까 이 모든 것이 축제다.

 

나는 장편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정제된 문장으로 소설을 완성하려고 애쓰다 보니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장거리 달리기를 연습하듯이 우선 조금씩 조금씩 긴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했다. 전에 리옹 역에서 가방과 함께 원고를 잃어버린 그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앚기 젊음 그 자체만큼이나 허망하고 변덕스러운 젊은 나이의 순진한 정서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원고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p.87)

 

파리의 거리마다 책을 파는 노점상이 있고, 무엇 하나 허투루 보는 법 없는 이 젊은 미래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당시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로 아내와 함께 알뜰살뜰 살았다. 넘치는 돈은 아니었지만 부족하다면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함께 의논하고 나누며 좋아하는 것들을 사고 하고 즐겼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의미 그 자체로. 그는 파리에 체류했던 20대(1921-1926)를 1957년 가을에서 1960년 봄 사이에 회고록으로 썼다. 그리고 1964년 출간되었다. 덧붙여진 헤밍웨이의 상세한 연대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사진 컷을 구경하면서 비로소 환상의 그가 실제의 그로 환생하는 느낌이다. 작품을 읽는데 작가를 꼭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영화를 보는데 배우를 반드시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작가를 먼저 알고 작품을 읽는 것과 작품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자를 실행하려 한다. 기억나지 않는 <노인과 바다>를 뒤로하고 장편소설 대신 회고록의 에세이를 먼저 고른 건 분명 의지였지만 한편 그를 만나는 가장 쉽고 아름다운 방법이긴 했다. 헤밍웨이의 화양연화.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라는 헤밍웨이의 말 전에 나는 이미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가서 여전히 또렷하지만 약간은 빛바랜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파리도 헤밍웨이 못지 않은 나의 화양연화다.

 

가난했다. 모든 것이 없었다. 젊었다. 가장 행복했다. 가진 게 없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간절히 바라고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지독하게 글과 책에 매달렸던 젊은 날의 순간이 바로 나의 화양연화였다. 비록 파리는 아니지만 내게도 그렇게 지금을 표현할 날이 과연 올까.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벗은 채 오롯이 과거로만 쓰인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크다. 아무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있었던, 가난과 고독이 인생 가장 혹독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그런 날들을 나는 지금 만들고 있을까.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노트르담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생루이섬과 시테섬, 센강의 차가운 반짝임이 아름답다고는 느꼈지만 대부분의 경우 파리는 내 것이 아닌 적이 많았다. 마레 지구로 들어섰다 길을 잃었고, 작가(및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찾아다니다 지쳐 나가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 지금도 제 2의 헤밍웨이들이 파리의 어느 대로와 골목에 늘어선 노천카페와 술집을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간절히 쓰여지길 바라는, 쓰고싶은 어떤 글 한 줄기를 생명줄처럼 붙잡고서.  

 

주류를 꽉 잡은 미국문학보다 선호해온 건 늘 유럽문학이었다. [외국문학감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학 때 전공수업은 그래서 지금까지 어쩌면 먼 훗날까지 여전히 유용할텐데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금각사'를 능가하는 문학이 내게는 오랫동안 드물었다. 작가편식이 뿌리 깊었던 탓에 박혀있는 기억이 쉽게 순위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 샐린저보다 헤밍웨이를, 헤밍웨이보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헤밍웨이의 파리. 기호야 어쨌든 문학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만큼은 국가,지역,시대를 따지지 않았던 문학의 거장들. 그들의 한때와 헤밍웨이의 20대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즐겁다.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는 기회와 영광, 나는 분명 파리에 있을 때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곳이, 추억이 앞으로 나를 얼만큼 괴롭히고 또 살게 할 지를. 그때도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엉뚱하게도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글쓰기 열정을 가능하게 하는 그 힘. 언제쯤 온전히 그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잘 사는 것 그리고 잘 쓰는 것.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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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5-1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헤밍웨이를 읽기로 했었는데 다른 책들때문에 분명히 밀릴거에요.
그런데 위의 책은 아이님 리뷰때문에 먼저 읽어요.
'줄줄이 엮이는 작가들'때문에 도저히 미룰 수가 없겠어요.
(중학교때 무지 재미없어 하면서도 헤밍웨이 전작했어요. 음, 이제보니 번데기앞에서 주름잡는 격이군요. ㅎㅎㅎ)

아이님의 화양연화는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것이기를 바래요. 그래야만 하니까.

잘 읽고 가요.

아이리시스 2012-05-17 17:38   좋아요 0 | URL
진짜 저 작가들도 제대로 읽은 게 없어요. 책읽는 사람이라는 게 살짝 민망한데 그래서 어디가서 책읽는다고 말 안하려고요ㅋㅋㅋ 오, 중학교때 헤밍웨이 전작하는 댈러웨이님이라니. 저는 아니예요, 번데기가 나 아닌 거죠?ㅠㅠ

화양연화. 그 영화 볼 때 참 어려워서 싫던데 이제 좀 알겠어요, 조금이지만 알게되긴 되더라고요. 그래야만 하니까. 이 말 좋다, 댈러웨이님. 당위성 부여.

프로필사진 저거 좋아요, 새삼 발견하고 기뻐함ㅋㅋㅋ

댈러웨이 2012-05-17 22:07   좋아요 0 | URL
1. 번데기'라는 표현 이제 보니까 잘못 쓴 것 같은데,,, 나쁜 뜻 아니었어요. ㅎㅎㅎ

제가 뭐 헤밍웨이 작품들을 알고 읽었겠어요?
4권인가 5권 두꺼운 전집으로 있었는데, 것도 세로줄. (집에) 읽을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생각나는 건 파라과이 다리 나오는 거, 그거 하나.

2. 위에 올라온 <당신과 나 사이>,

나 또 첫 민망댓글 달기 싫어서 여기다 남김요.

밥 먹듯이 책을 읽었다니, 아이님,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또 어떻게 그렇게 모든 걸 다 한꺼번에 잘 할 수 있어요?

3. <에고트릭>, 심리학쪽인 줄 알았는데 철학이에요? 끄응...

4. 좋아하는 영화 딱 두 개, 그 중의 하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래도 또 보고 싶은 영화. 생각만 해도 어쩌지 못하겠는 영화.


아이리시스 2012-05-19 00:37   좋아요 0 | URL
좋은 뜻에서 번데기요.. '헤밍웨이 전작=번데기' 요게 저 아니란 거예요, 댈러웨이님.히히히.

이야, 다들(댈러웨이님 포함) 어릴 때 굉장히 독서를 하신 것 같아요. 저는 책 안 읽으면 다닐 수 없는 학과에 다녔기 때문에 그때 잠시만 밥 먹듯이 책을 읽었어요. 20대 중반은 아예 책과 거리가 멀었고 지금 생각하면 질에는 별로 신경을 안썼던 것 같아요ㅠㅠ

아, 그렇다면 다시 봐야겠어요, 화양연화. 저는 기무라 타쿠야 좋아해서 <2046> 좋아해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좋지만요^^ 또 한 편의 영화는 뭐예요? :)

맥거핀 2012-05-1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정말 헤밍웨이 때문에 알라딘도 그렇고, 여기저기 이야기들이 많군요. 내년에는 포크너와 헤세라던데..이런 식으로 가면 매년 새로운 저작권 만료 작가들로 출판사들의 디자인경쟁, 번역경쟁이 이어질듯..좋은건가요?

아이리시스 2012-05-19 00:39   좋아요 0 | URL
아..포크너와 헤세요? :)

몰랐던 사실이에요.하하. 그럼 헤밍웨이 죽.. 돌아가신 후 다음 해에 포크너와 헤세가 죽.. 돌아가셨다는 거네요! 그래봐야 읽는 사람만 또 읽을 텐데요, 뭐. 개인적으로는 새 번역이 나오면 책 가격만 올라가기 때문에 고전은 별로 안 땡겨요.새 책이라도.하하하.

포크너는 잘 모르겠지만 헤세는 나올 것 다 나온 것 같아요, 민음사에서. 다른 출판사에서는 몰라도 읽을 책이 충분히 있어서 헤밍웨이만 할까 싶어요. 헤밍웨이는 사후에 유족들이 출간을 엄청 반대해왔다고 했거든요.

자목련 2012-05-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를 만나보고 싶은 아주 맛난 글이에요.
이 책에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전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을까 해요. 알라딘에서 멋진 필통을 사은품으로 걸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한데, 그 필통이 탐나긴 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5-19 00:41   좋아요 0 | URL
네, 나와요. 셰익스피어&컴퍼니 이야기 나와요, 자목련님.

<킬리만자로의 눈> 사면 필통 줘요? 오오, 저 5년째 제주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사온 필통 쓰는데 바꿀만큼 이뻐요? :)

프레이야 2012-05-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댈러웨이님 페이퍼로 이미 끌렸는데
아이리시스님 리뷰로 완전히 불났어요. 땡스투유~
지름신을 부르는 리뷰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5-19 00:43   좋아요 0 | URL
파리를 회고하며 썼다면 헤밍웨이 아니었더래도 어느 작가라도 샀을 것 같아요.하하.
프레이야님께도 읽고 쓰는 것,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다가가야 할텐데!

책상 위에 두고 간혹 펼쳐볼 것 같아요^^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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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랑스럽다. 하루키의 것들 중 제일 쉽다. 물론 이 순간 기억나는 어떤 장면도 없다. 그의 이야기들은 무거운 일상 속으로 붙잡고 늘어지기엔 너무 가볍고도 고찰적이라서 곁에 머물지 못한다는 걸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안다. 그는 여전히 존재와 상실에 대해 얘기한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그의 이야기란 걸 알아볼 수 있다. 이제는. 나는 등장인물 중 각자 아니 모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라이카다. 이 사실은 변함 없다. 얇은 분량인데 꽤 오래 옆에 두고 읽었다. 그리스에서의 이야기는 절반 뿐인데 내내 그리스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설렘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스푸트니크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뮤와 스미레와 나의 이야기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면 알려주겠다. 둘은 여자고 나는 남자다. 스미레와 나는 친구 사이, 뮤는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 연상이다. 끝.

 

식당 밖으로 나오자 염료를 부어넣은 듯 선명한 저녁노을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공기를 마신다면 그대로 가슴속까지 물들어버릴 듯한 파란색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자그맣게 빛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지역 주민들이 여름의 늦은 일몰을 기다렸다는 듯이 집을 나서서 항구 근처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가족이 있고, 커플이 있고, 사이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싱그러운 바다 냄새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p.160)

 

뮤는 스미레가 종종 얘기해서 처음 만나면서도 이미 알던 사람 같다며 나를 맞았다. 파란 물결이 새하얀 거품을 물고 팔랑거리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그녀는 스물두살의 '내가 사랑하는 스미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다. 스미레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나는 스미레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튼, 나는 어젯밤 뮤의 급작스럽고 다소 무례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이 섬으로 오게 되었다. 스미레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조금 늦게 나를 마중나온 뮤는 올리브 오일과 흰 살 생선 요리, 화이트 와인을 대접하면서 용건을 얘기했다. '스미레가 사라졌다'고.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카자흐공화국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다. 직경은 58센티미터, 무게 83.6킬로그램인 이 인공위성은 96분 12초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다음 달 3일에는 라이카라는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라이카는 우주 공간으로 나간 최초의 생물이 되었지만, 그 위성은 회수되지 못하고 우주에서의 생물 연구를 위한 희생으로 기록되었다.

(고단샤 발간 <<크로니크 세계전사>>에서)

 

하루키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초반 100페이지를 스미레, 나 그리고 둘의 관계설정에 신경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들어간 대학의 문학부마저 관둘 정도로 열정이 상당한 스미레의 열렬 상담가이자 문학적 동반자는 나 뿐이다. 그녀는 늘상 새벽에 전화를 걸어 상황과 행동의 타당성 아니, 감정의 쓰나미를 멈춰줄 대답을 구한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화내거나 짜증 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하고 위로한다. 스미레에게 나는, 나에게 스미레는 언제나 그곳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인공위성 같은 존재다. 내가 스미레에 대한 애정을 깨달은 건 스미레가 연상의 뮤를 만나고, 그녀의 제안에 응해 사무실로 출근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다며 만지고 느끼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였다. 스미레는 뮤와의 밤을 궁금해했고, 나는 스미레에게 정말로 사랑인 것 같냐고 반문했다. 그리스의 어느 섬으로의 여행은, 간혹 떠나던 뮤의 출장에 스미레가 동행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새벽에 뮤에게 그리스로 와달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나는 스미레가 흔들리거나 좌절할 때 이렇게 말해준다. 나로서는 위로가 격려가 아니라 솔직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것에는 거짓말을 하진 않아. 네가 지금까지 쓴 문장 안에는 멋지고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 예를 들어, 네가 오월의 해변을 묘사하면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나. 따뜻한 태양이 온기를 두 팔에 느낄 수 있어. 또 네가 담배연기로 꽉 찬 좁은 방에 대해서 쓰고, 그걸 읽고 있으면 정말로 숨이 막히고 눈이 아파져. 그렇게 생명이 느껴지는 무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냐. 네 문장에는 그 자체로 호흡하고 움직이고 있는 듯한 자연스런 흐름과 기운이 있어. 지금은 그것들이 아직 하나로 제대로 연결되고 있지 않을 뿐이야. 피아노 뚜껑을 닫을 필요는 없어." (p.87)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가끔 대단히 상냥해질 때가 있어. 마치 크리스마스와 여름방학과 갓 태어난 강아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p.88)

 

나에게 스미레는 불안과 평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상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런데 지금 나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 있는 것이다. 뮤와 앉아, 스미레의 실종 얘기를 들으며.

 

잠시 다른 이야기.

 

그리스의 섬에 머물며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하여 자국으로 돌아가 유명해진 수많은 예술가들이 과연 당시 부서질 듯 아름다운 그리스의 혼란함, 전쟁, 독립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코렐리의 만돌린>이 그리스에서 벌어진 전쟁(독일군과 무솔리니가 손잡고 연합군과 벌인 2차대전)을 그리고, 그리스의 섬에서 아름다운 시를 썼던 칠레 시인 네루다의 시는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그보다 이전에는 터키(오스만투르크제국)를 상대로 힘겨운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 평온한 그리스의 섬 이면에 숨겨진 역사와 아픔을 사람들은 볼 줄 모른다. 하루키는 이것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먼 북소리>를 쓸 정도로 그리스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또 스미레가 걷는 유야무야한 작가로서의 길은, 문학부에 들어가 세속적 분위기에 박차고 나올 정도로 깊게 갈망하는 문학의 길을 나 또한 고민하게 한다.

 

스미레는 어디로 갔을까. 스미레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는 뮤의 얘기는 스미레가 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다음 시점부터 시작된다. 부르고뉴에서 만난 영국인이 그리스에 있는 별장을 빌려주었고 둘이 함께 세상의 끝과도 같은 이곳에서 꿈결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스미레가 사라진 사흘 전까지.

 

계속 쓰려고 했다. 하지만 사흘 전의 일과 그 이후의 일들을 찾아가는 건 각자의 몫인 것 같아 여기서 접기로 한다. 나 또한 언젠가 훌쩍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없는 건 아니니 스미레의 사라진 그림자를 추적하는 건 뭔가 옳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녀도 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지구로 내던져졌고 이 행성이 어디든, 누가 곁에 있든 없든 나는 살아야 한다. 라이카도 그랬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있었을 테고, 살아있고 싶었을 테니까. 자기연민이 기본적으로 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원래 많은 것에 계획적인 타입이 아니라서 언젠가 계획을 세우고 나면 그 계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 쓴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런 게 없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냥 두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 것 하지 않은 채로 그냥 두는 건 나를 지구라는 행성에 내던진 조물주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 인간에 의해 스푸트니크에 탄 채로 사라져버린 라이카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관둬야겠다. 더이상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은.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도 뭘 하지 말아야 할지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랑에 관한 한, 하루키의 이 문장은 시작이자 끝이다. 소설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파노라마다. 자, 이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모든 것이 끝난 이유다.

 

사랑이란,

 

스물두 살의 봄, 스미레는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가는 땅 위의 형태가 있는 모든 사물들을 남김없이 짓밟고, 모조리 하늘로 휘감아올리며 아무 목적도 없이 산산조각 내고 철저하게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고삐를 추호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가련한 한 무리의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폭풍이 되어 어느 곳엔가 있는 이국적인 성곽 도시를 모래 속에 통째로 묻어버렸다. 그것은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는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 연상으로, 결혼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여성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거의) 모든 것이 끝난 장소였다. (p.7)

 

실제로는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모든 것이 끝난 장소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할 때, 결국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다.

 

나는 어디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린다면 그것 또한 일상적이었으면.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그것은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거죠. 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타버려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p.197)

 

자유는 위험을 동반하는데, 내 손을 떠나 행복하길 바라며 세상 속에 던져놓고 상실을 견디는 마음과 구속이 사랑이라 착각하며 내 책임감을 내세우는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 언저리를 서성대는 날들이다. 나를 떠난 것이 불행할 거라고만 생각하는 건 내 오만이 아닐까. 대신 너는 자유를 얻을텐데. 내일 죽을 지라도.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대사를 이해할 것도 같다.

 

답이 들려올 리 없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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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5-10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쉽나요? 저는 <상실의 시대>는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 다른 소설들은 이상하게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는데
가깝지만 먼 사이라고 해야되나요..? ^^;; 표현이 애매하네요. 그니깐 쉽게 말하면
처음에는 맞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읽어나갈수록 점점 이해불가해지는,, 그런 느낌이에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5-10 19:12   좋아요 0 | URL
저는 하루키 소설 중 <1Q84>는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달이 두 개라고 말도 하고 결국 아오마메와 덴고는 만나지 못했다고 봤거든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까. 어제 이 책 뒤적이다 보니까 이제 장편은 제가 안 읽은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옛날을 생각해보면 나이 탓인지 그때는 다른 세계를 말하는 하루키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어렴풋하게는 어떤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고 생각했어요. 알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주 아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짧아서 내용파악하고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와 관념의식의 장을 잘 읽어내리면 이 책은 하루키 소설 치고는 쉬운 편이에요. <상실의 시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잇는 연애소설이라고 하거든요. 연애소설이니까 연애소설로 읽으면 확실히 다른 것들보다는 명확할 거예요.

어느 정도는 느낌으로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느낌으로요. 저는 맞다고 생각했는데 쓸 수록 내 말을 내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에요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1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소설의 <1Q84>는 유일하게 읽은 하루키 소설인데...
결국 그들은 만나지 못한걸까요? 전 나만 이쪽 세상에 남겨둔 채 그들 둘은 저쪽으로 가버렸다는 생각이 들던데 말예요. 제가 워낙 소설을 안 읽다보니 전 이거 읽는것도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어요...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은 봐야겠고 말예요..ㅎㅎㅎ

연애소설인데, 어려워 보여요. 전 요새 모든게 귀찮아져서 그냥 마냥 쉬운게 좋더라구요. 저도 쉬운 여자가 되는 것 같은데...(뭐 이젠 누가 여자로 봐주지도 않지만요.ㅋㅋ)

아이리시스 2012-05-11 16:55   좋아요 0 | URL
제가 완전 좋아하는 현맘님도 읽으신 유일한 하루키군요, 1Q84. 이제 기억도 희미한데, 그럴 수도 있어요.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그들만 저 세상에 있고 나만 이 세상에 있는 것도요. 지금도 그런 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서 예전 리뷰를 읽어보니까 저는 둘이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 썼더라고요. 그래서 그랬나보다 그랬죠. 읽는 도중에는 정말 제각각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던 책인데..

책도 사실은 뭔가를 받아들일 수 있거나 흥미와 관심사, 시간이 딱 맞아떨어져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걱정거리 있어서 체한 게 며칠 째 가고 있고 머리도 아프고 아, 진짜 총체적으로 짜증나요. 흑흑ㅠㅠ

다양한 이유에서 현맘님은 완전 매력적인 여자.(진심임)

댈러웨이 2012-05-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건 언제 또 올라온 글이에요?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고 리뷰까지 썼던 기억이 새삼나네요. 일단 먼저 아이님 것부터 읽고. 흥분해서 읽지도 않고 댓글부터 달고 있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5-11 16:57   좋아요 0 | URL
이건 원래 있던 글이요, 댈러웨이님ㅎㅎ 요거 쓰고 천천히 읽으려고 지금 하루키 글 아껴놓고 온 거예요. 밤에 잠 안들면 모바일 알라딘으로 읽으려고요. 요즘 서재글들 거의 못 읽고 있는데 그래도 이웃분들이 꾸준히 써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맥거핀 2012-05-1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읽었던가, 아니던가..기억이 잘 나지가 않아요. 예전에 도서관에 있던 하루키 소설을 꽤 읽었었는데, 이 책도 거기 들어가 있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용을 보니 거의 처음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공기를 마신다면 그대로 가슴속까지 물들어버릴 듯한 파란색이었다." 참 하루키스러운 문장이네요. 어떻게보면 좀 유치해보이기도 하는데, 그런게 하루키의 매력이죠.

아이리시스 2012-05-11 17:00   좋아요 0 | URL
저는 맥거핀님은 영화만 많이 보시는 줄 알았는데 하루키에 인문 신간평가단.. 역시 신비주의였어..( '') 저는 이 책을 빼먹었는지 본 걸 또 본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서점 갔는데 우연히 보고는(신간도 아니잖아요) 알라딘에 들어와서 검색했더니 중고책 한 권 나와있기에 같이 주문한 건데.하하하.

저는 낭만적이고 비일상적이고 환상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짚어주신 문장 좀 오글거리기도 하는 듯. 이제 하늘하늘하는 문학소녀는 아니니까요(좌절) ㅠㅠ

에세르 2012-05-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1999년도 사서 읽었습니다. 하루키가 책을 내면, 1주일내 사던 버릇은 여전했지만, 이미 그에 대한 열정이 많이(아마 가장) 식었던 무렵이라, 가장 성의없이 읽었던 하루키의 책이 아닌가 싶네요. 하루만에 딱 한 번 읽었죠. (그가 쓴 수필집조차 며칠에 나누어 아껴 아껴 읽던, 그것도 네번이상 읽던 시기와 비교하면, 하루키에게 미안할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 뒤로 두고 두고 여러번 읽으면서 다시금 진가를 느꼈답니다.^^ 일단 음미해 볼만한 구절이 많더라구요. 말씀처럼 비교적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는..(전 어려우면 싫어합니다.)ㅋㅋ
[먼 북소리] 읽으면서 언젠가, 그리스를 배경으로 작품이 나오겠군 했었는데, 바로 이작품이었더 기억이..ㅋ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 남자(초등학교 선생님)가 물건을 훔치다 경비원에게 걸린 홍당무라는 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에 비할바 없이 좋았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나중에 자식이 생긴다면, 자식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댓글이 너무 두서없는데, 아무튼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라고 말하시며 다른 글자색으로 쓰신 부분이 인상적이라 여러번 읽었네요..

아이리시스 2012-05-13 17: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항상 앞서가고 지금 이것을 쓰면서 내일의 무엇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작가이고 예술가들인 것 같아요. 제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제가 좋아하는 도시 로마 이야기를 꼭 다시 이런 식으로 해줬으면 하고 노래 불렀었는데 지금까지 몰랐다가 이제야 알았는데 정말로 로마를 배경으로 한 [투 로마 위드 러브]가 4월에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개봉했다더라고요. 그의 유럽정복은 한 번으로 끝날 예정이 아니었던가 봐요. 그러니까 제 생각은 언제나 누군가 해봤거나 계획하고 있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하하하. 그 전부터 저걸 알고 있던 사람은 절 보면 되게 웃겼겠네요. 하여튼 오늘날은 아예 모르든가 무관심할 게 아니라면 반드시 정보력을 키워야..( '') 하하. 저 뭐라는 건지ㅋㅋㅋ

저는 이 작품 좋았어요. 예전에는 [양을 쫓는 모험]과 [태엽 감는 새]를 좋아했는데 너무 오래돼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저도 말씀하신 장면 좋았어요. 홍당무라는 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요. 그렇게 우회적으로 진짜 할 얘기를 드러내는 하루키 스타일을 이제야 이해하는 것 같아요.

다만 이러는 저는 [먼 북소리]를 못 읽었거든요. 이제 그 작품을 읽을까 해요. 댓글 좋았어요, 에세르님^^

Shining 2012-05-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없는 동안 아이님이 쓰신 글을 저는 언제 다 읽을까요ㅠ 일단은 이 글부터 시작했습니다ㅠ
이 책은 제가 친구를 기다리며 코엑스 반디 앤 루니스(맞나;)에서 다 읽은 책, 이라는 것 밖에 기억이 남지 않아요ㅎ
읽을 때는 음, 좋군_- 했는데 기억을 송두리채 사로잡을 문장은 없었나봐요; 하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처음 읽었을 땐 왕왕 좋았는데 작년엔가 다시 읽으니 별로 안 좋잖아! 충격을 받았죠ㅠ
타이밍이 전부에요, 정말. 전 <1973년의 핀볼>이 좋아요, 그냥. 그냥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2-05-16 16:20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그렇잖아도 오늘은 인사하러 갈랬는데 글 있어서 아껴뒀어요. 하하하. 왜 아껴읽게 만듭니까!!!
저는 요즘 써논 글 한참 후에 정리해서 올리기 땜에 독서와 글에 시차가 좀 있어요. (그래서 어쩌라고_-;)
근데 친구 기다리며 하루키 읽는 샤이닝님은 진정 멋져요 @.@ 본받아야 돼. 저는 서점에 가면 멍때리고 앉아서 커플들 구경하는데요. 다른 사람들 막 무슨 책 읽나 몰래몰래 훔쳐보고. 푸하하.

좋다고 말해도 기억이 전혀 안나므로(그래도 하루키 책은 집에 다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호호) 왜 좋은지 유추조차도 해볼 수가 없네요ㅋㅋㅋ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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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금,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것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며칠 아프리카에 빠져 지내며(또다른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 중) 오랜시간 이어져 내려온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여기고 있는데, 뉴스에서 진보당에 터진 비교적 더 가까운 일들을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게 해줄 이 나라 정치인들이 난리인데, 아무리 아프리카 사정을 잘 알게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회의마저 들었다. 국내사정은 모르겠다. 원래 '국제' 관련 일을 하고 싶었고 언어도 되도록 많이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내 영역이 그곳까지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의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리카는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한 대륙인 줄로만 알았다. 기후는 원래 무덥고 건조하며, 먹을 것을 재배하기는 어렵고, 운도 없게 그곳에서 태어난 아프리카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들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조금 더 커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곳의 실상황에 대해서나 일련의 역사적 부조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다. 반성한다.

 

아프리카의 기후가 저주 받은 건 틀림없다. 사하라 사막이 횡단으로 가르는 아프리카는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지리적 상황을 감수해왔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뭉뚱그려 아프리카로 일반화하기에 사정이 좀 다르다. 남아공, 에피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로 나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상황으로 접하는 절대적 빈곤, 에이즈, 말라리아, 낙후된 여건 등 언론 속 모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블랙 아프리카)의 일들이다. 사하라 사막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나타난 지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유럽 식민지배에 의해 인위적으로 쪼개져 분할된 이후로 나타나게 된 역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원래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부족의 지배자 혹은 지도자를 선출하여 다스려온 아프리카의 민족 특성상, 유럽과 서구가 제멋대로 통합 혹은 분리를 실용노선으로 정한 다음부터는 내전과 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족 개념의 여러 집단을 임의적으로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아무렇게나 국경선을 그으면서 부족의 역사, 인종, 종교, 특성 등을 간과하고 국가로 만들었다. 어제까지는 옆 동네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하나의 국가로 거듭났으니,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전이 있는 나라는 특히 심한데, 서구와 선진국들의 점유전쟁으로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는 돈을 벌 수 있다. 이 돈으로 한 번 지배자 위치에 오른 이들이 부정선거와 내전을 치를 무기를 구입하고 외국은행으로 개인재산 불리기를 시도하면서 끊없는 정쟁이 계속된다. 세계 각국과 UN이 원조하는 상당수 구호품들도 이런 식으로 독재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지키는 자와 뺏으려는 자는 인종/종교/혈족 등 여러가지 요인을 시발점으로 내전을 벌이는데, 이럴 경우 피해는 가난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되풀이되는 악순환. 실제로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날마다 당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오늘날 바다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해적의 나라 소말리아다.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며, 아주 어린 소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를 누비는 범죄를 막을 아무런 국가적 장치를 기대할 수 없다.

 

가난, 에이즈, 말라리아, 식수 등은 사소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최소한의 것들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이며, 국제사회가 아무리 모기장과 식량, 물을 보내도 소수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아프리카인들은 자력으로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잃어버렸다. 말라리아는 모기장만 제대로 쳐도 죽음을 막을 수 있는데 모기장 공수는 물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마을까지 운반할 도로,교통 인프라가 없다는 것, 모기장을 만드는 공장과 식용으로 쓸 우물을 파는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공사를 진행하는 국가가 발을 뺄 경우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던 다른 국가들도 점점 아프리카인들의 무대책과 무대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외국에 팔기만 하면 돈을 버는 유전과 광물자원을 팔며 돈을 벌지만 자기 배불리기와 권력유지에만 신경쓸 뿐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불거진 재스민 혁명(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벤 알리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일어난 민중혁명으로 후에 이집트 무라바크와 리비아 카다피 축출 등으로 이어지는 아프리카와 아랍 민주화 혁명의 발단이 됨)은 조금씩 사회적 의식수준이 높아진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아프리카 및 중동 곳곳에서 진행중이며, 내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앞서 얘기한 빈곤, 독재, 기후, 내전 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치적 제도마련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 서술한 것만으로도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 자국의 가난을 유럽 식민주의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점, 곳곳에 만연한 종교분쟁(크게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지만 역사적으로 부족적 전통을 가진 만큼 셀 수 없는 숫자만큼의 전통 종교들이 부딪침), 도움의 손길을 가장한 선진국들의 유전/광물/시장 쟁탈전, 시민들의 질낮은 교육수준, 기후변화, 한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기술, 무엇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구조 등 총체적 난국이란 걸 알 수 있다. 아프리카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들의 권력과 재물에의 집착이 오히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을 병들게 한다. 이들은 무조건 역사 탓, 서구 탓, 그렇지 않으면 자국의 자원을 내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한 치 고민도 없이, 자원을 더 내다 팔거나 원조를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국들 입장에서 영원토록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물론, 아프리카의 결단력이 필요한 때이다.

 

독재자를 축출하는 것만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잎만 떨어져 나갔지, 뿌리는 그대로라서 다음 지도자가 다시 독재와 부패를 답습할 수도 있고, 군부독재가 시작될 경우 권위주의는 뿌리 뽑히기 힘들다. 실제로 재스민 혁명이 성공했으나 해당국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거제도 역시 부정부패가 만연해 여론조사에서는 늘 당선을 예견했던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진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내전에 불이 붙고, 국내문제불간섭 원칙을 어겨서라도 UN이나 선진국이 아프리카의 선거에 관여해야 했다. 실제로도 원조 규모나 시기 등을 협상카드로 제시하며 아프리카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런 궁여지책이 얼마나 통하겠는가. 아프리카에 묻힌 자원이 유한한 것만도 아니고, 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유럽 식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한 이 대륙이 자연스럽게 민주와 풍요의 탈을 쓸 리도 없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대륙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제 전 지구촌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대륙의 크기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포기하거나 내려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서구의 아프리카 쟁탈전을 염려한다. 과거 미국과 유럽이 닦아놓은 길은 유용했으나 간섭이 심했기에 아프리카로서는 마다할 제안이었다. 현재 중국은 서구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프리카의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국영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정착해 유전과 광물을 캐고 자원을 탐낸다. 값싼 생필품을 만들어 팔고, 아프리카인들은 일시적 유용을 누린다. 그들은 당장의 먹거리가 너무나도 급하기에 현재 낭비되고 있는 자국의 지하자원 같은 것들을 지킬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틈새시장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자국의 투자와 국가와 기업의 윤리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서구는 배불리기에 급급한 중국을 비난하지만 이들 또한 가능하다면 중국처럼 하지 않을 리 없다. 아프리카는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실타래는 하나씩 또 총체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국가정체성이나 국민을 지키는 마음이 아쉬운 이유다.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지금으로선 지나친 낙관론 또한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대로라면 아프리카의 침몰에 울어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는 있어도 아프리카 대륙을 위해 슬퍼할 진정한 친구는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 대륙에도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깨끗한 정치를 맡아줄 지도자가 더 많이 나타나 전통과 문화를 오롯이 지켜낼 날은 언제일까.

 

그런데 헤겔은 왜 이랬을까?

 

헤겔에 의해 아프리카는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 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흑인들의 검은 피부는 어둡고 몽매한 밤의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져 '흑 아프리카'라는 부정적 개념을 정형화하는 데 일조했다. 헤겔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인간성마저 부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인에게 종교적으로도 편향된 시각을 투영했다. 고차원적인 기독교는 야만인들에게 적합지 않으며, 욓려 이슬람교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흑인이 인간성에 대한 부정은 19세기 노예무역업자와 노예를 필요로 했던 이들에게 양심의 가책 내지는 죄책감의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p.42)

 

오늘부터 헤겔 안티 하겠음.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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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0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흠...얼마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그렇더라구요.
여기나 거기나 지도자들의 문제는 참 어렵군요. <지도자>란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건지, 그런 사람만이 지도자가 되는건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진정한 사람 지도자가 필요해요.
다음에 읽으실 책도 기대되요!

잘 지내고 계세요? 날은 더운데 계속 봄이라고 우겨대고 있어요. 아직 잎파리들이 짙은 초록색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전 더워도 아직 봄을 즐길래요. 짧아서 더 아쉽죠~

아이리시스 2012-05-07 00:22   좋아요 0 | URL
저를 지도자로 뽑으세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현맘님. 불끈!!

아프리카는 좀 바보 같아요. 남탓 하고, 잠시 행복하자고 후손 생각 안하고 자원 마구 팔아먹고.. 국민들이 불쌍해서 눈물이ㅠㅠㅠㅠㅠ 이 책이 비교적 쉬운 편이고 다른 건 좀 더 지식 수준이라서 차례대로 읽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름과 위치가 어색하지 않으니 그래도 다행이랄까.. 오오, 현맘님은 왜 리뷰 안쓰시는 거예요!!!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나요!!!

리뷰 올려달라!! 올려달라!! (데모중-오랜만에 하는 건데.. 더워서 여기까지요)

이진 2012-05-0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증말!! 누나 왜 이렇게 늦게 오신거에요. 매일매일 글 안올라오나 목 빠지게 기다렸잖아요 ㅎㅎㅎㅎㅎㅎ 말이 더워서 글쓰는게 잠시 귀찮아 진거죠? 남해도 저번주까진 영 춥더니 갑자기 날이 확 더워졌어요. 서울은 벌써 반팔까지 입고 다닌다며 놀라 했는데 이젠 여기도 슬슬 반팔을 꺼내야겠지용.

제게 아프리카는 기근, 기아의 나라로밖에는 기억되지 않는군요. 언젠가는 도와주고싶은 그런 나라요.
그나저나 아이님 저 벌써 <토끼드롭> 다운 받아서 시험끝나면 볼 궁리를 해대고 있었단 말입니다.
제가 빨랐죠? 흣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시다 마나가 나온 드라마는 <마루모의 규칙>이랑 <마더> 이게 젤 유명하고 다른거는 잘 모르겠어요.
극상의 어떤... 뭐도 있다던데 말이에요.
어쨌뜬 <토끼드롭> 무지무지 기대되요!
남자주인공도 무려 데스노트의 엘이라니요... ㅎㄷㄷ

이진 2012-05-07 00:52   좋아요 0 | URL
참, 신나게 공부중이었는데 아이님 댓글 달린거 보고 바로 컴퓨터 켰어요.
공부도 마침 접고 자려던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뵈니까 반갑기도 해서요ㅎㅎㅎㅎㅎ
내일 중간고산데 마음이 편하네요.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의 해탈감이랄까요, 무소유랄까요.

아이리시스 2012-05-07 16:46   좋아요 0 | URL
어맛, 지금 누나 늦게 왔다고 소이진님 화내는 거임? 좀 기다릴 줄 아는 남자가 나는 멋있든데..( '') 푸하하하ㅋㅋㅋ 글을 쓰려면 머리를 써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나길래 아, 진짜 더워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뭐 이런 생각만 들고..

<아, 그 버니가 토끼였음?>ㅠㅠ 일본은 드라마,영화 죄다 제목이 웃기더라고요. 근데 나도 다운 받았음. 마더하고 토끼드롭. 그 포스터의 남자가 엘이었음?ㅠㅠ

근데 공부를 신나게 하다니, 의문1. 아이님 댓글에 바로 컴퓨터 켜다니, 의문2. 내일이 중간고산데, 그럼 오늘인데, 아아아아아, 드디어 소이진님이 전국 1등 할 기회가.. 셤 잘 봤어요? 오늘은 내일 꺼 공부해야죠!!! 여기 오지 마!!! 해탈감은 뭐고 무소유는.. 절대 오면 안됨!!!

오늘은 진짜 더워요.으아아아악.

비로그인 2012-05-0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두 사람 댓글 보면서 제가 다 웃네요. 오랜만에 오신 아이리시스님! 저도 아프리카에 관심 좀 가져볼까봐요. 이 책이 좋은 입문서라고 하니 어여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역사의식이 너무 없어서 (역사적문맹) 역사 책을 가뭄에 콩 나듯이라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만 읽으니까 사람이 너무 구름 같아지는 거 같아요. 가끔 비도 내리고 눈도 콩콩 내리는데 구름만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요. 인문학 책도 읽으면 좋다고 하셨던 게 작년이었나요? ㅋㅋ 그런데 여지껏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있네요. 책에 관해서면 뭐든지 좋은데 이상하게 자꾸 미루게 되는 경향도 있어요. 빌려놓고 그냥 반납하고, 읽어야 할 책 그냥 거들떠보지 않고. 뭐 이런거요.

음, 과연 소이진님의 전국 1등 도전은? @_@ ㅎㅎ

아이리시스 2012-05-07 23:00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읽는데? 역사적문맹 아님^^

구름 같아졌어요? 하하. 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인문학 책 읽으면 좋다고? 소설 읽으면 안 좋고?ㅋㅋㅋ 내 안에 수애가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한데, 말이 좀 이상한데?^^

원래 책이 너무 많으면 시간이 너무 많으면 뭘 해도 잘 안되는 것 같기도 해요. 내일 읽어가야 하는 책이면 오늘 밤 새서 다 읽어야 수업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하게 되고, 내 책이면 아까워서 읽어야지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수업에서는 안 읽고 들어가도 티가 안 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내 책이 아니니까 그냥 반납하게 되고 그렇죠? 다 그래요. 저도 그래요.(웃음)

수다쟁이님은 갈 길을 잘 가는 거예요! 이제 책 말고 다른 거 좋은 관심거리 생긴 거 아니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소이진님 여기만 피하고 다른 서재에 왔잖아요!! 일단 내 맘대로 전국 2등으로 목표 수정했어요^^ @_@ ㅎㅎ

이진 2012-05-08 16:16   좋아요 0 | URL
아... 들켰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12-05-07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
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래 / 이엠아이(EMI)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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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와 'What am I to you'는 내게 국보급. 악보가 어딨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 치면서 흉내내려고 했다. 체르니 100번,30번 친 동생은 피아노를 전혀 못치는데 나는 40번,50번도 뗐기 때문에 까먹은 상태는 아니라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는 가능하나 노래를 못-_-해서 첫 번째 좌절. 두 곡은 몇 년 동안 자장가였고, 'Young Blood'는 여전히 벨소리인데다가, 'Sinkin' Soon'을 듣다보면 반드시 레이 찰스 앨범도 듣게 되는데, 그럼 그날 밤 잠은 완전히 설치게 된다. 이건 부활하고는 또 다른 이유로. 자꾸 찾게 되는 무의식이 취향과 관심, 애정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녀의 정규앨범들을 얼마나 닳도록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 엄청, 많이,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함께 줄세울 엄청난 수의 다른 뮤지션들이 있다.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있는 건 언제나 문어발로 존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유 없이.

 

처음부터 노라 존스는 바르게 안착했다. 첫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적이지만 듣는 대중 개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떤 지점을 개척했다. 혼자 좋아하면서 분위기 잡고 싶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은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스러울 만큼. 노라 존스가 누구에게나 친근한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못됐다. 취향을 나누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지가 별로 없다. 실제로 재잘재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얘기하는 사람은 J 뿐이다. 함부로 재단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유일한 가족 아닌 가족. 다들 아는 분야, 읽은 책, 들어본 음악에 숟가락 하나 더 못 얹어서 난린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늘 헬스장 뛰어다니고 드라이브 하는 것 같은데 책은 언제 읽는지,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닮아간다. 정확히는 내가 닮고 싶다. 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나가는 얘를.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나를 견뎌야 하는데(그럴 경우 타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가려고할 때면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진중함은 늘 나를 붙잡는다. 나를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나는 늘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시도때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것, 도착해서 짐을 풀 때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비밀과 거짓말>을 쓰고나서 은희경 작가가 애기했던 '역마살'인데 나는 그건가. 여튼 뭔가 궤도에 올리면 울궈먹는 대신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소설가에게는 역마살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살붙이고 숨결 불어넣고 사랑하고 애증하다 언젠가 보내야 하는데, 그걸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책을 더 읽거나 공부를 더하면 되는데, 공감력이나 감성이 모자라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과 공감력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일반인을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느낀다. 가식이 아니라 뼈저리는 고통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탐색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노라 존스는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잡식성이고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재즈에 대해 모른다(음악잡지 재즈피플을 몇 달 받아보면서 알았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쉬웠다). 두 번째 좌절. 굳이 비교하면 나는, 재즈 < 컨트리,인데 그래서 노라 존스 < 올리비아 뉴튼 존,이다. 제이슨 므라즈는 두 장르 모두를 넘나들지만 그의 곡들은 한국사람 정서에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기가 쉽고, 좋아하는 사람 찾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쉽고, 싫어한다고 하면 모두 확 달려들어 공격해올 태세. 참고로, 나는 안 싫어한다. 좋다. 부산 콘서트. 라이센스 공연은 예전에 갔던 스위트 박스 이후로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비싼 돈 들여 공연 갔다가 얄궂은 일로 죽어라 싸워서 헤어질 뻔;;(갑자기 이게 왜..)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제이슨 므라즈의 새 앨범 월드투어 첫 스타트가 부산이란 게 신기하고, 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를 동경하던 언젠가처럼 아련해진다. 좋겠다, 가수는.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온 세계 도시들을 누빌 수 있다니. 그래도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나는 지금 노라 존스 새 앨범에 리뷰를 덧붙이고 있다.

 

얼마 전 맛보기로 싱글이 발매되었다. 'Happy Pills'는 여전히 상큼하고 부드럽고 강했지만, 그동안 귀가 예전 곡들에 적응했는지 쉽게 마음으로 듣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가능해졌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곡들의 느낌이 나를 나이먹게 한다. 이게 3월이었나, 어쨌든 그러면서 잊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충동이다보니, 우연히 앨범을 구하게 돼서 들을 수 있을 때 얼른 들었다. 처음부터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가사의 뜻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동이 한걸음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말리는 마음의 느낌으로 한 곡씩 마음에 넣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또 이 곡들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상관 없었다.

 

노라 존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피아노' 때문인데, 우연찮게 [Live in Paris] 앨범을 듣다가(다이애나 크롤도 파리 라이브 앨범 있는데! 그것과 달리 노라 존스의 이건 해외앨범인 것 같다)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모든 곡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놀랐다. 편곡의 힘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라이브의 현장성도 물론이고, 새삼 감탄하다가 역시, 좋겠다, 가수는. 으로 귀결. 사실은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운 거지만. 전에 데이트 하던 날, 걔 성격 답게 말 꺼내자마자 114에 묻고 서면 뒤져서 '애플스토어' 가서 아이팟 충전기 사왔다. 2만원 생각하고 갔다가 4만원이래서 잠시 놀랐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한데다가, 어차피 없으면 안되고, 안사고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샀다. 산 건 잘 한 일이었지만 4만원 충전기+USB잭이 불안하게 덜렁거리는 걸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기존고장도 그래서 났는데, 원래 쉽게 고장나도록 만들어 놨던 거군, 하면서 애플 씹다가 그냥 잊었다. 며칠 지나니까 역시 돈이 좋아,이러면서 아이팟으로 밤마다 <패션왕> 무한반복과 각종 영화들 섭렵을...( '') 자연히 노트북은 자료 옮길 때만 쓰고, 그즈음 엄청나게 인문서를 사모으고,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인터넷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으로 무장한 다음,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보고는 이제 프로이트와 융을 읽겠다며 책장을 다 뒤져서 엉망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군데군데 파전과 부추전을 굽고, 돼지고기 엄청나게 넣어서 보글보글 매운 김치찌개도 끓이고, 두부랑 호박 숑숑 썰어서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양념소고기를 엄청나게 볶아서 상추쌈을... 먹긴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노라 존스와 상추쌈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노라 존스는 충분히 갖다 붙이는 대로 간다니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나른하고,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이건 틀렸다. 슬픈 거랑 달콤한 건 반대말이 아니니까. 그래도 맞다. 낮을 슬퍼하면서 밤에만 피어나는 장미 같다. 노라 존스를 들으면서 생각도 안 나는 많은 악기들을 배워볼 생각을 했다. 처음 'Sunrise'를 듣게 된 건 누가 피아노 치며 그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그렇게 강해 보이는 거다. 연약할 때 연약하고 강할 때 강해서 사랑받는다. 강약을 잘 알아야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노라 존스는 그런 여자처럼 노래하고, 그녀의 여성성에 환상을 품게 한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희미한 첫사랑의 느낌. 그녀를 보며 늘 피아노 치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던 내가 드디어 피아노 연주하는 타인에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노라 존스가 있는 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p.s. 내가 딱 보편적 취향이다 싶은 게, 매번 '미는 곡'이 좋다. '숨겨진 곡'이나 '끼워진 곡'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이나 욕도 안듣고 이러고 대충 사는 거겠지,싶어서 세 번째 좌절. 이번 앨범자켓은 이전보다 더 예쁘다. 통에 든 포스터도 저 자켓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실 문 앞에 붙이면 욕실이 환해질 것 같아서 내 방 말고 욕실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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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라진 노라 존스, Happy Pills 들으면서
    from A Month in the Country 2012-05-13 10:48 
    일요일 아침 노라 존스 신보 'Happy Pills' 라이브 무대 녹음 동영상 보면서 들으면서 시작한다. 내가 알던 노라 존스가 확 달라졌다. 맛보기 동영상만 있어서 얼마간 곡에만 취해 있었는데, 오, 그녀, 이제보니 외모까지 달라졌다. 그러나 어쨌든 더 좋다. 신선해서 다 좋다. 바람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오늘은 집에만 있고 싶은데, 꽃 들고 사뿐사뿐, 외출이다.
 
 
맥거핀 2012-04-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제이슨 므라즈가 내한하는군요. 어제 보니 가가도 왔던데..노라 존스도 몇 번 한국에 온적있지 않나요? 옛날에는 저도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오면 막 가고 이랬는데, 이젠 왠지 좀 시큰둥. 그래도 매닉스가 한국오면 가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어요. 빚내서라도 가야지.

아이리시스 2012-04-22 22:18   좋아요 0 | URL
아, 맥거핀님은 서울 사시죠? 여기 부산에서는 그런 거 오면 많이 신기해요. 가수들이 연말마다 일부러 부산 내려와 지방공연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미술전시회가 더 취향..인 것 같아요. 사실 좋아하는 것과 공연가는 건 좀 다르잖아요. 노라 존스가 좋지만 굳이 공연가서 손 흔들며 듣고싶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많이 왔을 걸요. 이거 어제(그제?) 쓴 건데, 간만에 검색해봤더니 많이 왔었더라고요. 이젠 왠지 좀 시큰둥222. 저도 가고 싶은 공연은 몇 개 있는데 빚내서 가고 싶을만큼 음악팬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도 가수들 좋아했지만 보러 뛰어다닌 적은 없고. 저는 대체로 얌전하게 좋아했어요.

갑자기 빚내서라도 간절한 무엇이 있다는 게 부럽네요. 요즘 좀 다 재미없는 것 같아서요..

이진 2012-04-2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나도 알라디너 분들의 음악가 사랑에 동참해보고 싶어요. 얼마전 다락방님이신가 누노의 팬이시라며 글을 올리셨는데 아이님은 노라 존스! ... 두 분다 처음들어보는 사람들이라 안타까움의 눈물을. 그래도 노라 존스 한번 들어보고 싶은걸요. 팝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밖에 안들었는데... 일단 재즈. 흠

아이리시스 2012-04-24 16:06   좋아요 0 | URL
응. 소이진님은 처음 들어보니까 다락방님이 소개하시는 노래도 듣고, 제가 소개하는 노래도 듣고! 그러면 얼마 지나지않아 누나 나이 되어야 아는 것을 빠르게 어린 나이에 모두 습득^^

근데 날씨 왜이렇게 더운 거예요...갑자기... 힘빠지게!!!

댈러웨이 2012-04-2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아이리시스님, 저 지금 무척 흥분했어요. 새 앨범 곡들 찾아서 듣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 이거 노라 존스 맞아요? 1. 곡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은 뭐죠? say good bye 같은 곡. 2. 앨범 사진, 여지껏 보아 온 노라 존스 이미지 중 가장 섹시한걸요.

3집 딜럭스 판으로 달랑 한 장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sinkin soon이 있는 앨범(^^), 노라 존스는 음색이 무난하다고 해야할까 격하게 애정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격해지네요. ㅎㅎ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My blueberry night에서 주드 로와 그녀는 참 이뻤어요. 그런 거 따라하고 싶어지쟎아요. ^^

아이리시스 2012-04-24 16: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우리(?)는 앨범이 나오면 반드시 구매를..( '') 난 뭐 내 저작권주장 그런 것도 못하겠어요.(아..너무 솔직한가..) 대체 내가 나오지도 않은 판을 어떻게 구한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그것도 우연히...

이 댓글 보고 다시 들어봤는데 say good bye 정말 그러네요. 섹시해요. 저는 나른한 목소리에 언뜻 섹시함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은 정말 그러네요. 격하게 애정 다시 한 번 하는 중이에요.하하.
뭐니뭐니해도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 짱!!! 그런 거요? 키스각도?ㅋㅋㅋ

비로그인 2012-04-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저는 그런 공식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노라존스=돈노와이.
이 글을 보니까 공식을 조금 확장하고 싶어지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2-04-24 16:11   좋아요 0 | URL
나도 노라존스=돈노와이. 동감!
나는 공식 좀 확장했어요. 수다쟁이님도 해봐요. 그리고 한영애말고 또 추천해줘요!
나윤선하고 오지은은 원래 좋아하는데 한영애 좋더라고요^^
(나한테 추천하진 않았으나 내가 읽으면 나는 내가 추천 받은 거 같아가지고 막 신나서 들어봐요)